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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그것은 무엇인가?수행의 종교는 왜 필요한 것인가?
한성영  |  h68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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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6월 27일 (일) 22:27:35
최종편집 : 2010년 06월 28일 (월) 10:49:52 [조회수 : 2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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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적 개체는 무엇인가? 프레임(frame)이다. 그러나 아주 독특한 프레임으로써 프레임을 복제해 낼 수 있는 프레임이다. 고정된 개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과 대상을 고정된 것으로 보는 것은 프레임의 전략일 뿐이다.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집을 예로 들어보자 집은 여러 가지 재료와 형식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이다. 그러나 집은 결코 고정된 대상이 아니다. 집은 여러 차례 수리되기도 하고 집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들은 여러 차례 교환되어 질 것이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집의 일부형식은 변형되기도 한다.

그러나 집이라는 프레임은 유지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3분전의 집은 3분후의 집과 동일한 대상이 아니다. 그 3분 사이에도 집을 구성하고 있던 재료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이라는 프레임은 재료들의 변화사이에도 계속해서 유지되어진다. 그러니 프레임이란 실체적 대상이 아니라 존재형식이다. 그러나 그 형식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존재형식을 자발적으로 상속해가며 변해가는 프레임이다. 즉 주변으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들여 프레임을 복제(상속)해 낼 수 있는 프레임이다. 물이라는 무기체도 일정한 프레임이다, 조건에 따라 물로 수증기로 얼음으로 그 존재 형식이 바뀐다. 그러나 물이라는 프레임은 다른 것으로 부터 에너지를 끌어들여 프레임을 자발적으로 상속해 낼 수 없다.

유기체의 가장 큰 특성이란 존재형식이 다른 프레임을 변형 가공하여 에너지로 삼아서 프레임을 상속해낸다는 것이다. 번식이란 프레임의 상속이다. 프레임은 시간이 지나면 허물어지지만 각각의 유기체적 프레임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프레임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각자의 전략을 사용한다. 유기체의 자연조건이 변하고 그 조건에 맞는 유기체 프레임이 살아남는 것이 자연선택이고 변화된 조건에 따라 프레임이 살아남고 더 오래 지속하기 위해 애쓰는 것 이것이 적응이고 진화이다.

인간이 고정된 실체로서 보는 자아는 고도로 발달된 프레임 유지, 상속 전략이다. 자아는 프레임 주변의 조건을 세밀하게 감지하여 프레임에 대한 위험요소에 대응하고 긍정요소를 끌어들이는 프레임전략의 일부이다. 특히 인간이라는 프레임이 사용하는 고도의 자아전략은 자연역사에서 프레임이 경험한 부정과 긍정요소들을 다른 프레임들보다 더 치밀하고 섬세하게 유지하고 상속해낼 수 있는 전략을 사용하는 고도로 발달된 프레임이다.

인간과 다른 유기체 프레임들은 인간처럼 부정과 긍정요소들을 지성적으로 판단하고 상속해 낼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에 본능이라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더 본능이 발달되어 있다. 본능은 위험한 프레임 주변의 환경에서 신속하게 대처해주는 프레임의 자기보호전략이다.

뇌가 발달한 인간은 본능보다는 지성적인 판단전략을 더 많이 사용한다. 물론 이것은 인간마다 다르다. 인간은 본능이라는 x축과 지성이라는 y축을 자신이 처한 조건에 맞게 사용한다. 지성의 도구가 부족한 인간은 본능에 더 의존하고 지성의 도구가 발달한 인간은 본능보다는 지성에 더 의존한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지성의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지성보다는 본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느끼는 통증, 고통, 여러 가지 감정과 욕구들은 프레임유지전략의 일부이다.

이런 도구들이 없다면 인간이라는 프레임은 쉽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마치 집이라는 프레임을 보호해주는 각종 경보장치나 안전장치가 없으면 집은 쉽게 도난당하거나 허물어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고도로 사회적인 인간프레임은 사회유지를 위한 도구들- 예를 들면 윤리, 도덕, 질서, 법-도 내면화한다. 윤리, 도덕, 법, 질서 또한 프레임을 잘 유지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잘 지켜지는 사회속의 프레임들은 당연히 더 안전하고 더 오래 프레임을 유지하게 된다.

도덕성과 준법정신이 강하고 지성이 발달한 사회는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에 외부적으로 다른 국가보다 군사력과 기술이 강했던 일부 국가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더 오래, 안전하게 유지하려면 당연히 내부적인 윤리, 도덕, 법과 질서를 발달시켜야 했었다. 군사력과 기술은 국가 외부적으로는 잘 대처할 수 있으나 내부적으로 세련된 전략은 윤리, 도덕, 법과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족한 국가는 마치 면역성이 떨어지는 육체와 같은 것이다. 강한 이빨과 몸집을 가진 사자라도 내부적으로 병에 걸리면 약해져서 뒤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가장 강한 국가는 외부적으로 부국, 강병 내부적으로 성숙한 지성과 윤리, 도덕, 법과 질서가 잘 지켜지는 국가일수 밖에 없다.

인간은 지구에서 프레임게임에서 살아남은 가장 강한 프레임이라 보면 된다. 여기서 프레임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다만 일정한 형식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요리레서피(receipe)와 같은 것이다. 레서피는 실체가 없는 형식일 뿐이지만 레서피에 따라 요리는 만들어지고 만들어지고 만들어 진다.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고 소비되고 사라지지만 레서피는 영원히 상속된다. 인간도 이와 같다.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들은 끊임없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러니 그것은 고정되고 연속성이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프레임은 끊임없이 상속된다. 그런데 프레임전략의 일부인 자아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일 수 있게 된다. 자아의 전략은 자신을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여 프레임의 주변에 사태를 진단하고 대처하는 기제이기 때문이다. 인간프레임은 프레임이 상속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쌓은 모든 전략들을 기억하여 상속한다. 즉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단세포라는 프레임이 진화하여 인간이 되기까지의 모든 전략들이 상속되는 것이다.

자아는 이 전략들을 이용해서 프레임 주변의 사태를 진단하고 대처하는 정서의 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 또한 인간 프레임이 사용하는 전략이지만 최종적인 판단의 결과는 정서의 층을 뽑아 올림으로써 결론을 맺는다.

즉 이성이 사태를 최종적으로 진단하면 결론은 정서반응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특정한 사업계획을 짜고 자료를 수집하여 결론을 맺었다면 과정은 이성적이지만 결론은 신념이나 확신, 불분명함, 또는 모호함, 불안, 평이함 등의 정서적 반응으로 나오게 된다.

자아란 프레임주변의 사태를 진단하고 대처하기위해 표현되어진 정서반응의 최종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평이한 일상 속에서도 자아는 고요함, 단순함 지루함, 평화로움, 또는 그저 그렇다. 식의 정서적 반응으로써 프레임의 사태를 진단하고 대처하는 결과물을 끊임없이 퍼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아란 이러한 정서반응의 최종결과물이다. 인간이 살아 있다는 것은 정서반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반응은 물론 각각의 인간 프레임마다 다르다. 같은 사태에 대해서도 다른 정서반응을 할 수 있으며 문화와 지역마다 그 정서반응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인간프레임은 상당히 많은 비슷한 정서반응을 공유한다. 다른 동물들과 인간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동물들과 인간이 정서반응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자아란 프레임의 유지와 상속을 위한 정서반응의 총체일 뿐 실체가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정서도 프레임의 상속전략의 일부이다. 하나의 대상에 몰입케 함으로써 프레임의 상속과 유지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우연히 빠져드는 것 같지만 무의식에서 상당히 계산되고 판단된 의지적이며 결단적인 정서반응이다. 이 심층의 과정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낭만적인 사랑에 빠진 두 개체 프레임은 다른 개체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상대에게 몰입함으로써 프레임이 상속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아가 실체가 있고 연속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런 실체성과 연속성의 느낌 전략이 프레임을 유지하고 상속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아실현이란 프레임의 유지와 상속 즉, 생존과 번식의 확대된 형태의 다름 아니다. 프레임의 가치를 높이려는 것도 실은 프레임의 생존과 번식의 연장된 형태이다.

이렇게 마치 연속되고 동일한 상태를 지니는 개체로서의 자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프레임을 유지하고 상속하는 데 가장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된 전략이다. 앞서 집의 예를 들었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설명해 보자. 유기체적 개체란 마치 한편의 연극 공연과도 같다.

연극은 실체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공연 자체로서 작용하고 있을 뿐 고정된 실체로서의 연극이란 없다. 무대와 배우, 소품들과 연출자 그리고 관객이라는 요소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벤트이다. 연극공연은 다른 요소들이 바뀌어도 이벤트로서 존재한다. 고정된 실체가 없지만 요소들이 결합되어지면 이벤트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이벤트를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은 이벤트에 참여한 요소들에 상속되고 요소들은 연극이 끝나고 다른 곳에서 다른 요소들과 만나 상속한 가능성을 가지고 또 다시 한 판의 연극을 벌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연극은 스토리의 일부가 바뀌기도하고 소품과 무대가 더 세련되기도 하며 배우들에 따라 공연의 색깔이 달라지기도 하고 관객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달라진 연극의 경험은 다시 요소들에 상속되어 퍼져 간다. 이렇게 연극은 상속되어지며 바뀌며 이벤트로서 살아남는 것이지 고정된 실체로서의 연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체는 이와 같다. 개체는 한 판의 연극이고 연극의 총체적 성질과 가능성은 요소들에 상속되어진다. 유식불교에서는 종자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한판의 연극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태가 상속되어 지는 것이다. 전달되어지는 것은 정보이며 자료이다. 정보와 자료는 실체가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 듯이 말이다.

종자식의 자료는 자아가 연속성과 동일성을 느끼듯이 전생과의 연속성과 동일성이 있는 것처럼 작용한다. 그래서 불교는 전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연속되고 동일성이 없는 데도 자아가 프레임전략에 따라 그렇게 느끼듯이 종자식에 의해 발현된 새로운 자아는 전생과 마치 연속된 동일성이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작용되어진다.

그런데 프레임 전략의 일부였던 인간의 자아는 그 기능에 충실한 나머지 자신이 실체가 있는 고정된 그 무엇으로 확실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그것이 처한 실존의 자리 어느 순간에 빈번히 고뇌와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실상은 고정된 실체가 없고 허물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며 결국은 자아는 이 실상을 목도하게 되고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신을 갈구하다가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 자아가 절망하는 순간에 구원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종교의 진리이다. 세상을 고정된 그 무엇으로 보는 자료로서 상속되던 자아는 진리와 수행을 통해 근원으로 회귀되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종교 수행이란 이와 같이 자료로서 상속되던 자아의 성향을 평정하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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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 (210.2.47.224)
2010-06-28 15:37:02
좋은 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프레임, 고정된 실체가 아님, 그러나 실체로 인식하는 인간, 해서 고뇌와 마주친다. 절망한다. 이지점이 종교가 구원해 줄 수 있는 종교의 진리. 종교수행을 통하여 상속되던 자아의 성향평정하고 근원으로 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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