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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하는 자와 예배하는 자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여덟 번째 주일(20100618)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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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7월 14일 (수) 10:54:38
최종편집 : 2010년 07월 14일 (수) 16:04:18 [조회수 : 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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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제 8 주(20100718)
성서일과/ 시 15; 창 18:1-10a; 골 1:15-28; 눅 10:38-42
본문/ 골로새서 1:15-28
대접하는 자와 예배하는 자

         (골 1:15-28, 개정)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게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에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더 좋은 편을 택하라.

오늘 주신 말씀 중 누가복음을 보면 더 좋은 편을 택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하여 집으로 모신 마르다와 마리아는 서로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모처럼 모신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이 다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마르다의 바쁜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마르다가 그 모습을 보고 주님께 말햇습니다.
          (눅 10:40) ...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눅 10:41-42) [41] ....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마라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십니다.
왜 마리아가 택한 것이 좋은 것일까요?

우선은 예수를 모신 자의 마음자세가 문젭니다.
마르다라는 이름이 심상치 않은데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았다는 것은 스승의 말을 듣는 제자의 모습입니다.
한 집에서 같은 분을 모셨는데, 어떤 사람은 주인이 되어 손님을 대접을 하고, 어떤 사람은 제자가 되어 스승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은 주를 모시는 자가 대접하는 자이기 보다는 배우는 자가 되는 편이 더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가진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분주합니다.
준비하다는 것은 디아코니아의 번역인데, 나중에는 섬김과 봉사를 뜻하게 되지만 원래 뜻은 식사시중을 드는 일입니다.
분주하다는 것은 사방에서 끌어당긴다는 뜻입니다.
마르다는 식사를 준비하는 일로 마음이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들었다고 했습니다.
억지로 들은 것이 아니라 사모하며 들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일은 생각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기왕에 예수님을 모셨으면, 늘 먹는 식사 보다는 모처럼 주의 말씀을 듣는 일이 더 좋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초청하여 모신 집과 같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는 이 시간 마르다나 마리아 둘 중에 하나일 수 있습니다.
마르다도 귀하고, 마리아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더 좋은 편을 택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손님으로 아는 주인의 마음은 이것저것 준비할 일이 많아 분주한 마음, 갈라진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가 주시는 양식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제자의 마음은 오로지 주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에 집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를 모시고 예배하는 이 시간, 스스로 주인이 되어 분주해지지 말고, 오직 주 예수로 주인 되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세상에서는 구할 수 없는 영원한 양식이요, 스승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먹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이는 제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진리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주님의 말씀에 집중한다는 것은 주님께 집중한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말씀이 곧 주님이시고, 주님이 곧 진리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왜 그를 주목하고 그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까?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해 알려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첫째는, 그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게 섰느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땅에 계신 예수가 바로 만물보다 먼저 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혈육을 따라 태어나신 분이 아니요,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분입니다.
하나님 밖에서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니, 하나님을 닮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와 세상을 지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서 나온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합니다.
          (요 1:1-3)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도 당신이 지으신 만물을 보고 아름답게 여기셨습니다.
그가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했으니,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진 형상을 유지할 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지어진 만물 중 유일하게 말씀 안에 머물지 못한 것이 사람입니다.
말씀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 악하고, 더러워졌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머물지 못하고 그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날 이후 인생의 평안은 깨어지고, 염려와 근심, 두려움과 불안이 끊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이 평안을 찾고자 하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돈으로도 되지 않고, 권세로도 되지 않습니다.
욕심을 따라 가면 하나님의 동산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동산으로 가기 위해 높은 탑을 쌓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도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평안입니다.
          (시 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졌던 그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 평안을 찾는 유일한 길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발밑은 인생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동산과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그곳에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동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말씀 앞에 엎드리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리아가 있던 그 자리입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예배하는 자의 자리입니다.
주의 발아래 앉아 예배하는 이 자리가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평안을 찾는 가장 좋은 길임을 깨닫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에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교회는 주께 예배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주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누구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입니다.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어 하나 되어 움직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지체로 이루어진 몸이 하나 되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머리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곧 많은 지체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지체의 주인이 되면 당연히 몸의 주인인 것입니다.
주인은 하나여야 합니다.
으뜸이 되려 하신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으뜸으로 삼을 때 온전해 집니다.
머리가 없으면 많은 지체들이 서로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주인이 많아지면 분주해 집니다.
분주해지는 것은 사방에서 주인이 되어, 서로 불러대기 때문입니다.
마르다가 분주해진 까닭입니다.

사실 교회는 많은 일로 분주한 곳입니다.
늘상 일꾼이 없다고 탄식을 하게 됩니다.
교사로, 성가대로, 청소하는 일, 밥하는 일, 친교하고, 전도하고, 성경공부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일손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다 해야만 할 일이고, 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영원히 집중해야 할 한 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예배하는 일입니다.
예배야 말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한 주인이 되고, 으뜸이 되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예배를 소홀히 하고 다른 일로 분주해져서는 안 됩니다.
자칫하면 그 많은 분주한 일들이 사람이 주인이 되고, 으뜸이 되는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르다가 주께로 와서 불평을 한 까닭이 그것입니다.
마르다가 하는 일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인으로 삼는 일은 아닙니다.
예수를 모셨으나 마르다는 여전히 주인이 되어, 잠시 들르신 손님, 예수를 대접하기 위해 분주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의 발아래 있습니다.
예배하는 자의 자리입니다.
사방에서 불러대는 소리로부터 자유로운 자리입니다.
오직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자리입니다.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주의 발아래 있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배하는 자리이고, 오로지 주의 음성만이 들리는 자리입니다.
주를 예배하는 일에 중심을 두고, 그 예배의 중심에 주의 말씀을 두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로, 주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말씀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나신 것은 그가 죽음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주인이 있으면 종이 있습니다.
으뜸이 있으면 버금이 있고, 첫째가 있으면 둘째가 있기 마련입니다.
종이 없는 주인은 주인이랄 것도 없고, 버금이 없는 으뜸은 으뜸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혼자 달려서 일등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시켜도 행할 자가 없는 주인은 진정 주인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인이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이 종의 사명입니다.
주인의 뜻을 이루는 것이 충성된 종의 할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시려고 죽으셨다면, 우리 또한 그 다음 사람들을 위한 화목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예배하는 자의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참된 예배는 주의 일을 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의 발아래 있는 것은 어디든지 주를 따라가겠다는 다짐의 표현입니다.
그가 가는 길이 나의 길이고, 그가 하는 일이 나의 일이 되리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마리아는 훗날 무덤에까지 주를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르다의 생각일 뿐입니다.
마르다가 생각하고, 하는 일은 급하고, 분주해도 한 끼 식사를 장만하는 일에 머뭅니다.
그러나 화목케 하시는 주의 일은 그의 종들이 세상 끝 날까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주를 떠나 분주한 것은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한 때의 일입니다.
그러나 주의 발아래에 자리하고, 주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은 평생에 걸친 일입니다.
내 생각을 따르면 한 때의 일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주의 생각을 따르면 평생의 사명을 따라 일하는 자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자리를 택하시겠습니까?
마리아의 자리, 주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자리를 먼저 택하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알고 감당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참된 예배에 임하는 능력

그 자리가 좋다고 언제까지나 거기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도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신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곳은 그의 발아래 섰던 자들이 마침내 가야할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주의 발아래 서, 그를 찬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가 잠시 주와 헤어져 세상에 머물러 있어야 할 시간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가 남기신 일을 해야 합니다.
종 된 자들의 마땅한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함으로 예배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주의 일입니까? 
지금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바울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경륜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경륜은 하나님이 그 안에 간직하고 계신 포부와 계획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과 화목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경륜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화목의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방에 전했습니다.
주님이 맡기신 사명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를 이방에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 하나님과 화목치 못한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바울도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평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여, 평안을 얻고자 무던히 애를 쓴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행하고, 조상의 유전을 따라 살면 하나님과 평안할 수 있을까 하여, 그 율법에 열심을 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헛됨을 알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를 만난 순간에 그랬습니다.
그는 여지없이 고꾸라졌고, 꼼짝없이 주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날부터 바울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를 전하는 일군이 되었습니다.
종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일을 감당하는 길에 따르는 고난도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차라리 자원하여 고난을 짊어지겠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노라 한 말의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일생에 단 한 번 예수님을 만났을 뿐입니다.
살아서 만난 적은 없고, 부활하신 주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예수님의 그 발아래 엎드러졌습니다.
그의 종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온전히 그의 주로 삼은 것입니다.

주의 음성을 듣고 고꾸라지고, 주의 발아래 엎드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예배, 온전한 예배입니다.
바울은 단 한번 온전히 주께 예배하였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울로 주의 종이 되고, 일꾼이 되어, 고난조차도 기뻐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예배는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를 하나님과 화목한 자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바깥 어두운 곳에서 두려워하며, 근심하는 자를 평안과 기쁨이 있는 하나님의 동산으로 옮기는 능력입니다.

예배하는 것을 보는 자가 되어서는 그 능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습관과 의문(儀文)을 따라 치러내는 예배로는 그 능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의 발아래 앉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를 사모하는 자의 자리요, 사랑하는 자의 자리입니다.
우러러 주님만을 보는 자리요, 기울여 그의 음성만이 들리는 자리입니다.
마리아가 있던 그 자리입니다.

참된 예배, 온전히 예배하는 자가 되어 화목케 하시는 십자가의 능력을 얻고, 그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종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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