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류기석칼럼
세상의 이름없는 꽃들의 장엄함화엄 불교문화의 보고, 지리산 화엄사
류기석  |  yoogiseo@yonsei.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0년 05월 21일 (금) 10:38:39
최종편집 : 2010년 05월 21일 (금) 21:46:20 [조회수 : 2749]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2010년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의 종교인들에게 본질이 있다면 이웃을 사랑하고, 지구환경을 돌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가난과 청빈의 삶을 살았던 조상들의 옛 지혜를 되새겨 작고 적게 소비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 화엄사의 부처님 오신날 연등 ⓒ 류기석
 
   
▲ 화엄사의 부처님 오신날 연등 ⓒ 류기석

작금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돈과 권력 지향적인 종교들의 건축물이 호화스럽게 꾸며지고, 나와 다름을 주장하는 사회와 타종교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그럴수록 더 크고 넓게 세상을 보고 썩든지 녹아져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든 불교든 천주교든 유교든 자기만 살겠다고 미래를 준비해 놓지 않으면 대다수 국민들에게 존경은 커녕 외면을 당하게 될 것이다. 과거 신앙의 대 선배들이 이룩해 놓았던 수많은 성과와 업적을 부디 갉아먹지 않았으면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경전의 가르침을 잘 읽고 깨달아 사회에서 필요한 목소리를 내어주고, 제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화엄사 일주문 ⓒ 류기석

김재일씨(두레생태기행 대표)는 그가 펴낸 <생태기행 1,2>(당대 刊) 에서 '생태적, 생명적, 민족정서'에 뿌리를 둔 불교는 숲의 종교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의 경계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연기(緣起)요, 불이(不二)며, 원융회통(圓融會通)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불교의 수행장소인 가람은 숲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자 현대인들에게 생명체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고, 생명현상에 대한 무지와 몰지각을 일깨워주는 죽봉이다. 조선조의 숭유억불정책같은 외적 요인이 절을 산으로 들어가게 하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오랜 세월동안 절을 지켜온 수행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명산의 숲이 그나마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 해서는 안될 것이다.

   
▲ 금강문을 들어서며 ⓒ 류기석

5월 21일(음 4월 8일)은 불기 2554년 ‘부처님오신날’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날을 맞아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오성 목사가 대표로 모든 불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 화엄사의 연등 ⓒ 류기석

그 내용은 "이 고통의 시대에 쉬지 않고 선을 행하고, 생명과 화해, 평화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여러분을 통하여 아름다운 세상이 열려지리라고 믿습니다.

기독교와 불교를 포함하여 이 땅의 서로 다른 종단들이 대화와 협력, 섬김과 봉사에 공력을 기울일 때 우리 시대의 방향이 바로 서고, 대중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선업(善業)이 결실 맺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함께 하는 한국 불교의 결지(決志)에 감사를 드립니다.

‘소통과 화합으로 함께 하여’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빌며, 다시 한 번 더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라며 끝을 맺었다.

우리 종교계만이라도 이번 초파일을 맞아 자연과 환경, 인간이 다함께 공생 공존할 수 있는 실천적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 진짜 제대로 된 신앙의 공부를 통해 오랫동안 관성과 타성에 빠져 있던 몸과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나 불교, 교회나 절집의 주인은 '목사님들이나 스님들이 아니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더우기 이곳에 경제적 기반을 두지 않기를 바란다. 목사님이나 스님들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력으로 자급 자족해야 하는 것이다. 초창기 한국교회가 그랬던 것 처럼 종교가 세간법과 속세 시스템에 의해 유지되면 절대로 순수해질 수 없다. 역시 교회나 절집은 자급 자족하는 수평적 적정규모의 조직이 지속 가능하다.

   
▲ 화엄사 대웅전과 지리산 숲 ⓒ 류기석

지난 5월초 지리산을 방문한 길에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자리하고 있는 화엄사를 찾았다. 한국에서 불교는 조계종이 지배종단인데 화엄사는 당연히 조계종의 교구이고 19번째 본사이다. 화엄사 안내 리플렛에는 백제성왕(544년) 때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는데 알 수 없다. 

화엄사 창건에 대한 인정할 만한 기록은 전혀 전해지지 않지만 여러가지 정황을 보면 서기 544년(신라 진흥왕 5년)에 연기(緣起)라는 인도 승려가 창건한 것으로 나온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도 시대는 분명치 않지만 연기라는 승려가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다가 670년(신라 문무왕 10년)에 의상대사가 등장하면서 화엄사는 큰 손을 보게 된다.

화엄사는 화엄10찰(華嚴十刹)을 불법 진원지로 당시 불교의 중심 사찰로 거듭난다. 의상대사(625~702)는 신라시대의 승려로 화엄종의 시조이며, 문무왕 1년에 당나라에서 수학하고, 화엄종을 연구하여 문무왕 16년 해동 화엄종의 창시자가 됐다. 그는 644년(선덕여왕 13년)에 황복사(皇福寺)에서 출가했고,  670년 당나라에서 돌아와 왕명에 따라 영주의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한 고승이다.

   
▲ 화엄사의 석탑들 ⓒ 류기석

참고로 신라말기 도선국사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다가 고려시대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보존되어 오다가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축물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에 벽암대사가 중건한 건물들이라고 한다. 화엄사란 뜻은 '세상의 아름다운 꽃들은 물론 이름없는 온갖 꽃들을 포함한 꽃들의 장엄'을 뜻한다. 화엄사에는 국보와 보물, 지방 유형문화재와 천연기념물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상들의 숭고한 신앙의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다.

특별히 일주문이 두개인 것, 조선 숙종 때 중건 했다는 화엄사 각황전이 중심이면서 동향을 하고 있는 점과 건축물로는 당대 고색 창연함, 당당함, 화려함이 돗보인다는 것이다. 유물은 사사자삼층석탑과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서오층석탑, 원통전전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대웅전 장육전 석경, 각황전 앞 석등, 영산회쾌불탱이 볼만하다.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금정암(金井庵)·지장암(地藏庵)이 있다.  

   
▲ 화엄사 당간지주와 보루제 ⓒ 류기석

그곳에 대한 느낌은 거대한 덕장전을 증축하느라 어수선한 경내와 모든 계단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어 너무 호사스럽다는 생각, 가람의 규모에 비해 건축물의 배치가 너무 억지스럽다는느낌이 들어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숲과 계곡은 언제나 자연스러웠다. 화엄사의 불사는 90년대부터 지속되었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지도 손댈 곳이 많은가 보다. 

   
▲ 화엄사 적멸보궁의 사사자석탑 ⓒ 류기석

외형을 잘보이기 위한 개발보다는 '생명 있는 것들을 위한 자상한 배려'가 담긴 진정한 개발이 아쉽다. 불교의 덕목이 생태적 생명적 불교이기 때문이다. 화엄사에서 가장 보배는 보제루(普濟樓)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보제루 기둥 만큼은 가치 있어 보인다. 보제루는 '세상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2층 누각의 건축물이다.

보제루는 인조 때 벽암대사가 복원을 진행할 때 축조되었고, 1827년 순조 때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주로 간이 강당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누마루 아래로 통과해서 올라오는 형식의 이 건물은 일종의 불이문(不二門)으로 '진리는 둘이 아니다'라는 듯의 화엄사상의 핵심이다.

   
▲ 화엄사의 각황전과 석등 ⓒ 류기석

화엄사(華嚴寺)는 각황전(覺皇殿)이라고 한다. 각황전 없는 화엄사는 철학적으로도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또하나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각황전은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어 조선의 남향 건축기법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현재 대웅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가람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화엄사는 각황전을 중심으로 구성된 절집이다.

   
▲ 화엄사 각황전 측면 ⓒ 류기석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의 장육전(각황전)은 사방벽을 푸른 돌에 화엄경을 새겨서 장식했다고 하는데 장육전 석경이 지금의 각황전을 있게 한 핵심이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왜병의 방화로 장육전은 사라졌고, 푸른 돌에 새긴 석경 또한 온전한 것 없는 파편이 되어 버렸다.

숙종 25년인 1699년에 장육전은 재건되었지만 석경은 제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석경은 정유재란 이후 360년을 뒹굴다가 1964년에서야 주워 모아 1만 3천여 점을 보관하고 이후 추가로 보관을 했고 1990년부터 14,242점의 석경을 163개의 상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단다. 

화엄사 일원은 백두산의 정기가 남으로 흘러 내려오다 다시 솟았다 하여 불리우는 영산으로, 천황봉, 노고단 등 수많은 산봉우리, 웅장한 기암절벽, 계곡, 울창한 산림 등이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나며, 천년고찰 화엄사와 조화되어 역사 문화적 가치가 큰 경승지로 명승 제64호로 최근 지정됐다.

하지만 화엄사를 돌아 나오면서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경관적 가치가 큰 문화재를 가꾸고 그 주변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우선 외형적 불사 개발에만 신경썼지 '작고 소박하게 자연과의 조화'라는 진정한 의미의 개발, 적정성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외형만을 끊임없이 키우는 불사가 아닌 내적 이름없는 꽃들까지도 장엄하게 모시는 불사가 되어야 함을 '2010년 부처님 오신날'에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관련기사]

류기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9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