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정생 3주기 추모의정 스케치(22분)

▲ 안동시 문화회관에서 열린 추모식 일직초교 어린이가 추모사를 하였다 ⓒ 이필완

권정생 선생...
솔직히 나는 그가 누구인지, 그런 사람이 살았다는 것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좋은 애니메이션을 찾다가 강아지똥이라는 것을 찾아 보여주면서도 그것이 권정생이라는 분의 작품인지 전혀 몰랐다. 그저 참 좋은 내용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가 작가라는 것도, 그의 삶이 어떠했고 그가 살아 생전 품었던 소망이 무엇이었는지도 나는 전혀 몰랐다. 우리교회에서 어린이도서연구회 동화 읽는 어른 모임 사람들이 모임을 갖도록 공간을 개방하면서, 필요에 의해 동화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조금씩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아내가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 합류하면서 부쩍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되면서부터는 그런 동화작가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연히 한겨레 신문에 나온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 기사에서 최완택이라는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는 왠지 권정생이라는 이름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감리교회의 기인 목사와 특별한 친분이 있던 분이라는 것을 알면서 생긴 간접적 친근감이었다. 아, 그제서야 권정생 선생이 한국 아동문학게의 전설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전설이기를 철저하게 거부한 그런 분이셨다. 그렇게 권정생이라는 이름은 내 기억에 제대로 들어오게 되었다.

권정생 선생이 타계하면서 동화책 인세로 받은 전 재산을 남기고 가면서 상속인으로 몇 명을 지목했고 그 중에 하나가 최완택 목사였다. 최완택 목사가 남북평화재단에 전화를 건 것은 지난 주 금요일 쯤이었다. 북한 어린이이게 우유를 보내는 사업에 돈을 보태고 싶다는 것이다. 월요일(17일)에 안동에서 이사회가 열리는데 와서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해서 월요일 아침부터 서둘러 남북평화재단 김영주 목사, 최완택 목사와 동승하여 안동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권정생 선생 말에 의하면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은 착한’ 최완택 목사는(본인은 극구 부인한다)는 권정생 선생의 유산으로 설립한 권정생 어린이문화재단의 이사장이다. 함께 간 덕분에 권정생 선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권 선생이 사시던 집 안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알게 된 사실은 그날 단순히 이사회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권 선생의 귀천 3주기 추모식이 열리는 날이라는 것이었다.

권정생 어린이문화재단 사무실에 먼저 들렀다. 한쪽에는 유품 전시관이 마련돼 있었다. 사진들과 벌 것도 아닌 유품 몇 점이 전부였다. 평생진찰권, 평상시에 사용하던 기본적인 식사도구와 물품 몇 가지, 그리고 원고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전시된 유언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가슴을 치는 구절이었다. 평화로운 세상을 간절히 염원하는 그분의 마음이 와닿았다. 솔직히 사진 속의 권 선생은 조금 어리숙해 보이는 매우 마른 남자였다. 젊었을 때 사진은 좀 나아보이나 사실 그게 그거다. 그는 초등학교를 나온 것이 전부란다. 배움도 없고 외모도 많이 빠지는데다 어려서부터 결핵, 방광결핵, 늑막염 등등 적지 않은 병력이 있어 유약해 보인다. 속세의 기준으로 보아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의 유언장치고는 믿어지지 않는 도덕성을 담고 있으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리고 말은 안 하지만 내 삶의 모습에 기가 막힌다.

권 선생이 생전에 살던 집은 채 다섯 평이 안 될 것 같은 작은 흙집이었다. 소박하다는 단어보다는 초라하다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작은 집이다.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성지나 다름없다. 그런데 성지가 이렇게 초라하다니! 생전에는 겨우 몸을 눕힐 만큼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책이 잔뜩 쌓여 있었다고 한다. 도배도 하고 씽크대도 새로 설비하는 등 깨끗하게 새로 수리하여 예전의 흔적은 별로 없었지만 생전에 쓰던 책꽂이와 작은 탁자(전에는 텔레비전 받침으로 사용했었다고 한다)에는 소박한 느낌이 남아있다. 권 선생은 멀리 떠나 없지만 생전에 만들어두었던 새집에는 딱새(권 선생의 가까운 친구 중 하나였다고 한다)가 예닐곱 마리의 새끼를 까놓고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10억 이상의 막대한 재산을 남긴 분의 집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만약 나에게 1억이라는 돈이 생긴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망상에 사로잡히곤 했던 내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졌다.

생전의 권정생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안동에서 유명하다는 간 고등어를 사다드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막 화를 내면서 이 비싼 것은 왜 사왔느냐고 하시더군요.’
‘고기를 사들고 가면 왜 사왔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고기 몇 점을 먹고는 눈이 밝아졌다고 하더군. 그 말을 듣고 며칠을 굶었구나 하고 생각했었지.’
‘고관절 수술을 하고 지팡이를 짚고 찾아갔더니만 나를 보고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 주며 너나 가져라고 하더군. 나중에 보내 7만 몇 천원인가 되던데 아마 그때 전 재산이었을꺼야.’
‘소변 주머니를 차고 다녔는데 의사가 호스를 너무 짧게 끼워 소변이 새서 거즈를 붙이고 있더군. 이 소변 주머니 호스는 3-4개월 정도에 한 번씩 갈아주어야 하는데 생 살에 호스를 끼우는 일이 너무 힘겨워서 한 번 갈아끼우면 사나흘은 앓아 눕는거야. 남자나 여자나 소변을 훌린다는 것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데… ’
‘나 죽으면 이 집을 꼭 헐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헐면 안 된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시청에서 직원들이 나와 이 집터를 측량했습니다. 권 선생님이 측량기사를 불러 왜 측량하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그저 시장님이 시키셨다고만 말하더군요. 그래서 선생님께 이 집을 헐면 보나마나 시에서 그럴싸한 콘크리트 건물을 이 자리에 지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고 말씀드렸지요. 그 뒤로부터는 집 헐라는 말씀은 안 하시더군요.’
‘수십년간 면사무소에서 생활보조금을 받으면서 살아오셨는데 지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따지러 갔었지요. 왜 끊었느냐고 물었더니 권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이제는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때부터 동화책 인세를 받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받은 인세라야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선생님은 당장 보조금 지급을 끊으신 것입니다.’

전날(16일)저녁에는 그 마을에서 권정생 선생 추모 음악회가 열렸는데 6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작은 마을에 꾸역꾸역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지방 유지들이 깜짝 놀라 다음날 추모식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전화를 했단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분은 ‘만약 권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몰려다니면서 일 벌이는 것을 분명히 싫어하셨을 텐데’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나는 궁금해서 왜 권 선생이 그렇게 사셨느냐고 물었더니 세상에 대해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빈한하게 살 수밖에 없다 하셨단다. 뭐가 그리 미안하셨길래 작은 호강조차도 거부하셨을까, 이미 편리와 안락에 취해버린 내 몸뚱아리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 최완택 이사장을 대신해 이현주 목사가 모시는 인사를 하였다 ⓒ 이필완

잠시 생전의 모습을 답은 동영상이 잠시 상영되었다. 권정생 선생은 ‘아이들이 비뚤어지는 것은 어른들이 만든 환경 탓이다. 이런 환경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 표정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생전에 권 성생을 자주 찾아뵙고 교제를 나누었다는 안동대 임재해 교수는 ‘권 선생님은 다른 어른들과는 다른 분이셨다’며 이유를 열 가지 들었다. 자신을 높이지 않고 낮춘다, 드러나지 않게 숨어 없는 듯 살았다, 자신을 꾸미지 않고 초라하게 살았다, 자기를 나타내지 않았다, 어른 대접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대접하였다, 어린이처럼 맑고 욕심이 없었다, 사회적 유명인사도 별로 대단히 여기지 않고 담담하게 대하셨다, 누구나 읽기 쉽고 뜻이 깊은 글을 쓰고자 하였는데 글이 삶과 함께 오히려 삶이 먼저였다, 어떤 권력과 금력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꿋꿋함이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착한 어른이었다는 것이다.

이날 추모식에는 안동시장과 국회의원이 참석하여 추모사를 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추모의 정을 담은 편지글을 낭독하였다. 또 전국의 공부방을 선정하여 도서 50여권을 기증하는 순서도 있었다. 또 이날 순서에는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 수여식도 열렸는데 ‘누가 말을 죽였을까’라는 연작소설집을 낸 이시백 작가에게 수여되었다. 이시백 작가는 ‘상이 아니라 벌을 받은 것 같다. 이제 내 인생에는 권정생이라는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되었는데 정신차리고 살라고 주신 상으로 알고 받겠다. 그리고 꽃보다 똥이 되도록 힘쓰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안동에서는 권 선생의 ‘엄마 까투리’라는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배급할 계획이라며 제작발표회도 잠시 가졌다.

권정생 선생은 유산으로 11억 가까운 돈을 남겼고 인세로도 매년 1억 5천만 원 정도 들어온다고 한다. 어린이문화재단은 인근의 폐교된 분교를 매입하여 사용하고자 추진중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유아시절을 대동아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보냈고 한국으로 와서 맞은 유년시절은 한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보냈다. 그런 전쟁의 아픔이 동화에서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표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수를 간절히 구하는 시절이다. 교회는 유럽 영주의 성처럼 거대해져가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예수를 만날 수는 없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여기 예수의 모습으로 살다간 권정생 선생이 있다. 권정생 선생의 어린이를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 시대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부모들의 삶에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숙연히 바래본다.

▲ 추모식은 안상학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 이필완

▲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특히 대학생들과 어린이들이 눈에 띄었다 ⓒ 이필완

▲ 이날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 수여식도 열렸는데 ‘누가 말을 죽였을까’라는 연작소설집을 낸 이시백 작가에게 수여되었다. 권정생문화재단 이사자인 최완택 목사가 상을 전달하였다. ⓒ 이필완

▲ 기념촬영 ⓒ 이필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