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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채, 세상보다도 더 세속적인 악습예배 속에 위장된 저급한 헌금 강요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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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4월 08일 (목) 11:10:00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7:00:08 [조회수 : 5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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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막 9:42)

교인들이 주일마다 교회에 가면 은혜로운 찬송가와 복음 성가 등 많은 아름다운 노래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새 신자가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 딱 두가지 노래만이 귀에 들린다고 한다. 바로 '복 타령'과 '돈 타령'이다. 담임목사께서 모처럼 좋은 설교를 잘하시는 듯하다가도, 틈만 나면 이야기가 '복과 돈'으로 빠져 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새 신자들의 거부감은 대단히 크다. 그중에서도 특히 헌금 채에 대한 비난이 매우 신랄하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나이 꽤나 먹은 사람들이 기껏 모여서, 유치하고 속 보이게 왜 잠자리채를 돌리며 헌금을 강요하냐는 것이다.

이런 반발이 교회를 구약의 성전처럼 신성시하고, 담임목사를 제사장처럼 모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반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분들은 교회가 하는 일은 무조건 옳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을 조금이라도 바르게 이해하시는 분들이 본다면, 이는 중학생이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극히 상식적인 비판이므로 마땅한 반론이 떠오를 리가 없다.

필자는 예전부터 이 헌금 채를 볼 때마다 항상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누가 주도하여 슬그머니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그 기원도 정확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토록 비성경적이고 세속적인 악습이 그토록 오랜 동안 교회 내에서 계속 채용되어 오고 있다는 것이 정말 기적처럼 느껴진다.

거룩하고 순결해야 할 교회에서 왜 구태여 이런 졸렬한 방법으로 반강제적인 헌금을 거두어야 하는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는 사실상 가장 경건해야 할 예배 속에 위장된 매우 저급한 헌금 강요가 아닌지. 세상의 그 어느 모임에서도 모일 때마다 눈앞에서 채를 돌려 가며 돈을 거두는 곳은 없다. 이러니 '교회가 세상보다 더 세속적이다'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보아 주려 해도, 헌금 채 고수는 새 신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의 문을 막는 졸렬한 행위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누구나 보편적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헌금 채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더 많은 헌금을 내도록 유도하기 위한 매우 인위적이며 통속적인 수단이라는 데에 다른 이의를 제기하기가 힘들 것이다.

교회 문을 막고 있는 헌금 채

많은 분들이 교회 개혁을 논의하고 이를 위하여 큰 노력을 하고 있으나, 사실 우리는 아직도 지극히 비성경적인 이 헌금 채 하나도 제대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분의 지적처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물질에 시험 들어 교회를 떠났는지 정말 안타깝고 두려운 일이다. 이러니 새 신자를 전도해도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교회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초신자들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만 귀에 들어온다고 타박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그런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분들이야말로 시력에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 계신 분들이 아닌지 거꾸로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동안 헌금 채를 그저 하나의 관습으로 여기고 무심코 사용한 개혁 교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믿는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느니, 차라리 연자 맷돌을 자신의 목에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하셨다. 형제를 실족케 하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경고하신 것이다.

혹시 이 헌금 채가 과연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신학적으로 따져 보자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그럴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헌금 채 사용의 성경적 근거가 아예 전무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헌금 채라는 단어조차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어느 가난한 과부가 헌금 채가 아닌 '연보 궤'에 돈을 넣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구태여 이렇게 비성경적이며 전도의 문을 심각하게 가로막는 헌금 채를 꼭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는 마치 바리새인의 누룩처럼 그저 사람이 만든 또 다른 올무일 뿐이다. 따라서 그런 옹색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신도들의 돈을 긁어모아야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면 오늘 당장이라도 폐지하자는 것이다.

신자들이 교회에서 열심히 헌금을 하는 것은 물론 아름답고 귀한 일이다. 그리고 믿음의 분량과 능력에 따라 더 많이 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헌금이 자발적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더 내게 만드는 반강제적인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인위적인 헌금 강요는 성경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며, 전도의 문을 크게 막고, 그리고 믿음이 연약한 이들을 시험에 빠트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돈 없으면 교회에 다니기 힘들다!"라는 말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다. 어떤 분의 분류에 따르면 헌금의 명목만 해도 7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마 전 세계에서 한국교회처럼 돈을 밝히는 교회는 결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인의 체면과 헌금 채

해외 여행 시 여러 나라 교회들의 예배를 참석해 보면, 그중에도 아직 헌금 채를 사용하는 교회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헌금자들은 아무런 스스럼이 없이 당당하게 동전으로 헌금한다. 처음에는 동전 소리가 너무 자주 나길래 아이들이 그렇게 헌금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호기심이 나서 자세히 보니 어른들 대다수도 아주 태연하게 동전 헌금을 하는 것이었다.

아마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교인들은 이렇게 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동전 헌금자들의 신앙을 가볍게 보아서는 곤란하다. 이들 중에는 자신의 유언장에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나중에 교회에 기부하도록 이미 작성해 놓으신 분들이 많다.

반면에 일부 교인들은 예배 시 아예 헌금을 하지 않고 별도로 은행 입금이나 온라인으로 헌금을 하기도 한다. 그들의 표정에서 헌금을 많이 하거나 적게 하는 데에 대한 차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필자와는 다른 경험을 하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외견상으로라도 외국 교회에서는 헌금으로 교인들을 차별하는 일은 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주보에 매 주일 헌금자 명단을 공개하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선 주일헌금 외에 다른 잡다한 헌금 명목 자체가 거의 없다. 목회자 역시 예배에 참석해 준 것만 해도 즐겁다는 표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헌금 생활이 무조건 올바르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헌금 액수가 많고 적음이 교회 생활에서 전혀 장애가 되고 있지 않음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헌금 채를 사용해도, 한국에서는 그 의미가 서양과는 크게 다르다. 체면과 겉치레와 자존심을 매우 중시하는 사회 풍토 때문에, 남보다 적게 하거나 못하면 스스로 크게 부끄러움을 느끼기 쉽다. 물론 이런 행위가 옳다고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현실을 정확히 보자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헌금 채가 한국에서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더 큰 강압감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헌금 채 앞에서 이를 못 본 척한다거나, 동전이나 저액권을 꺼낼 만큼 얼굴 두껍고 간 큰 신도들은 현실적으로 매우 드믈다. 이런 특수한 문화적 환경 때문에, 한국에서는 헌금 채가 충분히 신도들을 실족케 할 수 있고, 또한 새 신자들에게 상처를 주며 전도의 문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잘 알면서도, 왜 예배 때마다 헌금 채를 돌려 가며 사람들 앞에서 헌금을 해야 하는지. 본당 입구의 헌금함에 미리 넣으면 재정 관리에 무슨 큰 문제라도 발생하는가. 일부 목사들은 입으로는 늘 경건을 말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올바른 헌금이라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큰 길에서 기도로 외식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따라서 헌금 생활도 가능하면 골방에서 하는 기도처럼,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울러 이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에도 합당한 자세가 아닌가.

그런데 헌금 채 사용도 모자라서,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주보에 헌금자 명단을 공개하거나 심지어 액수까지 알려 주는 교회들도 많다. 물론 이렇게 주보에 이름 올리는 것은 헌금 경쟁을 유도하려는 아주 저속한 술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예배 시 헌금 기도를 통하여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한 사람들 이름을 일일이 불러 주며 별도로 축복 기도를 해 주기도 하는데, 이런 헌금 독려 행위는 마치 헌금을 많이 못한 사람은 별로 축복해 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인지 거꾸로 묻고 싶다.

특히 일부 부흥 강사 목사님들은 마치 목회자들만 무슨 특별한 영적 축복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오도하며 이를 남발하고 있는데, 이런 사이비적 행동들은 정말 도시락을 들고 따라 다니면서라도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이렇게 스스로 기만을 하며 신도들을 세상적인 복만 추구하는 복쟁이들로 만들고 있고, 이러니 멀쩡하던 사람들도 교회에만 나가면 '영적 저능아'로 변질된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교회에 돈이 쌓이면 반드시 썩는다

어떤 분은 한국교회의 지나친 금전 추구와 방만한 재정 운용을 이렇게 꼬집었다.

"목사님들 월급 두둑히 넣어 주고, 교회 운영, 행사비로 지출하고, 선교 지원 명목으로 동료 목사님들과 나누고, 대외 선전용으로 구제비 생색 좀 내고, 남는 것은 적금을 들어 잠실운동장만한 새 교회를 짓는 것에 써야죠. 그럴려고 돈 걷는 것 아닌가요?"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작은 교회들은 돈이 너무 부족해서 문제이고, 반대로 큰 교회들은 넘치는 돈으로 딴 짓을 너무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교회가 정상적인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여러모로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재정이 튼튼한 교회를 원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 속에 목회를 망치는 큰 함정이 숨어 있는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회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소중한 교훈은 비만으로 배부른 교회는 부패하고 타락한다는 사실이다. 즉 교회에 큰 돈이 쌓이면 반드시 썩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돈의 부스러기라도 좀 빼어 먹고 싶은 작은 유혹에 넘어간다. 그런 후에는 점차 '바늘 도둑'이 '소도둑'으로 변하는 것이다.

돈이란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넘치게 될 때는 도리어 화를 부른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좀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을 참된 복으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일시적으로라도 교회에 돈이 넘칠 때는, 과감하게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거나 선교사와 미자립 교회를 후원하는 등 해마다 재정 잔고가 바닥이 보일 정도로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회는 이처럼 늘 자신을 비울 때에만 비로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목회자라면 항상 교회의 군살을 빼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검소한 마음을 유지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

교회가 돈이 많아야 큰일을 할 수 있고 크게 헌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복음을 크게 오해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발상이다. 하나님께서 돈이 너무 부족하셔서 재정적으로 어려운 교회들을 방치하시는 줄로 생각하시는가. 절대로 아닐 것이다. 돈이나 세력을 의지하여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돈이 넘치는 많은 중대형 교회들이 하는 행태를 한번 살펴보자. 담임목사는 억대 연봉으로 억대 고급 승용차를 타고 호의호식하고, 교회는 부동산이나 기타 다른 사업에 투자를 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더 큰 예배당을 짓는다고 은행 빚을 얻어 일 년에 수억 원이나 되는 돈을 단지 이자를 갚는 데에 쓰고 있다. 과연 이런 것이 정상이고 부럽단 말인가.

그런 돈이 그렇게 부러우시다면 지금이라도 즉시 직업을 바꾸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과소유로 멍든 한국의 중대형 교회들과 많은 목회자들은 첫 단추부터가 잘못되어 있다. 목회의 길이 가난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를 추구해도 좋다는 뜻은 더욱 아닌 것이다. 오히려 검소한 생활이나 가난을 각오하지 않고 목회를 하려는 그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목회자들 중에 누구라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성공한 목회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교회를 병들게 하지 마시고 이제라도 제발 다른 사업을 알아보시기 바란다. 이계선 목사님께서는 최근에 "미국 교회는 300명 교회 목사도 우체국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30명 교인 데리고도 목사가 넉넉하게 살아요"라고 지적하셨는데 물론 모든 목회자가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결코 가볍게 들을 수가 없다.

교회가 제대로 개혁이 되려면 담임목사부터 의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인들의 의식 수준도 동시에 달라져야 한다. 교인들 자신이 변하지 않는다면 교회 개혁은 항상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실제로 오늘날 한국교회 개혁이 늘 겉도는 진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상보다도 더 세속적인 악습

헌금 채를 버리고 헌금함으로 전환하자고 하면, 다른 여러 구구한 이유를 붙이기도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반대가 그러면 당장 헌금이 줄어들어 곤란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말은 실제로 일시적이나마 크게 틀림이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역으로 분석해 보면, 헌금 채 사용은 자발적이지 않은 헌금도 추가하여 반강제적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반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왜 헌금함을 사용하면 헌금이 줄어들고, 헌금 채를 사용하면 헌금이 늘어날까. 헌금함은 거의 자발적인 헌금만 거두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현상만 보아도 헌금 채는 헌금을 반강제적으로 강요하는 악습이 분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돈이 부족하고 사람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방법으로 일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한다. 돈과 사람과 세력이 우상이 된 이 시대에 주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다르기 때문이다. 중세 교회처럼 돈으로 일한 교회는 돈으로 무너질 것이며, 사람과 세력을 의지하여 일을 한 교회들도 바로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망할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챙기는 것은 신도들을 기만하며 착취하는 악한 행위이고 또한 교회를 망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헌금 채는 교회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악습 중에 하나임이 분명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그 많은 거룩하신 목회자들께서 이를 묵과하고 구습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가 힘든 미스터리인 것이다.

한국교회에는 유능한 목사님들이 넘친다. 그런데 이분들 상당수는 희안하게도 돈 문제로만 가면 영 맥을 못추신다. 성경을 날카롭게 분석하시던 그 뛰어난 명철력이 갑자기 어디로 다 사라지는지, 돈이 안 되는 일에는 언제나 마음을 슬쩍 걸어 잠그시는 것이다.

왜 평소에는 성자처럼 경건한 모습을 보여 주시던 그 많은 유명 목사님들께서 유독 이 저속한 헌금 채에 대해서는 대부분 침묵을 하시는지, 정말 희안한 일이다. 아니면 헌금 채 사용이 신앙 양심에 전혀 거리낌이 없고 극히 자연스럽다는 말인지. 필자는 마치 이분들이 교회 세습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동조하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한다.

헌금함으로 자발적인 헌금을

한국 장로교의 좋은 스승이신 정암 박윤선 목사님은 일찍이 이 헌금 채 사용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그래서 이미 60년대 서울 상도동의 어느 허름한 임대 건물 이층에서 한성교회를 개척하시면서 처음부터 헌금 채를 없애고, 예배실 입구에 헌금함을 마련하여 누구나 자발적인 헌금을 할 수 있도록 하셨다. 박 목사님 스스로 헌금함 사용을 몸소 실천하시며 모범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필자는 아직까지 어느 교회도 헌금 채 대신에 헌금함을 채택해서 망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지난 수십 년간 헌금함을 채택하여 현재도 견실하게 사역을 잘하고 있는 교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런 교회들은 인위적인 수단을 저속하게 쓰지 않아도, 정상적인 목회는 언제나 통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실례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헌금함을 사용하고 있는 어느 교인의 실제적인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자.

"저희 교회는 입구에 헌금함이 있으며 예배에 들어가기 전 내고 들어갑니다. 예배 순서에는 대표 기도 후에 헌금함을 들고 들어가시는 여집사, 권사님들이 순서상으로 헌금에 대한 축복 기도를 합니다. 예배 시에도 없지만 주보에도 헌금자 명단은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헌금, 십일조, 주정헌금 이런 헌금 종류도 없습니다. 헌금 봉투는 한 가지이며 그 위에는 교회 이름 외에는 아무 표시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보에는 전체 금액만 나오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 출석 인원에 비해서는 훨씬 많은 헌금이 매주 나오며, 이런 것을 느낄 때마다 무엇이 올바른 신앙생활인지 깨닫습니다."

그러나 위의 교회와는 달리, 만에 하나 설사 헌금함을 사용한 이유로 교회 재정이 적자가 되었다고 치자. 그래서 부득이 교회 문을 닫아야 한다면, 필자는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본다. 목회자에게 마음에 거리낌이 있는 불의한 사역보다는 의로운 안식이 오히려 복된 결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강요적으로 헌금을 거두어 큰일을 하는 것보다는, 자발적인 헌금으로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을 더 기뻐하실 것이라 확신한다. 미네소타 주님의교회는 2008년 기존 헌금 접시를 버리고 헌금함으로 전환하였다. 이때 김성은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헌금함을 설치하면 헌금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헌금 시간에는 접시가 돌기에 헌금하던 분들이 헌금함을 설치하면, 헌금을 잊거나 하지 않을 것이기에 헌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제가 섬기던 교회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헌금은 부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헌금 정신이 제대로 훈련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자세야말로 진정으로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목회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선 오늘날 스스로 박윤선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장로교 신학교들인 고신, 총신, 그리고 합신 출신의 그 많은 목회자들만이라도 지금 당장 헌금 채를 던져 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 본다. 감리교 역시 웨슬리 목사님이 얼마나 당시 영국 교회들의 부정을 따겁게 지적하며 청빈한 삶을 보여 주셨는지 잊었는가. 물론 다른 교단들도 마찬가지이다.

왜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은 믿음의 스승들이 잘 가르쳐 준 것은 제대로 따라가지 않고, 쓸데없이 무게 잡는 목사 가운 착용 등 시키지 않은 일에는 열심을 낼까. 정말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헌금 채는 개혁 교회가 반드시 고쳐야 할 고질적인 악습 중의 하나이다. 이를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시킨 원인은 목회자들의 무관심이나 사심에 기인하고, 또한 교인들의 맹종이 도와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개혁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작은 것이라도 잘못된 일이라 판단되면 바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헌금함을 설치하면 헌금이 덜 들어올 것이다'라는 고루한 사고방식은 아직도 오늘날 순수한 성도들의 믿음을 과소평가하고 우습게 여기는 행위이다. 오히려 이로 인해 참된 성도들은 더욱 열심히 헌금을 할 것이며 더욱 순수하게 헌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헌신을 통하여 결국은 새 신자들이 점차 증가할 것으로 믿는다.

교회는 '돈 타령' 아닌 '신령한 노래'를 들려주어야

아울러 이런 참된 헌신을 통하여 새신자들은 교회 내에서 복 타령과 돈 타령이 아닌, 다른 신령한 노래, '그리스도의 복음'을 비로소 듣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신자들이 믿음 안에서 건강하게 잘 성장하면 헌금은 오히려 더 늘어나게 될 것이 당연하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분들의 자발적이며 복된 헌금을 크게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현재 한국의 많은 교회들은 독사 같던 바리새인들조차도 사용하지 않은 헌금 채를 돌리고, 헌금자 이름을 떠벌려 가며 신도들의 돈을 거두고 있다. 게다가 한편에서는 '돈을 많이 바쳐야, 복을 받는다'는 사이비적 기복 신앙으로 신도들을 수시로 세뇌시키고 있다.

바리새인 시대나 그로부터 이천 년이 지난 지금이나, 재물을 챙기는 위선적 종교 지도자들의 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고 오히려 그 수법이 더욱 고도화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헌금 채는 과거 십자군 전쟁이나 면죄부 판매처럼, 교회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또 하나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예배 시 이를 계속해서 돌리는 행위는 교회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는 중대한 잘못이므로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아울러 헌금 채를 폐지하는 것은 교회를 해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어떤 거리낌이라도 시초에 이것이 방치되어 깊히 곪게 되면, 나중에는 치료가 더욱 어려운 심각한 중병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을 '교회 세습'에서 이미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가 헌금 채를 과감히 던져 버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예배는 구약의 제사가 아니다. 그런데 예배 시 헌금 채를 돌리며 헌금을 바치는 것이 마치 제사할 때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과 같은 의미인 줄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구약의 제물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장차 오실 어린 양 예수님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런 오해는 예배를 제사로 착각하는 잘못이며, 스스로 제물 되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의미를 거스르는 행위가 되므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일부 신도들은 교회가 하는 일은 모두 옳은 줄로 여기며, 무비판적으로 순종을 하고 이를 미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가 하는 일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무조건 옳은 일을 해야만 비로소 교회인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제부터라도 궁색한 변명으로 헌금 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지 말고 헌금함 사용에 적극 동참하기를 간곡히 촉구한다. 그 어느 교회에서든 이 헌금 채로 인하여 한 교인이라도 실족케 되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15)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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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125.197.206.116)
2016-03-08 16:28:52
내가 찾던 글이었습니다
도대체가 이렇게 몰상식한 헌금 바구니가 아직도 주류로 행세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저만 그렇게 느끼고 있나 생각했는데, 이렇게 훌륭하게 말씀하시는 글을 보니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교회가 주류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을 쓰신 신성남 집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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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83.103.29.11)
2010-04-10 16:34:27
뭐가 욕이라는 것일까
철 없는 인간에 철없다고 하는 말이 욕이라는 것인감?
아닌 것 같은디...

마귀 자식이라는 표현이 욕이라는 것인감?
그것을 욕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표현을 애초에 사용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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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211.243.234.17)
2010-04-10 14:02:47
욕하는 버릇은 여전하네요.
물론 박창진님에게 한 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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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211.243.234.17)
2010-04-10 14:02:07
뭘 그렇게 어렵게 설명하는지?
성경에 예물에는 네 마음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말씀 그대로 믿으면 될 것이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설명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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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83.103.29.11)
2010-04-10 13:58:18
아래 철없는 인간의 논리대로라면
자신이 마귀자식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데...
누구에게 그것을 덮어씌우려고 하는지 원.
비록 "조심스레"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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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83.103.29.11)
2010-04-10 13:56:30
절대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요?
예배 순서에 절대적인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설교도 절대적이지 않지요.
님의 글에서와 같이 성경에서 예배 순서를 이래야 한다고 제시된 것이 없는데요.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원리로 하여서 합리적으로 적절한 순서를 갖추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앞세워 제 글을 반대하고 위 글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해서는 안되지요.

"예배에서 헌금은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헌신의 고백이다."
이것이 정당한가 잘못되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교회 역사적으로.
그 다음에 헌금채에 대한 주장을 펼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글은 선행되어야 할 내용이 없습니다.
그냥 교회의 물질주의에 대한 님의 시각으로 헌금채를 평가하고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교회의 물질주의가 잘못된 것임은 분명하지만 헌금채가 그것과 절대적으로 연결되는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님이 언급한 서구 교회만 보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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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211.243.234.17)
2010-04-10 13:24:13
십일조와 감사헌금에 대해서...
십일조는 필요 없다는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귀자식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이 듭니다.
십일조는 율법이전에 나왔던 것입니다.
십일조에 담겨진 의미는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왔음을 의미 합니다.
어떤 부자는 교만하여 십일조가 아닌 십이조, 십구조를 드리곤 하는데 그것도 하나님 앞에선 교만 입니다.
십일조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더 드리고 싶으면 감사헌금을 하면 됩니다.

예배에서 빠질 수 없는게 헌금시간 입니다.
도대체 헌금은 왜 해야 할까요?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뭐가 부족한게 있으셔서 예물을 받으시는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뭘까요?
성경말씀을 살펴보면 예물 속에는 내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답은 간단히 나왔습니다.

십일조는 내 영이 하나님 앞에 돌아온 의미를 뜻하고,
예물은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해서 마음은 예배당에 있을지언정 마음은 산에 가 있거나, 술집에 있거나, 방구석에서 자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헌금을 낼 때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습니다.
돈 없으면 동전 몇개라도 믿음을 가지고 내는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체면 때문에 내는 헌금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습니다.
금액이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약속대로 내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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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121.73.193.68)
2010-04-10 13:00:10
박창진 목사님 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먼저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에 참여해주심을 깊히 감사드립니다.

박창진 목사님께서는 헌금함을 반대하는 이유로, "헌금을 예배 순서의 하나로 잡는 신학적인 이유를 아셨으면 합니다."라고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신학적 이유'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예배의 정의와 순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일반적인 합의는 있으나, '절대적인 원리'는 아닙니다. 즉 신학자들 간에도 다양한 이견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성경에도 구체적으로 예배 순서에 무엇이 들어 있어야 하는지 항목별로 알려주신 바는 없습니다. 다른 분의 이름을 빌어 제 의견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매우 단호하게 주장하시니 궁금해서 묻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주석학자이신 박윤선 목사님이 예배의 정의도 모르셔서 예배 시에 헌금 순서를 빼고 헌금함을 사용하셨을까요.

예배 시에 헌금 순서를 넣어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의 견해이고 관습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순서에 포함된 헌금을 해야 한다'는 하나의 주장을 절대화해서, 헌금함을 반대한다는 논리는 제가 동의할 수가 없군요.

찬반 여부를 떠나서, 좋은 의견을 주셔서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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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83.103.29.11)
2010-04-10 11:43:09
개혁은
성경적인 원리와 현실.
원리에 현실을 맞추려는 움직임과 현실에 원리를 맞추려는 움직임.
개혁은 전자이어야 합니다.

위 글에서 말하고 있는 헌금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주일 헌금을 개인적으로 봉투에 넣어서 하면 됩니다.
동전을 넣든지 지폐를 넣든지, 그 액수는 당사자가 결정하면 되고요.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당당하게 눈치 볼 것 없이 자의로 하면 됩니다.

개혁은 원리에 맞추어 현실을 바꾸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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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담 (121.130.231.67)
2010-04-09 21:19:41
100% 공감합니다
헌금바구니, 형용색색의 다양한 명칭이 붙어진 헌금봉투, 주보에 기재되는 헌금내역(성명 또는 액수). 예수믿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입니다. 이 전통(?)이 어디서,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쉬이 추론가능하지요.

돈이 모든 것에 우선시하고, 그것에 서로 민감하게 살고 있는 교인들과 믿지 않는 이들에게, 헌금(방식)은 철저히 은닉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명확히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아쉽게도, 다른 교회는 많이 안가봐서 모르나, 적어도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는 대부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예배드리는 교회. 작지만, 그래서 무기명일지라도 헌금이 잘 드려지고 있는 지의 여부가 대충 확인된다고 하는(^^:) 곳이라 알지만, 이것 정말 목사님의 신념이 확고하셔야 적용가능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예전에도 헌금과 관련하여 댓글에도 달았지만 - 아 그때도 이분의 글이었던 것 같네요-, 교회가면 혹은 누가 물어보면 저는 이것부터 확인하라고 합니다.

주보에 헌금내역(총액이면 상관없습니다. 개별적으로 언급되는 교인 내지 액수을 말합니다)이 기재되어 있는지, 강대상이라고 부르나요? 여하튼 목사님 설교하시는 강단이 높여져 있는 지, 아울러 목사님이 가운같은 것을 입고 설교하시는지, 끝으로 헌금(방식)이 단일화되어 있고 익명으로 하고 있는 지 말입니다. 아, 물론 철저히 외형적인 모습으로만 판단할때의 기준들입니다. 주류의 교단이면서 어느 정도의 규모있는 교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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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83.103.29.11)
2010-04-09 12:16:30
글쎄요
헌금을 예배 순서, 곧 예배에의 부름으로 시작하여 축도로 끝나는 일반적인 순서의 하나로 잡는 신학적인 이유를 아셨으면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공적인 만남이고 그 순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나아오심과 그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감이라는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이 원리에서 볼 때에 광고가 예배 순서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현실은 잘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헌금은 말씀으로 그의 백성에게 나아오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물질을 사용하여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께 대한 하나님 백성의 응답이 헌금입니다.
연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고요.
헌금채는 그것을 실행하는 한 방편입니다.

위의 글에 적힌 바와 같이 서구 교회는 헌금채 헌금에 대해 거부감이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상황이 다르다구요. 의식이 다르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의식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왜 잘못된 의식을 토대로 교회의 관습을 평가하고 어떻게 하여야 함을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인지요?
예배에서의 헌금의 의의와 헌금하는 태도를 바르게 가르쳐서 복음 안에서 자유함으로 헌금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데요.
물론 위 글에서 말한 바와 같이 헌금채가 아니면 헌금 액수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도 바로잡아야 하고요.

저는 헌금함은 예배에서의 헌금의 원리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헌금 액수의 정도나 사람들에게 헌금하는 것이 보여지느냐 보이지 않고 이루어지느냐와는 전혀 별개의 사안으로요.

물론 헌금의 원리에도 부합하고 그 방식에 있어서 헌금채보다 더 좋은 방식이 있다면 굳이 헌금채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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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 (61.43.230.233)
2011-12-19 16:03:50
미국이나 유럽도 헌금채나 심지어 접시를 사용합니다. 물론 동전을 헌금 접시에 놓기도 하더군요. 미국교회들은 주일헌금도 봉투에넣어 접시나 채에 넣더군요. 방법보다 의미를 잘 가르치면 좋겠군요. 헌금은 하나님께 대한 고백의 의미가 있습니다. 설교 후에 하는게 맞습니다. 유럽개혁교회가 그렇게 시작했거든요. 무조건 비난하지 마시고 의미를 바르게 아는게 좋겠습니다. 어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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