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 > 박성규 설교
살아있는 자의 노래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제 13 주(20100822)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0년 08월 19일 (목) 10:18:39
최종편집 : 2010년 08월 19일 (목) 12:48:32 [조회수 : 166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오순절 후 제 13 주(20100822)
성서일과/ 시 103:1-8; 사 58:9-14; 히 12:18-29; 눅 13:10-17)
본문/ 시 103:1-8
살아있는 자의 노래

          (시 103:1-8) 『[1] [다윗의 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6]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7]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저승으로 가는 길에는 강이 네 개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강은 아케론-비통의 강입니다. 두 번째는 코퀴토스-시름의 강이며, 세 번째는 플레게톤-불의 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레테인데 망각의 강입니다.
죽은 자가 이 강 기슭에 당도하면 오랜 여행에 목이 말라서 강물을 마시게 되는데, 물을 마시면 이승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저승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죽은 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자이고, 잊어버린 자는 곧 죽은 자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유언과 같은 설교를 기록한 책입니다.
신명기라는 책의 제목은 다시 율법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명을 다시 상기시키고, 이를 따라 사는 길이 곧 생명의 길이라고 간곡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말은 신명기의 골간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계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과 관련된 잊지 못할 일 때문에 그 계명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이 일이 없었다면 계명은 귀찮은 짐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 일을 기억하면 계명은 진정 하나님과 맺은 약속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신 1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하셨음을 기억하라 그를 인하여 내가 오늘날 이같이 네게 명하노라』

이스라엘이 잊어서는 안 되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을 모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종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그 때 참지 못하고 내뱉었던 신음소리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구원하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증거합니다.
          (히 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공주의 아들보다,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약속의 땅에서 주인이 되어 사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때는 그들도 모세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떠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눈앞에 어려움이 닥치자 그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배가 고프면 오히려 그 때가 더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목이 마르면 그 때는 적어도 마실 물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들을 인도한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목전에 어려움이 닥치면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족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종이었던 너희를 구하여 자유케 하신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간곡히 말한 것입니다.

거꾸로 매달려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든지 사는 게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이 끝이라면 어떻게든 사는 게 낫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다면 종이 되어서라도 먹고 사는 게 낫습니다.
마실 것이 없어 죽었다면 차라리 종으로 사는 게 좋았을 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굶어 죽는 일이 생겼다면, 목이 말라 죽는 일이 생겼다면, 차라리 애굽에서 종으로 사는 것이 나았다고 말한다 해도 탓할 일이 못됩니다.
그러나 모세는 잊지 말라고 합니다.
          (신 8:2-4)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긂어서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먹여 주셨습니다.
목이 말라 죽는 일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시게 하셨습니다.
옷이 해어지는 일도 없었고, 발이 부르트는 일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모세가 죽음의 문턱에서 간곡히 말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살리시는 능력의 원천이 되어 주셨습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모세가 말하는 잊어서는 안 되는 일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미 주신 자유케 하신 은혜, 지금 내리고 있는 살리시는 은혜를 잊어서도 안 되지만,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지금까지 살게 하셨습니다.

부드러운 빵과 기름진 쇠고기가 아닌 만나와 메추라기로 감사하고, 철철 넘쳐흐르는 강물이 아닌 겨우 목을 축일만한 작은 우물에 만족하며, 새 옷이 아니어도 늘 새롭기만 한 것은 바로 이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 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종의 멍에를 메고, 매 맞고, 신음하면서 억지로 굴종하는 삶이 아닙니다.
자유한 자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회하며 섬김으로 사는 삶입니다.

오늘 봉독하고 교독한 시편 103 편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돌보심의 은혜를 앞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송축-찬양하라고 외치는 시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약학자인 김정준박사는 이 시에 ‘청년 신앙의 노래’ 라는 이름을 붙인 적이 있습니다.
청년이라 함은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시절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꿈이 있고, 힘도 있으며, 정의롭기도 한 때가 청년의 때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를 청년 신앙의 노래라고 한 것은 적절하게 여겨지지만, 제가 만약 이름을 붙인다면 ‘살아있는 자의 노래’ 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의 주제가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리고 잊지 않았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외치는 말씀입니다.
          (계 3:1-3)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하나님께 대한 송축-찬양은 그의 은총을 기억함으로서 가능한 일입니다.
무엇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합니까?
신명기의 모세가 간곡히 말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인도 모세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7]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첫째는, 죄를 사하심으로 죽음에서 건져 낸 은혜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죄악과 병 그리고 파멸은 한 꾸러미에 담겨 있습니다.
죄가 사망을 낳고, 병이 죽음을 부르며 파멸은 곧 죽음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 내신 것과 같은 은혜입니다.

종으로서도 살기는 하겠으나 그 삶은 자기의 삶이 아닙니다.
남의 삶을 대신 사는 삶 - 글자 그대로 종살이입니다.

죄 가운데서도 살기는 하겠으나 그 삶은 생명을 갉아 먹는 것과 같은 삶입니다.
병든 삶입니다.
파멸을 행해 내달리는 삶입니다.
살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요 죽기 위해 사는 삶입니다.
촛불과 같은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 길에서 불러 내셨습니다.
그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신음소리에 마음이 아프시고, 히브리 산모들의 통곡소리에 가슴이 찢어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입니다.

높은 보좌에서 스스로를 낮추시고 땅으로 오신 것은 그 인자하심입니다.
죄 없이 십자가에 고통을 받으심은 그 긍휼하심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그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기억하는 자들은 그를 송축할 수밖에 없습니다.
땅에 있는 무엇으로도 그 은혜를 감당치 못하는 까닭입니다.

둘째로, 광야와 같은 세상, 잠시 거쳐가는 이 세상에서도 끊임없이 주어지는 그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합니다.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애굽에서 살던 히브리 노예들은 제 것이 없었습니다.
남의 것으로 살았습니다.
광야에 살면서 애굽의 고기가마를 그리워하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사는 법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든지, 아니면 구걸하는 길입니다.
본시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내 손에 있어도 그게 내 것이 아닙니다.
잠시 쥐었다가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종의 멍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아무 것도 없는 빈들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알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욥은 말합니다.
          (욥 1:21)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무엇이 좋은 것입니까?
남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이 좋은 것입니다.
맛이 있어도, 기름져도, 아름답고, 귀해도 남의 것이어서는 내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새롭습니까?
40년을 입었으면 헌 옷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심을 기억하면 40년을 입어도 새 옷입니다.
40년을 걸었으면 상처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신 길이라면 언제나 깨끗합니다.
이스라엘은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애굽의 노예에서 가나안의 주인이 될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워진 것입니다.

남의 것으로 사는 자는 죽어 가는 자입니다.
살아있는 자는 살게 하시는 주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요, 새롭게 하시는 주의 능력을 잊지 않는 자입니다.
주께서 주신 것으로 살고, 날마다 새로워지는 인생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는, 심판하실 것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6]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광야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뼈에 새겨 잊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빼면 참으로 고단한 삶이었습니다.
야곱의 말대로 험악한 삶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바로의 궁전에서의 삶과 비교하면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나 회의가 생길만한 기막힌 삶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궁전이나 광야나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왕후장상도 세월이 가면 무덤에 돋는 풀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절세가인도 세월을 따라 돋는 주름과 검버섯을 어쩌지 못하는 법입니다.
본질에 있어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궁전의 삶과 광야의 삶에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궁전의 삶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삶입니다.
죽음을 향한 삶입니다.
절망을 안고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광야의 삶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해 거쳐가는 삶입니다.
새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된 삶입니다.
애굽의 노예로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미 이루어진 것과 진배없는 확실한 소망입니다.

애굽의 바로에게는 심판의 날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백성에게는 구원의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실 그 날에 기뻐하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모세된 것은 스스로 히브리인임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24절 이하를 다시 보겠습니다.
          (히 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장성했다는 말은 히브리인 곧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않고 살았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히브리 노예들은 히브리인이긴 했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 노예로 살다 보니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약속을 이을 자라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노예근성이 골수에 박혀 버렸습니다.

바뀌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해야만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광야 생활이 필요했던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스럽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로처럼 또는 그에게 노예가 된 히브리인들처럼 남의 것으로 사는 자들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다.
광야에서 살든 궁전에서 살든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살아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억하지 못하고 잊은 자는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는 천하를 가졌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잊지 않고 기억하는 자가 되셔서, 믿음으로 사는 자,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있는 자녀들로 사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박성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2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