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토요일) 오후 1시30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산95번지 류기봉 포도밭에서는 '제13회 류기봉 포도밭 예술제' 행사가 인근의 포도재배농가, 남양주시 관계자와 시인, 도시인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또다시 태풍 말로가 북상한다는 소식에 걱정했지만 햇볕만 쨍쨍했다.

▲ 제13회 류기봉 포도밭 예술제 본 행사장 전경

▲ 포도를 다듬고 계시는 어머니의 손길

올해의 포도농사는 하늘과 땅, 태양과 바람, 비와 구름의 도움으로 잘 됐으나 최근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포도버팀목과 비 가림하우스가 많은 피해를 주었다.

농부이자 시인 류기봉님은 각종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고 오로지 자연농업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지렁이, 땅강아지 등과 포도밭을 일구면서 해마다 햇 포도를 수확하는 첫 주말을 동료시인들과 광목천에 육필로 쓴 시를 포도나무에 걸고, 생태사진전, 아이들의 시와 그림그리기, 작가와의 대화, 시낭송, 음악회, 포도와 포도주, 포도주스 맛보기 등의 행사를 가졌다.

▲ 류기봉 농부시인, 포도밭 예술제 손님을 맞다

▲ 송우영 훈장과 그의 딸 송산하예 바이올린연주자

▲ 포도밭의 사계를 담은 생태사진전

이른 아침 포도밭 주변의 수십 년 된 전나무며 오동나무들이 쓰러진 현장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심란해졌다. 더욱이 준비된 포도가 없어 어머니와 포도를 따고는 행사준비로 바삐 움직이다보니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온종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손길이 부족해서인지 무척 분주했다.

생태사진을 위한 전시대를 만들고, 포도나무 끝마다 알알이 영근 탐스런 포도송이 사이를 헤집고 포도밭 걸개그림과 육필시를 걸었다. 포도밭중앙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잣나무 숲이 펼쳐지는데 이곳에 주 무대를 만들고, 멀리서 찾아오시는 손님을 맞았다.

▲ 포도밭 입구에 내걸린 대형 걸개그림 풍경

▲ 포도, 포도주스, 포도주 맛보기 행사장

▲ 참가자들의 포도와 포도주스, 포도주 맛보기

▲ 포도밭의 사계를 담은 생태사진전

▲ 고 김춘수 시인의 손녀딸들이 포도밭 예술제를 찾아

▲ 포도밭의 사계를 담은 생태사진전

오후 2시쯤 몇몇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하는 사이에 시인들은 무명천에 쓴 자신의 시 앞에 서서 시에 대한 소개와 육성낭독, 독자들과의 긴밀한 대화시간을 가졌다. 포도밭 속에 시, 시 속에 생태적 삶이 녹아있는 이색 생태시 지상전이었다. 시인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짬짬이 시간을 내어 광목천에 포도물을 들여가며 육필시를 남긴 것이다.

▲ 이경우 시인과의 대화, 시에 얽힌 이야기 나누기

▲ 류기봉 농부시인의 시낭송

▲ 차주일 시인의 시낭송

이윽고 본 행사에서는 시낭송과 참가자 자작 시낭송, 포크송, 바이올린연주, 어린이합창단의 청아한 동요 등 포도밭을 온통 예술의 향연장으로 빠져들게 했다. 사회는 차주일 시인이 맡았으며, 출연진으로는 문성호 포크싱어, 송산하예 바이올리니스트, 스위티 어린이중창단, 가을엔 편지를 김희진 포크싱어가 함께 했다.

이렇듯 2010년 류기봉 시인의 포도밭은 13년째 새로운 농업문화를 일구어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가교로서 확고하게 자리 메김 하였다.

▲ 포도밭을 둘러싼 숲 속에서 포크송을 듣다

더욱이 자연과 더불어 농사짓는 중요성을 우직하게 알려왔다.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토양침식과 오염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CO2 증가를 억제하는 데 기여하며, 주변의 생태계에 이로운 환경과 사람에게 훌륭한 경관을 제공하는 포도밭은 나무에게도 다양한 영양원을 공급한다.

무엇보다도 자연과의 공생 공존은 자기 삶의 총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기에 이 길을 통하여 농부시인은 세상과 소통하고자하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준다는데 농부가 시인이 되지 아니고서는 그 숨결을 느끼기가 어렵다. 포도나무와 함께 하는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영성을 회복하는 길이요. 그 길속에 참된 자유와 만족, 기쁨이 있음을 느끼는 것 같다. 

류기봉 농부시인은 “포도밭 예술제에서 무엇보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포도밭의 흙과 나무들이 되살아 난 것입니다.”며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좁은 길이지만 포도밭에서 지렁이․땅강아지가 잘 놀 수 있도록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비료 등을 들이지 않고 착하게 포도나무를 보살펴왔다.”고 했다.

그는 포도밭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포도나무 그늘을 따라 맨발로 걸으며 대자연의 싱싱한 기운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이날 20년째 포도밭을 원고지삼아 지은 류기봉 농부시인은 시집 “풀잎은 공중에 글을 쓴다”를 여럿이 세상 앞에 내놓았다. 이 가을 가까운 서점에서 생태시인들과 만나 보았으면 한다.

▲ 문성호 포크싱어

▲ 송산하예의 바이올린 연주

▲ 스위티 어린이중창단의 깜찍한 공연

▲ 김희진 포크싱어의 가을노래

이날은 가평 생태순환마을 만들기 때 함께했던 지인들도 ‘포도밭 예술제’에 참여해 바이올린 연주에 감동하고, 어린이들의 맑고 환한 율동과 노래에 박수를 치면서 즐거운 마음을 나누었다. 뒤풀이는 참여자들이 모두모여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내년을 기약했다.

제13회 류기봉 포도밭 예술제행사를 뒤돌아보면 서로를 알 수 있을 정도의 행사규모는 좋았지만 너무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하루전날 공공근로지원과 당일 인근학생들의 자원봉사로 행사의 리스크는 줄일 수 있었지만 예산관계상 예술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요원이 없어 아쉬웠다.

▲ 어린이 시와 그림전

▲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공연풍경

▲ 가평 생태순환마을 만들기 지인들과 함께

일반적인 관 주도의 전시행사에서 벗어났지만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주민 참여 형 축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도한 물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의 핵심인 사람을 키우고 지원하는 부분이 중요하다. 남양주농업기술센터 등의 적극적인 관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예술제 행사는 특정한 가수나 시인들만의 행사가 아니기에 다른 참여자들이 좀 더 친밀하게 예술제를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의 전환도 고려해 볼만하다. 무엇보다도 포도라는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전략적으로 창출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리고 예술제 콘텐츠의 획일화, 유사성, 반복성, 그리고 정체성의 부재에서 탈피해 정확한 수요자 중심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부분은 전문 인력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 인력의 양성과 함께 예술제 행사를 위한 논의구조와 실행구조가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리고 체계적인 평가로 예술제의 수준을 한 단계씩 높여가야겠다.

▲ 박유희 남양주시의원의 시낭송

▲ 고 김춘수 시인의 손녀딸 시낭송 풍경

▲ 일반 참가자들이 펼치는 시낭송

▲ 이승하 시인의 시낭송

▲ 남복희 아나운서의 시낭송

제13회 류기봉 포도밭 예술제를 잔잔한 글로 표현한 커피향기(http://blog.naver.com/lchanok)님의 글이 있어 소개한다.     ▲ 보라빛 포도축제의 향연중 “여름의 끝에서 아니 가을의 시작인가요. 곳곳에서 축제를 알리는 광고를 봅니다. 얼마 전에는 탄천을 걷고 있으려니 ‘수지맞는 음악회’라는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 수지인데 축제 이름을 기막히게 지었다고 해야 할 지 음악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건 아닌지 해서 잠시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별로 수지맞을 건 없을 것 같아서 가던 길을 다시 재촉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축제들이 일회성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관계자들이 고심을 해서 기획을 하고 섭외와 여러 가지 준비를 했겠지만 사람들의 호응은 한계가 있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계속 찾고 이어지는 지속적인 축제는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성황리에 이루어지는 전국적인 축제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분주한 축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축제의 즐겁고 행복한 마음의 한 켠 지치고 피곤한 마음의 비중도 꽤 클 테니까요.     ▲ 태풍으로 넘어진 포도밭 주변의 전나무 태풍 곤파스가 지나간 이틀 뒤였습니다. 겁이 나 미리 포도밭 주인장에게 포도밭의 안부를 묻지 못했습니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축제는 치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날씨는 맑았습니다. 언제 태풍이 지나갔냐는 듯이 말입니다. 사실 용인에서 남양주는 아득했습니다. 그날 자동차는 남편 차지가 되어 더욱 그랬습니다. 수지에서 잠실까지 가는 좌석 버스를 탔습니다. 잠실에서 남양주 장현리 포도밭까지 가는 버스는 단 한대 밖에 없었는데 30분 이상을 기다렸습니다. 햇빛에 부서지는 북한강을 바라보면서 낯선 지명이 호명되는 버스 안내 멘트에 귀를 바짝 세웠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걸려 포도밭에 도착했습니다. 포도밭이 있는 산자락까지 흰색 상의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안내를 했습니다.     ▲ 인근의 광동고 자원봉사 학생들     ▲ 인근의 광동고 자원봉사 학생들 포도밭 가는 길에 사진작가 김완모님의 포도밭 사계 사진들이 걸려있었습니다. 살짝, 가을 문학축제를 했던 여고시절이 스치고 지나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커다란 소나무가 쓰러져 누워 있었습니다. 분명 그곳을 지나간 태풍의 흔적이 대단 했을 텐데 잘 정돈된 행사장과 반갑게 맞아주는 포도밭 주인장의 미소 속에서 오히려 어떤 애틋함이 느껴졌습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매년 그곳을 찾는 사람들. 그것은 나처럼 포도밭 축제를 마음에 담고 그리워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과천에 산다는 이승하 시인은 세 시간이 걸려 포도밭에 왔는데 고통보다는 기쁨에 취해 ‘포도주 예찬’이라는 시를 낭송했습니다. 이곳에 서 낭송되는 시들은 거의가 포도를 위한 포도에 의한 포도의 시들입니다. 이 포도밭을 직접 느끼고 쓴 시들입니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살아있는 시들이란 말입니다.     ▲ 포도밭의 사계를 담은 생태사진전     ▲ 포도밭의 사계를 담은 생태사진전 포도밭 주인장의 선한 눈빛이 좋아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있다는 통기타 가수 김희진씨는 ‘가을 편지’ ‘영원한 나의 사랑’등 눈물 나게 맑은 가을 노래를 불렀습니다. 예고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고3 여학생은 이곳에서 어느 곳보다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고 했습니다. ‘향수’ ‘젓가락행진곡’. 마음은 물결처럼 흐르다가 통통 튀기기도 했습니다. 그 소녀의 아버지인 서당 훈장님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서성거리다가 딸을 그윽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포도밭 축제를 알리는 걸개의 글씨도 훈장님이 쓰셨다는군요. 훈장님이 서당에서 가르치는 어린 학동이 나와 이생진의 ‘성산포’와 포도에 관한 시 두 편을 암송했습니다. 그 꼬마가 무얼 알고 그 시를 외웠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듣는 이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 어린 학동의 포도시 낭송     ▲ 남양주시장 사모님의 시낭송 참, 그리고 기분 좋은 사람, 또 있었습니다. 내 앞자리에 앉아 옆의 부인네들과 빈대떡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잘 나누고 해서 꽤나 수다스럽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던. 남양주시의 시장 부인이라고 했습니다. 시낭송도 잘하고 축제에 대한 소회도 어찌 그리 예쁘게 말 하던지요. 포도밭 축제에 삼년 째 빠지지 않고 있다고요. 요즘 언론에 회자되었던 잘 나가는 사모님 때문에 그런 사모님들은 모두 그런 줄 알았지요. 동네 부녀회장 같은 친숙함을 가진 미소와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포도밭 축제는 그런 사람만 올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신 풀무원 창업자 원경선 옹께서도 오셨는데 거동이 불편하셔서 언덕위에 있는 포도밭까지는 올라오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유기농 포도밭을 사랑하시는 그 분의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짠했습니다. 축제의 끝 부분에 고 김춘수 선생님의 예쁜 두 손녀가 나와서 ‘꽃’을 암송했는데 하늘나라에서 김춘수 선생님도 이 축제를 흐뭇하게 즐기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작년에 포도밭 예술제를 찾았던 지인들이 올해도 찾아 갈 길이 바빠 제대로 지인들에게 인사도 못한 채 축제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아니 더 머물다간 가슴 가득 차오른 축제의 감격이 빠져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양주와 퇴계원과 구리를 지나 서울의 강변까지 왔습니다. 전철역과 동서울터미널이 있는 그곳은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모두들 축제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안식처인 축제 하나 품고 살기를 기원하며 집으로 가는 차를 갈아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