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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호텔에서 자는 목사
이계선  |  6285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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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3월 08일 (월) 15:04:03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1일 (토) 21:09:22 [조회수 : 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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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호텔에서 자는 목사
-미국의 노인복지-

   
▲ 이계선 목사 - 뉴욕거주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의 저자
“와! 아빠는 날마다 호텔에서 자는 목사님 이야요. 그것도 관광호텔에서 말예요”
아파트에 들어선 둘째딸 은범이가 밖을 내다보면서 소리쳤다.
“얘가 어제는 울고불고 반대하더니 오늘은 얼굴이 백화만발 이네”
아내도 기분 좋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노인아파트로 이사 가는 날 우리부부는 우울했다. 신청한지 2년 만에 Astoria와 Far Rockaway가 나왔다. 맨해튼 가는 길목에 있는 아스토리아는 교통은 편리하지만 너무 복잡했다. 케네디공항 뒤에 있는 파라커웨이는 “머나먼 돌 바위길”이라는 이름답게 멀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섬마을 이었다. 뉴욕판 “로렐라이바위언덕”인 셈이다. 더구나 내가 독자(讀者)들과 자주 찾아가는 새섬(Wiled Life Refuge)이 바로 옆에 있어서 좋았다.

“바다와 비치가 있는 파라커웨이로 갑시다”


그런데 이사하기 전날 은범이가 불안한 정보를 갖고 와서 울고불고 반대다. 파라커웨이는 Senior Apart가 아니라 Public Apart라는 것이다. 흔히 Project라고 부르는 퍼블릭아파트는 노인만 사는 곳이 아니다. 정부보조를 받는 젊은 저소득층도 사는 아파트라서 우범지대로 통한다.
“엄마아빠를 그런 위험한곳에서 사시게 할수없어요"
그러나 이미 돈을 지불한 상태다. 이사짐도 포장했다. 하루 밤 자고 내일이면 출발해야 한다.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얍복강을 건너야 하는 야곱의 심정이었다.


타향 땅 하란에서 20년간 고생 끝에 거부가 된 야곱은 고향 가나안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길에 오른다. 얍복강 만 건너면 부모형제가 사는 그리운 땅 가나안이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라들었다. 형 에서가 무장한 400인을 거느리고 길목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에게 팟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사기당한 원한을 복수하려고 이를 갈고 있는 것이다.  재산과 사람들을 모두 앞서 보낸 야곱은 두려워 강을 건널수가 없었다. 홀로남아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밤새워 천사와 씨름하면서 기도한다. 죽으면 죽으리라! 다음날 아침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 얍복강을 건너는데 이상도 하여라. 400인의 장정들이 칼을 내려놓고 환영인파로 변한 게 아닌가? 저승사자 같던 형 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처럼 사랑이 가득 넘치고.

나는 야곱의 심정으로 매달려 기도하다가 평화와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다음날 파라커웨이로 이삿짐 차를 몰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삿짐을 방으로 내려놓는데 제일먼저 은범이가 좋아했다.
“파라커웨이는 주변이 아름다운 섬 이네요”
파라커웨이는 아름다운 관광섬 이었다. 13층 건물의 3층 모서리에 있는 우리 부부의 원베드룸은 호텔객실 분위기였다. 창밖을 내다보니 숲과 나무가 있는 공원이 곁에 와 있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갈대 숲 사이로 바닷물이 파랗게 올라오는낙시터가 보였다. 삼태기 같은 포구(浦口)라서 강물처럼 조용하다. 공원을 날던 갈매기들이 우리 아파트 3층 창가로 날라들고 소나무가지에서는 새들이 소리친다. 빈집에 낮선 사람들이 이사 온게 이상한 모양이다.

“갈매기들이 엄마아빠의 이사를 환영하는 에어쑈를 하고 있어요”
30이 넘은 삼남매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한다.
우리 부부는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가 허니문 신부처럼 흥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니문 호텔에서 결혼 첫날밤을 맞는 신혼부부처럼 황홀해요”
“정말 우리는 결혼 한지 42년 만에 처음으로 신혼여행을 나온 셈이오. 우리 날마다 밤마다 허니문라이프로 삽시다”
우리는 결혼식도 약식으로 했다. 신혼여행 같은 건 생각도 안했다. 세상이 즐거워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인생 전성기를 끝내고 노인아파트로 쫓겨 들어오고 나서야 엉뚱하게 신혼의 낭만을 느끼는 것이다.

사실 노인아파트에 들어오면 행복할 일만 남는다. 정부보조가 있어 돈 걱정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간치가 고생이다. 아예 나 같은 가난뱅이가 되면 부자 못지않게 잘산다. 부부에게 정부에서 1200불정도 준다. 식대로 나오는 푸드스탬프 370불은별도. 수입의 1/3을 내는 380불짜리 원베드룸 아파트는 내가 한국에서 갖고 있었던 설악산 명성콘도만큼 시설이 완벽하다. 전기 난방비 무료. 겨울에도 런닝셔스만 입어야한다. 푸드스템프(Food stamp)는 진수성찬으로 먹고도 남는데 별도로 마른 식품이 한 포대씩 나온다. 의료보험은 100% 풀 카버. 용돈으로 800불이 남는 셈인데 그만하면 족하다. 옛 시인은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베개로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고 노래했다. 아름다운 섬 파라커웨이 에서 착한아내와 노후를 즐기게 됐으니 내 누구를 부러워 하리요!

다음날 새벽 노인아파트의 첫날밤을 치른 우리부부는 아침 해를 맞으러 바다로 달려갔다. 남쪽으로 걸어서 5분 거리에 대서양이 파도치고 있었다. 나무판대기를 도미노처럼 깔아놓은 보드워크(Board Walk)가 해 뜨는 곳에서 해지는 데까지 수십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새벽길을 하얗게 밝혀주고 있었다. 우리부부는 해가 떠오를 때까지 동쪽을 향하여 걸어갔다. 눈 덮인 보드워크에 새벽발자국을 남기면서...

보드워크 남쪽으로는 비치가 명사십리(明沙十里)로 달려가고 대서양의 수평선에는 원양어선들이 여명을 항해하고 있는 게 보였다. 보드워크북쪽은 억새풀이 듬성듬성한 사막지대가 뻗어나가고 그 옆으로 A전철이 공중철교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은하철도 999처럼 푸른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 들게 공중철도로 만들어 멋져보였다. 그때 저 멀리 동쪽 수평선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물살을 가르면서 솟아오른 아침햇살이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 파라커웨이의 태양은 바다 속에서 솟아오르는 군요”
아내가 시인처럼 중얼거렸다.

비치가 있고 낙시터가 있는 파락커웨이. 반은 도시요 반은 시골인 반반도시(半半都市) 파라커웨이. 40년 전 뉴욕의 관광지로 만든 모양인데 관광객 유치에 실패하여 지금은 흑인들의 섬으로 남아있는 느낌이다. 한인들에게 멀게만 느껴졌는데 요즘은 이사 오는 발길이 좀 있는 편이라고 한다. 난 시인의 섬 “이니시프리 섬”에 온 것처럼 좋기만 하다. 은퇴하는 친구들이 와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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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 (24.90.226.153)
2010-03-14 01:18:57
마음은 고국땅에...
내일 제일 가고 싶은 성지와 관광지는 고향이 있는 고국땅이지요. 빌어먹어도 사기를 쳐도 미국에서 사기치자. 이민의 자존심으로 사지요. 난 설교구걸하러 한국에 자주가는 목사님들을 아주 싫어하지요. 해서 안갑니다. 오늘도 2시간동안 비치를 걸었습니다. 비바람에 파도가 하얀산맥으로 몰려오는 파라커웨이 해변을...대서양이 온통 파도로 하얗게 덮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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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0
godsogood (68.100.223.218)
2010-03-10 09:22:43
눈물나네요, 목사님..
만족하시고, 행복하시다니 감사하며 부럽습니다
부자목사를 지향하는 이시대를 보며 분노 했는데..
목사님 노년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니 눈물이 흐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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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
흙처럼505 (114.201.119.134)
2010-03-08 21:42:57
태평양도 한 걸음에
태평양을 단숨에 넘어 오신 손님을 환영합니다.
싸우다가 지친 사람들이 '파라 커웨이'에서 쉼을 얻을 것 같네요.

한 배 타고 가는 불쌍한 중생들 그곳 호텔에서
먹고, 자고, 구경하고 ........,*^~^*

하늘에서 내려오는 맛나처럼 꿀맛이겠죠.
호텔문 활짝 열어놓고 누구든지 다 받아주세요.

오늘날 마가의 다락방이 어디겠어요?
마음과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마가의 다락방이죠.

잠시 쉬어 갈 수있는 글을 만나 주님의 평안을 누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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