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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들의 종교한반도 안팎으로 속히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며...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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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3월 26일 (금) 18:32:54
최종편집 : 2010년 03월 26일 (금) 19:58:45 [조회수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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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한반도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 담긴 달이기에 일그러진 역사에 대한 투시와 자성의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쓰러진 이토 히로부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어리석은..”이라는 외마디였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아마도 이토는 안중근을 대동아공영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민족주의자로 본 듯합니다.

대동아공영의 원래 정신은, 편협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어 서구제국의 침략을 막아내고, 하나가 된 동아시아 민족이 정신 유산과 물자를 함께 나누어 큰 번영을 누리는 것이었다며 아직도 그 정신을 신봉하는 일부 일본인들의 신념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대동아공영정신의 원형이었다 하더라도 그 꿈은 아시아 침탈의 시점이 된 ‘정한론’이 등장하면서 이미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그 일그러진 꿈이 아시아를 얼마나 처절하게 할퀴고 지나갔는지는 지난 역사가 충분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진정으로 동아시아인들의 연대를 통해 서구 열강으로부터 아시아를 지켜내고 함께 번영하는 길을 택하고 싶었다면, “반드시 일본이 주도하고 일본을 중심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편협한 민족주의부터 극복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일본이 그렇게 민족주의를 넘어선 순수한 아시아시민의식으로 접근했다면 군사적 강요에 의한 피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일본의 우익은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일그러진 꿈으로 이웃을 능멸하고 할퀸 역사의 비극은 일본에 앞서 이미 오래 전에 기독교 제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예수의 사랑과 평화의 깃발을 내세우고 뒤로는 중무장한 전함들로 세계를 누빈 근세 기독교 제국들이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지구마을을 어떻게 피로 물들였는지 지난 역사는 뚜렷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의 정신에 매료되어 기독교에 입문한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기독교의 지난 역사에 대해, 또한 아직도 “기독교만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이므로 세계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낡은 교리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 주류 개신교회에 대해 깊은 유감과 슬픔을 갖고 있습니다.

현실기독교가 저지르는 무례와 폭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남을 수 있도록 저의 발목을 잡아준 분은 예수님과 선지자 이사야입니다. 두 분은 저에게 꿈을 심어준 스승이며 두 분이 이천여 년 전에 꾸었던 꿈은 어느덧 저의 꿈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꾸었던 꿈이 무엇이기에 저를 이토록 사로잡는 것인지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이사야 11장 6~9절, 공동번역)

이사야가 꾼 꿈은 강한 자, 가진 자, 폭압자를 제거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꿈꾸는 이는 사자와 늑대, 표범 등의 포식자를 제거한 초식동물의 천국이 아니라, 포식자의 성격이 변하여 모두가 함께 평화를 누리는 공존공영의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포식자가 풀을 뜯는 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꿈입니다. 하지만 꿈꾸는 이는 허황된 꿈꾸기를 멈추려하지 않습니다. 이사야가 꾼 꿈의 또 한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그가 민족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쟁기)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장 4절, 공동번역)

 기억력이 좋은 독자님들은 앞서 인용한 구절들이 제가 수시로 인용하는 애용구절임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구절들에서 꿈꾸는 이는 폭력과 전쟁의 가능성이 아예 사라진 절대평화의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꿈은 수백 년이 지나 예수에 의해 그 절정을 맞게 됩니다. 예수는 민족성 안에 갇혀 나래를 펴지 못하던 이사야의 꿈을 그 편협한 민족성으로부터 해방하여 하느님나라 운동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초기에 이방인의 참여 문제로 갈등을 겪던 예수 운동은 마침내 이사야가 넘어서지 못한 민족의 벽을 돌파하여 세계종교로 발돋움할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제 사자와 늑대가 초식동물과 함께 풀을 뜯는 이사야의 꿈은 예수에 이르러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여라”는 구체적인 지침으로 제시되며 아무 조건없이 모든 생명을 존귀하신 하느님의 딸아들로 선포함으로써 강한 자와 약한 자, 가진 자와 빼앗긴 자의 공존과 평화를 넘어 연대와 일치를 그리는 하느님나라 운동으로 승화합니다.

하지만 성서에 나타난 예수운동은 기득권자에게 극렬히 저항하며 ‘가난한 자, 빼앗긴 자, 눌린 자, 포로된 자’ 편에 일방적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균형을 잃은 듯이 보이기도 하는 이러한 예수운동의 두 방향은 포식자가 풀을 뜯는 세계의 도래를 염원한 이사야의 꿈을 수용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기에 나타나는 예수운동의 고민과 갈등의 흔적일 수 있겠습니다. 또는 꿈을 꾸는 자와 꿈을 이루려는 자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격차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이것이 예수운동이 억압체제에 대한 생생한 저항운동으로 존경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계층의 사람을 품어안지 못하는 ‘빨갱이 운동’이라고 격하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넘어져 우는 아이를 먼저 안는 어머니처럼 예수운동의 관심이 먼저 곤궁한 이들을 향했으나 성서 전반에 걸쳐 흐르는 예언자운동이 늘 약자 편에 섰으면서도 기득권자 품어안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예수의 손길 역시 가난한 자들에게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와 예수가 꾸었던 꿈은 오늘날 그 정신에 매료된 사람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속된 국가와 민족, 인종과 얼굴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오직 사람 자체의 인격과 능력으로만 평가되기를 꿈꾸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이사야와 예수의 후예입니다.

이사야와 예수의 꿈을 함께 꾸는 사람들은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는 꿈을 여전히 꾸고 있습니다. 부시와 빈라덴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고, 미국인과 아랍인,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어울려 축제를 즐기며, 단일민족국가임을 자랑하던 한반도에서 다문화가족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며 함께 어깨동무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삼일운동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중요한 이유는 일그러진 꿈을 내세운 제국의 침략에 맞서 민중이 하나로 뭉쳤다는 점 이외에도 폭력과 억압에 맞서면서도 비폭력저항이 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저의 스승 이사야가 오늘의 한반도에 다시 태어난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네 선조들이 가졌던 비폭력저항의 정신을 계승하여라. 그러나 그 아름다운 정신을 무엇으로도 제한하지 말아라. 민족 안에도, 계층 안에도, 이념 안에도 가두지 말아라.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존귀한 딸아들이다. 사자가 풀을 뜯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없이는, 또한 사자와 함께 풀을 뜯으려는 너그러운 마음이 없이는 사자를 이길 수 없다.”

저는 오늘도 저의 스승 이사야와 예수를 따라 포식자가 초식동물과 함께 풀을 뜯는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한반도 안팎으로 속히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며... 

 

* 이 칼럼은 격월간지 <공동선> 2010년 3+4월호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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