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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광복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열두 번째 주일(20100815)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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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8월 11일 (수) 10:26:06
최종편집 : 2010년 08월 11일 (수) 16:06:29 [조회수 :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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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열두 번째 주일(20100815)
성서일과/ 시 82; 렘 23:24-29; 히 11:29-12:2; 눅 12:49-56
본문/ 히브리서 11:29-12:2
믿음의 광복

          (히 11:29-45, 개정)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58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을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광복절입니다.
광복이라는 말은 빛을 다시 찾았다는 뜻입니다.
1945년 8월 15일에 찍은 사진을 보면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나와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는 사이로 解放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입니다.
해방이라 함은 묶이고 갇힌 상태에서 풀려났다는 뜻입니다.

일제시대라고 해서 어디 태양이 없어 어두웠겠습니까?
그 시대를 산 모든 사람들이 착고를 차고, 칼을 쓰고 살았겠습니까?
그런데 왜 그 날을 광복절이라고 하고 해방되었다고 할까요?
그 답은 다스리는 자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다스릴 권세가 없는 자의 다스림을 받고, 복종할 필요가 없는 자에게 억지로 복종하는 삶에서 마땅히 다스릴 자의 다스림을 받고, 복종해야 할 대상에게 순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광복이라고 하고 해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 땅에서 사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땅에서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사는 것이라고 말해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땅에서 사는 것은 마치 조선 사람이 일본 임금의 다스림 가운데 사는 것과 같습니다.
식민지에 사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도 광복하는 기쁨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산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일본 임금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주권을 찾겠다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독립운동한 사람들이죠.
남들이 모르게 숨어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도 있고, 아예 모든 것 버리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끝내 남의 나라에 몸을 묻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둘째는, 남의 임금을 제 임금 삼고 스스로 그의 종이 되고 신하가 되어, 그가 주는 것으로 배를 불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일본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서 그냥 그렇게 산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사이에도 커다란 편차가 있었습니다.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며, 그렇게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친일파가 사는 모습을 부러워하며, 자기에게도 그런 기회가 오기를 바라며 살았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채 그야말로 그냥 저냥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런 사람들에게 공통된 점이 있다면 조선 사람이 일본 임금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땅에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같습니다.

어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을 임금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땅에 속한 어떤 권세에도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이 겪는 것과 비슷한 고초를 겪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희롱을 당하고 채찍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옥에 갇히고 돌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톱과 칼날 아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옷을 입지 못한 채 짐승의 가죽을 걸치고, 유리방랑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가 끊어지지 않으며, 들과 산을 집으로 삼아 산 사람들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일제하에서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의 삶이 대개 그랬습니다.
그야말로 風餐露宿 바람과 이슬로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삼으며 살았습니다.
오직 하나, 남의 나라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그 모든 고생을 감수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일본 왕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마음으로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만이 우리의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외의 것들에 절하며 섬기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로 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영원히 왕 되심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는 믿음의 다짐을 배신하고, 세상에 속한 권세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입니다.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공로로 일본 왕이 주는 것으로 호의호식한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이유는 정욕 때문입니다.
          (벧전 4:1-2)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 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사람의 정욕과 하나님의 뜻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정욕을 쫓아 살면 육신이 즐거울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일 2:15-16)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세상에 속한 욕심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고 합니다.

육신의 정욕은 남들이 욕을 하든 말든 나 좋은 대로 살겠다는 태도입니다.
짐승과 다름이 없는 삶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남들이 하는 것은 나도 해야 만족하는 삶입니다.
남들이 하면 나도 하고, 남들이 가면 나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행을 따라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생의 자랑이라 함은 남들 보다 많아야 만족하는 삶을 말합니다.
남들과 같아서는 자랑이 아닙니다.
커야 하고, 많아야 하고, 넓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따라 살면서 모은 것은 헛됩니다.
얼마 전에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법이 제정되고 시행되어서, 실제로 친일파의 후손들이 지닌 땅을 몰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진작에 했어야 될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이 말합니다.
          .....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세상에 속한 헛된 것에 빠져 죄를 낳지 말고, 더 좋은 것을 사모하며 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만이 임금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렇게 살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할 만큼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악착을 떨 주변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차피 한 세상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직 여호와만 바라고, 그에게만 복종하며 살기를 원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저런 사정과 이유를 들먹이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삽니다.

왜 그럴까요?
약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가진 권세가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욕심이 믿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디.” 주님 탄식하신 그대롭니다.

왜 그렇게 약할까요?
아직 어리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대장부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왕상 2: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대장부가 되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 말만으로는 애매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부분을 보면 이는 강해지라는 말입니다.
더 이상 아비의 그늘 아래 있는 어린 아이가 아닌, 홀로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 있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삼상 4: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

종이 되지 않으려면 싸워야 하고, 싸우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싸울 힘이 있는 자를 가리켜 대장부라고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것도 약했기 때문입니다.
싸울 힘이 없을 정도로 약해서 남의 종이 된 것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약하면 빼앗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속한 정욕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약한 것을 어떻게 합니까?
강해야 하는 줄 알지만 강하지 못한 현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본문은 말합니다.
          [12:1-2] ....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올림픽의 발상지가 희랍, 그리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히브리서를 쓴 사도는 바로 그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사는 것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에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택함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나 올림픽에 나갈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뽑힌 자들만이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전하는 그 자체가 영광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허다한 증인들도 다 그렇게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갈 1:15) 『...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고전 15:10) 『...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강하고 나는 약해도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리라고 믿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무거운 것과 얽매는 것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히 12:1)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아무리 빠르게 달리는 자라도 소금가마를 지고 달려서는 우승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멀리 뛰는 자라도 밧줄에 몸이 묶여서는 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약한 것은 바로 무거운 죄의 짐, 우리를 얽매어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죄의 무게 때문입니다.
이 죄가 욕심 곧 정욕에서 나온다는 것은 지난 두 주에 걸쳐서 살펴 본 사실입니다.
죄의 짐, 정욕의 얽매는 것을 벗어 버림으로 강해질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 못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욕의 종 되어 살고 있음을 깨달아 회개함으로 강한 자-대장부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는, 받을 상을 바라보고, 참아야 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은 믿음의 경주에서 상을 주시는 분이면서 어떻게 하면 상을 받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강하신 분입니다.
능력이 있으시죠.
모든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으시며,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시는 일은 강한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성전을 정화하고, 바리새인을 꾸짖으신 일도 강하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상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심은 주님의 가장 약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지시는 부끄럽고, 힘든 일을 견디심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강함으로 이기신 것이 아니라 약함으로 이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약한 자가 강한 나라입니다.
          (욜 3:10)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믿는 자의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이고, 그 싸움은 활과 칼로 이기는 싸움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였던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서기 전 염려하고 비웃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삼상 17:47) 『...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허다한 증인 가운데 삼손이 있습니다.
그는 타고난 장사였습니다.
맨손으로 사자의 입을 찢고,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의 군대 3,000을 한꺼번에 죽였던 일이 있는 그런 장사였습니다.
블레셋은 삼손이 있는 한 이스라엘을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 온갖 방도를 강구하다가, 아름다운 여자 들릴라에게 삼손을 유혹하게 했습니다.
모두가 알기를 그의 힘은 그의 머리카락에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삼손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들릴라도 마침내 그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들릴라는 삼손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그가 잠이 든 사이에 그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삼손은 아무 힘도 없는 자가 되어 블레셋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삼손의 눈을 뽑고, 멍에를 씌워 연자방아를 돌리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습니다.
블레셋은 그들이 섬기는 다곤을 위한 신전을 완공하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 삼손을 끌고와서, 새로 지은 신전의 두 기둥 사이에 세워놓고 조롱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아,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이스라엘을 지키던 사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힘을 잃고, 소경이 되어, 원숭이처럼 놀림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삼손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원수들의 놀림감이 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하나님께 부끄러웠습니다.
자기의 수치는 하나님의 수치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손은 한 번만 더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삿 16:30) 삼손이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삼손은 평생 나실인으로 살기로 서원한 사람입니다.
나실인-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실인이 서원 중에 지켜야 할 것이 무어입니까?
독주를 마시지 않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입니다.
삼손이 술에 취해, 머리카락이 잘렸다는 것은 바로 나실인의 서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는 서원이 깨졌다는 뜻입니다.

그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 것은 그 서원이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힘의 회복기 아니라 서원이ㅡ 회복-믿음의 광복이었습니다.
그는 종이 되어서, 고난 가운데, 약한 가운데 다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힘이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은 삼손이 가장 약했던 그 때에 가장 크게 나타났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리고, 눈이 뽑혀서, 원수의 조롱거리, 비웃음거리가 된 그 때, 죽기를 작정한 그때에 하나님은 가장 강하게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약한 사람들로서 세상의 권세가 강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요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서이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 앞에 나아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빛이 가려져 어둡게 되는 것이 재앙이요, 멸망입니다.
주 앞에 가까이 가는 것이 복이요, 구원입니다.

세상에 속한 권세가 강해도, 주께서 보고 계시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집에 온 자들을 축복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민 6:24-26)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그의 다스리심을 받는 자들을 위한 축복입니다.
믿음의 빛 다시 찾으시고, 세상의 종에서 벗어나 복된 약속 이루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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