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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힘을 다 해..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삼위일체주일(20100530)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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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5월 27일 (목) 10:03:23
최종편집 : 2010년 05월 27일 (목) 15:14:11 [조회수 :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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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주일(20100530)
성서일과/ 시 8; 잠 8:1-4, 22-31; 롬 5:1-5;요 16:12-15
본문/ 로마서 5:1-5
온 힘을 다해...

          (롬 5:1-5)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삼위일체 주일인 오늘 설교는 자칫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초대교회의 교부들과 장로들조차 온전히 해결치 못한 삼위일체 교리가 내용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깨닫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세 개의 위격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한 분이시면서 또 셋이라는 거죠.
하나면 하나고, 셋이면 셋이지, 하나면서 또 셋이라는 말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교회는 그렇게 하나님을 믿어 왔습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매 주일마다 성부, 성자, 성령께 영광을 돌립니다.
성부 하나님이 지으시고, 성자 예수께서 구원하시며, 보혜사 성령께서 도우신다고 믿어, 사도들이 전한 신경을 고백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사랑, 성자 예수님의 은혜, 성령께서 교통하는 복이 충만하기를 빌면서 예배를 마칩니다.
또한 매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자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이 모든 것은 삼위일체 교리가 우리 신앙에 넓게 그리고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묘한 것은 삼위일체 교리를 모르거나 혹은 그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생활이 지장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설령 부인한다고 해도 결과는 비슷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교리를 모르거나 혹은 부인한다고 해도, 경건한 신앙생활 자체가 위협을 받지는 않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교리란 무엇인가?

신학교 다닐 때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사람이 창문에 유리를 끼우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창문은 일곱 갠데 유리는 여섯 장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왼쪽부터 끼우기 시작하면 오른쪽 창문 하나가 뚫리고, 오른쪽부터 시작하면 왼쪽 하나가 모자랐습니다.
가운데부터 시작을 해봤지만 역시 양쪽 끝 가운데 하나는 뚫린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생각다 못해 유리 한 장을 둘로 잘라서 끼워보니, 이번에는 두 개의 창문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유리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끝없는 수고가 되풀이될 것입니다.

교리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교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될수록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교리를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부족한 것입니다.
어딘가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교리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명하기 보다는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표준이 되는 성경은 어디서도 삼위일체 교리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믿고 고백할 수 있는 여지를 줄 따름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님은 사람이면서 또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면 사람이고,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지, 사람이면서 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의 지혜를 벗어난 일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사람 아니면 하나님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 대부분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 신앙의 기초가 여호와는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예수를 높여 생각해도 모세 이후에 나타난 최고의 선지자 이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은 언제나 한 분, 유일하신 하나님이어야지 둘이 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사람이 아니라면 십자가에 달려서 피와 땀을 흘리고 죽은 것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가 고난을 받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피를 흘리고 죽을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우리에게 그렇게 보였을 뿐 진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는 허깨비와 같은 것으로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이었음을 주장하는 것과 하나님이었음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생기게 됩니다.
믿음의 길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이라고 믿으면, 예수님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곧 그를 따르고, 닮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보다는 행위에 중점을 두는 신앙이 됩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이냐는 것을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렇게 행하셨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하느냐는 책망이 따르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비난하는 빌미가 되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이신 예수는 이해할 수 있어도 하나님이신 예수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믿으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초점이 맞추어 집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오시고,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선하고, 의로워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으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어쩌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자못 무책임할 수도 있는 신앙이 됩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이 두 가지 생각들을 모두 거부합니다.
예수는 참사람이면서 동시에 참 하나님이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 닮는 일도 중요하지만 예수가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믿고, 고백할 수는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것도 버릴 수 없고, 저것도 버릴 수 없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말하는 것을 일러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동시에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르는 제자로서 그를 닮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선하고, 의로우며, 인자와 긍휼이 풍성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 사람이면서 참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믿음과 행위를 다 같이 중요하게 여겨야 된다는 선언인 동시에 다짐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의 열매 풍성히 거두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삼위일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설명하는 일이 어렵고 더구나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해도, 설명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도 삼위일체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세 가지 주체와 방법으로 구분하고 있을 뿐입니다.
삼위일체라 함은 이렇게 다른 방법으로 다른 일을 하는 삼위가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다른 일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는 한 가지 일입니다.
그렇다면 삼위 하나님이 일체가 되어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성자 하나님은 화평케 하시는 분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성령 하나님은 아낌없이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성부 하나님은 마지막 때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리를 초청하시는 분입니다.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요약한다면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의 대잔치를 베풀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은 삼위로 역사하십니다.

성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를 통하여서만 하나님의 모든 영광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보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메꿀 수 없고, 건널 수 없는 간격을 당신이 다리가 되어 건너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로 말미암아 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보증해 주시는 분입니다.
굳어질 대로 굳어져, 둔하게 된 우리 마음을 감화, 감동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에 반응하여,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다고 하는 말씀의 뜻입니다.

비유컨대 하나님이 사랑과 평화로 충만한 큰 바다라면, 예수님은 그 바다 위로 우리를 태우고 항해하는 배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태운 그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불어주는 바람입니다.
배가 없으면 아무도 그 바다 가운데 있을 수가 없고, 바람이 없으면 배를 타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삼위로 일하시는 하나님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한 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삼위일체는 설명하거나 이해하기보다 믿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 뒤따라야 하는 것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고백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고백대로 사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사람이 귀한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위해 삼위로 역사하십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한 분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셔서, 그의 창조를 완성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을 보내셔서, 약한 인간들을 그의 구원의 역사 안에 머물도록 힘을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하시는 인간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는 그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그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의 부족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어서 귀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속들이 아십니다.
우리의 머리카락을 헤아리시고, 우리의 폐부를 들여다보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깊고, 넓고,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은 항상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귀한 존재이지만 교만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만하면 되었다, 충분하다 말하지 말고, 항상 모자란다고 여겨, 더욱 힘써 사랑하고, 충성하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힘을 다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전심전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힘을 쓴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삼위로 역사하시는 모습에서 인생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힘을 다하여 인생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실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눈앞에 십자가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그렇게 힘써 역사하고 계십니다.
세상 끝까지 함께 하셔서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성령으로 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지금 전심전력으로 우리를 돕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흠 없게 보전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오늘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이 온 영과 혼과 몸을 다 기울이시고 있습니다.
삼위가 일체가 되어 역사하신다는 말씀의 참 뜻입니다.

결국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온 힘을 다 기울이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를 세상에서 흠 없게 보전하시기 위하여 온 마음과 성품과 힘을 쏟아 역사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명하셨습니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일러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위해 전심으로, 전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어 승리하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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