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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 생명!! 그 기원을 찾아서1예수의 가르침을 찾아서(불과 평화6)-탐욕의 역사는 피를 먹고 흐른다.3
한성영  |  h68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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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9월 19일 (일) 14:09:08
최종편집 : 2010년 09월 19일 (일) 23:21:34 [조회수 : 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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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역사는 반 쪽의 역사다

격동의 20세기 초, 일제의 조선 강점기에 식민사학의 풍토 속에서 조선 민족의 얼과 혼을 지켜내고자 애쓴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 - 1936)는 《조선상고사》총론에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이라고 말했다.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이라…….다시 말해서 일정한 육체 프레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유지하고 상속하고 싶은 성향이 있는 아라는 유기체 존재형식은 아의 외부에 존재하는 비슷한 모든 유기체 존재형식인 비아(非我)들과 투쟁하는 것이 모든 아들의 숙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는 자신의 프레임을 유지하려면 외부로부터 동력을 끌어와야 하고 다른 비아들이 자신을 동력으로 삼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투쟁해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존재형식이 계통발생학적으로 비슷한 모든 아들의 실존적 현실이다.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 또한 인류라는 아와 바깥의 모든 대상들과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였다. 자연이라는 비아의 무거운 선택압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자신의 프레임을 끊임없이 진보시켰고 바깥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으로부터 정보를 취득하여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효율적으로 이용해왔다. 이것이 큰 흐름으로 축적되어 자리 잡은 것을 우리는 문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대는 그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인류사의 찬란한 문명을 목격할 수 있다.

비아들을 효과적으로 침입하여 공격하거나 비아들의 공격으로부터 아를 방어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혈연 공동체인 씨족을 이루어 살아가기도 했고 좀 더 큰 무리의 부족, 원시국가형태인 고대왕국을 이루기도 하였으며 봉건사회를 이루기도 하였고 절대왕정을 거쳐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주의국가로까지 발전해왔다. 이 과정에서 여러 문명이 탄생하고 몰락하면서 발전해왔던 것이다. 인류의 문명에는 외부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외부의 대상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인류가 투쟁했던 흔적들이 촘촘한 결정으로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러나 투쟁은 아의 한 단면일 뿐이다. 아는 투쟁을 선택할 수도 있었고 화합과 연대를 선택할 수 도 있었다.

지난 글에서 내가 독일 신정통주의 신학자 판넨베르크의 역사계시를 비판하면서 밝혔듯이 역사란 인간의 해석이다. 그런데 이 해석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것은 일정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유지하고 상속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존재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해석은 당연히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프레임을 유지하고 상속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역사를 받아들였을 때 애석하게도 신채효의 역사해석은 반쪽의 통찰에 그치고 만다. 시대적인 한계 때문에 과학지식에 미숙할 수밖에 없었던 신채효는 결과적으로 역사에 대한 통찰 또한 미숙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대와 나는 신채효가 놓치고만 반쪽의 통찰을 찾아보자.


과학의 기원은 파고드는 습성에서부터

과학자들은 "우주는? 생명은? 그리고 인간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생명의 탄생과 기원을 추적하고 연구하며 깊이 파고들어 왔다. 그런데 나는 과학자들이 생명의 기원을 찾아 파고들었다는 것 보다 "인간이 왜 이 파고드는 행위를 하게 되었는가?"를 더 파고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인간은 언제부터 무언가를 알기위해 끈질기게 관찰하고 몰입하여 대상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고 기록하며 그 유산을 후세에 전달해 왔을까? 왜냐하면 멈추어 서서 의문을 품고 관찰하며 지독하게 파고드는 이 습관 때문에 수많은 호기심들을 만족시키고 잠재우느라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신화들을 창조해 내며 빛나는 종교와 문학들을 탄생시켰고 그 힘으로 계속 밀고 올라가 자신과 온 세상의 본질, 더불어 인간을 영원히 해방시킬 진리가 무엇인지 파고들게 된다.

그러니 생명의 기원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보다는 "이 의문을 가지고 묻고 파고드는 힘의 기원이 언제, 어디서부터였으며 무엇에서부터였는가?" 하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는 더 큰 관심의 대상이다. 의문을 품고 관찰하고 파고드는 힘을 가지게 됨으로써 인간의 운명은 다른 동물들과 걷잡을 수 없이 갈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힘을 가지게 되고 더욱 잘 다듬어 활용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문명은 폭발적이고 비약적으로 발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환경에 직면하여 다른 동물들이 보편적으로 자신의 육체프레임만을 적절하게 적응, 변형, 발전시키며 운명에 대처하는 방식을 고수해 왔다면 인간은 관찰하고 원리를 파고드는 방식을 이용하여 적응, 변형, 발전의 과정을 밖의 대상으로까지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확장시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었고 결국은 "인간이 왔던 본래의 자리가 어디였는가?" 하는 근원적 성찰까지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으로부터 얻은 경험을 분석, 예측 가능한, 가시적 형태로 유의미하게 가공하고 재단하는 재능, 이 재능과 재능의 결과물을 사용하여 자신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응용하고 그것을 더욱 확장하여 우주와 자신의 발생과 기원 그리고 미래까지 확대 적용하는 능력, 이것이 과학이 자신을 설계해가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보자.


호기심 많은 김선비의 탐구심

글질 하는 깡패, 남산 딸깍발이, 김선비의 오두막에 밤새 눈이 내린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뜬 선비는 문을 열고 찬 호흡을 들이킨다. 마당과 장독대에는 소복이 눈이 쌓였다. 그것을 바라보는 선비의 눈에는 놀라움과 감탄이 교차한다. 그리고 상념에 잠긴다. 어젯밤 자시경 잠자리에 들 때만 해도 마당에 눈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밤동안 눈이 내려 쌓였다. 선비는 자신의 경험적 관찰을 당시에 저변 화된 보편적 언어와 상식의 틀을 이용하여 유의미하고 소통 가능한 이해를 찾아내려 애쓴다. "눈은 아침 어느 한 순간에 쏟아 부어진 것이 아니다. 삼경(三更)부터 천천히 쌓이기 시작하여 오경(五更)까지 세 척이 쌓였다. 그러면 평균적으로 일경에 동안 한 척 만큼 쌓인 게로군. 어허, 무언가가 늘어나고 변한 것은 시간이 경과한 만큼 서서히 이루어지는 거로군"

선비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을 가능하게 해주는 추상적 도구들을 이용하여 세상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단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단위들을 다른 것에 응용, 적용하여 더 정교하게 다듬어 간다. 이렇게 말이다. "그러면 뒷산도 그냥 저절로 생긴 게 아니지 않을까? 충분한 시간이 경과하여 돌과 흙이 쌓이게 되고 그 다음에 나무와, 꽃, 풀들이 자라게 되고 동물들이 이주해서 저렇게 뒷산이 만들어진 건 아닐까? 그러면 내가 살고 있는 마을도 처음엔 척박한 땅이었지만 한, 두 사람이 모여들고 집을 짓고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을 짓고 땅을 개간하고 살만해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어 이런 마을이 만들어 졌겠지, 그렇다면 내가 사는 이 나라가 그럴 테고 밤하늘에 별들을 보자하니 저 별들도 무언가가 시간이 지나며 저렇게 쌓여서 이루어진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사는 이 별은 그리고 사람이라는 것과 동물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며 무언가가 모이고 쌓여서 만들어 진 건 아닐까?"

선비는 이렇게 자신이 처음에 다듬은 관찰과 경험의 '단위'를 확장해 간다. 그 과정에서 무리가 있는 생각들은 제거하고 협소하게 적용된 것들은 범위를 넓혀 간다. 이렇게 해서 거칠고 투박했던 '단위'는 균형이 잡혀간다. 선비가 자신의 작은 경험적 관찰을 더 큰 단위와 쓸모 있는 모양으로 재단한 다음 그것을 입증해보기 위해 실험을 한다면 더 정교한 '경험적 지식'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전의 생각의 단위들은 자연선택을 당하여 일부는 도태되고 일부는 더 강화되어진다.


과학은 미완의 징검다리

과학지식들은 이렇게 주변의 단편적 경험들로부터 출발하여 정교하게 모양을 다듬어 가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을 띄지만 안정적이다. 그러나 그 안정적인 성향이 또 한편으로 새로운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렵게도 하지만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에 대한 일상의 관찰과 경험을 통해 확장된 물리학의 세계로 나아갔듯이 단순한 경험을 세련되게 조각하여 종합한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E=MC²같은 추상적 공식들과 허블망원경 같은 물리적 도구들을 만들어 더 튼튼한 지렛대로서 이용하며 도약해간다. 과학은 경험적 토대와 보편적 증거를 바탕으로 피부에 와 닿는 지식을 구축해가기 때문에 실용적으로도 강력할 수밖에 없다.

관찰과 실험, 그것을 바탕으로 한 통계, 수학적 객관화를 통해 자신을 완성해가는 과학지식은 근대에 들어와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우리에게 객체와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해 많은 통찰을 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진화론은 유기체 아(我)들의 실존적 현실에 대해 가장 정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과학은 대상으로 뛰어들어 관찰하고 실험하며 일관성을 찾은 다음 수학적 공식들로 그것들을 연결하고 가시화하여 피부에 착착 감기는 지식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적 사유에 갇혀서 맥 빠진 학문으로 전락해버린 철학이나 인간의 심리적 약점과 감수성만을 자극하며 균형을 잃어버린 종교보다는 차분하고 안정된 통찰을 제공해준다. 과거를 돌이켜 반성하고 현재를 직시하며 자신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여 미래를 조망한다. 조금씩 천천히 전진하지만 반성과 성찰, 꾸준함과 성실함을 무기로 세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다듬어가고 있다.

그러하기에 과학은 최고의 진리 다음으로 안정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과학이 그것의 주체인 인간의 프레임을 유지하고 상속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실용적 지식과 도구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그대와 내가 십분 인정해야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경험이라는 원칙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과학이 최고의 진리에 다다르려면 '경험' 그 자체마저 파고들어 실체를 파악해야한다. 왜냐하면 최고의 진리는 과학이 객관성이라는 포장을 하여 쏟아내는 경험적 지식들의 한계뿐만 아니라 '경험' 그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진리는 "그대가 경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바로 그것마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지식 자체도 결국에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학은 성찰하며 파고드는 내재적 속성 때문에 결국은 '경험'의 속성마저 파악하며 최고의 통찰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과학이 인간이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반쪽의 통찰을 어떻게 완성해 줄 수 있는 지 들여다보자. 자, 나는 여기서 부터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탐욕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원을 향한 여정

생명! 아의 바탕이 되는 생명은 무엇이며 그 기원은 어떻게 되는가? 대상을 침범하여 제압하고 그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취해야하는 이 아, 즉 생명은 투쟁해야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생명이 짊어지고 있는 모든 본질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까지 흘러왔던 그리고 앞으로 흘러갈 기나긴 생명역사의 일부 모습일 뿐이다.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많은 해석 중에서 나는 우주탄생의 순간으로부터 실타래를 풀어가보고자한다. 과학자들은 우주가 지금으로부터 약 137억 년 전에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결론지어진 추론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유전자 시그널들이 신비롭게 커졌다 꺼졌다하며 경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복잡하고 놀랍도록 정교한 육체프레임을 완성해 내듯이 온갖 관찰과 경험적 지식, 다양한 기호와 방대한 도구들을 만들고 투입하면서 갈고 다듬은 공식들과 수면을 줄이고 뜬 눈으로 새벽을 맞아가며 기울였던 몰입과 침잠, 식사를 거른 사색, 번뜩이는 찰나의 천재성과 다리를 휘청거리며 꺼질 듯 한 절망의 시간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촘촘히 짜여져온 구도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런데도 미흡한 미완성의 선언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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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 (61.40.37.135)
2010-09-25 16:51:01
갈바람님.

안녕하십니까?
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갈바람님 님의 지난 댓글로 미루어보면 연배가 꽤되시는 듯한데..... 님은 궁극적 진리가 무엇인지 심한 갈증이 나도록 궁금하십니까? 아니면 일상의 소일거리삼아 이곳 저곳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 것인지요.

팬이 되기보다는 무대에 뛰어들어 보시는 건 어떨지요.....
관심이 있으시다면 전화를 주세요. 제 전화번호는 010 2250 9321 이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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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 (210.2.45.71)
2010-09-23 08:29:28
와!
안녕하십니까? 무얼 말씀하시려고 장황한 서론을 펼치시는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좋은 글로 깨우침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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