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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십니까?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6 주(20100704)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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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6월 30일 (수) 23:21:23
최종편집 : 2010년 07월 01일 (목) 01:10:52 [조회수 :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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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제 6 주(20100704)
성서일과/ 시 66:1-9; 사 66:10-14; 갈 6:(1-6) 7-16; 눅 10:1-11, 16-20
본문/ 눅 10:16-20
무엇을 보십니까?

          (눅 10:16-20)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 는 말이 있습니다.
진리에 주목하지 않고 진리에 이르는 방편에 주목하여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말입니다.

‘빛 좋은 개살구’ 라는 말도 있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내실이 없음을 빗대는 말입니다.

얼짱, 몸짱이라는 말은 이 시대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외모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외모가 연애, 결혼 등과 같은 사생활은 물론 취업, 승진 등 사회생활 전반까지 좌우한다는 생각에 외모를 가꾸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니, 성형외과 의사가 의사 중에 최고 인기직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김새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일 뿐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겉 보다는 속, 생김보다는 쓰임에 주목하는 종교입니다.
          (딤후 2:20-21)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금과 은, 나무와 질그릇은 그 자체로 볼 때 분명 가치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라는 말은 그것이 금이든지 은이든지, 혹은 나무나 질그릇이든지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그릇이든지 깨끗해야 쓸 수 있습니다.
쓸 수 없다면 무익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질그릇과 같이 그 자체로서는 보잘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귀한 그릇입니다.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을 귀한 그릇 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쓰임이지 생김이 아닙니다.

열왕기 하 5장은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친 이야기입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국이 강성하여 이스라엘의 두려움이 되었던 시기에 아람의 군대를 통솔하던 장군이었습니다.
아람에서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를 가진 이로 땅에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해도 될 만한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불치의 병이요, 가장 지독한 병이라 할 수 있는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마침 나아만의 집에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와 종살이 하던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주인인 나아만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 가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는데 그를 찾아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물에 빠지면 거미줄이라도 잡는다고 나아만이 그 말에 솔깃하여 왕에게 아뢰고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람의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이러저러해서 나아만이 가게 되었으니 그 병을 고쳐서 보내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아람에게 눌려서 기를 펴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둥병에 걸린 아람의 군대장관을 고쳐서 보내라니, 억지를 부리는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구실을 만들어 다시 침략해 오려는 술수라고 생각한 이스라엘은 왕 이하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하 5: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왕이 옷을 찢으며 울부짖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엘리사가 나아만을 내게로 보내라고 전했습니다.
이윽고 나아만 일행이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당도했습니다.
거느린 말들과 병거들의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문을 열어 보지도 않은 채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심부름꾼을 보내 전갈을 했습니다.
무서운 병을 고치는 일이니 무언가 그에 걸맞는 절차가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한 나아만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 고향에 있는 강물이 요단강 보다 더러워서 나더러 요단강에 몸을 씻으라는 말이냐? 사람을 이렇게 놀려도 되는 거냐? 오냐, 두고 보자, 내가 지금은 그냥 돌아간다만 오늘의 이 치욕을 씻을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아만은 솟구치는 분노로 몸을 떨며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려는 나아만을 막아서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장군, 엘리사가 장군에게 크고 어려운 일을 하라고 했다면 어찌 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어렵지도 않은 일을 하라고 하는데 왜 그러십니까? 엘리사의 말대로 하십시오, 그래서 낫지 않으면 그 때 엘리사든 이스라엘 왕이든 요절을 내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었습니다.
문둥병을 고치는 일이니까 무언가 비상한 방법이 동원되어야 하리라는 생각은 얼핏 보면 합당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사실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이라도 했을 터인데 쉬운 일을 왜 안하려고 할까요?
나아만의 이야기에서 지나치기 쉬운 구절이지만 의미심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그런 구절이 있다는 기억을 안고 넘어 가십시다.

나아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단강에 몸을 씻고 깨끗이 나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입니다.
흔히 믿음이 도는 순종이 기적을 낳았다고 하지만 여기에 믿음이나 순종이 설 자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놀라운 기적이 임한다는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놀라운 일, 보기 힘든 일, 세상에 드문 일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늘 보는 일이 아니기에 처음에는 놀라서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 새겨지게 됩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뚜렷하고 깊게 새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자기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이르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를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라는 질문은 대부분 나쁜 일에 집중되어지게 마련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요 9:2-3)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욥의 질문도 그런 종류의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왜 자기를 이렇게 괴롭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재산을 잃는 괴로움, 가족을 잃는 슬픔, 병든 몸으로 말미암는 아픔보다 더 큰 것이 왜 하나님이 이러시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집요하게 한 번 따져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욥 13: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왜 그런 기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묻기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는가를 궁금해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치있게 여겨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5,00명을 먹인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이 놀라운 일을 목도하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表蹟이 무엇입니까?
표시라는 말과 기적이라는 말을 합한 것입니다.
기적은 기적 그 자체보다 그 기적이 왜 일어났는가?
그 기적이 무엇을 표시하는가를 물을 때 참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먹고 배부른 사실에만 집중한다면 기적이 지닌 참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치료한 이야기는 여호와의 통치 영역이 온 세상에 미친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만의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여호와가 다른 족속 심지어 원수의 하나님이기도 하다는 표적입니다.
기적의 은혜를 경험한 나아만의 고백입니다.
          (왕하 5:15-18) [15]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16]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 [17]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예수님이 파송하셨던 70인의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결과를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께 고했습니다.
          [17] ...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도 흐뭇한 마음으로 그들을 맞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18] ...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리고 마치 경계하시듯 한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귀신들이 항복하는 일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기뻐할 일이었고 자랑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사단이 번개같이 하늘에서 떨어진 일 곧 귀신이 항복한 일은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음을 나타내는 표적이었습니다.

귀신이 항복한 일,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진 일은 드러난 일이었습니다.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중요한 일, 귀신이 항복하는 것으로 입증된 일은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제자들은 자기들 앞에 벌어진 일에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고 기뻐했습니다.
그들의 말을 곱씹어 보면 분명해 집니다.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이렇게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주의 이름 앞에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집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인하여 기뻐하라.”

제자들이 말하는 우리와 주님이 말씀하시는 너희에 주목하십시오.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은 자칫 사람들이 하는 일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주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 또 하고 계신 일에 눈을 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보다 앞세우게 될 위험이 큽니다.

오늘의 성일과 중 갈라디아서 6장의 말씀도 이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갈 6:12-15)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 뿐이라 [13] 할례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할례는 표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저 할례의 흔적만을 문제 삼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왜? 라고 묻는 것입니다.
왜 할례를 받았는가?
하나님이 왜 나를 세상에 내셨을까?
하나님이 왜 나를 택하셨을까?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을까?
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
.
.

이렇게 묻노라면 언젠가는 공중의 새와 길 가의 꽃 한 송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늘 보고 살았지만 정작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나를 택하여, 부르시고,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으로 불리우느냐 보다 무슨 일에 쓰일까에 관심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항상 감사히고, 범사에 기뻐하며 살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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