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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인가, 영생(부활)의 종교인가?출애굽과 광야방랑기는 오늘의 신자들과 교회에 대한 본보기다.
정기호  |  texas.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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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2월 30일 (금) 00:00:00 [조회수 : 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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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이 저물어 가기 하루 전에 김형희님의 “바울은 구원 받았을까? 버림을 받았을까?”라는 글을 읽고 평소에 구원과 영생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개신교 목회자들이나 신자들은 구원 속에 영생이 포함된 것으로 생각하여 정리도 되지 않은 채 신앙생활하고 있다. 이 글은 본인이 평소에 성경을 읽고 정리한 것이므로 진보주의 신학이나 보수주의 신학의 입장은 논의의 대상은 아니다. 다만 성경상에 나타난 구원과 영생의 문제이므로 어떠한 신학상의 문제 제기는 거절하겠다.


구원에 관련된 성경 귀절을 살펴보면 <구원>이라는 단어로 170개 정도가 사용되었다. 그 중 신약 에서는 45회 사용되었고 나머지는 구약에서 사용된 것이다. 또한 <구원받다 > 는 11회, <구원 얻게 하다>는 8회, <구원을 얻다>는 89회, <구원자> 는 17회, <구원하게 하다 >는8회, <구원하다>는 253회, <구원하여 내다>는 6회, <구원하여 주다>는 1회 사용 되었다.


<영생>은 구약에 단 2회 (시 133:3, 단 12:2) 사용되었고, 신약에는 43회 사용되었다. <영생하다> 는 구약에 4회(창 3:22 창 21:33, 단 4:34, 12:7) 사용했고, 신약에 4회(요 4:14, 6:27, 6:51, 12:25) 사용 되었다.(*이상은 아카페 출판사의 [완벽 성구대전] 을 참고했다.)성경은 독자의 기준과 신학 사상에 따라 해석의 방향이 달라지므로,나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과 영생을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한 번 강조 하거니와 신학적 입장에서는 어떤 논의의 제안도 거절하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를 확립한 바울은 로마서 10:13에서. <>을 얻으리라 하지 않고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다. 요한은 성경의 중심 귀절이요, 요약인 요한복음 3: 16에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였다. <>을 받으리라 하지 않 았다.

우선 구원의 문제를 성경에서 살펴 보자.

창세기에서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기전 구덩이에서 형 루우벤으로 인해” 형제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냈다.”(창 37: 21,2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구촐하고 홍해바다를 건넌 후 “ 오늘날 너희를 향하신 놀라운 <구원>을 보라” ( 출 14:13) 하였다.
욥은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 일곱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가 미치지 않게 하시며”(욥 5:19) 하였다.
바울은 “우리가 소망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다(롬 8:24)” 하였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 는다”(엡 2:8)고 하였다.
사도들은 “우리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행 15:11) 고 하였다.
풍랑을 만난 예수의 제자들은 잠자고 있는 예수를 깨우면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 하였다. 12년 간 혈루 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의 옷가를 만짐으로 나을 줄 믿고 만졌을 떄 병고침을 받았다. 그 때 예수의 말씀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막 5:34)고 하였다. 영생을 얻었다가 아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구원>이라는 말은 여러 종교에서, 일반 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성서에서 보면 요셉은 죽음의 직전에서 <구원>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자유인이 되는 놀라운 <구원>을 받았고, 욥은 환난에서 <구원> 받기를 염원했고, 예수의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구원>을 받았으며, 12해 혈루증 여인은 고질병에서 <구원>을 받았다. 바울은 로마 정부의 종교 재판에서 <구원 >하려고 백부장은 노력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물에 빠진 사람이 건짐을 받았거나, 불구덩이 가운데서 구출함을 받았거나, 죽을 병에서 용한 의원을 만나 고침을 받았거나, 파산 지경에서 친지의 도움으로 파산을 면하거나, 대형 교통 사고로 산 깊은 골짜기에 빠진 자동차 속에서 구사 일생으로 살아 구조를 받거나, 지진으로 무 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구조대원의 손길로 구출함을 받은 경우 등등 어떤 죽음이나 위험한 상태에 서 구조, 구출, 건짐을 받은것을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성경의 구조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인 출애굽기와 유대인들의 40년간의 광야생활과 가나안 점령 과 같은 세 고리의 역사(역사가 토인비는 역사는 고리와 같아 똑 같은 역사가 반복된다고 했다)는 오늘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그림자가 되었다. 현실의 교회는 이 세 역사를 반복하고 있음을 증 명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출애굽과 광야의 교훈은 너희들에게 본보기가 된다(고전 10:1-11) 고 하면서 “다시는 이런일을 되풀이 하지 말라” 고 충고하였다. 이런 말을 꺼내는 설교가는 찾아 보기 어렵다.


다 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예수의 말씀을 살펴보자. 예수는 “나더러, ‘주님, 주님 ‘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아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 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 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고 말할 것이다’ “ (마 7:21-23) 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애굽의 노예에서 구출함을 받은 목적은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애굽 1 세대 중에 여호수아와 갈랩외 예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원망과 불평으로 40년 을 살았던 250여만 명이 광야에서 뼈를 묻고 말았고 이것이 본보기라고 바울은 말 많고, 탈 많은 고 린도 교회에 충고하였다.

그러면 오늘 예수쟁이들은 왜 예수를 믿는가? 죄악에서 구원함을 받고(애굽), 교회에 들어와(광야) 예수님 께서 선포하신 천국을 마음과 교회에 이루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영원한 천국(가나안) 에 들어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바울은 이를 두고 부활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부활이 없는 믿음은 있으나 마나하고, 그 믿음도 헛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수 쟁이가 이 땅의 유한한 삶으로 끝난다면 뭐하려고 골치아프고, 힘들게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가?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성경을 통해 알았기 때문에 어떤 희생도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다.(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농 부는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

예수께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이 “큰 예배당 지어 바친 교회나 교인이나 목사, 수 천명을 구원하여 교회 부흥에 이바지한 자, 부흥회를 다니며 기적과 이적을 행한 자, 40일 금식기도한 자, 수 만명에게 세례를 베푼 자”가 아니라 “ 내 아버지(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자” 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려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 아버지의 뜻은 다른 말로 말하면 아버지의 명령(말씀)이다. 아 버지의 평소의 말씀 속에 그 분의 뜻이 있다. 좀더 강한 말로 표현하면 “명령”으로 볼 수 있다. 요한은 “나는 그 의 명령(뜻)이 영생인 줄 안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말하신 “내 아버지의 뜻(말씀)” 은 이 땅의 예수 쟁이들이 모두가 이 땅에서의 구원으로 족하지 않고 <영생 >을 얻는 것임을 성경의 맥을 통해 알 수 있다.

애굽에서 나온 유대인들은 가나안 가기를 소원하고, 바라보고 갔어야 했으나 여전히 애굽의 고기 가마, 부추, 마늘과 같은 정력제를 찾았고, 광야에서 먹은 만나는 역겨운 음식이 되어 불평하고 있었 다. 그들은 홍해를 건널 때 세례를 다 받았으므로 애굽에서 배운 나쁜 것들은 모두다 물에 묻어 버려 야 했다. 가나안 땅으로 속히 가기를 재촉하여야 했으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다툼으로 40년 걸렸어 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음(홍해를 건넘)으로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앞만 향해(천국) 가야 할 예수 쟁이들이 교회안에 들어가 유대인들이 금송아지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놀 듯이, 제 힘에도 부치는, 그 어디에에도 성경상에 큰 예배당 지어 바치라는 말씀이 없음에도 계시 받았다고 융자 얻어 건물 지어 놓고 먹고 마시고 뛰놀고 있다.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내 속에 천국을 이루고, 천국을 이룬 사람들이 함께 천국을 이루어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천국을 가는 것이다. 이런 생활에 큰 건물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이 땅(교회)은 영원히 사는 곳이 아니다. 임시 위탁 받아 천국연습하는 곳이 교회다. 그러면 긍정적 사고 주의자는 왜 하필이면 망한 사건으 로 말하여 부정적인 것만 밝히느냐고 말핳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유대인들이 망한 사건을 통하여 ,똑 같이 망한 것을 본보기로 삼으라는 말이 아니라, 여호수아와 갈랩과 같이 흥한 사람을 발 견하고 따르며 부단한 훈련을 매일 매일 계속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천국 생활이다. 망한 사건을 통하여 우리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개선하며, 어린아이와 같이 반복하지 않으며 완전한 데에 까지 이르도록 노력하고 기도함이 예배요, 목회요 교인들의 신앙생활이다. 망한 사건 속에 동참하 지 않고 바르게 가기 위하여 노력함이 천국을 사모하는 삶이다.

바울은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 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빌 3:10) 이 바로 이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 빌 3:12-14) 고 예수쟁이가 된 목적을 분명히 밝혔고, 그 목적을 위하여 거지처럼 살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 구원과 영생의 문제를 분명히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른 하나는 교권(교단 총회, 큰 교회)의 힘으로 “고 변선환” 선생님과 홍정수 교수를 파문한 율법주의자들과 초등학문에 매여 있는 지도자들에게 경종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구원과 영생도 구분하지 못하는 초등학문으로 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안내하겠다면서, 기독교의 기본인 “<용서,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용서함 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매 주일마다 드리는 기도가 “가증한 기도”(잠 28:9)가 되 지 않기를 바란다.

“구원은 기독교 외의 종교와 세상에도 있고 사용하며, 예수로 인하여 얻게되는 “영생” ( 부활 ) 은 기독교의 유일한 희망이요 최후의 보루다” 의인은 없으며 한 사람도 없다. 다른이를 능히 정죄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예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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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칠 (87.251.96.19)
2005-12-31 03:08:40
놀라운 깨달음
결론은 믿음과 소망의 논쟁인데 구원과 영생이란 새옷을 입음으로 신선한 논쟁이 될 것 같습니다. 2006년도의 당당뉴스 토론방의 화두로 삼아 차근차근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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