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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천국, 땅에는 구이저우중국 '가정교회의 실제적 체험' 이야기
류기석  |  yoogise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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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4월 12일 (월) 17:00:33
최종편집 : 2010년 04월 12일 (월) 19:08:40 [조회수 : 4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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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넓고, 사람도 많다. 삶의 행태도 각양각색이다.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고, 내일을 내다보게 하는 빠른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 중국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구이저우성(貴州省), 뒤집어 보면 자연이 인간의 때를 묻히지 않은 채 고스란히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말 그대로 자연공원이다. 산수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자연 풍광이 그려 낸 '명품'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 중국 구이저우성 구이양

국내외적으로 오지여행을 많이 해본 경험을 살려 찾은 중국의 윈난성과 구이저우성 그중에서 개발이 덜된 구이저우성을 찾는 다는 것은 쉽게 접하지 못하는 자연의 경이롭고 다채로움이 있어서일 것이다. 구이저우성은 중국 서남쪽에 위치한 노(北)쪽은 사천성(四川省), 갈(西)쪽은 운남성(雲南省), 새(東)쪽은 호남성(湖南省), 마(南)쪽은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 중국 구이저우성 구이양의 거리풍경
지형이 험준하고 왕래가 적어서 고립지가 많고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어 오지로 구분된다. 기후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시베리아의 찬 기류를 산맥들이 막아주기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하다. 강수량은 일정하고 풍부해 습기가 많고 구름이 많이 끼며, 비오는 날이 길고 일조량이 적다. 평균 해발고도 1000m, 평균기온 15.6℃로 맹추위와 찜통더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예로부터 사람이 생활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오늘날엔 많은 여행객들이 휴양을 찾아 구이저우로 몰려든다고 한다.

구이저우는 세계에서 카르스트 지형 분포가 가장 넓은 고원의 산악지역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대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의 전통문화는 묘족, 동족, 토가족 등 17개 소수민족이 고유한 생활방식과 독특한 음식문화로 지켜나가고 있어 다채로운 매력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이곳의 매력으로는 크게 5가지 색으로 구분된다고 하는데 우거진 푸른 숲을 뜻하는 ‘자연지매(自然之魅)’의 초록, 검은 가옥을 상징하는 풍후지매(豊厚之魅)의 검정, 수많은 폭포를 의미하는 상화지매(祥和之魅)의 하양, 여러 소수민족의 화려한 의상을 표현하는 창조지매(創造之魅)의 파랑과 열정지매(熱情之魅)의 빨강이 바로 그것이다.

   
▲ 먀오족과 함께 한 한국의 청년
해발 2천미터 레이산(雷山) 위의 마을에 사는 한 묘족노래의 가사를 음미해 보면 행복의 참 의미는 자연과 함께 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시장(묘족어, 한자 표기는 '西江')은 살기 좋은 고장, 푸른 숲과 작지만 넉넉한 전답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가가호호 붙어 있는 집들 아래로는 맑은 개천이 흐르며, 마을 곳곳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울려 퍼져 찾는 이를 흥겹게 하네.”

이곳 구이저우의 하늘은 사흘 이상 맑은 적이 없고, 땅은 3리 이상 평탄한 곳이 없으며, 사람은 돈 서푼도 없다는 말로 알 수 있듯이 토지의 90% 이상이 대부분 산악 지대인데다, 1년에 200일은 비가 내리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곳이다. 하지만 이 험준한 환경 덕에 구이저우는 ‘신이 편애한 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혜의 절경을 꼭꼭 숨겨놓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우리와 구이저우성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구이양에 잠깐 들어섰던 것에서 인연을 찾을 수 있었다. 1919년부터 임시정부는 상하이→난징→한커우→창사→헝양→광저우→류저우→구이양→치장→충칭으로 이동한다. 아직도 충칭에는 상하이의 12배나 되는 임시정부 청사건물이 어렵사리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데 찾는 이가 없어 쓸쓸하단다. 현재 청사건물은  1991년~1995년 사이 독립군의 후손들과 뜻있는 분들에 의하여 임정의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운영되고 있다.

윈난성 쿤밍에서 오후6시에 출발한 야간 침대열차는 밤새도록 구이양을 향해 달렸다. 구이저우의 성도(省都) 구이양은 여행객들의 거점으로 구이저우의 숨겨진 비경들을 차근차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지금은 오지로 남아 있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천혜의 베일을 조금씩 벗어가고 있는 구이양역에 새벽5시쯤 도착했다.

마중 나온 현지가정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자동차를 여러 번 운행하고서야 길가의 허름한 국수집에서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었다. 밤새 열차에 시달려 아침생각은 없었지만 의외로 맛이 당기는 구이양의 칼국수, 스산한 거리를 지나 폐허속의 아파트로 안내되었다. 이곳이 가정교회 지도자의 집인데 겉과 속이 달랐다. 따끈한 차를 대접받고는 곧장 허름한 상가 건물로 안내되어 주일예배를 드렸다.

   
▲ 주일예배의 일환으로 새소명교회 청년들이 준비한 한국의 부채춤

   
▲ 예배 후 가정교회 식구들이 벌이는 활달한 춤사위

중국의 가정교회 주일예배는 처음이다. 프로젝션을 이용한 찬양과 안무가 곁들여진 율동이 이어진 다음 머나먼 동방의 땅 한국에서 찾아온 청년들이 전통부채춤과 연극공연을 선보이는 순서가 이어졌다. 모두들 흥에 겨워 즐거워하는 순간 중국에서 21C세계복음선교회 기독교교사훈련센터를 책임하고 있는 정반석님의 증언이 구이양에 살고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충만하게 흘러넘쳤다.

증언이후 종교지도자의 안내에 따라 각자에게 느껴졌던 감동을 나누는 시간이 마련됐다. 한 주부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한국드라마 방영으로 좋았다며, 특히 한국남자에 대한 호감은 최고라며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예배를 통하여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또한 느꼈다고 전했다. 다음은 오랫동안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가 회심하고는 주님을 믿게 된 교장선생님이 예배시간에 받았던 은혜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몇몇 분들이 진지하게 우리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버리신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나누었다. 예배의 현장에서 모든 신도들이 스스럼없이 증언에 대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신선하게 다가 왔다.

   
▲ 중국 가정교회 예배의 실제적 체험

우리의 예배는 목회자 중심의 일방적 설교임에 반하여 중국의 가정교회는 예배가 목회자 중심보다는 성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에는 목회자가 별로 없다. 하지만 평신도인 필자가 이제껏 느끼고 변화를 바랬던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 나눔 시간이 설교자의 일방적인 전달 혹은 훈계가 아닌 즉, “지루한 설교가 아닌 상호교감이 가능하고, 성령의 감동이 우선인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급적 설교 보다는 자신의 삶에 체험이 있는 증언말이다. 깨어 있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삶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를 기다리며 여전히 깨어있는 삶일 것이다. 일상에서 자신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서 성경적 진리를 선포하는 것은 위선적이며, 증언자 자신에게는 고통이 되므로, 말씀의 진리가 청중들에게 힘 있게 전달되지도 않고 은혜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증언자는 자신의 중심에서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느끼면서 그분과 동행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 구이양 중심가의 금령공원에는 원시림과 사찰 그리고 놀이시설로 사람들이 가득.

올바른 증언이란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 또는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전달하려는 인식과 철저한 준비, 그리고 성실한 실행이 있어야 기독교인 모두가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맛보고 매일의 삶에 감격을 누릴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삼분의 일이 기독교인으로 양적인 팽창은 이루었으나 한편으론 교회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원인은 언제나 영적기근이 유발하면서 생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이 시대에 오히려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함은 왜일까. 매주일 수많은 교회에서 말씀이 선포되지만 진실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알맹이가 없다. 말로만이 아니라 작은 행동이라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 구이양 인근의 농촌풍경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들의 방식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는 곧장 점심식사 장소로 향했다. 식사는 인근에서 맛있게 요리를 한다는 양고기 식당에서 각종 야채와 더불어 샤브샤브를 먹을 수 있었다. 이후 가정교회 지도자들과 정반석님 , 한국에서 찾아온 청년들이 구이저우성(貴州省) 귀양시(貴陽市) 금령공원(黔靈公園)을 찾아 하나님의 성지를 밟은 기념으로 찬양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이 시각 필자는 깊은 산속에 위치한 홍복사(弘福寺)를 찾았다. 이곳은 구이양 시내에 위치했는데 금령호 주변 원시림에는 3,000여종이나 되는 야생식물이 귀양시의 공기를 여과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귀양시의 페”라고 불린다.

   
▲ 금령공원 산정상에 위치한 홍복사

구이양에는 문화재도 많다. 1610년에 신축한 문창각(文昌閣)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3층 처마길이가 서로 다른 9각형의 목조건물이다. 그밖에 구이양에는 1794년에 지은 양명사(陽明祠)와 1672년에 지은 홍복사(弘福寺)가 있는데 구이저우성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중의 하나이다.

홍복사는 청조 때 지은 사찰로 전설에 의하면 청나라 강희11년(1672년) 적송(赤松)이라는 스님이 여기에 소나무를 꺼꾸로 심었는데 뜻밖에 소나무가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이 바로 인걸지령(人杰地靈)이라고 느껴져서 여기에 사찰을 지은 다음 금령산 홍복사(弘福寺)라 명명하였다 한다.

   
▲ 구이양 최대의 사찰인 홍복사, 금령산과 조화를 이룬 멋진 풍경

하지만 절의 규모나 형태로 보아서는 영락없는 궁전을 연상케 한다. 필자가 잘 알고 있는 한 분은 구이저우성은 우리역사상 마한의 중심 강역이었고, 마한을 이어서 왜의 강역이 되었던 곳으로 백제, 신라를 거쳐 당의 강역이 되었다. 이후 송의 강역이 되었는데 송은 원의 침략을 받고 이곳으로 도읍을 옮겼다가 멸망하였다고 한다.

이곳이 송의 마지막 수도가 있던 곳으로 당연히 외성과 내성 그리고 궁성안의 전각이 위치하였고, 그곳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진 곳에는 이궁과 별궁이 위치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이곳은 바로 이궁 또는 별궁이 있던 터로 연상된다.

건축양식은 백제와 흡사하며 독특한 건축형태로 물매가 매섭게 처마를 치켜 올려져 윈난의 건축형태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어느 절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장엄한 풍광을 거느리고 있었다. 홍복사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각종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인근에 커다란 호수에 각각의 전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홍복사는 전통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맛과 멋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며, 그 절의 기품을 보려면 먼저 건물들이 놓인 터와 그 주변의 산세를 살펴보는 게 순서다. 이 절은 특이하게도 산과 산의 중턱 평평한 분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공원 내 광장으로부터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서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구이양 시내 풍경

일요일 오후의 금령산 공원은 아름다운 숲과 사찰뿐 아니라 놀이시설까지 자리하고 있어 이곳을 찾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늦은 오후 복잡한 구이양시내를 벗어나 좀 더 외곽에 자리한 가정교회 공동체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장기적으로 마약 및 약물 중독자를 위한 쉼터로 마련해 놓은 곳이다. 구이양 외곽에서 3시간쯤 거리인 깊은 농촌마을 산골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과거 가정교회와 인연이 닿았던 분의 땅으로 목장을 하던 곳이다.

흡사 수도원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곳을 찾았을 때는 노란 유채꽃이 막 피어난 저녁 무렵이었다. 마을 뒷길을 따라 걷다 산등성이에 올라서서 보면 크고 작은 다락논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란 저수지와 들판들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어두운 저녁녘 그리고 새벽녘에 잠깐 스쳤던 곳이지만 산골의 경치는 그만이다.

   
▲ 오지의 농촌마을에서 펼쳐진 한국 청년들의 문화공연

   
▲ 깊은 산골에 자리한 가정교회 선교센터에서의 별 헤는 밤

구이양 가정교회도 어렵지만 이처럼 특별한 일을 위해 공동체가 발 벗고 나서는 행동에 놀랐다. 각자의 짐을 풀고 가정교회에서 마련해 준 갖가지 요리를 맛보았다. 그리고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그곳에는 현지의 의사모임에서 함께 한 젊은이들과 선교사, 가정교회 교인들이 한국이라는 낮선 나라의 문화에 흠뻑 젖었다.

이곳을 찾은 중국의 젊은이들은 이미 우리와 같은 거대한 도시 문명에 노출되어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 종교, 생활 방식 등의 전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조금씩 생겨나자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 구이양의 한 농촌마을, 유채꽃 밭을 거닐었던 풍경

현지인들과 밤새 모닥불 가에 앉아서 보이차를 나누고는 찬양을 흥겹게 불러댔다. 오로지 호텔에서 먹고 자고하는 관광이었다면 이러한 느낌을 가져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낮선 곳에서의 와일드한 잠자리는 꿈에도 생각을 할 수 없다. 더욱이 구이양의 젊은 엘리트들과의 교감을 갖기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한국 새소망교회 젊은이들은 몸도 마음도 지친 모양이다. 봄 날씨이지만 밖은 추웠다. 야외에서 최소한의 세면만을 하고는 맨바닥 아니면 다 낡은 야전침대(?)에 침낭을 펴고 몸을 누이는 느낌, 이렇게 오지 속의 오지 구이저우성 구이양에서의 첫날밤을 맞았다. 탐스러운 보름달, 우람한 바위들, 끝없이 이어진 능선들 이 모두가 신비롭다. 새벽녘 소변을 보기 위해 어 그적 거리며 밖으로 나왔을 때의  하늘과 땅은 별천지다. 

   
▲ 구이양터미널에서 북카이로 출발, 먀오족(묘족) 소수민족을 찾아서

다음날 새벽4시경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모두들 짐을 꾸렸다. 간단한 예배를 통하여 그곳의 형제자매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야간행군을 통하여 저수지가 자리한 아랫마을에 도착, 두 대의 자동차에 몸을 싫었다. 3시간쯤을 달려 구이양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는 여유도 없이 곧장 8~9시간 거리인 구이저우성[貴州省] 북카이[故井] 먀오족(묘족, 苗族) 소수민족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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