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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님의 사람아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18 주(20100926)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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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9월 24일 (금) 09:52:55
최종편집 : 2010년 09월 24일 (금) 13:05:35 [조회수 : 6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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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제 18 주(20100926)
성서일과/ 시 146; 암 6:1a, 4-7; 딤전 6:6-19; 눅 16:19-31
본문/ 딤전 6:11-16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11-19, 개정)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믿는 자의 새 이름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될 무렵 복음을 영접하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흔했습니다.
강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순종하고, 능력 받아 살자, 그것도 으뜸이 되자 라는 뜻에서 신일, 경일, 순일, 능일 이런 식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유명한 일입니다.
제가 전에 목회했던 교회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교회의 역사를 쓰는데 처음 교회를 세우신 분들의 이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양행의(行義)-의롭게 행하고, 박신도(信道)-십자가의 도를 믿고, 정사천(事天)-하늘의 일을 함과 같은 이름들이었습니다.
부조가 지어주신 이름을 바꾸는 것은 어지간한 결심으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온전히 새사람이 되어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이름을 바꾼다면 어떤 이름을 택하겠습니까?

오늘 바울은 그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디모데야 해도 되는 데 굳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디모데 말고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 다윗, 엘리야, 엘리사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택하여 부르심을 받은 지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들이고, 그 일을 위해 하나님 주시는 능력을 지녔던 사람들입니다.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긴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았습니다.
오늘 바울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택함을 받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과 싸워 이김으로, 선한 증거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길을 찾고, 그 길로 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집을 떠나 길을 가는 사람을 일러 나그네라 합니다.
나그네 길은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떠도는 길에서 느끼는 평안함은 잠간입니다.
길어야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는 법입니다.
나그네는 고향에 돌아가야만 비로소 짐을 풀고, 참된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을 일러 나그네라 합니다.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본시 그 뿌리가 하늘에 있기에 땅에서 사는 동안은 나그네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히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자기가 나그네임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흙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불러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합니다.
디모데에게 한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첫 사람의 후손, 땅에서 나서 땅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땅에서 났으나 하늘을 더 나은 본향-참된 고향으로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둘째 사람, 하늘에서 나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의 이름이 바뀝니다.
사람의 아들, 땅의 사람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본향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땅에 속한 자에서 하늘에 속한 자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이 주어진 이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땅에 속한 일을 버려야 합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라 칭한 디모데를 향해 새삼스럽게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부르는 것은 뚜렷하게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무엇과의 구별입니까?
땅의 사람과의 구별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구별입니다.
본문 11절 말씀에 ‘이것들을 피하고...’ 했는데, 이것들을 피하지 않고 반기는 사람들입니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에 착념(着念)치 아니하는 일입니다.
          (딤전 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 하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만 듣는 자가 유념해야 할 요소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훈이라는 것은 복음에 입각하지 않은 모든 종류의 잘못된 가르침을 말합니다.
바른 말에 착념(着念)치 아니한다는 것은 자기가 말하는 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익을 따지는 마음 때문에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않고 저 좋은 대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딤전 6:4-5) 『[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아는 척하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투기와 분쟁, 훼방과 악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경건조차도 이익의 재료로 삼아 서로 싸우는 자들입니다.

다른 것들이야 늘 듣는 이야기들이지만 경건조차 이익의 재료로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뼈아픈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장사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교만으로 바른 말, 합당한 말을 전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를 유익하게 하는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성도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기만을 요구하고, 목사를 중심으로 네 편, 내 편으로 갈라 세워서 마침내 교회를 분열시키는 목사들이 그렇습니다.
자기가 세운 교회라고, 자기가 부흥시킨 교회라고 자기 소유처럼 생각하는 목사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른 말을 싫어합니다.
바른 말을 싫어하는 것은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자도 그렇지만 듣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든 것이 아니라 골라서 듣습니다.
이로우면 하나님의 말씀이고, 손해일 듯싶으면 사람의 말로 치부해 버립니다.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알 만한 사람이 그런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롬 1:18-20)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 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경건조차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타락한 세상입니다.
깨어서 진리의 말씀에 굳게 뿌리를 박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또 피해야 할 일은 부(富)하려 하는 일입니다.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사실 바른 말에 착념치 아니하는 일이나 그에 따라서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들이 정욕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피해야 할 가장 두려운 것은 정욕입니다.

사람이 욕심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욕심 자체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큰 해악이 없을 것 같은 사소한 욕심도 있습니다.
꽃을 보면 꺾고 싶다거나, 좋은 음악을 듣고 싶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도를 넘어선 욕심은 죄악입니다.
시험과 올무에 빠지는 길입니다.
바울은 이런 욕심을 일컬어 정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땅의 사람들에게 있는 욕심입니다.
흙에 속한 육체를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런 욕심-정욕은 어리석고 해로운 것입니다.
왜 어리석고 해롭습니까?
정욕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제 몸에 지닌 것-소유를 많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짐을 가볍게 해야 하는 법입니다.
나그네는 길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그네의 짐이 많아지면 주저앉게 됩니다.
본향을 잊어버리고, 주저앉은 그 곳으로 고향을 삼게 됩니다.
그 곳에 집과 창고를 짓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오늘의 성서일과 중 누가복음 16:19 이하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죽어 지옥에 가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어 위로를 받습니다.
그저 부자였기에 지옥에 가고, 고생했기에 위로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부자는 땅에 많은 것을 쌓아 놓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나그네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땅이 그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가 고향을 떠난 것입니다.
그가 죽어서 고초를 당하는 것은 죽은 후에 나그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는 땅에 쌓아 놓은 것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땅의 삶이 나그네의 삶입니다.
그가 땅을 떠난 것은 나그네로서의 삶을 마치고 본향으로 간 것입니다.
그는 더 나은 본향에서 위로를 받고 평안을 누립니다.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알지 못하고 행하는 일은 해악을 가져오게 됩니다.
잘못 아는 자는 모르는 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입니다.
교만에 이르는 어리석음입니다.
모르는 것보다 잘못 아는 것이 더 큰 해악을 불러오는 법입니다.
땅을 고향으로 아는 것은 잘못 안 것입니다.
땅에 영혼을 위한 집을 짓는 자는 영원히 고향을 찾지 못하는 해를 입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육의 욕심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피해야 할 것도 있지만 쫓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쫓는 일은 싸움입니다.
땅에 속한 자들의 싸움은 무슨 명분을 들이대던 누군가 상처를 입고, 죽임을 당하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땅에 속한 싸움은 모두가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싸우는 싸움은 남이 아닌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선한 싸움입니다.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은 자기를 구원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전에는 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늘의 본향에 당도하기 전에는 옛사람의 본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싸워야 합니다.
육의 고향, 흙으로 향하는 땅의 사람을 영의 본향, 하늘로 향하는 하나님의 사람에 머물게 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롬 7:22-23)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모든 종류의 싸움은 강한 자가 이기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자라도 좋은 무기를 당할 수는 없습니다.
맨손으로 칼을 든 자를 당할 수 없고, 칼로서 총을 든 자를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무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기는 땅에 속한 싸움을 하는 자들의 무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의와 경건과 믿음 그리고 사랑과 인내와 온유가 하나님의 사람이 지녀야 할 무기입니다.
이것들이 없이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땅에서는 종종 불의한 자가 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간의 일이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최후 승리는 의로운 자의 것입니다.
          (욥 20:5)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

땅에 속한 사람들은 이기기 위하여 육체를 단련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건한 자라도 경건한 자를 이기지 못하는 법입니다.
약한 듯 보여도 강한 것이 경건입니다.
          (딤전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믿음은 하나님께 속한 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믿음으로 싸우면 이기지 못하는 법이 없고, 패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를 대신하여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 사람의 무기라면 사랑은 하나님의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에 힘입어 어떤 싸움에서도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창이라면 사랑은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원수도 이 사랑을 뚫고,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기는 것입니다.
          (롬 8:35-37)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사랑을 잊지 말고, 기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큰 사랑을 받았으니 작은 사랑이라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의 싸움은 한 번에 끝나는 싸움이 아닙니다.
나그네로 사는 동안 날마다 치러야 하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합니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땅의 사람을 죽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나는 것입니다.
죽고, 다시 사는 싸움이 날마다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기는 것은 정한 일입니다.
그러나 인내하는 자만이 그 결국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의를 행하고, 경건한 중에 기도하며. 믿음의 칼을 들고, 사랑의 방패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인내하여 땅에 속한 사람의 유혹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된 결국을 눈으로 보며,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 드리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의 주시오, 왕이십니다.
영원한 본향에서 우리를 영접하실 하나님은 나그네 길에도 함께 하십니다.
그 길에서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이 그를 향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나그네 길이 힘들고 고단해서 마음이 흩어지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를 의뢰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임금이 줄 수 없는 은혜까지 베푸시는 영원한 임금이십니다.

공의로 재판해 주시는 왕이십니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왕이십니다.
갇힌 자를 해방하시는 왕이십니다.
약한 자의 도움이 되시는 왕이십니다.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는 왕이십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시는 임금이십니다.
높은 보좌에서 내려와 나그네의 길을 비춰 주시는 임금이십니다.

왕이신 하나님,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심으로 이 모든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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