한반도 정세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오랜만에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약속하였지만, 한국정부는 핵 포기와 천안함 사건 사과 등 3개 선결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본격적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했고, 이에 질세라 북한도 속히 대북제재를 풀지 않으면 핵개발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맞섰다. 주변 강국들은 날개 달고 날아가는데, 정작 한반도 당사자인 남북은 여전히 70년대 낡은 버스 안에서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정부는 오직 한미동맹만 믿고 중국봉쇄에 협력해 큰 반발을 샀고, 북한의 급변사태를 상정한 ‘개념계획 5029’까지 준비하며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결국 3세대 세습은 본격화되었고, 이에 대한 파장은 지금 남쪽에서 더 크게 일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정권에 큰 아킬레스건이었던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가 사망했다. 분명 우리는 얼마 전만 해도 분단 반세기만에 극적인 남북정상회담(2000, 2007년)을 비롯해 유례없는 10년의 밀월기간도 경험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우리는 불과 몇 년 만에 다시 70년대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을까?

지금 우리는 매우 지혜로워야 한다. 우리민족의 명운을 대통령과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맡겨놓고 넋 놓고 있다가는 민족파멸의 길을 자초하게 된다. 이제 남북정부도, 운동세력과 국민 모두는 각자의 역할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1. 90년대 이후 한반도 위기,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 마디로 말하면 현재 한반도 위기구조의 본질은 북한의 체제존립 위기에 있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은 소련, 동독 등 사회주의 혈맹의 붕괴, 김일성 사망(1994년), 잇따른 자연재해와 식량난과 경제실패 등 전면적인 체제위기에 직면했다. 게다가 당시 미국과 한국 김영삼 정부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즐기며 봉쇄와 압박을 거듭했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하여 새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내적 동요는 고난의 행군과 선군정책으로 틀어막고, 대외적 압박은 핵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평화와 생존을 교환하는 몸값흥정을 시도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제한적 냉전구조는 누구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했다. 북한은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는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기에 어찌하든 외부의 힘을 빌려 경제개혁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한국대로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분단비용을 허비하며 남북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을 수 없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들 역시 이전의 냉전구조에 묶여 편싸움만 하기에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해져 버렸다. 결국 밉든 곱든 큰 거래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쨌든 한반도와 동북아에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누구에게도 손해니 북한은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은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돕고, 중국, 러시아 등은 이러한 합의이행에 공동 책임을 진다.’ 바로 2003년부터 시작된 6자회담의 구조다.

그런데 말이 쉽지, 사실은 이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마치 인질과 돈 중 누가 먼저 움직여야 하느냐를 놓고 승강이를 벌이는 영화장면처럼 서로 믿지 못하기에 상대방이 먼저 행동하라고 한다. 우리는 북이 먼저 핵을 포기하면 체제보장과 지원을 해 줄 것이라 하고, 북은 우리가 먼저 안전을 보장해야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각자해야할 행동내용을 여러 단계로 나눠 동시에 움직이자는 것이다. 그게 2005년 9.19공동성명의 ‘단계별 동시행동 원칙’이다. 그렇기에 기다리는 시간이 좀 걸린다. 서로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박차고 일어나면 판이 깨진다. 답답했지만 지난 10년 간 그렇게 조금씩 진전해 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모든 판을 뒤집어엎으며, ‘엄청나게 북한에 퍼주었지만(?) 얻은 게 뭐냐?’라며 이전의 모든 합의를 사실상 깨버렸다.


2. MB정부: “대북 압박 성공해도 얻을 것이 없다.”

MB정부는 당연히 이전 10년과는 다른 정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기대했던 실용성과 합리성은 철저히 배신당했다. MB정부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 온갖 우여곡절을 거쳐 어렵사리 만들어 놓은 10년의 평화화해기조를 완전히 까먹고 적대의식만 더 고조시켰다는 점 * 북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한국의 인프라(인적, 물적, 사회적)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 * 지금 상황을 개선할 그 어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정책도, 책임감도 없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김영삼 정부가 전임 정부 시절의 남북합의서를 바탕으로 초기 남북협력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오히려 서로의 적대의식만 더 키웠던 것보다 더 형편없는 정부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 지난 2년 동안 한 것이라곤 잘못 기초한 ‘비핵개방 3000정책’만 붙들고 허송세월하며 모든 명분과 실리를 낭비한 것뿐이다. ‘비핵개방 3000정책’이 무엇인가? 북이 먼저 핵을 없애면, 개방을 도와 북한 1인당 GDP 3000달러가 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이미 살펴봤듯이 서로 믿지 못하니 동시에 함께 행동하자는 게 6자회담 원칙인데, 한국정부는 해결과제인 핵문제를 전제조건으로 깔고 들이대며 파국의 빌미를 만들었다.

천안함 사건은 이러한 적대적 남북관계에 기름을 부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국민의식조사에 비추어 봐도 이 사건에 대한 정부발표를 ‘그대로 신뢰한다’는 국민은 전체의 32.5% 밖에 안 된다(‘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35.7%). 이처럼 국민들조차 이해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들이대며,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는 식으로 세월만 낭비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 한국정부는 북한 버릇고치기를 명분으로 한미동맹에 목숨을 걸고 미국의 중국봉쇄에도 거침없이 가담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항공모함까지 참여하는 해상 훈련을 주도하였고, 미-중 사이의 환율전쟁에서도 미국 입장에 등이 떠밀려가는 형국이고, 심지어 중국과 일본 및 동남아시아 사이의 영토분쟁을 바라보면서도 ‘중국위협론’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은 무시하고 중국은 불신하면서, 모든 문제를 미국과의 동맹에 의존해 풀어나가며 일본의 협력을 기대하는, 국제정책 치고는 너무나도 단순무식한 정책이다. 그 결과는 이미 뚜렷이 나타나듯이 ‘북-중-러’와 ‘한-미-일’의 21세기판 신냉전질서다.

한국정부의 대북, 한반도 정책은 여전히 북한붕괴의 믿음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인 화해, 평화, 통일의 정책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무시와 기다리기로, 때로는 압박으로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갈수록 중국요인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인책이 전혀 없는 보복을 위한 보복은 분풀이 외에 아무런 효과도 없다. 그럴수록 조-중 밀착만 강화할 것이다.

그러다가 용케 한국정부가 바라는 대로 북한의 현 정권이 무너진다 치자. 그렇다면 한국정부의 기대처럼 북한을 얻을까? 여기에 가장 어울리는 격언들이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 사람이 얻는다.’ ‘죽 쒀서 개준다.’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는 죽었다.’ 악순환만 초래하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다. 그래서 최소한 남북관계 면에서만 봐도 MB정부는 최악의 정부다.

한국정부도 여러 모로 대화(협상)를 모색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전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화(협상) 하는 척하며 북한이 망할 때까지 관리나 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이번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에서도 보듯이 아직까지 북한은 한국을 상대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남은 2년은 북한이 아무 것도 얻지 못해도 더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결국 아무리 기다려도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할 때, 북한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세 가지다. 첫째는, 전쟁을 포함한 완전한 파국을 선택하는 것이다. 더 이상 모든 협상과 대화를 포기하고 핵 및 대량살상무기를 실전화한다. 국지전 및 전면전을 불사하는 군사행동을 불사한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장의 분풀이 외에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둘째는, 반대로 한국 및 미국 등 서방의 압박에 못 이겨 완전히 투항하고, 전면 개방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의 약점은 이것을 실행할 현실적인 주체세력을 북한의 현재 상황에서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저 우리정부의 굳센 믿음에 그칠 것이다.

가장 가능한 경우가 바로 세 번째다. 생존을 위한 초읽기에 몰려있는 북한이 협상을 통해 한국과 미국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면 그들은 마지못해서라도 중국의 큰 날개 아래 들어갈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영향력에 다시한번 기대고 싶을 것이다. “그런 시나리오를 미국이 바라만 보고 있겠느냐?” 그런데 영원토록 변치 않을 것 같은 바로 그 ‘한미동맹 신앙’이야말로 국제정치에서 가장 순진한 ‘희망사항’에 다름 아니다. 국제정치, 더구나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원래 그런 것이다.

미국이 언제까지나 한국의 입장과 같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한사코 믿지 않으려 한다. 한국 중심의 통일한반도가 자국체제와 질서를 적대하지 않는 한 중국의 양해를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의 북한 포섭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적대하지 않는다는 상호보장이 있다면 부득이 미국도 모른 척 할 것이다. 100 여 년 전 동아시아에서 미국, 영국, 일본, 러시아 등이 식민지국가들을 제 멋대로 주고받았던 것과 꼭 같다. 원래 강대국들은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한미동맹에만 기대 우리만의 전략을 포기해버린 현 정부의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정책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한국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제를 풀어갈 적극적인 평화, 통일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문제 파행의 책임이 어디에 더 크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백번을 물어도 ‘한국정부에 있다’고 답할 것이다. 그건 북한이 한국보다 잘해서가 결코 아니다. 단순 경제력 차이만 살펴봐도 2008년 기준 남북한의 대외 무역총액차이는 225.6배,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37.3배 차이를 나타냈고, 1인당 GNI는 18.1배, 2007년 기준으로 쌀 생산량도 3배 가까이 차이를 보였다. 인구도 북한보다 거의 두 배가 많다(아시아경제/2009년 10월 26일). 비교 자체가 힘들다. 북한은 이미 안 되는 것을 되게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평화와 통일을 주도할 역량이 없다. 그러나 되는 것을 막거나 지연시킬만한 힘은 아직 있다. 골육지책인 이번 김정은 후계자 공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한은 갈수록 수세에 몰릴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당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북한의 태도 하나하나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게 아니라, 좀 더 큰 그림을 보며 북한의 연착륙과 남북화해와 통일을 대범하게 이끌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기회는 놓치고 위기만 조성하며 시간이나 때우면, 이명박 대통령은 훗날 민족을 함께 파멸로 몰아넣은 주범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기회를 잘 살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