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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변절과 십일조 강요'율법적 십일조'는 사도들이 전한 바 없는 '다른 복음'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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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3월 03일 (수) 11:38:15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7:01:06 [조회수 : 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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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말 2:13)

2004년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인 '한미준'에서 조사한 십일조에 대한 통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개신교도 중 매월 정기적으로 수입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교인은 전체의 약 30%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교인의 절대 다수인 70%가 십일조를 하지 못하거나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물론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교회 내에서 교역자들이 이 십일조 제도에 대하여 부정적 발언을 하는 것은 거의 터부시 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교단 내에서 스스로 왕따를 자초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손봉호 교수처럼 "십일조는 의무가 아니다. 신약성경이나 초대교회에는 십일조 사례가 없다"라고 소신을 가지고 명확히 입장을 밝히신 분들도 적지 않다.

정말 희한한 점은 툭하면 별 시덥지 않은 이유로도 서로 쉽게 갈라서며 교단 분열을 밥 먹듯이 하던 한국의 교회들이 성경적 근거가 매우 희박한 이 율법적인 십일조는 거의 만장일치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대다수 신자들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율법의 무거운 짐을 오직 한국교회만이 일심동체가 되어 반강제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의 귀족 목사들은 교인들의 등골이 빠지든 말든 이 십일조라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결코 포기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아마 한국처럼 이런저런 요상한 명목으로 많은 돈을 챙겨 가는 교회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특히 이 십일조 강요가 초신자나 가난한 교인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지대하다. 다른 무슨 특별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교회 내에서 괜히 위축되고 믿음이 약한 자로 손가락질을 받는 느낌으로 지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친척들이나 다른 분들에게 전도를 하면서 교회에 나오기를 권면하면, 제일 먼저 튀어 나오는 말이 "나도 교회에 나가게 되면, 십일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부담스러운 질문이다. 이보다 더욱 심하게 감정적으로 반발하시는 분들도 있다. "목사들이 십일조 장사를 해서, 자식들 유학 보내거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라는 식이다. 이런 반응들은 십일조 강요가 전도의 문을 얼마나 크게 막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개척 교회가 크지 못하는 데에도 십일조가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상당수의 교인들이 작은 교회 내에서 십일조를 못 내면 너무 표가 나서 불편하기 때문에, 크게 표가 나지 않는 대형 교회로 이동하여 스스로 작정한 만큼의 헌금 생활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형 교회로의 수평 이동 현상에는 이 십일조와 기타 잡다한 헌금 강요도 크게 일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한국교회 내에는 기복적인 토속 신앙의 영향이 원래 강한데다가, 일부 목사들이 이를 악용하여 이 십일조를 축복의 수단으로 미신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율법적인 십일조 제도에 대한 반론을 간략히 검토하고, '십일조를 하면, 복 받는다'는 허구적인 미신과 십일조 강요의 부당함에 대하여 주로 논하고자 한다.

아울러 십일조의 쟁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다른 분들이 이미 지적하였던 주장이나 논리가 다소 반복되더라도, 이는 처음으로 이런 문제를 대하시는 분들의 체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너그럽게 양해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또한 일부 목사님들은 십일조가 교회의 중요한 재정 수입원이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다른 반론을 내면 마치 이단처럼 취급하며 몰매를 주시기도 하는데, 신앙 양심을 걸고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검토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구약 신정 국가의 십일조는 사실상 세금이었다

원래 구약에 언급된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바친 십일조처럼 일회성인 경우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대부분이 신정 국가 체제에서 제사직을 전문으로 맡은 레위 지파를 위한 몫이었다. 그리고 다른 용도로는 절기 행사 비용으로 또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 등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거의 세금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출애굽 이후 땅을 분배받은 나머지 지파들과는 달리, 제사직을 맡은 레위인들에게는 다른 수입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백성들이 십일조를 온전하게 내지 않으면, 당장 제사직을 맡은 레위인들과 가난한 자들을 굶게 만드는 아주 심각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은 십일조를 백성들과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따르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시금석으로 간주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제는 모든 신자가 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니 제사직이 더 이상 별도로 필요 없는 신약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누구의 몫으로 드려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목사가 '성직자'이니 목사의 몫이라고 하는데,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이다. 오늘날의 목사직은 구약의 성직자인 제사장직이 아니고 신약 성경에 언급된 '가르치는 장로'나 '교사'의 직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신자가 다 스스로 제사장의 신분으로 주 앞에 직접 설 수 있는 성직자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리적으로 신분상 성직자를 인정하는 가톨릭조차도 현재 율법적인 십일조 헌금을 걷고 있지 않다.

십일조의 변절과 부활

바리새인과 랍비들에 의해 변질되기 시작한 십일조는 로마 제국 시대와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변절되어 갔다. 특히 바리새인들이 십일조의 대상에 '토지의 소산'만이 아닌, '모든 소득'에 대해 십일조를 적용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십일조를 잘 내면, 악한 자가 지옥에서 받는 열두 달 동안의 형벌에서 면제된다"고까지 황당하게 부추겼다고 한다. 이런 엽기적인 선동은 "십일조 안 내는 자는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큰 소리 치는 한국의 어느 목사님을 연상케 한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이 멸망한 후인 신약 초대교회 시기에는 십일조를 잘해야 한다거나, 또는 잘했다는 기록이 없다. 기독교가 박해 시대를 거쳐 황제에 의해 공인되기 전인 4세기 초가 될 때까지도 십일조가 헌금의 일종으로 바쳐지지 않았다. 특히 교부 에피파니우스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십일조라는 것은 할례보다도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교세가 확장되고 교권력이 강화되면서 십일조 복원이 시도되었다. 이때부터 암브로스를 비롯한 많은 교부들이 십일조를 거두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동방 교회들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였고, 서방 교회 내에서도 반발이 심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밀고 당기다가 결국 한참 후대인 A.D 585년에 가서야 마콘(Macon) 교부 회의에서 십일조가 채택되었다.

이때부터 십일조는 점차로 강제성을 지니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다른 교부 회의들도 십일조들을 속속 채택하였고, 결국은 A.D 800년 경 샤를레망(Charlemagne) 대제 때 비로소 십일조가 정식 법령으로 공포되었다.

그런데 13세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십일조의 대상이 구약의 가르침 그대로 주로 '토지 소산물'이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십일조를 보관하는 '십일조 창고'를 따로 만들어 둘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13세기에 이를 즈음, 십일조의 대상이 '토지 소산'에서 '모든 소득'에까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는 바리새인과 랍비들의 십일조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1,000년 이상 지난 후에 다시 부활시켜 적용한 셈이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언제나 교세가 커지고 교권과 이권이 거대해질 때 십일조가 머리를 들고 나타났다. 즉 십일조가 하나의 엄청난 기득권이나 치부의 수단으로 자리 잡는 곳에서는, 반드시 종교 지도자들이 십일조를 교묘하게 가로채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말라기 시대, 신구약 중간 시대, 중세 시대, 그리고 오늘날에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1세기 초대교회에서 폐지되었던 십일조 제도는 한참 후대의 중세 가톨릭 시대에 슬며시 나타났다가, 종교개혁 이후 교회가 국가와 분리되면서 다시 대부분의 유럽 교회에서 폐지되었다. 어떤 분은 이런 과정을 "십일조는 종교개혁의 몽둥이를 맞고 비실거리다가 19세기를 지나면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서 교회 부흥이 일어나, 교세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머리를 들게 된 것이다"고 평하기도 했다.

한 가지 지적할 점은 로마 시대와 중세 시대 동안 막대한 십일조 수입으로 온갖 비리를 저질렀던 가톨릭조차도 이제는 그 십일조 제도를 버리고 자율적인 헌금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가톨릭을 개혁한 루터와 칼뱅을 지지한다는 한국의 개신교가 이제 와서 오히려 십일조를 강조하고 있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오직 한국교회와 미국의 극히 일부 교단 교회들을 제외하면 십일조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이 별로 없는 이유가 명확히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처음 복음을 전하여 준 외국 여러 나라의 교회들도 거의 하지 않는 십일조를 한국교회가 목소리 높여 홀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용감한 모습인지를 잘 보여 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마치 십일조 강요가 바리새인들이나 중세 가톨릭 주교 등 교권주의자들에 의해서 시도된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의 변절 역시 교회 내의 막강한 교권과 기득권을 지닌 귀족 목사들에 의하여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십일조 강요와 한국교회의 변절은 모두 교권 남용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은꼴이다.

이런 사실은 역사적으로 교회가 변절된 시대에는 반드시 십일조 강요가 왜 나타나는지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 세계에서 왜 유독 한국교회만이 십일조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동서양을 합쳐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한국교회만큼 단기간에 교세가 급격히 성장한 곳도 매우 드물고, 동시에 이처럼 빠르게 예수 따르는 길을 벗어나 변절된 교회도 드물기 때문이다.

만일 필자의 말에 동의를 못하시겠다면, 지금이라도 한국의 귀족 목사들만큼 사치스러운 목회자들이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직접 확인을 해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한국처럼 대부분의 교단 선거에서 돈을 주고받는, 더럽고 타락한 목회자들이 많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시라. 아울러 한국교회처럼 세습이 일반화한 나라가 있는지도 살펴보시기 바란다. 또한 한국처럼 교회가 세력과 이권을 키우기 위해 서로 큰 예배당을 짓겠다고 단체로 몸부림치는 나라도 있는지 둘러보시라. 이들은 천사의 얼굴로 양들을 속이고, 그저 먹기를 탐하는 자들일 뿐이다.

율법적인 십일조가 지금도 유효한가

많은 목사님들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십일조를 만고의 진리처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는 아직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었으므로, 그 시점에서는 십일조가 유효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당시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뿐만이 아니라, 다른 율법인 할례와 안식일도 지키셨음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문둥병자를 고치신 후 율법에 따라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명령하시기도 하셨다. 즉 율법의 마침이 되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는 예수님도 다른 율법들을 지키셨다는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에 의하여 십일조가 폐지될 것임을 증거하는 결정적인 구절이 있다. 그것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는 말씀에서 나타난다. 십일조는 성전에서 드려져야 하는데, 성전을 헐라는 말씀은 십일조를 드릴 방법을 하나님이 스스로 제거하신다는 뜻이다. 또한 성전이 제거되면 레위 지파의 임무도 종결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여기서 사흘 동안에 다시 일으킬 성전이란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의미한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성전도, 안식일도, 할례도, 제물도, 제사장도, 레위인도, 따라서 율법에 의한 십일조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신약성경 속의 초대교회를 보면, 일반 헌금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십일조를 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즉 '십일조의 정신'인 '사랑'으로 가난한 교인들을 돕기 위해 '자발적인 연보'는 했지만, '율법적이며 강제적인 십일조'를 한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당시에 할례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할례당'은 있었으나, '십일조당'은 전혀 없었다는 점도 주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의식과 제도 및 관례는 전적으로 폐지하면서, 오로지 십일조만을 예외로 적용시켜 강요함은 상식에 어긋나는 논리이다.

바울 사도도 '연보'에 대하여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하였으나, 단 한 번도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만일 당시에 십일조 제도가 존재하고 있었다면, 구태여 연보를 따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십일조의 본래 목적이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성직자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분의 지적처럼, 기타 다른 신약성경 어디에도 십일조를 내지 않았다고 꾸지람을 받은 교회가 없고, 반대로 십일조를 잘 했다고 칭찬을 받은 교회도 없다. 요즘 한국교회의 완고한 주장을 고려해 볼 때 십일조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바울의 서신들 속에서 한두 번이라도 꼭 언급이 되었을 것이며, 또한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책망하는 부분에서도 십일조를 도적질했다는 책망이 반드시 나왔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요한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제자들은 마지막까지 흩어져 복음을 전하다가 모두 순교를 당했다. 이들이 생명을 걸고 우리에게 전하여 준 가르침에는 이 십일조란 단어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도들은 십일조가 유대교의 다른 율법들과 함께 폐지된 것을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십일조가 그토록 중요했다면, 사도 바울을 비롯한 다른 사도들이 이를 경시했을 리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구태여 밝히자면, 앞서 언급한 '십일조의 정신'은 살아 있으나 '율법적인 십일조'는 다른 율법에 명시된 성전, 제사, 안식일, 할례 등과 함께 동시에 폐지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라고 기록된 말씀에 근거한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 따라 사도들에 의해 전파된 기독교는 결코 유대교가 아니다. 따라서 교회가 유대교 율법의 하나였던 십일조를 다시 강요하는 행위는, 십자가를 거스르고 다시 구약으로 돌아가서 무너진 헤롯 성전을 다시 세우려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라 확신한다. 또한 안식일도 지키고, 성전도 새로 지어 제사를 지내고, 할례도 하자는 억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신정 국가 시대가 아닌 현대를 사는 신도들은 이미 국가에 상당 수준의 세금을 내며 살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획일적인 십일조를 강요하는 것은 이중과세나 다름이 없다. 한국교회는 거기에 별도로 주일헌금, 감사헌금, 건축헌금, 그리고 선교헌금 등 일일이 다 외우기도 힘든 수십 종의 헌금 명목을 만들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요하며 온통 돈타령만 하고 있다.

이는 결국 교우들을 대상으로 교묘하게 경제적인 착취를 하는 행위이며, 비판자들로부터 '현대판 농노 제도'라는 비난을 들어도 떳떳하게 반박하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십일조의 정신

그러나 사실 원칙을 따지자면, 십분의 일만 하나님의 것이겠는가. 우리의 생명, 가족, 친구, 재산 등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닌가. 따라서 구약의 단순한 '십분의 일'이 아닌, 우리 자신을 전부 '산제사'로 주님께 드리는 '경건한 삶'이 신약 시대의 '온전한 십일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신 말씀이 참조가 될 것이다.

즉 신약 시대에 이르러 구약의 '문자적인 율법'은 폐지되었으나, 그 '율법의 정신'은 오히려 더욱 완성된 의미로 지켜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강요적인 십일조'를 폐지하고, 율법의 정신에 따른 자발적인 '사랑의 헌금'을 강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 율법의 정신이란 요약을 하면,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아니겠는가.

일부에서는 십일조가 없으면 교회 재정 수입이 줄어 교회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변명을 하시는데, 진리가 아니라면 그 어떤 인위적인 방법도 거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의 '강요적인 십일조'가 꼭 있어야 하고 '자발적인 헌금'만으로는 운영을 못할 교회라면, 그런 교회는 그냥 문을 닫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건강한 교회의 교인들이라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주의 사업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헌금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우리에게 이 '십분의 일'이라는 숫자가 또 다시 율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입이 너무 적어 생활이 매우 어려운 분들은 백분의 일을 헌금해도 상관이 없고, 때로는 헌금을 못하셔도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필요하면 교회가 이분들을 경제적으로 도와드려야 할 것이다. 반면 1년에 10억 원이나 벌면서 1억 원만을 떼어 헌금하고,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안주해서도 곤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은사이든 많이 맡긴 자에게는 많은 열매를 기대하시기 때문이다.

일찍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십일조를 포함하여 어떤 헌금도 강요해서는 안 되며, 헌금은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보더라도 성경을 왜곡하며 십일조와 수십 종의 헌금을 강요하는 한국의 개신교는 간판만 개혁 교회이지, 실제로 하는 행동은 루터와 칼뱅을 벗어나 중세 가톨릭만도 못한 행태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 많은 귀족 목사들이 마치 제사장이라도 된 듯 자신들의 권위를 치장하며, 스스로 성직자 행세를 하는 것만 보아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헌금은 흰 봉투 하나면 족하다

아울러 교인들의 주머니는 한정되어 있는데, 이런 저런 잡다한 이유와 이름을 붙인 수십 가지나 되는 헌금 항목들도 모조리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매 주일 자신의 능력과 여건에 따라 정성껏 주일헌금을 하면 되는 것이지, 도대체 왜 이런 복잡한 분류가 필요한가.

예를 들어 생일 감사는 꼭 감사 헌금 봉투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따로 구별해서 헌금해야만 하나님께서 알아보신다는 말인가. 그냥 무기명으로 주일헌금에 합쳐 넣으면, 무슨 복잡한 문제라도 생기는가. 헌금을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지, 사람들 앞에서 하는가.

신약 초대교회에서도 이렇게 세분화한 헌금 분류를 사용했다는 말은 들어본 바가 없다. 또한 이런저런 구실로 헌금자 명단을 주보에 공개한다거나, 예배 시 감사 헌금자를 호명하며 별도로 기도를 해 준다거나 하는 행동은 지극히 세속적인 처사라고 분명히 경고하고 싶다.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이런 행위는 개혁 교회답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무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이런 행태들을 그저 돈을 더 뜯어내려는 극히 인위적이며 세속적인 잔수로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하여튼 한국교회 귀족 목사님들은 잔머리를 굴리며 쓸데없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열심히 하는 데는 올림픽 금메달감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헌금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또한 모든 헌금을 무기명으로 하여 앞으로 순결해야 할 주님의 교회에서 헌금을 많이 냈다고 어깨에 힘주거나, 반대로 헌금을 많이 못해서 위축되는 일이 제발 없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목회자가 헌금자를 은근히 공개하여, 돈 많이 낸 사람들이 득세한다거나 더 좋은 대접을 받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사이비 종교에서나 있을 수 있는 저질적인 행태이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한국교회가 강조하고 있는 '율법적인 십일조'에 대한 반론을 간단히 요약해 보았다. 만일 십일조에 대한 필자의 부족한 이해가 명백히 오류라는 것을 다른 분들이 구체적으로 잘 지적해 주시고 설명해 주신다면, 이후에 언제라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도 아울러 밝혀 두고자 한다.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는다?

어찌 되었든 어떤 분이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열심히 하는 것을, 구태여 따라다니며 말리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적이 매우 미신적이라는 데에 있는 것이다. 즉 세속적인 출세와 복을 위하여 십일조를 바치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마치 무속인이 천신굿을 할 때 돈을 바치듯, 매우 기복적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최근에 만난 어떤 분은 "십일조를 하면, 큰 복을 받는다"는 친척 목사님의 말을 굳게 믿고 십의 이조까지 바쳤다고 한다. 그랬더니 정말 놀랍게도 사업에 대박이 한번 터져 수년 전에 아주 큰돈을 버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 맛에 신바람이 나서 나중에도 열심히 십의 이조를 해 오셨는데, 실망스럽게도 근자에는 사업도 잘 안 되고 거의 약발이 떨어진 모습으로 한숨 속에 지내시고 있다.

이런 모습은 한국교회 일부 교인들의 의식 수준을 잘 보여 주고 있는 하나의 삽화라고 생각된다. 즉 '십일조의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속적인 복만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하고 하시며 웃어넘기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의외로 십일조를 복 받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시는 순진한 분들이 제법 많다. 모두 귀족 목사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감염된 탓이다.

이는 '돈 놓고, 돈 먹기'인 투기꾼의 심보이며, 성황당에 물을 떠 놓고 손바닥에 불이 나게 비비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여기서 필자는 이런 분들께 분명히 알려 드리고 싶다. 십일조를 바쳐서 어쩌다 부자가 될 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대로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구조를 다 바쳐도 깡통을 찰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십일조를 언급한 말라기서의 핵심 주제는 단순히 '돈을 내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이며 탄식인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가증한 일에서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신다"고까지 말씀하셨다. 즉 십일조를 아무리 잘해도,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면 오히려 화를 입을 것이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잘하면, 부자가 된다거나 출세하고 성공한다"는 일부 목사들의 달콤하고도 무지한 설교는 성경을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성경대로 충실하게 살아도, 지지리 고생하고 평생 가난하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세상에서 큰 상을 받은 자에게는 하늘에서 상이 작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거나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부자에게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적은 있으나, '나를 따르면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신 적은 결코 없으셨다.

거짓된 목사들이 이런 사실은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성경의 앞뒤를 다 잘라 낸 후 단순하게 "십일조를 하면, 부자가 된다!"는 식으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십일조를 철저히 잘하기로 따지자면, 아마 바리새인들보다 더 잘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들이 복을 받았나. 오히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책망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요즘 많은 목사들이 시대적인 상황이 전혀 다른 신정 국가 시대의 말라기서를 자세한 배경 설명이 없이 단순히 인용하며,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는다"거나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라고 강조하는 것은 십일조의 참된 정신을 왜곡하는 날조이며 기만인 것이다.

말라기서의 주제는 '십일조와 세속적인 복'이 아니라, 구약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십일조 관련 내용 역시 백성들 보다는 오히려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제사장들이 도적처럼 십일조를 떼어먹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제대로 나누어 주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말라기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신정 국가 백성으로서의 '책임'과 '특권'을 강조한 '온전한 십일조'인 것이지, 세속적 축복을 받기 위한 '도깨비 방망이' 같은 그런 십일조가 아니다. 즉 "복 나와라! 뚝딱!"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백성 된 책무인 온전한 십일조를 잘 바치면 비로소 참된 복을 받는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이런 '섬김과 책임'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거짓된 목사들이 단순히 "돈 내면, 복 받는다" 는 식의 미신적이며 주술적인 기복 신앙만을 상습적으로 떠벌리니 교회가 굿판처럼 매일 복 타령이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교인들이 사업 번영, 자식 출세, 무병장수, 호의호식만을 꿈꾸게 되고, 이에 안주하는 복쟁이들이 되어 교회가 병들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양심을 가진 목사라면, 이웃을 섬기는 것이 복이고, 약하고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복이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 복이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복이고, 억울한 자와 함께 우는 것이 복이고, 낮아지는 것이 복이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것이 복이라고 증거해야 하지 않는가.

아울러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 복이고, 남을 위해 기꺼이 손해 보고 사는 것이 복이고, 사회의 소금이 되어 녹아지는 것이 복이고, 그리고 예수를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가다가 때로는 눈물 나는 고생을 하는 것도 참된 복이라고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닌가.

사람이 만든 올무

십일조 강요는 결코 성경적이 아니며, 현실적으로도 새신자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전도의 문을 크게 막고 있다. 또한 많은 교회에서 은근히 조직적이며 지능적인 십일조 강요로 인하여, 초신자들이나 가난한 교인들이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있다. 이는 복음을 위한 고난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올무이다. 말라기서에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탐욕스런 교회 지도자들은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는 행위를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신자들에게 다시 율법적인 십일조를 강요하는 행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 십자가를 역행하는 처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교회가 마치 국세청을 대신해서 추가로 세금을 더 받겠다는 것과 비슷한 월권인 것이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위선적인 십일조로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결국에는 큰 재앙을 만나게 된다. 정복자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이 세운 왕조인 북쪽의 셀류쿠스 왕국과 남쪽 프톨레미 왕국 사이의 그 유명한 '150년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운데에 두고, 양측 군대가 오르내리며 지긋지긋하게 벌린 이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완전히 초토화하고 처참한 고통을 겪게 된다. 당시에 얼마나 이들 군대의 겁탈과 약탈이 심했으면 귀중품을 밭에 감출 수밖에 없었을까. 예수님의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는 이런 역사적 배경과 관습을 근거로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하고 가식적인 제사와 십일조를 바친 결과를 이스라엘의 역사가 생생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개혁 교회는 이제라도 현재 가톨릭에서조차 시행하지 않는 이 십일조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잡다한 명목의 헌금들도 자발적인 '무기명 주일헌금'으로 단순화하기를 부탁드린다.

어떤 이유로든, 교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큰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결단코 버리는 것이 옳다. 이는 주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부당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바쳐진 온전한 '사랑의 헌금'만을 가지고,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

소모적인 논쟁 이젠 끝장내자

이렇게 십일조 폐지를 교회와 교단에 강력히 건의하지만, 사실 이분들의 답변에 큰 기대는 안 하고 있다. 십일조 강요는 한국교회의 변절에 기인한 것이고, 교회의 변절은 교단을 장악한 교권주의자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마음을 열고 들을 리 없는 것이다. 또한 진리 문제를 단순히 다수결로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찬반이 팽팽하여 결론이 나지 않는, 필요 이상으로 소모적인 논쟁은 아무도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끝도 없이 연구만 하고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실천을 하자는 것이다. 누구나 스스로 신앙 양심에 따라 이번 주일부터라도 자신의 교회에서 율법적인 십일조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십일조의 정신'에 따른 사랑이 담긴 주일헌금을 하면 될 것이다. 구태여 교회에서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집사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보수 교단 소속의 어느 중형 교회에 출석하시는 이분은 대학 시절부터 늘 무기명 주일헌금만을 고집하여 왔다. 하루는 나이 드신 교회 여전도사님이 다가오셔서, "아무개 집사님도, 앞으로 십일조를 좀 하시지요" 하고 부드러운 충고를 주셨다. 그때 이 집사님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변을 드렸다고 한다. "저는 원칙적으로 십일조뿐만 아니라 그 어떤 기명 헌금에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제 신앙양심에 따라 무기명 주일헌금을 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얼마 뒤에는 담임목사님이 같은 권고를 주셨다. 물론 동일한 답변을 드렸다고 한다. 다행히 그런 일이 있은 이후로는 누구도 이분의 십일조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장로가 되지 못한 것 외에는 교회 생활에 별 다른 불이익도 없었다고 한다.

혹시 십일조나 감사헌금 실적을 높여서 담임목사의 인정을 받고 장로나 권사 등의 직분을 서둘러 받고 싶으신 분들이 아니라면, 이 집사님의 소신 있는 처신도 약간의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이분이 때로는 힘에 벅찰 정도로, 많은 헌금을 하고 있다는 점도 추가로 알려 드리고 싶다.

하고 싶은 사람만 하라

여섯 번에 걸쳐 20년 이상 추방을 당하면서도 정통 '삼위일체론'을 끝까지 고수했던, 4세기 교회의 위대한 신학자 아타나시우스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 "온 세상이 나를 반대하는가, 그러면 나도 온 세상을 반대하노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필요하다면 담임목사나 교권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이 나의 신앙 양심을 반대하는가, 그러면 나도 그대들을 반대하노라." 또한 이 말도 추가하고 싶다. "나는 율법적인 십일조 강요가 진리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이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토록 하고 싶으면, 그대와 그대의 후손들이나 열심히 해서 그토록 좋아하시는 복을 대대로 받으십시오!"

한국교회의 십일조 강요는 명백하게 '바리새인의 누룩'을 퍼트리는 일이며, 사도들이 결코 전하여 준 바가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 개혁은 십일조 폐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는 이미 복을 넘치게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무슨 복이 그렇게 더 필요해서 허구한 날 복 타령만 하며 십일조를 노래 부르나.

마지막으로 보수와 진보를 따지지 말고 여러 교단의 뜻있는 신학자들도 중립적인 침묵으로 세월만 보낼 것이 아니라, 진리의 파숫군답게 명철한 지혜를 가지고 이 율법적인 십일조 강요에 대하여 분명한 나팔소리를 들려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4 )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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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목사 (211.209.61.156)
2010-03-03 16:19:39
냉수맛이야요.
간단명료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사는것. 머리 굴리지 않고 곁눈짓 않는 것. 아 그게 그렇게도 힘든 것인가? 無爲無不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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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3
하사람 (112.222.76.75)
2013-02-16 11:53:51
신성남씨 글에 대한 반박, 잘못된 선입견을 버리세요.
신성남씨가 어떤 분인지 잘은 모르지만 몇가지 글을 쭉 읽어봤더니 거의 대부분이 기존 교회와 교회제도 그리고 목회자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대부분이군요. 위에 십일조에 대한 내용 참으로 가관이군요. 신학을 하신분인지 모르겠으나 성경공부를 다시 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한가지 예로.."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에서 성전을헐라는 말을 실제로 성전을 부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ㅎㅎㅎ 신성남씨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실제로 예수님 자신을 의미하는것이요. 예수님이 곧 성전이요 성전의 주인인데 이 말씀의 영적 의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것을 뜻하며 삼일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은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십일조 제도를 사람이 만든 제도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신성남씨 당신은 성경을 당신의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군요. 그리고 십일조가 구약에서는 세금과 같다고 하는데 한푼어치의 근거도 없는 말이요. 역사의 기록 그 어디에도 이러한 근거는 없고 당신의 극히 지극한 사견인것 같네요....공부좀 하시오. 그리고 왜 십일조에 대해서 명령하고 십일조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단 한번도 인용하지 않는가? 레위기를 비롯하여 모세오경과 말라기와 신약성경 곳곳에는 십일조에 대한 분명한 명령이 있고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두가지만 내가 예를 들어보지...신명기 14: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결론적으로 십일조는 성경에서 분명하게 명령하는 것이며 성경 그 어떤 곳에도 십일조 내지 말라는 곳은 한곳도 없다는 것이요. 비단 십일조 뿐만 아니죠. 감사헌금을 비롯하여 교회에 내는 헌금은 개인 자율의 문제이지만 물질에 있는곳에 사람의 마음이 있듯이 헌금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헌금을 중요시 하지 않는것도 잘못된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두렙돈을 넣은 과부의 헌금을 칭찬했듯이 우리가 없는 가운데서도 정말 감사함이 있다면 자신의 재산 전부도 드릴수 있는 것이요 억만금의 부자라 할지라도 감사함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헌금을 내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가 십일조와 헌금을 강요하는 경우는 있겠으나 이것을 마치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인것처럼 오도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보는 신성남씨의 비뚤어지고 비판적인 시각도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을것입니다. 신성남씨! 당신은 내가 보기에 교회에 상처를 받았거나 아니면 좀 문제가 있는 교회에 있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너무 그렇게 세상을...교회를 비판적으로만 보지 마시오.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조건 나쁜쪽으로만 가는것이 아니요. 세상을 너무 비뚤어지게만 보지 마시고 좀 긍정적으로 보시오. 하지만 당신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전혀 나쁜것은 아닌듯 싶소. 정말 기존 목회자들과 교회가 반성해야 할 부분도 많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작은 문제를 전체 문제로 오해하지 마시고 특히 십일조에 관해서는 성경을 잘 읽어보시고 다시 논하도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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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
나그네 (68.238.233.76)
2010-03-09 02:50:19
그들에 대한 예우
그들의 목적이 교회를 넘어트리기 위한 것이라면 나는 언제나 그들을
사탄이냐고 묻는말에 예 라고 하겠읍니다

그러나 함께 살기 위한 바르게 세움이라면 방법이 잘못 되었다고 하겠읍니다
어떻한 경우가 되었든지 교회를 향하여 비판해서 않되는 것은
교회들을 위하여는 권면과 기도만 허용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의 교회에 대한 비방은 그 자체가
사탄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예우겠지요

하나님께 사탄으로 정죄 받은 자들에게 인간이 체면 차린답시고
교회의 대적자들에게 가당치도 않은 의인으로 둔갑시키며
자신도 의인인체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소월치 않게 있는데
그것은 말씀을 떠난 자기 당착에 빠진 자들일 뿐입니다.

예를 든다면 한국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도를 왔는데
인간으로써의 도리를 한다고 그들을 대접하며 그들의 말에 그렇지요 그렇지요
하면서 잘 해서 보냈읍니다. 또 다른 예로는 성도가 전도를 나갔는데
예수를 전하다가 불신자에게 봉변을 당했읍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고
그냥 나왔읍니다. 이러한 경우에 성도가 취할 방법이 무엇인지 성경에는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읍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교육이나 이성이나 체면을 우선시 하고 있읍니다 그러면 현재 익성씨의 신앙은
무엇을 우선으로 삼고 있읍니까? 그것이 당신의 신앙이고 하나님과 당신과의 현제의
관계이며 여러 사람에게 보이도록 나타난 것이 당신이 올린 글의 내용입니다

보수 신앙이냐 진보 신앙이냐 정통 주의냐 자유 주의냐 그것이 신앙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세우신
교회를 향하여 어떻한 모양으로든지 대적자로 서 있는가?
아니면 끝까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순교자의 자리에 있을 것인가의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몫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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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익성 (116.43.63.25)
2010-03-09 01:21:20
제가 죄송합니다.
한국교회가 비성경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반 사회적인 종교라고 ㅎ생각을 하고 있었고,한국땅에서 사라져야하는 종교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나그네같은 교인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아렛글을 보니 한나라당 기관지를 보는것 같았는데 그것은 아닌것 같고. 아무튼 주님을 사랑하시는 열정 만큼은 대단하심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을 싸잡아 욕하는 무리들이있는데 그들은 모두 사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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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나그네 (68.238.235.20)
2010-03-08 13:32:27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는가?
글쎄! .............
쭉 내가 올린 글이 무엇인지는 나도 다는 모르지만 한가지
글을 올리는 한가지 분명한 이유는 있읍니다.

조 밑에 에레미아 아모스라는 대 선자자의 이름을 도적질하여
필명으로 사용하는 새대치와 같은 개신교의 안티인 잡족의 부류에 속한 자들이
개신교회와 목사들과 성도들 비방하기를 일삼는 자들에게 악인의 길에서
죄 짓다가 영원한 지옥의 불못에서 고생하는 불쌍한자가 되지 말라는 글이
익성씨에게 걸림돌이 됐나요?

내 글의 내용은 초지 일관 교회 목사 성도 욕하지 말아라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 하는 것이다. 또 글을 올리는 자들에게는
위에 글처럼 교회의 십일조에 대하여 마치 교회가 비리라도 저지르는 것 처럼
비방의 글로 헷소리를 해대니까 나도 내 생각을 말했는데 그게 걸림돌이 되었나요?
그러면 그것은 익성씨의 신앙과 나의 신앙의 차이일 뿐인데 내가 그 신앙에 맞출
필요가 있을까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다른데 남의 신앙을 검림돌 삼으면
맨날 넘어져 있어야지요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글 올린자나 댓글자의 의도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교회를 어지럽히려는 목적을 가진자들의 가중스러움을 먼저
알고난 다음에 얘기를 했으면 좋겠고요 저들이 누군지 모른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게
교회를 위하는 길이고 저들과 같은 무리에 속한자라면 얼마든지 나에게 글 올리세요
건전한 대화는 필요하지만 저들처럼 교회를 대적하기 위한 비방의글은 사단의 회일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들은 교회와 현 정부의 대적자들 입니다

또한 김목사와 동호회와 한상체와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읍니다
그리고 내 글은 분석할 것도 없읍니다 나는 저들을 알고 왜 저런 글을
쓰는지 알기 때문에 성도로써 마땅히 해야할 말만 할뿐입니다

그리고 무명으로 헌금을 한 것을 자랑하는데 그것도 자신의 믿음대로 한 것이니까
남이 말할 필요는 없는데 잘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명으로 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것이 자신의 믿음이고요 낸 헌금의 사용에 대한 관심이 없어집니다 그것은 교회에 대한
애착이 없다는 것이고 관심도 없으니 물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리 없지요
사랑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없다는 것인데 마음없이 낸 그것이 헌금일까요 기부금일까요
거짓하는 자들에게 속는 사람들의 특징이 그러한 개념으로 교회에 헌금을 하기 때문에
저런자들의 말에 귀가 솔깃하지요 거짓의 아비요 속이는데 명수라 저들의 실체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나이 아까운 것을 포기하고 드리는 마음,
그리고 드려진 헌금이 잘 쓰여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수 있는 마음으로
드려진 헌물만을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남이 하니까 할수 없이 기부하는
마음으로 헌금이라고 냈읍니까? 그런 사람들을 가증한 자라고 하십니다.
바른 신앙을 가지고 바른 헌금 한다는거 축복이지요
그래서 축복도 받을자가 받는 겁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들과 있느냐가 자신의 신앙이겠지요
다시 얘기하지만 저자들은 개신교회에 다니는 자들이 아닙니다.
근데 딱 하가지는 맞는데 나 양반동네 사람입니다 근데 새대치라는
잡족들과 얘기하는냐고 많이 거칠어 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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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4
나익성 (116.43.63.25)
2010-03-07 16:45:18
나그네 양반아!!!!!
그동안 올린글 주~~~욱 읽어보니 대략 가마이 잡힙니다.
그 옛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여년전에 인터넷이 들어오기 바로전에 pc통신이라는 통신메체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당시 천리안을 가입하여 이용했는데 ㄷ각종동호회가 있었습니다.
종교동호회중 기독교동호회에 들어가면 감리교동호회가 있었고 통으로 싸잡아 기독교동호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수원 아니면 경기도 쯤으로 기억하는데 성씨는 한씨였고 이름은 상채[체], 그리고 형제인 상태[?] 한상체 라는 형제인데 한명의 이름이 생각이 가물하네요. 한상채[체]는 분명한데....
당시 문제를 일으켰던 금란교회 김홍도의 간음건과 헌금 착복건이 mbc에 보도되면서 난리가 났던 내용을 끝까지 부인하면서 동호인들을 약올리면서 염장질 하더군요.
지금 자세히 글을 보면 혹시 그당시의 한상채 형제 아닌지요?
아마 나이는 40대 후반 정도로 기억하는데. 그 형제중 한명은 어느교회에서 청년부를 지도한다고 하던데. 이곳에서 제글을 읽고 그 교회 목사가 깜짝 놀라 저에게 전화를 하더군요. 그 형제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 달라고.
그 형제중 한명은 금전에 관계된 업을 했는데 아마 사체꾼으로 기억합니다.
나그네 님의 글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그 형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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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125.131.27.113)
2011-08-26 13:23:23
제가 볼때는 아닌지도 몰라요 어쨌든 무명으로 헌금하면 교회에 애착이 없다는 그분의 진리는 뭡니까? 헌금을 많이한 성도들을 골라서 마음을 훔쳐 영적간음을 하려는데 이름이 없어 간음을 할수 없으니 화가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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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익성 (116.43.63.25)
2010-03-07 16:29:57
사탄무리들속에있는 사탄이군요
한국교회가 사탄이며 목사들이 사탄이라면? 그리고 그사탄들이 글쓴이를 사탄이라고 부른다면 누가 사탄일까요?
저역시 봉투에 이름쓰지않고 헌금한지 15년정도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했고 목사나 교인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같아 갈등 좀했지요.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엄청 행복하고 자유롭더군요. 일단 헌금에서 해방되고 목사의 설교에서 해방되면 그 순간부터 자유와 행복과 교회공동체 출석에 대한 해방감이 생기더군요. 어떤때는 목사에게 권면받고 지시받는 듯한 설교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헌금에 대한 설교는 한국교회가 절대로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닿는 것이 중요하더군요.
그러나 다수의 교인들이 담임목사를 성직자라고 생각하는 부분, 주님의 대변자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많은 반성이 필요하지만 교인들 스스로가 교회울타리, 목사의 관심안에 살려하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헌금에 대한 집요함을 보노라면 말세의 징조를 보는것 같아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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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121.129.19.209)
2010-03-07 09:43:54
측은 한 님 나그네
나그네 이꼴통아...내가 너에게 한가지 알려주지 이땅에 목사중에
사이비는 대강 70-80 % 이니라 스님중에 사이비는 약30-40 % 이니라
신부나 수녀중 사이비는10% 전 후 니라 쥐그네 꼴통아 특히 이땅에 대형교회
목사는 95 %가 완벽한 사이비라는것 모르냐 즉 다 도적놈이요 사이비요
맘몬의수하니라 교단으로보면 기장과 감리교단에 그나마 참되신 목사님이리
좀있느나라 그러니 너는 입을 닥치고 당당에서 알바그만하고 미친 개수작을
멈추거라 어느 교회는약500명이 넘으면 계속 분가를 하지 벌써 여러번 분가를 했느니라
그런교회가 참교회라 심지어 옥 한흠과 오 정현 이도 사이비 길로 들어섯느니라
쥐그네야 예수님의 삶의모습과 그분의 말씀의 본질이 무엇인지 7일 금식하며
깨닫기를 원하노라 그럼 너도 예수님의 진실한 제자요 구원에 이르리라
쥐그네야 그교회가 어디며 니 막사가 누군지 밝히거라 내가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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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sogood (68.100.223.218)
2010-03-07 06:37:16
왜 시비 거는자를 탓하냐 !!
이단 목사나 삼단 목사나 돈 밝히고 잡질하면 그놈이 그놈이이지요..
정통 교단에서 안수준 목사가 돈 밝히고 잡질하니 세상 사람들이 더 떠드는거지요...
그들이 짝퉁질 하는거 다 아는데 지들끼리만 쉬~쉬~하지요...
정말 하나님-종 목사는 하나님을 잘-아니 무서워 잡질 안하지요...
성도는 제사장이라 하셨기에 종이 제사장을 속일수 없지요...
하나님에 아들-딸들에게 종놈이 헌금 강요 할수 있나요...
하나님에 아들-딸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으로 종놈이 외제차를 타네요...
어느 종놈이 주인에 자녀보다 더 잘먹고 호화를 누리나요...
교회에 머리는 예수인데 종놈이 머리인양 치-받드는 요놈! 요게 마귀새끼지요...
종놈하고 붙어 자녀들 흔드느 요놈이 마귀졸개지요...
종놈이 미련해 마귀새끼와 합방하고 자녀들 현혹하지요...
종놈은 미련해 졸개들은 부하게 자녀는 골케 하지요...
예수는 홀로 골고다로 향했는데 종놈은 아직 호화-건물에서 놀고 있어요...
자녀들 살피라고 종놈을 붙여 놓으셨는데 이 종놈이 딴짓만 하네요..
한- 두 종놈이 잡질하면 그러려니 할텐데 퍼센테지가 너무 높으니 욕 처먹지요...
종놈끼리 권면 좀해봐요 자녀들 부끄럽지 않게, 세상으로 부터요...
부흥 강사나 초청강사 오는날 설교는 모두가 알아요, 십일조 이야기 아니면 순종(목사에대해)
이야기, 웃기죠 돈주고 사람사서 종놈이 자녀들 괴롭히는거...그게 부흥회래요...미련하긴...
종놈이 교회내에 있는 하나님에 자녀 어느 누구보다도 가난해야 하는게 아닌가요...
종놈이 하나님에 자녀들을 위해 40-일 금식기도를 하면 어떻게 되는줄 아세요...
해봤어야 알지요...모르죠... 가르쳐 드릴까요...41-일째 쓸개가 없어져요, 알겠어요 이제는..
하나님에-종이면 기도와 말씀에만 전념하세요 잡질,작퉁질 하지말고 종놈신분 망각하지말고요...종놈이 소금 역활을 못하는데 하나님에 자녀들 힘나겠어요...
남에게 이단이라 하기전에 하나님 말씀대로 행치않는 종놈이 매맞을 이단인거 같에요..그렇죠... 종놈과 같이 사는 종년이라도 깨어 있으면 안그럴텐데 종년 마져 게으르면 더 문제이죠...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데 종놈마져 세상 속에서 속썩이니 하나님 자녀가 더~어 피곤들해
하네요..........
정통-교단이라는 종놈 집단이 진짜인지 짝퉁인지 구분 않고 막 찍어대서 진짜 선한-목사님도
짝퉁으로 취급되고 있네요...
종놈-집단이 짝퉁인 냄새가 나요... 냄새는 썩을 때에 나지요...
종놈아! 40-일 금식기도 하면 어떻게 된다고? ....41-일째 쓸개가 없어진다니까....
종놈아! 하나님 맏겨주신 주에 자녀들 위해 말씀 좀 보고 기도 좀 해라! "그리하면"
세상-시비에 안 걸린다!
돈! 감투 쫏으니 세상-시비에 걸려 예수님이 힘들어 하신다!!! 이 종놈들아~~~~
왜 시비 거는자를 탓하냐! 종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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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71.255.97.85)
2010-03-06 22:55:00
그대는 어떻한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가?
양심?..........이 사람아!.......
자네가 양심의 기준이 아니잖아!
자네가 목사들 비방해대는게 양심인줄 아는 모양이지?
양심을 빙자한 교회 대적자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쎄!

이사람이 말귀를 못알아 듣는구만!
목사라고 부른다고 다 목사가 아니잖아!
문선명이를 목사라고 부르는 자들은 그 신봉자들이 그를
목사라고 부르는 것이지 나는 문 교주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가 무슨짓을 하든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나?

자네는 카톨릭 교주를 교황이라고도 부르고 아버지라고도 부르잖아
그러나 나는 그를 교주라고 부르거든 그러니 그가 무슨 짓을 하든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관대 그를 비방 하겠나?

자네는 자네가 비방해대고 싶어하는 사람들만 골라서 목사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앞세워 마치 모든 교회와 목사들이 다 그런것 처럼 호도하려는
목적이 자네의 진실한 본심이 아닌가?

그래서 자네 같은 자들을 교회를 대적자요
따라서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라고 할수 밖에 없는 것은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라

자네 같은 자들이 카톨릭의 교주나 그 수하의 사람들과
문선명이 정명석 박옥수 기타 수도 없이 많은 사이비 교주와
이단자들에게는 말 한마디 안하거든!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지
같은 계통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오직 교회 대적하는 일에만
열심을 내는데 그게 바로 자네들이 하는 일 아닌가?

나도 침묵 했으면 좋겠는데 황사 같이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자네와 같은 사람들이 침묵하게 놔두질 않는데 어떻하나!...

자네와 같은 자들이 교회 허무는 일에 열심을 내듯이!....
나는 자네와 같은 자들의 정체를 알리는 일에 열심을 낼수 밖에!.....

어차피 세상이란 선과 악이 공존하며 존재하고 있는 것 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네와 같은 자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처럼
또한 그런자들을 대하여 분노하는 의인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까1.........

그런데 그대는 어떻한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가?.........

땡땡이 중이 저녁에 가발쓰고 술집에가서 술마시고
여자와 하룻밤 잦다고 모든 중이 땡땡이 중은 아니지?

수도원에서 도를 닦고 있는 카롤릭의 신부 수업자가
수녀와 하룻밤 잦다고 모든 수도사를 나쁘다고 할수 없는 것 처럼

자네가 열거한 것 처럼 일부의 목사들이 그렇다고 해서
모든 목사들이 그런것 처럼 떠벌리려는 자네 같은 자들을
성경에서는 악한자라고 하는 글은 못 읽어 보았는가?

한 가지의 남의 허물을 들춰 내려면
열가지의 자신의 허물이 드러나는 것인데
하물며 목사들의 허물을 둘춰 내려는 자들의 허물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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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미아 (121.129.19.209)
2010-03-06 22:00:17
나그네 는 연구대상이다
나그네.야..........아니 쥐그네야..............왜 당당에서 재랄을떠는고
작은 머니에 니 영혼을 팔아먹고 삼도 선.홍.국 의 맹종자가 맹신자가 돼어
너를 낳아준 니부모님을 욕되게하며 왜 재랄을떠니..당당이 어떤곳인지 모르는
빙신도 아니고.......너같은 넘이 오히려 삼도를 더 욕되게하며 이땅에 기독교를
개독화하는 쥐구멍 속에숨어서 쥐그네 인것 이니라......측은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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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68.238.234.109)
2010-03-06 02:46:37
유익한 대화가 되길 바라며
비판이 아니고 비방을하니 하는 말 아니겠나
자네 같은 자들이 하는게 비방이란 말일쎄!

또한 귀족 귀족 하는데 도대체 귀족이 뭔가?
왜 목사들이 귀족으로 보일까? 그게 이상하잖아?
자네가 어느 목사에게 피해 이식에 빠진 모양인데
그렇다고 모든 목사들을 그런식으로 말하는 자네가 옳다는
주장 역시 자기 과신 아닌가? 자네에게 목사들을 비방해도 된다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거든! 자신을 바울로 착각하지 말게....

개신교의 교회와 아무런 이해 상관이 없는 자이면 스스로 죄 짓치 말고
혹시 공부하는 신학생이면 그런 꼬인 맘으로 공부하지 말게나
요새 같이 힘든 세상에 좋은 말로 이웃을 위로해도 부족할텐데
하필이면 하나님이 세운 교회를 비방해야 하는 자네가 누구라고 생각 하는가?

자네가 나를 보는 수준이나 내가 자네를 보는 수준이나 같은 것인데
자네의 수준이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이지? 그게 문제야! 그러니 하나님을 대적하지!
여기서 교회에 관계된 모든 일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까닭없이 비방해대는 자들과 자네의 수준이 같은 수준 아닌가?

교회의 일을 하다보면 목회자와 의견이 안맞아 부딛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얘기 할수가 있겠지만 그 범위는 교회 안에서이고
시간도 그때로 끝내야 하고 그것이 안 맞으면 기도를 하든가
그렇지 않은 교회로 옳기는 방법도 있지만 어느 교회를 가든지
이 세상에는 자신에게 맞추어 주는 교회는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사이비나 이단만 아닌 목사이면 순종하고 섬기는 것이 자신에게는 물론
이웃에게 덕을 끼치는 성도의 바른 신앙 생활이라고 말 할수 있는데

자네는 개신교의 성도도 아니고 목사는 더욱 아닌데 개신교의 헌금에 대하여
길게 늘어 놓은 글을 보면 자네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글 썼는지
그 속이 훤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니 이렇게 말하는 나와는
우선 영이 다르고 거기에 따른 목적이 다르니 대화가 안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자네는 하나님이 세운 교회를 비방해대는 자에 속한 것이고
나는 자네에게 자꾸 교회와 목사를 비방해대면 결국 큰 화가
자네에게 미치니까 그러지 말라는 충고자일 뿐이네

끝으로 내가 한 마디만 더 할테니 마음에 담아두게!
절대 사람이 목사를 변화 시킬수 없다는 것만 알게
목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이것이 인정 되어야 하는데
그거 모르면 자네는 여전히 죄 가운데 살게 될걸세1.

내가 신앙 생활하면서 저네와 같은 생각보다 훨씬
더 하다가 결국 깨닳은 결론이 그거니까

목사 편하고 자신이 편하고 성도들 편해서 교회 편하게 하는 것이
아주 쉬운건데, 자네와 같이 괜히 어설프게 자신이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줄 알고 하는 짓이 결국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대적자로 남는 다는거 꼭 기억한다면 나와의 대화가
그렇게 무의미한 대화는 아닐 것일쎄!

그리고 새대치야 또 땡칠이가 땡구로 바꿨구나
그래서 좀 나아진거 있느냐? 생활에 도움이 됐어?
이제 땡땡이로 바꿀날도 멀지 않았네 언제까지 그러게 살거야?
그냥 먹탐자로 있든가? 그렇게 가면 뒤집어 쓰고 다니면 속이 시원해?
체질이 가면쓰고 어둠속에 숨어사는 체질인 것 같으니 그냥 그렇게
지낸들 뭐랄 사람 없으니 자네 취향대로 살게나. 새대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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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209)
2010-03-05 18:50:13
나그네 님 실상
십일조를 강제하며 십일조로 협박하며 십일조에 목숨거는 막사나 먹사 이들을
옹호하는 나그네 68혹 71 .나그네는 도적놈들의 앞잽이며 강도들을 두둔하는자다
헌금을 교묘한 주딩이 술수로 강제하는 자는 맘몬의 수하니라 예수를 죽인자들
대제사장 장로 등 그시대 교권주의자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것을
두려워했을것이다...고로 실상인즉 나그네들 예수를 믿지도 따르지도 아니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수를 주딩이로 장사하는자들이다..아마 션도.횡도.쿡도.
<삼도>에게 알바를하며 당당을 통해 올바른 기독교가 득세할까 두려워하는
충견들일것이다..나그네들은 그런 자들이니 상대를 안하는것이.....
이들이 <쥐그네[일당> 당당 을 담당 하ㅣ는 알바가 맞을것이다
가롯유다보다 더 측은항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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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68.238.232.85)
2010-03-05 17:54:41
십일조에 대하여 시비거는 자들에게
나이 먹은 사람이 반말을 좀 했기로서니 그렇게들 기분이 나뿐가?
반말에 기분 나뻐하지 말고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기분 나쁠순 없는가?

여기에 와서 부드러운 화가 되게 하려면 먼저 예수를 믿는 자세부터 가진 다음에
좋은 말로 하라고 해야지 교회와 목사들과 성도들을 비방하는 자들에게
부드러운 말로 해야 할 필요를 전혀 안 느끼거든! 따라서 부끄러워 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고!....

개신교를 개독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예수를 믿지 않는 잡신자가 분명한데
더 심한 말을 들어도 서운해 할 필요도 없겠구만!......
더군다나 여자 입에서 반말찍찍이라는 수준 미달되는 말을 하는 자라니
오죽 할려고!......

신성남씨!...........
가증스럽다는 말에 맘이 상한 모양인데!.
나도 글을 보고 맘이 상해서 가증스럽다고 할수 밖에 없는 것은!
예수를 믿는 다면 십일조에 대하여 저렇게 글을 올릴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예수를 믿지 않는 자가 아브라함 이후로 현재와 미래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성도들이 믿음으로 내는 십일조에 대하여
말 하는 그 자체가 하두 가증스러워서 한 말인데 왜 서운해 하는지 모르겠네

목사는 귀족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 일뿐인데 신씨가 목사들을 귀족으로
비아냥대는데 그 심성으로 글을 썼으니 그 심성이 가증스럽다는 말귀를
못 알아 듣는건 아니겠지?

나를 위해서 기도 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지 않은가? 하기야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두려워서도 저런 글 못쓰지. 그런데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고?

장로교단도 아니고 침례교단도 아니고 감리교단도 아니고
성당에나 다니는 자 일텐데 기도는 무슨 기도?
묵주들고 염불한다고 하는게 맞는 얘기 아닌가?

일부의 감리교단에 속한자들이 카톨릭화 되어 가기 때문에
더러는 십일조에 대하여 헷 소리를 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들은 열 외고................

기도 할수 있는 정도의 믿음만 있어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아니다 라고는 못 할 것이고
사리 분별을 못하는 자이기에 십일조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하였으니
어찌 가증스럽다 말 하지 않겠는가?

또 누가 십일조를 강력하게 주장을 했으며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이 맑은 세상에 저렇게 어두워서야, 생각이 그렇게 오그라 들었으니
어둡기도 하겠지만 어두운 사람은 어두운 생각만 할수밖에 없는데
이게 답답한 일이라. 눈에 보이는 글도 맨 그런 글만 보이는 이유만 알아도
어느정도 치료를 받을수 있는데 자신을 모르니 까닭을 모르지.

같은 귀를 달고 있는데 왜 그 귀에만 강력하게 들릴까?
목사의 사례비가 많다고 헌금 더 하는 사람이 있는가?
자신이 하는 말이 망령된 말인데 누구에게 망령되다고 하는지?

목사 사례비 많이 받는 것과 헌금 많이 내는거 아무 상관 없고
십일조와 헌금 적게 내도 사례비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괜히 오그라든 마음 더 오그라들까 걱정이나 하슈

걱정들도 팔자야!
교회도 안 가면서 헌금낼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의 교회 짓는데 동전 한잎 보태줄 위인들도 아니면서
괜히 배 아파하는 그 심뽀는 도대체 왜 달고 다니는지!

그거 버려야 자신들의 맘도 편하지만 계속 끌어 않고 살면
삼 사대까지 하나님이 갚으신다는거는 알고는 있는지?
그게 성경의 기록이고 이스라엘의 역사라는거 깨닳았으면 좋겠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함부로 장난하거나
교회나 목사나 성도들에게 비방해 대는거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다는거 명심하고
세월이 가면 그 결과를 될테니까 그때 가서 후헤하지 말고
몸 성할때 조심들 하라고 말하고싶네

믿어지지 않아서 안 믿는거야 할수 없지만 믿지도 않으면서
지나가는 불행 덩어리를 쫒아가서 끌어 않을 필요는 없는데
이 어리석은 자들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스스로 자청을 해서 끌어 않으니 이 얼마나 딱한 일인가?

하나님의 진노 앞에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이 그 불행의 크기이니
그래도 괜찮다고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대로 맘대로 해도 되겠지만
그 결과는 당연히 자신과 그 후손들의 몫이라는 것도 잊지 말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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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203.246.117.58)
2010-03-05 14:25:19
누구에게 유리한가(Cui bono)
십일조를 강력하게 주장해서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 누구입니까? 담임목사가 교회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고 일하거나, 대형교회라고 해서 목사가 거액의 보수를 받지 않는다면, 과연 목사가 그토록 십일조를 강조할까요?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만일 목사가 무보수로 일한다면, 신자들도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을 자원하여 바칠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2000억을 들여 교회를 건축할 생각은 하지 않겠지요. 망령된 사람들을 하두 자주 보고 들으니까 저까지 정신이 오락가락 하네요. 이 글 읽으신 분들 정신 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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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 (124.137.16.161)
2010-03-05 14:15:18
나그네라는 자.....
대화의 기본적인 자세가 안되어 있는 분이군요.
반말찍찍에 협박성 맨트까지...
당신같은 사람이 바로 한국교회를 욕먹이는 당사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끄러운줄을 아세요..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개독"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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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31
AKD (122.44.97.59)
2010-03-05 09:45:35
평소 제가 헌금에 대해 생각하던 것과 일치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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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sogood (68.100.223.218)
2010-03-05 09:13:17
그러네요!
사도바울이 언급을 안했내요...
냄새가 나는건 썩고 있는건데... 한국 정통 교단이라는 집단들 이단 같애...
직분을 돈 잘내야 하는거 세상이 더 잘아는데, 왜 쉬~쉬~해 면죄부 파는것 같이...
집사가 썩으니 장로가 썩고 장로가 썩으니 귀족목사가 생기고 귀족목사는 건물짓고 사치하고
예수는 교회를 떠나고...
내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헌금봉투에 드리는이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말라 하셨는데...
한국교계가 타락한건 자기들만 몰라,,, 돈은 잘알면서.... 잘 쓰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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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38
나그네 (68.238.225.183)
2010-03-05 01:05:52
교회 직분은 함부로 남용하지 마라
그건 자네 생각이고!
그리고 장로라는 직분은 자네 같이 죽은 자들이 쓸만큼
쉬운 직분이 아니거든!

아무리 몰래 사용하는 필명이라지만 가려가면서 써야지!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그 직분을 필명으로 쓸려면
거기에 따른 댓가도 있다는 거 알고 있제?
그랑께 필명도 잘 가려 쓰라는 말이여!

성도한테 장로가 책망 받는거 보니 장로가 아닌거 맞네
교회의 직분을 함부로 도용하지 말거라
다쳐도 크게 다친다!....... 알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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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39
k장로 (96.244.40.85)
2010-03-04 22:21:00
十一條 獻金과 현대 기독교인.
무속신앙의 뿌리에서 자란 현대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해석할 知力이 부족하여 성경을 외면하고
牧使의 말에 목을 매는 무식한 巫堂교인들이 문제다. 牧使나 교인중에 80% 이상이 그런자들이고. 그런자들이 성경적 진리를 歪曲하며 먹고사는 패거리라고 보는 K장로에 견해입니다.
이러한 저질 牧使들이 神靈한 牧使까지 卑下식히고 매도하고있다는 正論을 견지하고.물러나는길만이 기독교가 살길이라고봅니다.깡패 목사들이 우굴대는 감리교회가 標本입니다. 하나님 ?어떻하조. 그들에게 詛呪를내리세요, 심판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셔야 해결납니다.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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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37
john (125.131.27.113)
2011-08-26 13:36:56
김장로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진짜 늑탈하는 이리를 고소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자유자재로 기복신앙 무속신앙으로 이끌고 성도들이 마음을 훔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발벗고 나서며 교회공금을 6억5천만원을 마누라 앞으로 돌려 놓고 펀드를 하다 제게 들통난 늑대 네이버창에 최동규장로를 한번 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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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6
나그네 (71.126.99.155)
2010-03-04 10:49:45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자에게
나는 한 마디로 이런 자들을 가증스러운 자들이라고 한다
영락없는 이단자들의 길로 행하기 때문이다

글 올린자가 말라기의 2장 13절을 인용했는데 제맘대로 앞 부분은 뚝 잘라서
없는 것 처럼 해놓고 마치 하나님은 예물을 안 받으시는 분으로
왜곡하는 글에 대하여 전혀 댓글을 쓸 필요를 못 느끼지만
하두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변질 시키는 것이 너무 가증스러워서
부득 불 쓸데 없는 잡소리에 또 시간을 소비한다.

왜 하나님이 예물을 안 받으신다고 했는가엔 대한 내용이
그 앞과 뒤에 분명히 있는데 기록된 말씀의 본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어떻게든 성도들을 속여 십일조를 내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더러운 마음이
자신을 속이고 성도들 속여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그 눈에는 3장과 4장은 안 보이는 것일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영락없는 여호와의 증인같은
어리석은 자보다 더 불쌍한자가 있을까 해서
또 시간을 내어 글을 올렸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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