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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죄인 살리신..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제 16 주(20100912)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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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9월 09일 (목) 23:52:40
최종편집 : 2010년 09월 10일 (금) 21:09:43 [조회수 : 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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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제 16 주(20100912)
성서일과/ 시 51:1-10; 출 32:7-14; 딤전 1:12-17; 눅 15:1-10
본문/ 디모데 전서 1:12-17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딤전 1:12-17, 개정)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 지어다 아멘』


죄와 벌

9월 11일은 미국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에 부딪혀 폭파된 날입니다.
그 일을 빌미로 격화된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와중입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는 크고 작은 테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히 테러의 시대라 이름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테러를 자행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이슬람교도들입니다.
여기에는 강대국의 횡포라는 근본적인 원인 이외에도 중동의 이슬람교도들에게 유별난 복수의 율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랍 사람들의 복수에 대한 집념을 가공할 정도입니다.
누군가가 살해당하면 그 피살자의 오촌 이내에 속하는 남자들은 복수의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
만약 복수하지 못하거나 복수에 소홀하면 그 집안의 명예는 형편없이 추락하여, 그 집안과는 교역(交易)도 기피하고, 결혼도 기피하기에 생존과도 직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당대에 복수하지 못하면 3대, 4대의 후손에까지 대를 물려 끝내 복수하고 맙니다.

또 어린아이나 여자들이 몸에 폭탄을 지니고 터뜨리는 일이 가능한 것은 이를 순교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천국에 대한 믿음이 확고합니다.
순교자가 천국에 간다는 믿음 또한 깊습니다.
그래서 테러범을 죽여서 테러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랍인들에게 율법이 사라지거나,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패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세계는 테러의 위험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랍인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복수를 정당시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혈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을 한 자가 자수할 경우 법적으로는 장(杖) 60에 처해야 했습니다.
다른 종류의 살인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형벌입니다.
그러나 이 법도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고, 부모나 남편이나 형제에 대한 의리가 가상하다 하여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는 혜택을 주었다고 합니다.
범죄보다 의리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보복 폭행한 것도 법보다는 부자간의 의리를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윗의 딸이며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둘러싼 이야기도 복수를 인정하는 이스라엘의 전통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다말의 배다른 오빠인 암논은 남몰래 다말을 연모하다가 마침내 강제로 다말을 범했습니다.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그 일을 알고 암논을 유인하여 죽였습니다.
형제간에 강간과 살인의 큰 범죄가 이어진 것입니다.
압살롬은 3년 동안 아버지를 피해 살다가, 용서를 받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법은 복수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반드시 벌을 내린다는 것이 곧 복수입니다.
다만 오늘의 법은 개인이 사사로이 복수를 하지 못하게 하고, 그 벌을 법에 정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법인 율법도 예외는 아닙니다.
율법의 대전제는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 35:33) 너희는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

다말의 이야기에도 하나님의 법이 녹아 있습니다.
다윗의 자식들 사이에 일어난 모든 비극적인 일의 원인은 다윗이 범한 죄에 있었습니다.
다윗의 딸 다말이 당한 일은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왕의 권세로 취한 일이 원인이었습니다.
암논과 압살롬의 죽음은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우리야를 죽인 일이 원인이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포함한 모든 법의 정신입니다.

그럼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살인일까요?
아닙니다.
반역죄입니다.

임금이 다스리던 옛날을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임금에게 반역한 죄인을 역적이라고 합니다.
역적의 죄는 3족을 멸하였다고 합니다.
3족이라고 하면 친가, 외가, 처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흉포한 살인자라도 죄에 대한 형벌은 죄를 범한 한 사람에게만 해당됩니다.
그러나 반역죄는 일가친척까지 함께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족을 멸하면 후손이 있을 까닭이 없지만 용케 살아남은 자가 있더라도, 그 죄는 자손 대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다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이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왜 아담과 하와의 죄가 우리에게까지 이어져야 할까요?
하나님은 잠시 세상을 다스리시는 임금이 아니라 영원한 임금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이 말합니다.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아담과 하와의 죄가 피조믈인 사람에 대해 지은 죄가 아니라 영원하신 왕,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죄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세상 임금에게 반역한 죄를 그 일가와 그 자손에게도 물은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땅의 나라가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범한 죄는 죄 조차도 영원성을 갖게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지 않으면 지워지지 않는 죄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죽지 않으면 끊어지지 않는 인간의 죄업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사실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이 그의 백성이요, 아들이요, 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괴롭습니다.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자식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어떻겠습니까?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이 이런 상황을 만나면 자신이 대신 죽을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자기에게 칼을 겨눈 압살롬이 죽자 대성통곡하며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과는 달리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한 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온 세상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굳게 닫혔던 영생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용서받은 자

만약에 내가 죽을 죄를 지어 죽게 되었는데 내 아버지가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어떻겠습니까?
비록 아버지를 거스른 죄인일지라도 자식이라면, 인간이라면 이런 순서를 따르지 않겠습니까?

먼저 자신의 죄를 뼈아프게 느끼게 됩니다.
자기가 아니면 아버지가 돌아가실 이유가 없으니 자신의 죄인 됨을 뼈저리게 느끼고, 울며 탄식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가슴에 새깁니다.
생명조차 아낌없이 내어 준 사랑에 겨워 울면서, 그 사랑을 갚을 길이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리라고 다짐하게 됩니다.
못난 자식을 그렇게 까지 사랑하신 까닭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산다면 아버지의 희생이 헛되지는 않게 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그나마 자식이라 할 수 있고,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아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 정황이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라기는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가졌던 그 마음을 품어,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주께 감사와 찬미를 올릴 수 있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


바울은 먼저 스스로를 일러 죄인의 괴수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는 과정입니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합니다.
죄인 중의 죄인이요, 가장 큰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가 느끼고 있는 죄의 아픔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죽게 한 아들의 아픔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죽어야 할 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빌 2:6-8)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바울이 죄 가운데서 행한 일들은 비방과 핍박과 폭행입니다.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가 비방과 핍박과 폭행을 가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막무가내로 아무에게나 이런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스스로를 법을 집행하는 자라고 여겼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죄를 깨달은 후에 안 것은 무엇입니까?
죽을 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은혜를 입어 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은혜를 가슴에 새기는 단계입니다.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바울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것입니다.
거역한 자를 향하신 은혜와 사랑입니다.
받을 수 없는 자가 받은 은혜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도리어, 그러나 라는 말로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은혜와 사랑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랑과 은혜를 긍휼이라고 했습니다.

긍휼이라는 말은 사전 상으로는 불쌍히 여기고, 가엾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긍휼이라는 말은 두세 번의 예외가 있을 뿐 모두 예수님과 하나님 그리고 성령과 관련되어서만 나오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남의 아픔을 자기 아픔과 같이 느낀다는 뜻입니다.
마음 뿐 아니라 몸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휼(恤)이라는 한자말이 마음 心자와 피 血로 이루어진 것은 이런 뜻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아픔을 나 보다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부모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대신해서 아파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부모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부모가 원한다고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때로 아들과 함께 죄를 받는 경우는 있어도, 자신을 죽여 아들을 구하는 법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바울의 가슴 깊이 새겨진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모세가 그의 유언에서 강조한 것이 이것입니다.
거역한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입니다.
          (신 9: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받을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을 수밖에 없는 자를 살리시고, 은혜를 더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잊지 않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음 단계는 생명을 내어 주신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괴수 바울을 살리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직분을 맡기시려고 그를 살리셨습니다.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살리신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그 위에 직분을 맡기시니,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은혜 받은 후에 깨달은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을 통해, 후에 믿는 자들에게 본을 보이려 하심입니다.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을 통해 보이시는 본이 무엇입니까?
법을 이루되 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에게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핍박하고, 포행한 자를 징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법으로 하자면 역적에 해당하는 죄인이었지만 이미 그를 용서하셨기에, 그가 그 사실을 알고, 돌이키기까지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가 돌이켜,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써 십자가의 피가 헛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는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바울의 믿음에 기초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믿음과 주께 대한 충성의 기초가 된 이 선언은 오늘 우리 믿음과 헌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바울을 후에 영생 얻을 자들의 본으로 보이시려고 했다는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법의 원리는 복수에 있습니다.
행한 대로 갚는 게 복수입니다.
복수하는 일 자체는 불의가 아닙니다.
복수는 하나님의 법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복수는 끊임없는 죄의 이어짐입니다.
복수를 위해 흘린 피는 또 다른 피에 의해서만 씻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평화를 위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법 아래 살지 아니하고 사랑 안에 살 때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본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43-44)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법대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본받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반역한 자를 미워하지 않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을 자를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긍휼하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 바울과 같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바울이 우리의 본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그것만의 본이 아닙니다.
그 은혜를 받고, 어떻게 살았는지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반역의 죄인이었던 그가 충성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직 한 마음으로 충성했습니다.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그리스도 예수가 그의 본이 되었습니다.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그로써 후에 믿는 사람들 곧 우리의 본이 되었습니다.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을 본받아, 바울처럼 충성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

지금 세상은 저마다 자기들이 옳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결 같이 법을 들어 보이며, 내 하는 일들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듣고 보면 다 그럴듯한데 그러나 세상에 평화는 없습니다.
전쟁은 그치지 않고 테러는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본받지 못하면 세상에 평화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본받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행할 수 있을까요?

오직 한 가지 길이 있을 따름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뼛속 깊이 죄를 깨닫는 길 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은혜를 아는 자가 된 것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남이 내게 행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 이웃에게 범한 죄를 먼저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아버지의 은혜를 그 긍휼하심을 알게 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일꾼 된 것은 그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가 은혜를 아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 구원하셨습니다.
행한 대로 갚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은혜요, 사랑입니다.
놀라운 은혜, Amazing grace 라고 합니다.
찬송가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보통 놀라운 은혜라고 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뜻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Amazing 이라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뜻입니다.
말도 안 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놀라운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를 기억하고, 살아서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일꾼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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