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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제 14 주(20100829)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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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8월 26일 (목) 10:02:46
최종편집 : 2010년 08월 26일 (목) 18:07:29 [조회수 : 2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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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제 14 주(20100829)
성서일과/ 시 112; 잠 25:6-7; 히 13:1-8, 15-16; 눅 14:1, 7-14
본문/ 시 112:1-10
복 있는 사람

          (시 112:1-13)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4]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 [5]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6]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7]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8]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9]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

복(福) 받으세요

연말연시가 되면 주체할 길 없게 듣게 되는 말이 복 받으라는 말입니다.
하도 들어서 나중에는 별로 고마울 것도 없게 될 정도죠.
그런데 묘한 것은 정초를 빼놓으면 이런 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구미의 사람들은 정초에 복을 비는 것 외에도 `아 유 해피? ' `엠 아이 해피?...'하며 조석으로 행복을 확인하지 않고는 못 사는 종족입니다.
스타인벡이라는 미국의 소설가는 미국에는 복이 너무 헤프다고 개탄을 했을 정돕니다.

묘한 것은 영어에는 해피니스, 러크, 포천 등의 행복을 의미하는 단어가 많고 한문에도 복(福), 지(祉), 희(禧), 길(吉), 행(幸), 행(倖), 등등 복과 관련한 단어가 수두룩한데, 복을 나타내는 순수한 우리말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을 좋아하면서...

왜 이렇게 복이라는 말에 인색하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복이 사람이 좌우할 수 없는 하늘의 소관 사항이기에 사람이 바란다고 복이 오는 게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福이라는 글자에서 示는 하늘을 뜻하고, 富는 항아리를 말합니다.
복이란 하늘이 항아리를 채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독히 가난했던 흥부 마누라가 박복한 신세를 탄식하는 장면입니다.
`애고 애고 설운지고 복이라 하는 것은 칠성(七星)님이 마련하시는가. 산신령이 점지하시는가. 생년월일시 팔자에 매였는가. 이목구비 관상에서 솟아나는가.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풍수 타고 나는가'

또 화복상관(禍福相關)-복에는 반드시 화(禍)가 따른다는 믿음이 강했던 탓도 있습니다.
너무 복, 복 하다가는 오히려 화를 당하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심청이 몸을 팔아 받은 돈을 가지고 마지막 이별 상(床)을 아버지 심봉사에게 푸짐하게 차려 바쳤을 때 심봉사가 말했습니다.
`어, 과(過)하다. 빌어먹던 사람이 이렇게 잘 먹으면 손복(損福)하여 빨리 죽는다더라.'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은혜 받으면 꼭 시험에 든다는 식의 말에서 보듯 복에는 화가 따라 다닌다는 식의 인식은 우리 민족에게 뿌리가 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습니까?
우리 성도들 모두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이 아무리 하늘이 내려 주는 것이라 해도 사람이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항아리를 잘 씻어 놓고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런 준비가 없으면 그야말로 물 붓듯이 복이 쏟아져 내려도 내 것이 없게 되는 법입니다.
화복무문 유인소소(禍福無門 唯人所召)라는 말도 있습니다.
화나 복이라는 것이 들어오는 문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 불러들이기 나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복도 주시는 분이지만 화도 내리시는 분입니다.
누가 복을 받고 누가 화를 당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복 받으며 사는 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음에 새겨 복 많이 받고, 오래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복 받는 사람은?

복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레미야가 말했습니다.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이스라엘이 심판의 화를 당해야만 하는 이유가 두가지인데 첫째는 물이 있는 곳을 잊어 버리고 엉뚱한 곳에서 물을 구하려고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물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소유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헛되이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한 탓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점을 몰랐던 탓입니다.
저들이 알지 못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우지 못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말한 버린 것이라는 말이 잊어버렸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잊지 말라고 당부했던 그 일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염려한 바로 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세는 혹시라도 이스라엘이 잊어버릴까 염려하여 거듭 당부했었습니다.
          (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지난 주에 우리가 본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이전에 나를 종 되었던 곳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지금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살게 하십니다.
장차 복된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자가 여호와를 경외하게 됩니다.
이것을 잊으면 알지 못하는 자가 되어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복을 따라 다니면 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잊지 말고 경외하면 복을 받는 자가 됩니다.
          [7]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복을 위해 살면 복 있는 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흉한 소식 앞에 두려워 떠는 사람입니다.
주를 의뢰하여 살면 주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으므로 세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알고 그를 경외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베푸는 사람입니다.
          [5]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세상에는 언제나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염두에 두면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산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복 없는 사람은 자기가 소유한 것으로 산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남에게 주는 일에 주저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지닌 것들이 자기 수고로 말미암았다고 생각하면 베풀고 꾸이는 일보다 창고를 넓혀 간직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게 됩니다.

주님이 들려주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도 있거니와 어리석은 자의 소유는 영원하지 못한 것이 그 특징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9]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

흩어서 베푸는 자는 영원합니다.
그러나 소욕-간직하고자 하는 욕심에 사로잡힌 자는 소멸합니다.
오늘의 성서일과 중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히 13:1-2)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복이 있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대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내림이고, 대접은 올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대접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접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모름지기 하나님을 대접하는 자라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대접하겠습니까?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되는 일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함으로써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게 하는 일이 곧 하나님께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는 말의 참된 뜻입니다.
예수님이 비유 가운데 말씀하셨습니다.
          (마 25:35-40)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렇다면 사람을 사랑하고 대접하기를 어디까지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성서일과 중 히브리서 13:3의 말씀이 대답입니다.
          [3]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진정으로 내 모든 것을 주께서 내게 주셨다고 믿는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복 있는 사람입니다.
부디 복 있는 사람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무엇이 복인가?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도대체 복이 무엇인가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것은 어떻게 복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복은 어떤 것일까요?
한 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왜냐 하면 복이라는 것이 시대를 따라 사람을 따라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까지 이스라엘이 생각한 복은 후손과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그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 자식을 주어 후손이 번창케 하시겠다는 약속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 그 복의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삭을 통한 후손의 번창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수효가 늘어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복을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돈이 곧 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식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무어니 무어니 해도 마음의 평안이 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 세월이 흘러도 사람이 달라도 한결같이 복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이사야는 말합니다.
          (사 62:8-9) [8]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인즉 [9]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수고하였으나 거둘 것이 없다면 화입니다.
내가 거둔 것을 내가 먹지 못하고 빼앗기는 것이 재앙입니다.
수고한 대로 거두고, 수고한 자가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이 복입니다.

수고하지 않고 거두려 하며, 남의 것을 가져 부요케 하려는 것은 복을 불러들이려다가 화를 불러 오게 됩니다.
복이 화가 되는 길입니다.

심봉사가 남의 것을 얻어먹는 주제에 무슨 복이 있기에 손복(損福)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심청이가 마지막으로 마련한 밥상이 자기 분복에 맞지 않음을 아는 까닭이요, 분복을 넘어서는 일이 그나마 주어진 복마저 달아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홍수나 가뭄, 지진과 불 같은 것을 자연재해라고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한 게 아닌데 화를 불러 오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사람이 수고한 대로 거두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시면 헛된 수고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세상은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앞에서 본 예레미야의 말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두 가지 악을 행했다고 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잊은 것이로, 다른 하나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은 헛수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라지만 하나로 귀결됩니다.
하나님을 잊은 악 때문에 모든 수고가 헛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헛되이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 45:18)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빛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4]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가운데 요동치 않는 사람입니다.
          [8]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이사야가 말한 대로입니다.
          (사 62:8-9) [8] 여호와께서 ....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인즉 [9]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욕심-수고하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마음입니다.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게 하시는 참되신 하나님을 의뢰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헛된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염려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길입니다.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다시 한 번 본문을 새겨 봅시다.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4]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 [5]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6]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7]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8]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9]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

말씀대로 살아서 반드시 복 있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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