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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예수의 길을 가는 기쁨이 있습니까?한국기독교연구소 주최 제7회 예수 목회 세미나 열려, 40여명 참가
이필완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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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2월 23일 (화) 15:43:48
최종편집 : 2010년 02월 23일 (화) 23:21:23 [조회수 : 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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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길을 가는 기쁨이 있습니까?
한국기독교연구소 주최 제7회 예수 목회 세미나 열려, 40여명 참가

   

2월22일 오후3시부터 24일까지 의왕 카톨릭문화센터에서 제7회 예수목회세미나가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준우 목사의 사회와 김경호 목사의 설교로 개회예배를 드리며 시작된 22일엔 향린교회 조언정 목사의 “예수의 길을 가는 기쁨”이란 주제강연을 시작으로 주제가 있는 자기 소개의 시간 등을 가졌다.

   

둘째날은 홍정수 목사의 “목회자 바울의 예수 믿는 기쁨” 특강, 예수 목회의 사례발표로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의 최철호 목사, 인천 내일을 여는 집 김영선 목사, 동면교회 박순웅 목사가, 세종대 김판임 박사의 “여성의 눈으로 본 신앙의 기쁨” 특강, 한인철 목사의 “삶을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사영리” 특강 등이 이어졌다.

셋째 날은 김기석 목사가 “예수의 길을 가는 기쁨과 목회”라는 발제를 한 후 김준후 목사의 사회로 발제토의가 열린다. 당당뉴스는 준비되는 대로 세미나에서 행해진 강연 동영상과 발제물을 연이어 게재할 예정이다. 이들은 예수목회가 목회자 자신의 행복과 구원을 지향하며 예수의 복음이 다시 교히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이틀 째는 좀더 넓은 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틀 째는 좀더 넓은 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JESUS MINISTRY SEMINAR
제7회 예수목회세미나 자료집

초대의 글

예수목회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 김 준 우 소장 / 한국기독교연구소


   

오늘날처럼 세계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고 기후가 붕괴할 정도로 인류문명 전체가 짙은 어둠과 절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때에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은 차치하고라도 감독회장 선거 문제처럼 사소한 문제조차 신앙적으로, 최소한 세상적인 기준의 합리성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한국감리교 사태의 근본 원인만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상 오늘날처럼 전세계적으로 기독교가 가장 급속도로 몰락하는 이유는, 1) 기독교의 교리들이 목회자 자신들에게만이 아니라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으며, 2) 기독교의 교리들이 살아낼 수 없는 언어들이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신학자 로널드 사이더가 미국의 "중생한 복음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들을 인용한 것에서 여실히 나타나듯이, 거듭났으며 성령충만하다는 사람들이 결코 비기독교인들보다 도덕적이지 못하며, 이혼, 아내구타, 헌금, 인종차별에서 훨씬 더 심하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몰락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교회성장을 주도해왔던 오순절교단들의 "성공과 번영의 복음"은 이제 세계경제가 고용없는 성장으로 바뀌게 됨으로써 그 수명이 다했으며, 최근 보도된 것과 같이 크리스탈 처치의 부동산 매각사태가 교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한 마디로, 한국의 기독교인 대다수를 사로잡고 있는 기독교 가치는 1) 4영리 교리에 바탕을 둔 저 세상 천국, 혹은 2) 부와 귀(성공), 그리고 건강이라는 3복이다.
기독교인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이런 신앙 안에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부재하거나 왜곡되어 있고, 오늘날 비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4영리 목회나 3복 목회는 공포의 심리학 혹은 욕심의 전술일 뿐,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입각한 기독교 본래의 복음은 아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목회(예수 목회)의 본은 공포가 아니라 자유에서, 그리고 경쟁적 욕심보다는 섬김과 연대에서 오는 큰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다음에서, 간단히, 목회의 3 패러다임을 비교해 본다.

예수목회는 무엇보다 목회자 자신의 행복과 구원을 지향한다.
둘째로 예수목회는 예수의 복음이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1) 말이 되는 복음, 2)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낼 수 있는 복음을 추구한다.


주제강연

예수의 길을 가는 기쁨


조 헌 정 목사
향린교회 담임목사

받아 본 주제 강연 제목이 도전적이다. 예수를 따르는 기쁨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발제 제목으로 내어놓을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기쁨은 하느님 나라의 가장 기본 속성이긴 하지만, 단어가 주는 1차적인 뜻은 개인의 호와 불호가 담긴 감정에 있다. 결국 이는 예수와 연결되어 있는 나의 개인의 삶에 한정되어 질 것이고, 그 기쁨이라는 것도 일반적으로 말하면 세상평가의 기초하고 있기에 나의 기쁨 이야기는 실은 내 자랑이 될 수 밖에 없다. 아픔을 얘기한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는 자랑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이번 예수세미나의 발동을 거는 주제발제이긴 하지만, 신학적 발제가 아닌 신앙적인 발제요 이성에 기초한 발제가 아닌 감성에 기초한 발제임을 밝히고자 한다. 아마 이 또한 주최측의 의도가 아닐까? 자칫 차가운 머리의 만남으로 흐르기 쉬운 모임을 뜨거운 심장들의 모임으로 방향지우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목회자들이 모였고,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발제자 또한 외길의 목회자로 살아왔으니 예수를 통한 목회의 기쁨을 회복하고자 함이라고 생각한다. 복음서의 예수의 이야기를 exegesis가 아닌 eisgesis로 곧 나의 삶의 이야기로 바꿔 풀이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가 그러하듯이 그 초점은 역시 하느님 나라이다. 하느님 나라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글쓴이에게 있어서는 ‘세속 가치에 저항하는 하늘 이야기’라 이해되고 이 ‘저항 이야기’는 목회 안에서는 때로 옛 것을 깨는 ‘도전’과 새 것을 만드는 ‘창조’의 이야기가 된다. 이런 시각에서 글쓴이와 예수와의 만남을 목회적 차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어느 정신병동에서 있었던 일이다. 두 환자가 서로 대화한다. ‘이상하다. 이 소설은 줄거리가 없다.’ ‘맞아 나도 읽었는데, 주인공이 없어. 등장인물들은 화려한데.’ 이때 간호원이 소리치는 얘기가 들린다. ‘여기 혹시 전화번호부 가져간 분 계세요?’ 이후의 얘기가 말은 잡다한데, 줄거리도 없고 주인공(예수)이 빠진 얘기가 될까 두렵다. 현명한 청중께서 손가락을 보지 않고 달을 보기를 바라고 질그릇 이야기 속에 담긴 예수를 보기를 고대한다.

[신앙 배경]

내가 예수를 접하게 된 건 예레미야의 고백과 같이 모태 안에서의 나의 형성 이전의 부름이요 하늘의 섭리이다. 유교가정에서 뛰쳐나와 목사가 되었던 할아버지의 기도 때문이었다. 나의 조부는 일제시대에 동경의 아오야마(靑山)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고, 40년간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 섬겨왔지만, 신사참배로 인해 작년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분이시다. 할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다가 7년 전 향린교회에 부임하면서 1943년도 장로교 총회 기록을 보게 되었고 거기에 서기 직함으로 대동아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자로 할아버지 석자 이름을 보게 되었다. 그래 부임하던 해 815 해방주일에 공개적으로 할아버지의 친일 죄책고백을 하였다.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향린교회에 부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님과 고모님이 생존해 계시기에 손자 혼자서 나설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나의 운명적 목회 길에는 기쁨과 아픔이 함께 뒤섞여 있다. 이는 바울이 은혜의 통로라고 고백하는 바 나의 ’육체를 찌르는 가시’와도 같다.

할아버지의 40년 기도 가운데 가장 첫 번째 제목이 ‘대대로 10대 이상 목사가 있게 해 달라’였다. 유교가정에서 자라 그 전통과 가르침이 몸에 배었던지라 성서의 말씀을 내면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지라, 기독교집안 10대쯤 내려가면 성서의 말씀이 그 피에 배어있는 참 목회자 한사람쯤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여기에는 당시 서구화를 구원으로 이해하는 막연한 동경 또한 숨어 있다고 본다.) 그래 작은 아버지가 목사가 되시었고, (큰아들이었던 아버님은 군에 오래 계시어 그런 기회가 없었다.) 할아버님이 병으로 돌아가시자, 다른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작은 아버지를 불러 2대 담임목사로 청빙을 하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한 청빙이니까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세습과는 차이가 있고, 작으마한 농촌교회였으니 교회 권력과도 동떨어진 문제였다. 지금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시 교계신문이 이를 아름다운 청빙으로 1면 전체에 걸쳐 매우 자세하게 다루었다. 작은 아버님은 70년대 기장 전남노회장으로 있으면서 박정희독재를 비난하는 성명서 사건으로 1년간 옥살이를 했고, 출옥 후에는 중앙정보부의 계략으로 교회가 양분되었다. 조부님이 시작하신 교회는 제일교회로 작은 아버님이 시작하신 교회는 제이교회로 한 노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작은 아버지는 교회 분열의 아픔 때문인지, 옥살이가 원인이었는지, 50대 중반에 치료는커녕 병명도 알지 못한 채 갑작스레 돌아가시었다.

이러한 가정배경으로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소위 말하는 하느님께 바쳐진 종이 되었고, 교회는 어려서부터 나의 삶의 일부였고, 미션스쿨 중학교 1학년 때 장래 희망난에 유일하게 목사라고 적었다. 당시는 목사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학생들도 많았다. 물론 이후 목사 이외의 직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목사를 할 수 있을는지에 대해 고민은 많았고, 반항아적인 기질도 많아 나의 목회 길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일이지만, 신학교 2학년 때는 신앙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실존의 나락을 경험하면서 일 년 가까이 회의와 방황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 목사직에 대한 상당한 부담을 가졌었고 결국 목사 안수는 이후 미국에 가서 34세에 받았다.

[역사와 사회에 눈뜸]

고등학교 1학년 때 박정희의 3선 개헌이 있었고, 고대생들의 거리데모를 자주 목격했던 고등학생 학생회는 당시 고등학교 최초의 거리데모를 기습적으로 일으켜 신설동에서 동대문까지 구호를 외치며 뛰어갔던 적이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선배들로부터 학습을 받으며 역사와 사회에 조금씩 눈뜨게 되었다. 그리고 한신 입학과 더불어 공포된 유신헌법은 결국 4년 전 과정을 독재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 반독재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김재준, 함석헌, 문익환, 안병무, 문동환 교수님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이분들의 얘기를 듣는 일은 예수를 따랐기에 받았던 최대의 기쁨이다. 사상계 씨의 소리 현존 제삼일 등의 잡지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당시 정부는 한신대의 폐교를 목표로 할 정도였으며, 난 운동권은 아니었고, 그저 참여하는 정도였다. 학교 밖 NGO 활동에 주력하였고, 까뮈와 키엘케고르의 실존에 함께 고민하고 짜라투스트라와 마르크스에 호감을 느끼며 마시고 연애하는 일에 열중하던 한 젊은이였다.

그러다가 3학년 때 기숙사에 한 학기 머물던 시기가 있었고, 어느 날 밤늦게 들어가자 데모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래 당시 교문을 사이에 두고 돌과 최루탄을 주고받던 투쟁을 거리기습데모로 하자고 제의를 하고 이게 받아들여져서 새벽의 어둠을 타고 기숙사 뒷문으로 삼삼오오 빠져나가 아침 9시를 기해 동아일보 사옥 앞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당일 유인물을 품에 넣고 정문으로 나가며 담당형사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탔다. 약 60명이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친 광화문 거리기습 데모는 불과 20여분 만에 끝났지만, 매우 효과적이어 긴급뉴스를 탔고, 주동으로 몰린 두서너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이 한 달 구류를 살았다.(순진하게도 당시 경찰이 몰려오자 도망가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늦게 나타난 친구들이 떠나가는 경찰 트럭에 달려 올라타는 끈끈한 동지애를 보이기도 했다.) 이날의 거리시위는 그 이후 대학가에 번진 기습거리시위의 효시였다고 본다. 이렇듯 한신대 4년간의 독재와의 투쟁은 그 이후 나의 신앙과 신학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물론 함께 했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현재 나와 같은 자리에 있지는 아니하니, 이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군복무와 이민]

신학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생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아버님은 약사자격증으로 미국이민을 신청했고, 이게 허락이 되어 가족은 떠나고 나는 군입대를 하였다. 당시에는 초청장이 오면 조기 제대가 되던 시절이라 3개월 예정으로 입대한 군생활은 입대 후 법 개정으로 만기제대로 이어졌다. 전방 보병대대의 유일한 대학생 졸업자로 사단 연대 대대 중대에서 행정병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손길이 이를 막아 철책선에서 말단 소총수로 근무했다. 추운 겨울날 북녘 땅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보초를 섰던 경험들은 지금도 내 안에 보이지 않는 (민족의) 한으로 남아 있어 때로 불쑥불쑥 솟아나오곤 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것 또한 은혜요 섭리이다.

3년 늦게 미국에서 가족과 합류한 나는 얼마 있지 않아 박정희 암살의 얘기를 듣고 이어 광주민주항쟁의 뉴스를 접하게 된다. 당시 나는 아침저녁 두 개의 일터를 갖고 있었다. 낮에는 햄버거를 굽고 저녁에는 인쇄공으로 최저임금 노동자 신세였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우리 가정은 잘못된 선택으로 식당 인수 6개월만에 파산을 하게 된다. 그래 그간 전 가족이 피땀 흘려 모아놓은 전 재산인 집과 자동차와 TV를 포함한 가구 일체를 압류당하고 가족은 흩어지게 된다. 동생들은 학교기숙사로 나는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뉴욕으로 갔다. 그런데 이 와중에 우리 가족은 4인조 권총강도를 만나 한 달 가까이 번 돈을 빼앗겼다. 상당히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목숨을 건진 것 또한 기적이요 은혜였다. 이때 내 목숨을 살린 것은 부활절 성가곡이었다. 그리고 파산 또한 하느님의 은혜였다. 왜냐하면 만약 그 가게가 계속 유지되었더라면 홀로서기가 힘든 50대 중반의 부모님을 떠나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뉴욕에 도착한 한 칸짜리 지하에서 살림을 시작하여 낮에는 인쇄공 일을 하며 밤에는 유니온신학교 입학을 준비하였고, 2년 후 M.Div. 과정 첫 한국인 학생으로 입학허가를 받게 된다. 당시 유니온을 비롯한 하바드 예일 프린스톤신학교에서 미국 대학 졸업증이 없는 학생을 받아들인 경우는 없었다. 1,2년 석사과정을 통한 박사과정 입학은 여럿 있었지만, M. Div 과정은 처음이었다. 이는 민중신학이라는 한국적 해방신학이 소개되는 시점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광주의 장면이 핏빛으로 물든 광주민중항쟁의 기록영화를 보며 남한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과 사회적 정의감은 불타 올랐다. 뉴욕과 워싱톤에서의 민주청년단체와의 연대활동, 그리고 목요기도회 활동과 해외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선봉이었던 북미기독학자회 참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며 평화운동의 틀을 다져갔다. 독재항거투쟁이라는 한신대에서의 거리수업은 유니온신학대에서 남미해방/흑인/여성/민중신학이라는 다양한 제3세계 신학에 눈뜨게 된다. 이는 위로부터의 신학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신학, 서구 책상머리에서 읽는 방식이 아닌, 역사 밑바닥 사람들 곧 하비루의 시각으로부터 성서를 읽어내는 눈을 의미한다. 동시에 전태일평전을 비롯하여 남한의 문제 있는 사회 역사 서적들을 꾸준히 읽어나갔다.

6년간의 뉴욕과 뉴저지에서의 전도사와 부목사 생활을 거쳐 20여명의 개척교회와 다름없었던 워싱톤의 한 이민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였다. 흑인들을 대상으로 작으마한 소매가게들을 운영하며 하루 15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한인 이민자들, 언어의 어려움과 문화차이와 인종차별, 거기에 다수의 불법체류라는 심리불안으로 인해 저들은 당연히 교회에 오면 위로의 얘기를 듣고 싶었고, 맘몬 축복의 얘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러니 저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와 성서가 외치고 있는 갈릴리 해방의 이야기 사이에는 메꿀 수 없는 깊은 간격이 있음은 물론이다.

물론 한 교회에서 16년을 있는 동안 성장도 있었고, 미국장로교 공식으로는 미국교회와 한인교회가 통합하는 최초의 교회의 담임목사와 동양인 목사로서는 최초의 워싱톤 수도노회장의 영광도 누렸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개인성공과 교회성장을 꿈꾸는 교인들과 목회자가 추구하는 사회 정의와 평등 실현이라는 갈릴리 예수 운동 사이에 일어나는 길의 갈등이 때로 당회와의 마찰이라는 목회갈등으로 나타날 때에는 차라리 목사직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실제 나는 그때마다 담임목사직의 끈을 놓았다. 그러면 하느님은 교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나를 구원하시었다. 지금도 “주님 뜻대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이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목회뿐만이 아니라 삶 자체의 끈까지도 말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를 따르는 자의 진정한 기쁨이 아닌가 생각한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는 이 진리 안에 기쁨이 있는 것이다. 이 기쁨은 영원과 부활에 대한 신앙에 뿌리 박고 도전과 창조의 정신이라는 열매를 만들어 낸다. 미국장로교회에서 배웠던 민주적 절차와 소수자 배려에 대한 신앙정신은 향린교회에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갈릴리의 외침]

예수목회란 한마디로 갈릴리의 외침이다. 예수는 갈릴리에서 활동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죽었다. 갈릴리는 소외된 곳이자 착취당하는 곳이었으며 동시에 혁명가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혁명가는 그 꿈 때문에 세상 권세가들에 의해 죽는다. 가끔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성공이 아니다. 혁명가는 죽음을 전제로 하기에 이미 죽은 것이다. 예수는 세상의 평온을 깨고 기득권자들의 구조를 위협하는 민중봉기의 혐의자로 그리고 신성모독죄로 고발당해 당시 로마제국을 반대했던 정치 게릴라들만 처형하였던 십자가형을 받아 죽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회가 예수를 따르는 곳이라면 권력자들로부터는 민중봉기의 장소로 불온시 여김을 당해야 하고 종교권력자들로부터는 신성모독을 한다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물론 이 신성모독이란 금관의 면류관을 벗겨내는 작업이며, 하느님을 아빠(‘아바’)라 부르고 스스로를 ‘야훼’(ego eimi)로 명하신 그 모독이다. 교회는 율법의 이름으로 민중의 삶을 옥죄이고 제사의 형식으로 야훼를 가두어버린 종교의 체제를 부수고 깨우침의 몸 성전을 세우는 곧 진리의 자유가 흐르는 곳이어야 한다. 요즘은 모두가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체제와 건물세우기를 예수 따르기의 성공으로 왜곡하고 있다.

3년 전 기독교사상에서 정용섭목사의 ‘설교비평’과 나의 반론으로 설교의 사회정치적 담론에 대한 논쟁이 공론화되었다. 물론 이는 그간 종종 있어왔던 개인영혼구원과 사회 구원에 관한 신학논쟁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했지만, 그간의 논쟁이 조직신학의 장에서 이루어졌다면, 정목사와 나의 논쟁은 성서해석 곧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에 관한 논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정목사는 판넨베르크 신학을 전공한 조직신학자였고, 나는 민중신학적 입장을 견지한 성서신학자였기에 논쟁의 초점은 약간 달랐다.) 그 이후 나의 사회정치적 성서이해는 재작년 광화문의 촛불과 함께 타오른 예언자 연속 하늘뜻펴기(설교)를 하도록 하였고, 이는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 : 예언자와 시대정신”이란 책 발간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이 땅을 살다간 작은 예수들’이라는 연속 하늘뜻펴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김재준 문익환 함석헌 유영모 안병무 최병헌 길선주 손양원 안창호 이승훈을 거쳐 오고 있다. 예배라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서 외쳐지는 하늘뜻이기에 여러 가지 제약은 있지만, 민족과 평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살아갔던 신앙선배들의 삶의 이야기는 교인들이 공감하는 생생한 하늘뜻펴기가 된다.

[향린교회 이야기]

이제 7년째 몸담고 있는 향린교회에서의 목회와 그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향린교회는 1953년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미소의 분단정책으로 인한 동족상잔인 625전쟁 휴전을 두 달 앞둔 5월 17일 7가정 안병무 홍창의를 비롯한 14명의 회원으로 시작하였다. 이들은 서울대문리대 시절부터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는 새로운 교회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기독교운동을 함께 해오던 신앙동지들이었다. 저들이 애초에 품었던 교회의 모습은 일반 교회가 아닌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초대공동체였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당시 자신이 펴내던 ‘야성’이란 잡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도 만일 그대로 있다가는 남을 구하기는 고사하고 자신들이 그 사태에 휘몰려 갈 것 같았습니다. 우선 우리가 탈 방주, 그리고 우리와 인연이 된 이들을 건질 방주를 만들자! 그리고 남은 무리들에게도 이것을 권해서... 절망한 저 무리들에게 살 수 있는 산 모델로서 보여야겠다.... 우리 교회는 남을 위하기 전에 스스로 살고 싶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산다는 일은 이웃을 사랑하여 구한다는 일과 유리될 수는 없었습니다.

창립자들은 오랜 성찰 끝에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예수 사후 제자들이 품었던 ‘절박한 종말의식’을 갖고 신앙공동체를 시작한 것이다. 수도원적인 생활을 하는 평신도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다른 교회에 모범과 대안을 보여주고 각지에 이와 비슷한 형태의 공동체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어난 많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통해서 기존교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오늘의 향린교회가 되었지만 창립자들이 창립 당시에 의도했던 것은 일반적인 형태의 교회는 아니었다. 특정 지역에 교회의 필요성이 있어 생겨난 교회도 아니었고, 목회자 한 사람이 교인들을 끌어 모아 설립한 교회도 아니었다. 향린공동체는 신앙운동을 하던 젊은 신앙동지들이 한국교회 개혁에 이바지한다는 원대한 이상을 품고 합의된 이념 아래서 목적의식적으로 창립된 교회였다. 향린교회의 창립정신은 공동체교회, 입체적교회 ,평신도교회 그리고 독립교회이다. 이 정신이 어떻게 이어오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공동체교회]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모습이 실제 얼마나 충실하게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저자 누가의 문학적 소행(?)으로 본다면 어쩌면 이는 누가 자신의 이상을 담은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글쓴이의 중학생부터 가졌던 목회의 꿈도 그러하지만, 많은 교회들은 이 초대공동체의 모습을 교회의 본질적인 이상으로 여긴다.

일제시대에는 고급요정으로 해방 후에는 향린원(香隣院)이라는 고아원으로 사용되던 적산가옥 점유권을 갖고 있던 분이 이들의 기독교 공동체 정신에 매료되어 이 장소를 흔쾌히 내어준다.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삶은 대략 3년 반 정도에 그치고 만다. 이유인즉 처음에는 전쟁 직후 모두가 빈손이라 괜찮았지만, 직업의 수입이 다르고 자녀들이 자라면서 공동소유와 분배라는 이상은 벽에 부딪히게 되었을 뿐더러, 새로운 개혁운동에 찬성하는 분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교회 안에 살아가는 교인들과 교회 밖의 사람들과의 구별이 생기고, 이후 창립자들이 대부분 유학을 떠나게 되어 이 꿈은 더 이상 실천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럼 이 공동체 정신은 오늘 향린교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는가? 지금도 교회라는 말보다는 공동체라는 말을 더 선호하며 일반교회와 같이 신도회, 부서회, 구역조직이 있지만, 여기에 덧붙여 지난 5년 전부터 평화나눔공동체라는 나눔과 실천을 함께 지향하는 별개의 모임을 시작하였다. 이를 열거해보면 1. 농촌/환경: 자립형생태마을 공동체를 꿈꾸며 지난해에는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자매교회인 완주 들녘교회에 태양광발전기를 세웠고, 생명소강좌와 국내 여러 마을공동체를 탐방. 2. 나간이: 장애독거노인 목욕봉사 3. 여성인권: 댄스테라피, 스토리텔링 등의 학습모임과 일본 위안부 제도 규탄 수요모임 등을 주관. 4. 독거노인 반찬 만들기: 적십자사와 연계하여 매주 30여명의 일주일분의 반찬 제공. 5. 역사와 사회의 비판적 탐구 6. 통일: 사격장 확장으로 주민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는 무건리 주민들과의 연대활동, 민통선 방문 등 7. 신앙과 문학 8. 신앙과 과학 9. 생활공동체: 함께 모여 사는 도시공동체를 지향. 이외 평화, 문향, 우리가락찬양팀 등의 소모임 활동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국과 미국의 부루더호프공동체, 불란서의 떼제공동체, 스코트랜드의 아이오나공동체와 세이비어교회를 찾아 머문 경험들이 교회공동체 정신을 세워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며 목회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입체적 교회/사회선교]

창립교우들이 추구했던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잠깐 교회 나와서 한 시간 예배보고 설교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교회가 아니었다. 자기 삶의 일부분만을 바쳐서는 올바른 신앙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체험에서 비롯된 확신이었다. 교회에 와서는 매우 경건한 사람도 사회생활에서는 비기독교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회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단 몇 시간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성서공부를 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는 없었다. 신앙운동은 전 생애를 바쳐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쳐서 선교하려면 자기 생업을 통해서 선교하는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입체적 교회라는 창립정신은 교인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선교에 헌신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세상 안에서 서로 만나 함께 하느님 나라운동을 펼쳐가는 것을 의미한다. 초창기에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지역에 의료선교를 시작하였고 거암교회를 세웠다. 이 의료선교정신은 이후 서울대학병원에 교회를 세우는 일로, 그리고 이주노동자의료를 담당하게 된다. 한때는 교회성장에 힘써 강남으로 이주하여 중대형교회로 나아가려는 초대정신에 어긋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이는 결국 교회분열이라는 아픔을 낳았다.

입체적선교 정신은 7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 섰던 안병무교수와 90년대 홍근수목사의 구속으로 인해 민족통일을 지향하며 독재에 저항하는 정체성으로 자리잡게 된다. 담임목사가 국가보안법의 죄목으로 1년 반을 사는 기간에 향린교우들은 출애굽 해방과 갈릴리의 민중운동을 오늘에 재현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87년 6월 민중항쟁의 시작이 되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기습적으로 향린교회에서 결성되었고 이후 도시산업선교를 비롯한 여러 민중교회들을 지원하였고, 노동야학운동과 사회적 약자를 돕는 ’사마리아 봉사단‘을 창설하게 된다. 또한 15년째 전주에 있는 들녁농촌교회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도농연대선교활동으로 이어오고 있다.

오늘에 이르러 이 정신은 그 틀이 바뀌어졌는데, 1년에 한두 차례 ‘평화예배’라는 이름으로 평택 대추리, 파주 무건리, 4대강 걷기, 용산참사 등 아픔의 현장에 가서 주일 예배를 드리는 일로, 사회의 초점이 되었던 효순미선 촛불항쟁과 2년 전 시청 앞 촛불모임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정치적 일에 서명운동과 거리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2년 전 MB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촛불운동이 차단되었을 때, 향린교회 자체의 노력으로 10월부터 평화목요기도회를 시작하여 교회에서 찬양과 기도의 시간을 가진 다음 촛불을 들고 을지로와 광화문과 시청을 도는 거리기도회를 가졌었고, 이는 이후 매주 목요일 저녁 아픔의 현장을 찾아가는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합류하였다. 이 모임은 작년 용산참사 현장을 지켜온 개신교의 주체로서 실제적으로는 가톨릭의 정의평화 사제단의 활동을 능가하는 활동을 펼쳤다.

현재 교회 건물 외벽에는 3개의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어 이곳을 지나가는 많은 신앙인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가운데에는 ‘평화를 심어 정의의 열매를’ 양쪽에는 ‘국가보안법 폐지’ 그리고 ‘미군기지확장저지’를 이어 ‘한미FTA 반대’가 쓰여 있다. 많은 경우 이러한 공개적인 발언이 교회성장을 위축시킬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공감하는 신앙인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보수기성교회의 가르침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려고 마음먹었던 진정한 예수따르미들이다. 그래 이들은 향린교회를 ‘막장교회’라고 부른다.

[독립교회와 평신도교회]

독립교회란 교단에 소속하지 않겠다는 말이고 평신도교회란 교회의 주체를 평신도들로 하겠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두 정신은 실천에 있어 서로 맞물려 있다. 1953년 625전쟁 중에 대구에서 보여준 장로교회의 분열과 그 이후 계속되는 비난과 분열을 보면서 창립교우들은 담임목사를 두지 않고 스스로가 교회의 주인이 되며 어느 교단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건물과 대지를 소유하고 있었던지라 교단에 가입하지 않고서는 종교세 혜택을 피할 수가 없어 의논 끝에 7년 만에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하게 된다. 그러나 기존 교회와는 달리 담임목사를 두지 않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를 21년 동안 유지하게 된다.

오늘에 있어 독립교회라는 정신은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소속한 교회로서 여러 의무를 다하지만, 동시에 교회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총회 헌법에 위배(?)하는 정관을 정하고 이를 행하고 있다. 첫째는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 외에 목회운영위원회라는 각 기관대표들로 구성하는 조직을 통해 교회의 행정에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토록 하고 있다. 현재 24명인데 이에는 대학생도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고등학생까지 참여를 모색하고 있다. 둘째는 담임목사와 장로 임기제이다. 목사는 7년 임기에(6년 시무 1년 안식년) 중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장로는 6년 임기에 중임제한은 없으나 1년 휴무기간을 거치고 재선출 과정을 거쳐 재임이 된다. 셋째는 여성장로 3분지 1을 이상을 두도록 한 규정들이다.

이러한 독립교회로서의 개혁운동은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교회갱신선언서에 따른 것이며 이중에는 교회성장을 제한하는 규정도 있다. 일정수준이 넘으면 분가를 한다는 원칙하에 17년 전 강남향린교회를 분가시켰고, 5년 전 강남향린교회에서 들꽃향린교회가 분가하였다. 향린교회 또한 분가선교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분가를 준비하고 있다. 이외 평신도교회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글쓴이의 부임과 더불어 평신도 하늘뜻펴기(설교)를 일 년에 여러 차례 진행하고 있으며, 목사의 전유물로 여겨온 축도를 교인들과 함께 손을 잡고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을 함께 나누는 ‘평신도 축도’를 시작하였다.

[민족민중교회]

끝으로 향린교회 이야기를 마침에 있어 중요하게 언급하여 할 부분은 민족민중교회로서의 활동이다. 민족의 아픔과 함께 하고자 했던 창립 교우들의 정신은 오늘에 있어 민족화해와 통일운동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1993년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통일공화국 헌법은 지금도 교우들의 민족공동체의 청사진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매년 625를 맞아 남북나눔헌금을 약정하여 매주 이를 드리고 있다. 또한 사순절을 맞아 ‘민중의 아픔과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아픔의 얘기를 듣고 연대하는 활동을 하여 왔으며, 최근에는 이웃종교와의 대화 모임을 3년째 진행하여 오고 있다. 첫해에는 불교 유교 원불교 가톨릭 이슬람교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가르침을 들었고 지난해에는 ‘이웃종교의 죽음 이해’라는 주제로 올해는 ‘이웃종교의 수행’이라는 주제로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외 1993년 40주년 교회개혁실천 운동의 하나로 발표한 ‘민족문화 수용’이라는 주제를 안고 고민해오던 교회는 ‘예향’이라는 국악단을 발족시켜 꾸준한 활동을 하여온 결과 지금은 230곡이 넘는 ‘국악찬송가’를 통해 기존의 서양음악과 함께 예배를 드려오고 있다. 보통 10개의 찬송과 음악이 예배 중 불리는데, 그중 7,8개는 국악찬송가로 불리고 있다. 특히 시편낭송을 원래 성서 정신에 따라 국악가사와 음악에 맞춰 사회자와 교인들이 노래로 드리고 있다. 모든 교회가 국악으로 예배드리는 그날을 꿈꾸면서 매년 ‘국악예배 컨퍼런스’ 혹은 ‘우리가락으로 예배드리기 배움 모임’을 진행하여 오고 있다.

끝으로 예수를 따르는 목회자로서의 기쁨은 향린교회 안에서 뿐만이 아닌 나의 개인의 삶에서도 얻고자 노력한다. 4년 전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어느 날 경찰들이 농수로 차단을 하기 위해 출동했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차를 몰고 현장으로 갔다. 한편은 천명이나 되는 무장경찰과 용역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주민 3,40명에 평화지킴이 2,30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얼마 후 갑자기 경찰들은 젊은이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내 앞의 젊은이를 끌고 가는 대여섯명을 가로막다가 나 또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이 되었고, 3일 구류를 살면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지문날인거부로 인해 육체적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날 예배를 마치고 수십 명의 교인들이 광주경찰서로 오시어 그 자리에서 함께 손을 잡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던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백번의 설교보다 한 번의 몸설교가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이후 3년동안 300만원 벌금에 대한 정식재판을 진행하여 지난 11월 대법 기각으로 벌금 55만원 최종판결을 받았다. 자본주의와 패권주의에 대항하여 평화운동을 하던 사람이 국가권력으로부터 받는 어려움을 돈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 논리에 굴복하는 일이라 신앙 양심에도 어긋나고 예수의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라는 제3의 평화의 길(‘윙크’)에도 어긋나는 길이라, 이를 거부하고 지난 1월 중순 서울구치소에 들어가 11일을 보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땅 민초들의 한 맺힌 삶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목사 신분을 밝히지 않았기에 교회를 대놓고 저주하는 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전과자요 돈이 없어 벌금을 몸으로 때우고 사는 사람들이다. 교회가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지 현재로서는 요원하다. 대학 1학년 때 학생신분을 속이고 대성목재에서 한 달 노동자로 지낸 적이 있었는데, 민중들의 삶을 보는 경험은 목사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가 바라는 목회를 못하고 있으니 도대체 자랑할게 하나도 없다. 실제는 흉내도 못내는 사람이 이 자리에서 기쁨 운운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가식도 없다.

최근 민중신학 토론에서 중진국의 자리에 올라간 남한 사회에서 민중‘은 ’다중‘의 개념으로 바꿔서 이해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갈릴리의) 민중이 존재한다. 2만 불에서 4만 불로 국민소득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민중은 존재한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그리고 세계사의 눈으로 본다면 남북으로 허리 잘린 우리 민족 전체가 한의 ’민중‘이다. 개인으로서의 민중 개념뿐만 아니라 민족으로서의 민중개념도 필요하다.

예수가 보여준 진리의 길, 그 길을 따르는 일은 그게 기쁘다 슬프다 고난에 찼다 라고 정의되지 않는다. 그냥 거기 길이 있어 가는 것뿐이다. 다른 길은 모르니 비교할 것도 없고, 고민할 것도 없으니 그게 기쁨이라면 기쁨이라 할 것이다. 발제자가 좋아하는 목회에 대한 정의는 “목회란 하느님의 모험을 잘게 쪼개어 재시도하는 것”이다. 질그릇은 그냥 질그릇일 뿐이다. 그저 쓰임받기를 기다리며 빈 마음으로 살아갈 뿐이다. 어설픈 이야기 들어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특강 Ⅰ

목회자 바울(그리스도의 사람)의 예수 믿는 기쁨
<복음>을 안 사람, 만든 사람, 산 사람, 그러나 잃게 한 사람(어려워!).


홍 정 수 박사
한아름교회 공동목사, 갈릴리신학대학원


1. 그는 기쁘게 살았다. 그런 (강한) 자_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빌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Always be joyful!

2. 그러나 그의 기쁨은, 통속 심리학이 말하는,
행복, “자기_만족”은 결코 아니었으며,
성취감에서 오는 황홀함도 아니었다!

들어가면서
나는 자격이 없다. 그렇게 살지 못한다. 살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예수를 아는 데는 <자료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바울에 관한 한 자료가 충분하다(7권// 롬, 고전ㆍ후, 갈, 살전, 빌, 빌). 그리고 이것들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기준으로 한다면, 기독교 최초의 증언이다. 따라서 복음서들과 그 외 신약 문헌들을 읽는 것도 바울 서신의 시각을 참조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親바울이든 反바울이든. 그 영향권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3. 그는 기쁨의 사람이었고, “기뻐하라”고 가르쳤지만, 심각한 환란 속에서 살았다. 그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사람!
** [고후 1:8]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힘에 겹게 너무 짓눌려서, 마침내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 [고후 7:5]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의 육체는 조금도 쉬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난을 겪었습니다. 밖으로는 싸움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4. 열등감의 사람이었다.
[갈 2: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갈 2: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고전 15장]
[고전 9:1]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5. 육체의 가시가 떠나지 않았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고후12:11-13]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6. 교인들의 신속한 배신을 안타까워하다!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7. 예수(의 십자가) 때문에 그가 개인적으로 얻은 것
<예수 죽음의 십자가>
그 율법(옛 종교)의 마침(죽임)
세상을 죽임, 내 안의 세상을 죽임
약자 우선 공동체(새 가능성 발견)/자랑 거리 _ 환란을 이김

[고후 7:4] 나는 여러분에게 큰 신뢰를 두고 있으며, 여러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나에게는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고후 8:2]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죽음을 이미 죽임_은총의 발견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Phil. 1:24] "To die is gain."

8. 바울의 한계
1) 언어의 심각한 모호성__ 아이러니(율법, 믿음, 행동, 사랑의 역학 관계)
2) 다른 즐거움들(세상) 몰이해, 너무 쉽게 부정
3) 미래의 소망에 대한 기대 너무 크다! (고전15장, 위험!)


9.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1) 세상, 허영, 죽음을 이긴다? 예수의 십자가로!
2)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거짓 종교(복음) 극복
3) 십자가라는 <복음>의 재발견! (신의 자녀, 백성의 특권)

<바울의 기쁨, 분석하여, 다시 이해하기/ 부록>
Types and Colors of Pleasure

   


                                                (칙센트.미.하이_이, “흐름” 이론, Flow Theory)

1. 도전 / 고통 감내 수준, <넘어서면> <버거워! 겁나!>
2. 도전 / 고통 감내 수준, <미달이면> <지루해! 한심해!>
3. 맞으면, 재미 있어. 몰아_삼매 지경!

그렇다면, 좌우당간, 행복_재미는, <나>를 둘러싸고 발생한다.
따라서 <자아_세계>의 각축전이 있는 한, 죽음의 쏘는 독은 제거되지 않는다!
바울은 나를 죽이고, 내 안의 세계를 또한 죽였으며,
내 안에다 새 존재, 새 삶, 새 마음, 그리스도를 모셨다.
그에게는 내_죽음이 이미 사라진, 탈아적 세계에서 살았다.

다음은 나_세계의 관계를 중심으로 본, 즐거움의 유형과 색깔
A형 - 아상 중심, 세계를 내 목적의 발판으로 & 먹이로 이용한다. _着我적 (트로피)
B형 - 나를 잊는다. 내가 없으니, 세상도 없다. 삼매지경/沒我경 (황홀경)
C형 - 자아_의식 충일하나, (신)세계를 돌본다. 脫我)_혼연 일체감 (소망 중에 즐거워함)

Pleasure, 3 Types & 3 Colors
A _Red (anti_Life) B_ Gray (x_Life)C_Green (pro_Life)

“종교적”(거룩한) 즐거움이란, (돈 큐핏, 한스 큉의 견해 수용)
내 즐거움을 타와 공유할 수 있고,
공유할수록 그 즐거움이 증폭되며(예, 잔치집 & 경기장 축제 분위기)
그래서 타를 (이용, 배재, 억압이 아니라), “초대”한다. 하여,
평화를 상징하는 현대적 색깔, “그린” 즐거움!
바울은 자기_만족, 성취, 자기_완성, 정복, 몰아(자기_도취), 그런 즐거움을 누린 게 아니었다.

특강 Ⅱ

여성의 눈으로 본 신앙의 기쁨


김 판 임 박사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1. 도입

신앙이란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뢰하고 우러러 보는 신앙인들이란 참으로 비범한 사람일 것입니다. 남다른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보다 종교적 감성이 풍부하고, 남보다 종교적 통찰력이 탁월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마도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신앙인의 기쁨,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신,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인 신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그분의 계시를 받고, 그분의 손길을 느끼며 살아가는 기쁨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신앙의 기쁨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뭐 그리 다르겠습니까?
예수 목회 세미나에서 제게 이러한 제목을 주신 걸 보면, 여성은 신앙의 기쁨이 다를 거라고 확신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해보았죠. 뭐 다를 게 있을까 하구요. 남성도 사람 나름이고, 여성도 사람 나름이어서 개개인이 모두 다른 경험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 개인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이화여대에서 신학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어릴 적부터 다녔지만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신학”이라는 학문 영역이 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인문학으로서 철학이나 문학은 알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화여대 인문대학에서 전공 선택을 앞두고 고민 고민 끝에 기독교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허혁 교수를 통해 불트만을 많이 공부했고, 그의 실존론적 해석이 당시 무척 끌렸습니다. 독일, 그것도 독일 신학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괴팅엔 대학에서 수학을 했습니다. 그곳은 종교사학파라는 신학전통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하이트뮬러, 부세, 브레데, 바이스 등등의 20세기 기라성같은 신학자들이 괴팅엔에서 수학하고 교수하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12년 반, 25학기를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도 마쳤습니다. 어떤 글은 쉽게 이해되기도 하지만, 어떤 학자의 글은 이해가 안 되어 수없이 책을 던져버렸다가 다시 잡아 읽곤 하기도 했습니다.
독일어 실력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 왜 이해하기 어려운 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경험들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깨닫게 되는 사실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나(=해석자, 설교자)의 삶의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지금은 미국발 세계화의 물결이 지구 전체 여러 나라들에게 파급되고 있어서 세계가 어느 정도 동일한 문제 앞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유학 가서 공부하던 당시만 해도 독일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다른 삶의 현장에 있습니다. 당시 용어로는 제1세계, 제3세계 라는 말로 표현되었었죠. 그리고 그들이 겪은 역사가 우리와도 다르고 그래서 사고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곳에서 유학하면서 배워야 했던 정당한 이유는 그들이 제기한 신학적 문제들이 이미 세계 어느 누구보다도 선두적으로 앞섰기 때문입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한국사회에 살면서 신학을 합니다. 성서 연구를 합니다. 설교를 합니다. 그러면서 생기는 신학적 물음, 실존적 물음을 놓고 해답을 찾자면 세계적인 대가들이 제시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합니다. 그때 제게는 보이는 안목이 있죠. 그리고 생각되는 것은 그 세계적인 대가들이 제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주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남자였기 때문에, 혹은 독일인이기 때문에, 혹은 20세기 인물들이기 때문에 문제의식이 나와는 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저, 한국의 여성으로서 그리고 20세기 중후반에 태어나 교육을 받고 21세기를 걸친 시대에 살기 때문에 남들이 간과할 수 있는 것을 보게도 되고, 남들에겐 아무 문제도 아닌 것이 제게는 소중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 중 한 두 가지 만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2. 여성의 눈으로 본 성서 해석과 설교

1) 마르다와 마리아(누가 10:38-42)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최고의 기쁨을 붙잡으세요.


38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38-42)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은 세 사람, 예수와 마르다, 마리아입니다. 대화는 예수와 마르다 둘만 하고, 행동의 대조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는 자매의 대조적인 행위에 대해 평가하는 인물로 나타납니다. 두 자매의 행동의 대조와 이에 대한 예수의 평가가 이이야기의 핵심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학자들과 설교자들에 의해 인지되었습니다.

1) 기존의 전통적인 이원론적 이해
사랑하는 분을 손님으로 초대하여 음식 대접하느라 분주한 마르다와 예수의 발치에 앉아 예수의 말에 경청하는 마리아의 대조를 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파악한 후 곧바로 이 둘의 대조를 이원론적으로 대립시켰습니다. 마르다는 먹는 일을 위해 번잡스런 일을 하고,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명상한다며, 마리아의 행위는 일상사의 물리적 욕구를 걱정하는 자로, 마리아는 영적인 말씀을 추구하는 자로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두 자매의 행위는 하위와 상위, 세상적인 삶과 영적인 삶, 행동하는 삶과 관조하는 삶으로 대조되었습니다.
마르다의 불평에 대한 예수의 꾸중의 말을 근거로 하여, 기독교역사에서는 마르다의 행위보다 마리아의 행위를, 물질적인 삶에 대한 헌신보다는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더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물론 마르다의 행위도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마리아의 행위야 말로 더욱 영적이고 성스러운 것으로 평가되어왔던 것입니다.
육과 영의 대립구조로 보는 이러한 이해는 한국 설교자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교인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마르다의 일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 즉 예배참석은 마리아의 일로 적용하였죠. 그래서 종종 교회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교했던 것입니다: “예배 후 공동식사 준비를 위해 예배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나가지 마시오. 음식 준비보다 예배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요”라고 말입니다.

2)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중세기 신비주의 신학자)
마리아의 태도를 영적인 것으로 보고, 반면 마르다의 태도를 저급한 것으로 보았던 기존의 이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중세기 신비주의 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입니다. 그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마리아를 영적 생활의 초기 단계로 설정하고 마르다를 부지런히 열심히 일한 자로서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르다가 예수에게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라는 항의어린 말을 마리아가 너무 안락감에 빠지고 말씀에 달콤하게 도취되어 머무는 것이 걱정되어 말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영적 지도자였던 에크하르트는 당시의 행동주의 자들을 마르다와 동일시하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때문에 그리스도는 마르다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마르다야. 마리아도 (역시) 좋은 몫을 택하였다. . . . 그녀 역시 너처럼 복받게 될 것이다”(크빈트, 1969, 죌레/정미현 역, 신비와 저항, 이대출판부 2007 참조). 에크하르트는 인간을 이원론적으로 분류하고, 한편을 높이 평가하고 다른 한 편을 저평가하여 서열화하는 것을 위험하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종교생활에 있어서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명상과 행위, 마리아와 마르다는 함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진정한 명상은 적절한 행위를 수반하며, 그 둘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건강한 크리스찬의 삶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에크하르트는 마리아와 마르다 둘 중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입장에 서서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 균형있는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건설적인 설교를 할 수도 잇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예수의 입장이 그러한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마르다가 예수에게 드린 질문은 동생 마리아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다는 비난이었고, 마르다를 향한 예수의 발언은 둘 다 격려하는 말이기 보다는 마르다에 대한 꾸중이기 때문입니다.

3) 요아킴 예레미아스(20세기 유대인-독일 신학자)
예레미아스는 이 이야기에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태도보다는 이들에 대한 예수의 평가에 더 관심을 가졌다. 예레미아스는 예수 당시 남성에 비해 여성을 폄하하는 보편적인 유대교의 가부장적 문화에서 차별화된 예수의 태도에 주목한다. “여성은 어떤 면에서 보든지 남성보다 가치가 적다”(요세푸스), 그러므로 “여자와 길에서 많이 얘기하지 말라”(랍비 잠언), 그리고 심지어 자기 아내와도 마찬가지로 말을 많이 하지 말라(후기 랍비)는 분위기에서 예수는 당시 관습을 넘어서 여성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고(제자들도 놀랄 정도로, 요 4:27), 예수의 청중에는 여성들도 있고(눅 11:27-28),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초청을 받아들여 그들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예레미아스/김경희 역, 예수의 선포, 분도출판사, 1999, 310-311. 당시 유대 남성들과 예수의 차별화된 태도와 그 이유에 관해서는 필자의 졸고 “유대교에 있어서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 및 이에 대한 예수의 입장”, 한국기독교신학논총18집, 2000, 109-158 참조).
아쉽게도 예레미아스는 예수의 자세에만 관심을 가졌고 마르다 마리아 자매에게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 이전에 독일 신학계의 분위기가 “역사적 예수”에게만 집중적인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은 인간적인 예수에 대한 관심이었으니까 말입니다.

4) 엘리자베스 몰트만 벤델(20세기 여성신학자)-박영숙
20세기 중후반에 활약을 하는 여성신학자들은 예수에게 불평을 터뜨렸다가 쫑크를 맞은 마르다에게 주목하고, 마르다의 위상을 살리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 세계 교회가 “생명”을 교회의 주제로 내세우면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같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만드는 주부의 모습으로, 진정 손님에게 맛있는 것을 장만하려는 사랑어린 여주인으로, 가족친지를 먹여 살리는 “살림꾼”의 모습으로 각인됩니다.
정말 누군가 먹을 것을 만들어 제공하지 않는다면 인생에 기쁨은커녕 생명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음식을 만드느라고 분주한 마르다를 오히려 예수님께서 야단을 치고, 아무 것도 안 하고 발치에서 예수님의 말이나 듣고 있는 마리아를 두둔하는 예수에 대해 분노가 일기도 하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교인들을 먹이고 돌보는데 집중하는 교회 여성들 입장에서 기존의 해석과는 달리 마르다를 두둔하고자 하는 시도들도 엿보입니다.
최근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아내인 박영숙여사는 7-80년대 독재정권의 핍박 속에서 고난을 당하던 민중신학 동지들의 만남의 장소로 자신의 거처가 사용되었고, 그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기꺼이 음식을 장만하여 사람들을 먹였는데, 자칭 “마르다의 집”이라 칭하기도 하였습니다(오마이뉴스 2010, 2, 5). 내 집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다는 것은 참으로 숭고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박영숙 여사와 마르다가 분명히 다른 것은, 박영숙 여사는 손님 접대가 즐거웠을 수 있지만, 누가 전승에서 마르다는 분명 예수에게 불평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5) 김판임 (21세기 한국의 여성 성서신학자)
저는 앞서 소개한 네 가지 입장 모두 일리 있는 관찰이고, 일리있는 주장이라고 봅니다. 마르다가 마리아가 삶의 자세에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도 맞고, 여성신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마르다의 활동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 “초대상황”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초대한 마르다와 마리아의 입장과 초대받은 예수님의 입장에 서보기로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를 초대하기도 하고 초대를 받기도 하죠. 사회성이 활발한 사람은 초대와 관련된 일이 활발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초대를 받는다거나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은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합니다. 여러분은 주로 누구를 초대합니까? 혹은 누구의 초대를 받아보았습니까? 좋아하는 사람, 좀더 가까이 사귀고 싶은 사람, 소중한 사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 등등입니다. 그러니 마르다 마리아 자매와 예수님은 분명 좋아하는 관계였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분을 집에 모셨으니 얼마나 즐겁고 떨리겠습니까?
마르다는 맛있는 여러 음식으로 손님을 대접하려고 마음이 분주합니다. 보통 손님을 대접하려면 먼저 음식 장만을 생각합니다. 마르다는 전형적인 가정의 여주인다운 모습입니다. 밥, 불고기, 갈비, 잡채, 무국, 수정과, 각종 나물, 각종 전(생선전, 고기전, 호박전), 지난 주 설 명절을 보냈으니, 손님 접대를 위해 장만해야할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으시죠? 음식준비에 분주할 때 누군가 게임을 하고 논다거나, TV만 보고 있다거나, 책을 읽고 있다거나 한다면 용서가 안될 겁니다. ‘마리아, 너 이리 좀 와서 함께 음식 준비 좀 도우라’고 언니답게 명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야기에서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와 이야기 나누시는 예수에게 말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가 초대한 손님 예수에게 이와 같은 불평어린 발언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음식 장만에 좀 분주하기로소니 손님에게 이런 불평을 말한다는 것은 상식 이하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발언은 더욱 심각합니다. 보통 사람같으면 집주인에게 이런 핀잔을 받으면 무안해서 “예 마리아야, 얼른 일어나 언니 좀 도와라”고 말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다의 불평의 원인이 많은 음식 장만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것을 염려하고 근심하는구나, 한 가지만 해도 충분하단다” 그리고 언니의 음식 장만을 돕지 않는 마리아의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옹호해줍니다: “마리아는 빼앗기지 않을 좋은 것을 택하였다.”
이 이야기에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분명 대조적인 행위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대조성은 음식장만과 말씀 청취, 육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인 것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 눈으로 관찰한 마르다 마리아 자매의 대조성을 한 번 열거해보겠습니다.

1) 마르다는 음식준비에 애를 태웁니다. 마리아는 음식엔 관심이 없습니다.
2) 마르다는 자기 혼자 일한다고 불평을 합니다. 마리아는 남을 불평할 여유가 없습니다.
3) 마르다는 손님 접대에 대한 사회적 기준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마리아는 관심이 없습니다.
4) 마르다는 손님을 기다리게 합니다. 마리아는 손님을 혼자 두지 않습니다.
5) 마르다는 손님 접대가 힘듭니다. 마리아는 손님 접대가 즐겁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먼저 1) 마르다가 예수에게 말한 내용과 태도가 불평이라는 점을 주목했고, 그 불평이 나오게 된 원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2) 마르다의 불평에 대한 예수의 말씀에서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그의 입장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대조성을 파악하게 되었고, 이 이야기가 단순히 “말씀듣는 것이 밥먹는 것보다 고상한 일이다”라는 수준을 넘어 삶의 자세에 대한 귀한 가르침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즉, 마르다와 마리아는 인간의 두 유형을 보여줍니다.
1) 마르다 유형: 사회, 외부의 평가 기준에 따라 살면서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자.
맏딸, 맏아들 유형 - 맞이면 이래야 한다. 손님을 모시면 최소한 이러저러한 음식은 내놔야 한다, 등등 부모나 사회 규범이 지시하는 대로 살려고 애를 쓰지만, 또한 그런 수고로 인해 인생이 힘들고,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자기처럼 살지 않는다고 흉을 보고 심지어 욕까지 한다.
2) 마리아 유형: 사회, 외부의 기준에 따라 맞추어 살기보다는 자기 내면의 욕구를 따라 살아가는 형. 막내유형 -
마르다의 염려와 근심에 대한 예수의 발언을 저는 마르다 유형에게 주는 구원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사회 기준이 가르치는 대로 따라 살려 하지 말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만 택하십시오. 불평이 나오지 않을 정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정도로 일해도 충분합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마르다야 마르다야 여러 음식을 하려고 고달파하지 말고, 그저 일품요리라도, 혹은 김치 한 가지도 족하니 불평하지 말하라.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기쁨이지, 너의 불평이 아니니라.
마리아 유형은 나무랄 것이 없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구절을 설교본문으로 삼는다면, 설교제목을 다음과 같이 붙일 것입니다: “ 빼앗길 수 없는 기쁨을 선택하십시오.”
마리아의 삶의 자세를 두둔해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제 인생에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인생의 기로에서 신학이란 학문을 택하고 성서 연구를 평생 업으로 하고자 결심하면서 살아올 때 사실 그리 쉬운 길만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내 아버지가 장로나 목사였다면 어쩌면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여자대학생이면 영문과에나 가서 잠시 좋은 회사에 취직해 있다가 걸맞는 배필을 찾아 결혼해서 누구의 부인으로 , 자식을 잘 길러 누구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것이 30년전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문화였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무슨 신학이냐, 기독교교육과나 아동학과에 가라고, 여성으로서 일반적인 사회 기준에 따라 살아가도록 강요당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제 부모는 자유로운 분이었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데 방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들이 일반적으로 가는 길을 가지 않고 성서연구라는 길을 선택하면서 오늘날까지도 늘 저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현재도 교회에서조차 (학문적)성서연구라면 그다지 달갑게 여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저는 진정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고,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찾고 싶어하는 제 내면의 욕구를 따라갔고, 성서 연구하는 이 순간이 기쁘냐, 이 일을 빼앗기지 않고 싶으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항상 “yes"라는 답을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종교계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권할 만합니다.
최근 아이팻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스티브 잡스를 알고 계시지요? 그 사람은 2007년 포츈지 선정 최고 CEO, 2009년 포츈지 선정 최고 CEO로 자리 매김을 받았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세계 최고 경영인으로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2010년 2월 5일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 강연자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20세기 말 애플 컴퓨터를 창설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고용한 사람과 기업 경영 마인드가 달라서 갈등하던 중 그 회사에서 퇴출되었던 사람입니다. 회사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컴퓨터 관련일을 하고 싶어하는 열망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어느 누구도, 삶의 어떠한 상황도 그가 좋아하는 일을 빼앗을 수는 엇었다고 말하더군요. 매일 아침마다 “내일 삶이 마감하다면 당신 오늘 하는 일을 계속하겠는가?”라고 묻고, 아니라고 한다면 오늘 하려고 했던 일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고 여기고 하루하루를 “yes"라는 내면의 대답을 들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결국, 그가 만든 넥서스를 애플이 합병하면서 다시 애플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think different"를 삶의 모토로 하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남들이 생각지 않던 것을 찾아가며 성공 신화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세워놓은 가치 기준을 따라 살면서 피곤해 하고 남들에게 불평하는 삶이 아니라, 내면의 기쁨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창조적인 삶을 이루자!는 설교가 어렵지 않게 창출될 수 있습니다.

2) 밭에 감추인 보물과 진주 비유(마 13:44-46)
-하나님나라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발견할 뿐이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1) 불트만, “희생”
20세기 세계적인 신학자 3B(불트만, 바르트, 부른너)의 한사람인 불트만은 이 구절을 “희생”이란 주제 하에서 이해를 했습니다.
1921년 “공관복음 전승사”에서 철저히 양식비평학적 방법으로 공관복음서의 기사들을 분석한 후 5년 뒤 출간된 “예수-멀고도 가까운 하나님”이란 소책자에서 이 비유에 관해 언급합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인간은 그가 하나님나라에로 결단하고 그것을 이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가라는 막중한 이것이냐 저것이냐 앞에 세워져 있다”(불트만/허혁,김경희공역, 예수-멀고도 가까운 하나님, 새글사, 1972, 26). 그리고 신약성서신학에서 다시 한번 언급합니다: “신의 나라에서는 모든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 마치 보물을 발견한 농부가 그것을 차지하기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처럼 혹은 상인이 값진 진주 하나를 얻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파는 것처럼(마 13:44-46)”(불트만/허혁 역, 신약성서신학, 성광문화사, 1976, 8).
저는 1976년도에 대학을 입학해서 전공 선택과 관련하여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성서 연구를 전공하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빼앗기지 않을 기쁨이었고, 앞서 말씀드린 마리아를 두둔해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힘입어 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우리사회 여성들은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여성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던 시대라고도 생각됩니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청소년 대학생, 힘을 가지지 못한 모든 이들은 희생을 강요당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겁니다.
여성의 예로만 국한시켜보겠습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이화여대 총장님으로 김옥길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에서 그만한 분도 없을 겁니다. 성경선생으로 출발해서 40이란 젊은 나이에 한국 최대의 여자대학의 총장이 되셨던 것이고, 6년 임기를 세 번이나 수행하여 18년간 총장으로 계시다가 자발적으로 은퇴를 하신 분입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그 분의 대학 행정력과 교육자로서의 자세는 칭송받아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셨는데, 당시 독신생활을 하는 분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분의 삶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죠. 그분의 말씀으로는 이화여대라는 대의를 위해 결혼이라는 소의를 희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학생이었을 때 많은 어르신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공부를 하려거든 결혼을 포기해야 한다고. 결혼하고 다른 일을 모두 다 수행할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불트만이 말한 것처럼 최고의 가치(하나님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희생이 요구된다는 것이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었던 것같습니다. 영화 서편제에도 이러한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죠. 그래서 아버지는 딸의 판소리를 승화시키기 위해 눈을 멀게 하죠. 이 무슨 잔인한 짓이란 말입니까?
저는 당시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할 수 없었지만, 내면에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 이루려면 희생이 필요하다고? 인생에 중요한 무언가를 희생한다면 과연 더욱 중요한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저는 서편제를 보면서 무언가를 희생함으로 다른 어떤 것을 얻으려는 것은 인류의 <커다란 착각>이라는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불트만을 통해 신학적 안목을 배웠지만, 이 구절에 대해서는 그의 해석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묻기 시작했죠. 그것이 과연 그러한가?
그러자 확신이 왔습니다. 이 비유에서 초점은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에 있지 않다. 그리고 다 팔았다는 것이 “희생”이 될 수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한 확신은 이미 1960년대 융엘이 그의 학위논문, “바울과 예수”, 에버하르트 융겔/허혁 역, 바울과 예수, 이화여자대학교,1977)에서 밝혀주었습니다.(212-216)
“이 비유에서 문제되는 것은 가령 불트만의 견해처럼 신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가’라는 결단이 아니다. 그러한 보물에 대해 기뻐하는 자는 이미 결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결단은 이미 내려졌다. 발견이 발견자에게 그러한 결단의 수고를 이미 덜어주었다. 발견자의 저 행위는 희생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며, 그(희생한)만큼 그가 이 보물을 발견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융겔, 214)
하나님나라를 우리의 희생을 통해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나라가 우리의 행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의구심을 품었던 내게 융겔의 입장은 답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우리의 희생을 필요로 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뭐 부족한 게 있다고 우리의 희생을 요구하는가! 저는 불트만이 잘못 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오류는 그가 살았던 20세기의 현실에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20세기 독일은 제 1차 세계대전,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철저히 패망한 패전국 나라에 살고 있는 신학자가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던 현실이 그의 성서 해석에 반영되었다고 보게 되었습니다.

2) 예레미아스, 김득중, 김창락(희생과 기쁨 사이에서 오락가락)
예레미아스/허역 역, 예수의 비유, 분도출판사, 1978, -기쁨
김득중, 복음서의 비유들, 컨콜디아사, 1988. 179-184.
김창락(귀로 보는 비유의 세계, 한국신학연구소,1997), 136-142.
“전력투구하라”(136-142)
위 세분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불트만이 이 비유의 핵심을 희생으로 본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아스는 그의 성격대로 불트만을 틀렸다고 하지 않고 그의 의견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대체로 이 두 비유는 마치 예수가 아낌없는 희생의 요구를 이 두 비유에서 말한 것같이 이해된다”(194) 이로써 예레미아스는 불트만에게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결정적인 것은 ‘기뻐하여’ 이다. -이 말은 상인의 경우에는 다시 분명하게 반복죄지 않았으나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모든 척도를 넘는 큰 기쁨이 한 인간을 사로잡으면, 그 기쁨은 그를 감격시키고 그의 중심을 사로잡아 그의 마음을 압도한다. (. . .) 결정적인 것은, 이 두 이중 비유의 주인공이 소유물을 희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결심을 촉구한 동기 즉 그들이 발견물의 위용에 압도당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도 이러할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돌연한 시작에 관한 기쁜 소식은 압도하고 큰 기쁨을 주며 하나님의 공동체의 완성을 위해 삶 전체를 바치게 하고 가장 정열적인 희생을 감행하게 한다”(194)
예레미아스는 불트만에게 전면 도전하는 식으로가 아니라 불트만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기쁨”이란 주제로 살짝 자리를 옮겼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한국의 김득중 교수는 편집비평학의 대가로서 비유연구에 있어서 역사적 예수의 견해와 복음서 기자의 견해를 분류하여 해석한 점을 공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역사적 예수의 입장은 거의 예레미아스의 견해를 답습하고, 심지어 그의 견해를 그대로 인용하여 자기 의견으로 반영하기도 합니다.
“예수의 비유에서는 우연히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놀람과 기쁨, 장사하러 다니다가 우연히 값진 진주를 만난 사람의 놀람과 기쁨이 중요하다. 예수의 비유들에서 결정적인 것은 이 두 이중 비유의 두 주인공이 소유를 희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그런 결심을 촉구한 동기 즉 그들이 발견한 물건의 위용에 의해 압도당하는 것이다.”(183)
그러나 그는 “희생”의 주제를 포기하지 못하고 희생은 마태의 가르침으라고 소개합니다:
“두 비유에서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두 비유가 각각 결론 구절로써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 라’(44),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46절)고 거의 똑같은 문구를 후렴처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마태의 비유 요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밭에서 보화가 감추어진 밭과 진주를 획득하기위해 그들이 소유 전부를 팔아 버림으로써 대처했듯이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의 현실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지키는 데 자신을 헌신함으로써 대처해야 한다”(183).
그런데 여기서도 김득중은 킹스베리의 의견을 본인의 의견처럼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자신의 비유와 마태의 비유를 구분하지 않은 채-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마복음의 비유를 예수의 견해로 보고, 마태복음 기사는 마태복음의 비유로 보고, 예수의 의견은 예레미아스의 견해로, 마태의 의견은 킹스베리의 의견으로 제시할 뿐입니다.
김창락의 견해: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들이 집, 직업, 부모, 형제자매, 처자식 등 모든 것을 당장 버리고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것은 훌륭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예수의 선포와 활동 속에서 종말적 구원을 직접 맛보고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그들이 치른 희생이 너무나 크고 그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난이 너무나 심하기 때문에, 그들은 때때로 그들이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 가 회의에 빠지거나 그들의 각오가 해이해지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리들 가운데는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 속에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종말적 구원의 역사를 발견하고서도 선뜻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서 그들이 발견 한 것이 그들이 전재산을 투자하여 전력 투신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 이 비유를 이야기하셨다고 하겠습니다.”(141-142)
김창락의 견해는 많은 오류가 있어 보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따를 때 물론 집과 직업, 아버지를 버리고 따른 사람(야고보, 요한; 막 1:18)도 있지만, 그들의 경우도 형제자매를 버리진 않았으며, 베드로의 경우 직업을 버렸을지 몰라도 아내와 장모 모두 버리지 않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김창락은 예수시대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대해 성서 텍스트보다 많은 상상력을 자료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전력투구하라는 것은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과는 좀 달라 보이지만,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비유 연구자들인 최갑종, 스캇은 이 비유를 다루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신학자들도 이 비유에 대해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사실 이들에게 이 비유가 주목되지 않았는지 그것이 제게는 더욱 궁금합니다.

3) 김판임(21세기 한국의 여성 성서신학자)
저는 불트만이 이 구절을 “하나님나라는 우리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주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희생을 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많다는 현실을 주목합니다. 가령 예를 들어 어떤 미혼 여성이 혼인을 포기한다고 해서 박사학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유부녀가 가정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박사학위를 못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저는 제 경험과 확신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할 뿐입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이 비유에서 소작인이 발견한 보물과 진주 장사가 발견한 값진 진주의 공동성에 주목했습니다. 이 둘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발견할 뿐이라는 사실에서 저는 하나님나라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발견할 뿐이라는 평범한 주장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들- 무엇이 있습니까? 애플의 아이팟, 이탈리아 피사의 기울어진 탑,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 영국 대영박물관 스도 없이 훌륭한 인간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 은 인간이 만들 수 있지만, 하나님나라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이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나라는 보물이나 진주와 같이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며 모든 것을 다 팔아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보물과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진정 소작인이 모든 것을 판다해도, 그 땅을 살 수 있다는 보장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땅을 사서 보물을 얻었다 해도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았다는 사실은 결코 희생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쁨이 넘치는 자의 모습을 묘사했을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비유의 메시지는 하나님나라의 본질과 도래에 관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1) 하나님나라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2) 하나님나라는 우리 주변에 와 있다.
3) 그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3. 마감어: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진리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널려 있고, 다만 발견하는 것”이라고. 성경에도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8)”.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러러 보는 일이 기쁨이 되시길 빕니다. 보이는 세계가 모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분들이 신앙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이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느라 힘들어 불평하기 보다는 내 나름의 빼앗기지 않은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길이 아무리 좁고 험할 지라도 말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특강 Ⅲ

삶을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기독교 사영리(四靈理)


한 인 철 박사 연세대학교 교목실


들어가는 말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삶의 부재’에 있다고 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는 본래 예수의 가르침과 삶으로부터 발생되었지만, 오늘의 한국 기독교는 더 이상 예수의 가르침이나 삶에 관심하지도 않고, 더욱이 이를 계승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그 동안 한국 기독교의 신앙체계를 대변해 온 사영리가 그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이번 강의는, 기독교가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위한 한 방편으로, ‘삶을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기독교 사영리’라는 주제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 다루고자 하는 사영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참 삶의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길치 인간
2. 하나님은 우리가 가야할 참 삶의 길을 가리켜주시는 분이시다: 길잡이 하나님
3. 예수는 우리가 가야할 참 삶의 길을 앞 서 가신 분이시다: 선생 예수
4. 기독교인은 예수를 벗 삼아 예수와 같은 길 가는 사람들이다: 길벗 기독교인


I. 우리는 참 삶의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길치 인간

1. 사람들은, 그 차이를 무론하고, 어느 정도 공통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산다.

2.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대체로 재물, 권력, 명예로 대변되는 세상적인 가치이다.

3.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적인 가치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 성공했다고 하고, 또한 행복하다고 한다. 최근 한국인의 최고의 덕담은 ‘부자되세요’라는 말인데, 이 말 속에는 한국 사람들 누구나가 추구하는 세속적인 가치 전체가 용해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4. 사람들이 재물, 권력, 명예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한, 그것들은 필요하고 그것 없이 살기는 어렵다.

5. 그러나 재물, 권력, 명예에 집착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이웃을 짓밟고, 자연을 파괴하게 되면, 재물, 권력, 명예는 우리에게 우상이 될 수 있고, 참 삶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사탄이 될 수 있다.

6.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결국은 어느 하나를 더 사랑하게 되고, 다른 하나는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람들은 대개 재물을 택하고, 하나님은 포기한다.

7. 두 주인을 섬기고 싶어 하는 마음은 한국의 기독교인들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의 상당수 기독교인들은 세상적인 가치에 대한 욕망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예수를 믿으려는 경향이 있고, 한국의 교회는 이러한 교인들의 요구를 예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적인 가치에 대한 우리들의 지금까지의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자각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에 입각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II. 하나님은 우리가 가야 할 참 삶의 길을 가리켜주시는 분이시다--길잡이 하나님

1. 하나님은 우리가 가야 할 참 삶의 길,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을 가리켜주시는 분이다.

2.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는 이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비늘이 덮혀 있기 때문이다.

3. 사람들의 눈에 덮혀 있는 비늘은 다름 아닌, 재물과 권력과 명예에 대한 집착이다.

4.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참 삶의 길을 발견하려면, 먼저 재물과 권력과 명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5. 그런데 재물과 권력과 명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혹은 그와 유사한 어떤 경험이 있고나서야, 비로소 재물과 권력과 명예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알게 되고, 이를 지푸라기처럼 여기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6. 그러나 세상적인 가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참 삶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저절로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사이에는 또 한 번 건너야 하는 큰 강이 있기 때문이다.

7.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참 삶의 길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재물과 권력과 명예조차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조차 포기할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궁극에 가서는 재물과 하나님은 동시에 섬길 수 없고, 결국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8.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지금까지 재물과 권력과 명예에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이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도 인간도 자연도 모두 저버렸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가치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포기할 수 있는,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으로 철저히 변화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전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III. 예수는 우리가 가야 할 참 삶의 길을 앞 서 가신 분이시다--선생 예수

1. 예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이 참으로 사는 길이라고 가르치셨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의 요체라고 말할 수 있다.

2.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이 참으로 사는 길이라고 가르치신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길을 따라 앞 서 사신 분이다. 예수는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 대로, 자신이 앞장서서 그렇게 살았다. 특별히 생명의 위협이 있는 순간에도, 예수는 자신의 삶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가르친 그대로 살았다. 예수는 참다운 의미에서 선생(先生)이었다.

3. 그러면 예수는 하나님과 같다는 삼위일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수는 최소한 하나님의 아들, 더 나아가면 하나님 자신이라는 이 고백은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만약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면, 예수가 선생이라는 말과는 모순이 되지 않겠는가?

4. 예수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삼위일체의 성서적 근거는 오직 요한복음의 두 구절, 즉 10장 30절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말과, 14장 9절의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라는 구절뿐이다.

5. 이 두 구절이 예수를 하나님과 동일시할 수 있는 근거이면서, 동시에 예수를 선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예수를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과 예수를 선생으로 이해하는 것이 같은 고백이 될 수는 없을까?

6. 예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었다. 예수에게 하나님은 매순간 그의 삶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근원이었다. 예수와 하나님은 예수의 삶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본 사람은, 예수의 삶 속에서 예수와 하나님이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예수를 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본 것과 다름없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적 고백은, 예수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참 삶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라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의미에서 이 고백은 예수가 참 삶의 길을 앞 서 살아내셨다는 고백과 맥을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고백과 예수는 선생이라는 고백은 동일한 고백의 서로 다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IV. 기독교인은 예수를 벗 삼아 예수와 같은 길 가는 사람들이다--길벗 기독교인

1.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앞 서 살아낸 삶을 우리도 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기독교인의 대답은 항상 부정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이고, 우리는 죄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와 우리 사이에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2. 기독교인은 ‘예수는 하나님이고 우리는 죄인’이라는 교리적 이유를 갖고, 우리가 예수의 삶을 살아낼 수 없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사실 그 저변에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는 예수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올바른 삶이었고, 또 그러한 예수의 삶을 우리가 살아낼 수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솔직히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뜻을 포기하고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갖고 사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3. 이제 우리는 안다. 예수가 앞서 살아낸 삶은 우리도 충분히 살아낼 수 있는 삶이지만, 우리는 솔직히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딜렘마가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예수와 우리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4. 그렇다면 기독교인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마디로, 기독교인은 예수를 평생의 벗으로 삼아, 예수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다. 달리 말하면, 기독교인은 근본적으로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얻는 것에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을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사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될 때에는 언제든지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5. 이러한 기독교인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대개 이 질문은 기독교인으로서 제 길을 가고 있지 못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묻는다. 그런데 이 질문이 예측하는 대답과는 달리, 세상에는 이미 예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예수의 길벗으로 살지 못할 때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가 예수의 길벗으로 사는 순간, 그 사람들은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과연 예수의 길벗으로, 평생 예수와 같은 길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여기에 기꺼이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가히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패널토의 발제

예수의 길을 가는 기쁨과 목회


김 기 석 목사
청파교회 담임목사


1. 기쁨이라는 그 낯선 감정
-목회자로 살아온 30년 세월을 돌아봄
1) 시간 여행자가 느끼는 불안

2) 시간을 공간으로 번역한 나날
․ 상투적 일상성-자기 불화

3) 탈진하는 목회자

-무늬 없는 삶 속에는 기쁨이 깃들 리 없다.

2.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신앙생활이란?
1) 예수 이야기에 합류하기

2) 예수적 존재를 향한 순례로서의 삶
․ 私邪似奢--> 死--> 赦師

-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와 이야기의 힘

3. 이야기의 집으로서의 교회
-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통시키기: 용서, 어루만짐, 귀 기울임
14세기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 주인공(기사, 방앗간주인, 농장 책임자, 요리사, 법률가, 수도사, 신학생, 상인, 의사, 면죄부 장사꾼, 선장, 신부, 탁발 수도사, 본당 신부…)이 각기 다른 24개의 이야기를 통해 성과 속이 뒤엉키는 그 시대, 사람들, 종교를 드러냄

1)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내가 이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선다면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 자녀들의 이름과
그의 과거
그의 삶을 알고
그와 나를 동일시할 수 있다면
나는 이전처럼 먹을 수 없을 것이고
이전처럼 허례허식 하며 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관심이 있다면
내 삶은 바뀌어야 한다

일어나는 시간, 잠자리에 드는 시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외출하고
멋진 음식점에서 음식을 나누는 친구들

읽는 책
돈의 사용처…(장 바니에)

2) 새로운 이야기에 초대하기
“인간의 영혼은 스스로 빚진 자임을 아는 감각을 하늘로부터 받았는데 놀람, 두려움, 불안이 그 빚진 자임을 아는 감각을 살아 있게 한다. 놀람은 우리가 청구받고 있는 상태다. 우리의 체면에도 불구하고, 욕심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가 우리에게서 청구되고 있다는, 즉 놀라고 숭배하고 생각하고 삶의 신비와 장엄함에 어울리게 살라는 청구를 우리가 받고 있다는 깨달음으로, 우리는 등을 밀려 살아간다……사람됨의 실현은 그가 스스로 빚진 자라는 인식을 지니고 초월로부터의 요구에 대답하는 데 달려 있다.”(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선집 3, <<누가 사람이냐>>, 종로서적, 1996, 102-3, 104쪽)

3) 청파교회 이야기

4. 잃어버린 기쁨을 찾아서
-기쁨: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역동적 감정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요15:11)

1) 기쁨의 뿌리: 주님과 동행하는 삶, 신뢰, 경외

2) 기쁨의 줄기: 자기 초월, 독립의 사람, 연민과 연대

3) 기쁨의 잎-단순하고 소박한 기쁨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기쁨을 누릴 길은 이 길뿐입니다.”(시119:35)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의회에서 물러나왔다.”(행5:41)

사례발표
최 철 호 목사
아름다운마을공동체


1. ‘예수목회의 기쁨’ = ‘예수공동체로 사는 기쁨’...
‘예수목회의 기쁨’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제안 받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목회’, 참 좋은 말이다. 이곳에 참여하는 분들과 ‘예수목회 동지회’ 같은 모임을 만들면 좋겠다. 교단, 출신학교 등의 인맥으로 구성된 목회 관계를 넘어 예수목회의 신념을 잃지 않고 있는 분들과 함께 목회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으면 참 기쁘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눌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발제를 처음 요청 받을 때, ‘도시교회’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지만, ‘도시’에 특별한 의미를 둘 수는 없었고, ‘예수목회의 기쁨’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도시는 생명이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농촌(생산)에 대한 물리적 정신적 착취에 기초해 형성된 도시문명은 더욱 그렇습니다. 도시문명은 하나님을 떠난 인류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거부하며 쌓아 올린 도성문명에 기초합니다. 하나님(하늘)과 농토(땅)를 떠난 인류가 만들어 낸 문명입니다. 하늘(天)과 땅(地)을 배반한 인간(人)은 궁극적 불안에 시달립니다. 그 불안은 오만 속에 은폐된 채 스스로 하늘과 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허상 위에 허상이 쌓이고, 끊임없이 모래 위에 도성을 쌓아 올립니다. 지속 불가능한 문명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도시’와 ‘예수목회의 기쁨’은 함께 하기 어려운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방편적이고 과정적인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나름 정성껏 살고 있지만, 그 궁극에 있어 도시문명은 반 생명의 질서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현재 도시에 있지만 예수공동체를 증언하기 위해 도시를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그 현장에서 부르심을 받아 나름의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름 받은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자본에 종속된 도시문명이 만들어 내는 환상의 허상을 폭로하고 왜곡된 생산(농촌)과 소비(도시)의 가치를 역전시켜 회복하는 것을 중요한 소명 중의 하나로 믿고 있습니다. 나름 도시 공동체의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은 도시에서도 생명평화의 삶을 살수 있구나 하는 것을 증언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도시에서의 삶은 농촌(생산)의 가치에 겸손히 기반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증언하고자 함입니다. 도시에서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삶을 구현하고 있는 공동체는 누구나 도시문명의 허상을 증언하고 농도상생공동체를 구현해 가야할 과제와 소명에 직면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믿고 소망합니다.

공동체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공동체에서 목회하며(살며) 어떤 기쁨이 있나요?”
제도적 신분상의 특정 목회자가 아니라 공동체 지체들이 일상생활 현장에서 서로 목회하는 ‘상호목회’, ‘생활영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공동체 지체 누구나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책임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목회의 기쁨’은 결국 ‘예수공동체로 사는 기쁨’과 같은 의미입니다. 오늘 제가 나눌 이야기는 ‘예수목회의 기쁨=예수공동체로 사는 기쁨’이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이기도 하고 공동체 친구들의 대답이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대답을 들으면서 저뿐 아니라 공동체 지체들이 서로 비슷한 기쁨을 느끼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도 ‘예수목회의 기쁨’이겠죠! 아마 여기 계신 분들이 느끼고 소망하는 목회의 기쁨과도 맞닿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또한 ‘예수목회의 기쁨’이겠죠...^_^

2.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이야기
아름다운마을공동체를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성서에 증언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지금 우리 생활과 역사 현장에서 어떻게 증언하며 계승할 것인가를 묻고 함께 구현해 가는 ‘예배-생활-사역 공동체’입니다. 청년의 때, 배우고 깨닫고 고백한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을 졸업 후 사회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면서도 일관성 있게 살아가고 싶은 소망으로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1991년 첫 모임을 갖고 서로를 지켜주고 독려하며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을 정직하게 살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 북한산 아래서 마을공동체로 삽니다. 별도의 울타리가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 사람들이 사는 삶의 현장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며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구현해 가고자 합니다. ‘밤에 아이 데리고 마실 갈수 있는 거리’, 이것이 우리가 설정한 마을의 범위입니다.

공동체에 참여하는 층위는 획일적이지 않고 각자의 정황에 따라 다양하고 자율적입니다. 비혼 청년들은 주로 공동생활하고, 결혼한 사람들은 가정단위로 생활합니다. 결혼한 가정이 함께 공동생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산 부동산을 포함한 일체의 재산을 모두 함께 공유하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각자의 수입을 모아 기초 생계비는 동일하게 나누고, 교통 의료 교육비 등은 필요에 따라 사용합니다. 자동차, 휴대전화 등은 몇 개를 두고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기도 합니다. 점심과 저녁 밥상을 함께 하며 밥상공동체를 이루고 삽니다. 생명농업 하시는 분들과 생협을 통해 연대하며 생명밥상을 구현합니다.

공동체의 모든 사역은 지역민들이나, 다른 교회 교인들에게 열려있습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마을학교를 통해 자녀들을 함께 키우고 교육합니다. 방과후 배움터, 주말/계절학교, 청소년 평화학교 등을 통해 지역 공교육 현장과 소통합니다. 마을신문, 유기농 마을찻집, 지역NGO인 생명평화연대 등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합니다. 마을서원에서 함께 공부하고, 마을수도원에서 생활피정하며 기도합니다. 식의주 생활양식, 결혼임신출산육아 등 일상생활에서 시대의 우상에 지배되지 않고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 생활영성을 수련하는 삶을 삽니다.

이런 마을생활공동체를 토대로 3~40명 규모의 교회를 세워 지역선교를 함께 합니다. 현재 희년마을교회, 생명평화마을교회, 꿈꾸는마을교회, 세 교회가 함께 아름다운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안수 받은 목사도 있고, 안수 받지 않은 사람이 지체들에 의해 목회 사역자로 세워지기도 합니다. 공동체 전체는 7~10명 단위의 기초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정교회, 셀교회 등과 비슷한 조직 형태지만, 생활공동체성이 좀 더 깊고 하나님나라 운동의 기초 단위라는 정체성이 강조됩니다. 교회성장 원리로서의 소 조직론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역사현장에서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을 서로 돕는 관계로서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이런 공동체 지체들의 관계 형태는 행정관리에 소모되는 역량이 훨씬 줄어들고, 의사결정도 단순해집니다. 지체들의 은사가 다양하게 드러나 생명력이 풍성해 집니다. 속 깊은 사귐이 가능하고 제자도를 좀 더 정직하게 구현하도록 돕습니다. 시대의 우상에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하게 행복한 삶을 사는 은총을 누립니다.

공동체의 다양한 생성과 사역은 ‘청년지도력 양성’을 중심축으로 전개됩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 <세계관학교>, <생명평화학교>, <공동체 지도력 훈련원> 등 다양한 청년 교육의 장을 통해 청년지도력을 훈련합니다. 훈련된 청년지도력이 공동체 사역 주체로 세워질 뿐 아니라 각 지역교회나 선교단체, NGO, 직장현장에서 하나님나라 일꾼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는 성서, 역사, 철학, 공동체 생활영성 등을 주제로 한국교회 청년학생, 직장인들과 함께 공부합니다. 연1200명 정도가 꾸준히 참여하는 기독청년 대중교육의 장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명망가’들이 강사나 운영위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강생이 강사가 되기도 하고 강사가 수강생이 되기도 합니다. 좀 더 적극적인 참여를 원하는 수강생은 운영위원이 되어 활동합니다. 뜻 있는 수강생들과 교회들이 장학금을 모아 하나님나라 운동에 복무하며 공부하는 청년들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세계관학교>와 <공동체 지도력 훈련원>은 일종의 심화교육 과정입니다. <공동체 지도력 훈련원>은 하나님나라, 공동체, 생활영성 등을 주제로 좀 더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훈련과정입니다. 자신이 처한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기초공동체를 생성하고 서로 연대하여 하나님나라 운동을 수행하는 전략 하에 훈련이 이루어집니다.

현재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공동체 귀촌’을 새로운 소명으로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이나 개인이 귀농하는 것이 가져오는 교육, 문화, 생존 등의 어려움을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 가는 귀촌 전략입니다. 농사로 전업 할 사람들 뿐 아니라 교사, 사회복지사, 사회단체 활동가, 기타 전문직 종사자, 마을 건달(?) 등이 함께 귀촌할 계획입니다. 2011년 농촌지역에 중등대안학교를 개교하는 것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의 소명을 지속적으로 감당하면서도 농촌 생명농업 현장의 지혜를 배우고 계승하여 농촌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데 함께하고자 합니다. 점점 대형화 되어 가는 유통시장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생협의 구조적 한계 등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 생성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대안을 생성하고 있는 분들을 잘 찾아 배우고 계승하여 농도상생공동체를 구현해 가길 소망합니다. 이를 토대로 공동체에 주신 고유한 소명을 잘 찾아 가겠습니다.

3. 예수목회의 기쁨 : 예수공동체가 누리는 해방의 기쁨...!
① 설교(말)와 삶의 괴리가 구조화 되는 것에서 오는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기쁨
- 생활공동체에 기초한 깊은 사귐의 문화로 인해 말과 삶의 일치를 향한 고투는 더욱 커지지만, 말과 삶의 구조화된 괴리로 인한 자괴감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

② 예식/설교 등의 목회 편중과 과잉이 해소 되는 기쁨
- 예배, 심방, 공동체 예식 담당 주체의 분담으로 목회 부담의 편중을 덜고 상호주체성이 고양되는 기쁨
- ‘설교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기쁨 : 공동체 지체들이 모두 설교(말씀나눔)의 주체로 서기 때문에 특정인(목사)에게 설교 부담이 가중되지 않습니다.

③ 접대 과잉이 해소되는 기쁨
- 공동체 대외 활동, 방문객 맞이하기, 관혼상제 등에 있어 관련 주체나 기초공동체 목회위원(평신도 목회자) 등이 공동체 대표성을 분담합니다.

④ 장래 생존에 대한 불안이 없는 기쁨
- 재물은 하나님의 것!
- 수입은 구조적인 차이가 있을 지라도 삶(지출)은 평균케 하는 희년을 구현하는 삶!
- 각자의 정황에 따라 다양한 물질과 은사를 공유하는 문화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⑤ 목회라는 것이 행정관료, 밥벌이 수단이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는 기쁨

⑥ 기타 잡다하고 중요한 해방의 기쁨
- 교회 내 정치적 심리전과 갈등, 감정놀음에 시달리지 않는 기쁨
- 세상에 부유하고 높아진 교인의 세속적 행세를 목회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참혹함에서 해방되는 기쁨
- 입기 싫은 옷(양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기쁨
- 생명력을 상실한 종교적 관습을 설득력 없는 그럴 듯한 의미를 부여하며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

⑦ 세상 정사와 권세, 시대의 우상에서 해방되는 기쁨
- 자본, 학벌, 부동산, 아파트, 주식, 무한경쟁과 성공 등 세상 정사와 권세, 시대의 우상이 조작하는 허망한 욕망, 조장된 불안과 굴욕으로 점철된 삶에서 함께 해방되는 기쁨

4. 예수목회의 기쁨 : 예수공동체가 누리는 새로운 생성의 기쁨...!
① 성령의 사건에 민감해지고 다양한 은사가 생성되는 기쁨
- 은총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② 성서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험하는 기쁨
- 성서에 증언된 예수의 하나님나라 사건을 지금 이곳, 우리 일상생활 현장에서 살아있는 사건으로 경험하고 고백하는 신비와 기쁨

③하나님나라 운동 도상에서 생성되는 교회의 지체로 누리는 기쁨
- 하나님나라 운동과 역사의 현장에서 괴리되지 않는 교회, ‘신앙공동체의 삶’과 ‘대안사회 생성을 통한 변혁 운동’을 함께 기획하고 구현해 가는 기쁨

④ 세상 정사와 권세, 시대의 우상이 요구하는 조건과 역량에 제한당하지 않고,
성령의 은사와 소명을 따라 자유롭게 꿈꾸고, 꿈을 현실로 사는 기쁨

⑤ 변화에 가볍게 반응하며 유목하는 공동체 삶의 역동성이 주는 기쁨

⑥ 더불어 사는 삶의 기쁨
- 서로의 한계, 신앙과 인격의 성숙, 삶의 변화를 가깝게 지켜보고 서로 증인이 되는 기쁨
- 간섭과 사랑을 많이 받는 기쁨
- 애정과 애증이 짧은 간격으로 교차하는 삶의 역동성, 관계의 책임성이 주는 기쁨
- 심심할 겨를이 없는 기쁨
- 설교(공동체 말씀 나눔)를 통해 깨달은 말씀과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은혜의 기쁨

⑦ 깨닫고 고백한 것에 일관된 삶을 살도록 상호목회 하는 삶의 기쁨
- 시대의 우상이 조작하는 욕망에서 벗어나, 깨닫고 고백하고 가르치는 것에 일관된 새로운 욕망이 생성되는 것을 경험하는 기쁨

⑧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생성하는 기쁨
- 마을생활공동체의 품앗이 문화(공동육아, 마을학교, 마을밥상...)를 통해
임신출산육아교육 책임의 편중이 만드는 무기력하고 우울한 기운을 걷어내고 엄마아빠 뿐 아니라 공동체 지체들이 모두 생명살림에 상호주체가 되어 누리는 기쁨

- 우리가 자라던 시절 교육, 놀이, 문화 등 삶의 현장에서 잃어버렸던
생명평화의 가치와 문화가 공동체 아이들의 삶, 교육, 놀이에서 회복되어가고 이를 통해 엄마아빠, 이모삼촌들이 지속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도록 해주는 기쁨

- 식의주, 결혼임신출산육아, 교육, 의료, 소비 등 모든 일상에서 시대의 우상이 지속적으로 조장하는 생존의 불안에서 벗어나, 깨닫고 고백한 것에 일관된 대안적 삶의 양식을 부단히 생성하고 결단해 가는 공동체 삶이 주는 기쁨


예수목회의 기쁨을 정리하다 보니, 예수목회가 주는 해방의 기쁨은 주로 세속화된 국가교회의 관습, 시대의 우상에 종속된 종교적 삶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예수목회가 주는 ‘새로운 생성의 기쁨’은 결국 오랜 국가교회 전통에서 은폐되었던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복원되는 공동체의 삶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심지어 다양한 종교개혁의 흐름에 까지 깊게 도사리고 있었던 세속화된 국가교회 전통을 극복하고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온전히 증언하는 공동체들이 더욱 다양하고 힘 있게 솟아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함께 모여 나누는 대화와 증언이 이미 그 일을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건을 확인하고 서로 힘을 주고받고 새로운 연대를 생성하는 사건이 되길 소망합니다.

사례발표
김 영 선 목사
내일을 여는 집


'인간해방, 인천해방'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해인교회는 1986년 4월에 설립되었다. 해인교회는 80년대 정치, 경제적으로 암울한 시기에 자신이 일한 노동의 대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이 세운 교회이며, 목회자가 아닌 기독교신앙을 가진 노동자들이 자비를 모아 세운 교회이다. 가난한 자의 친구 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의 삶을 실천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탈춤교실, 기독교 노동 상담소(희망의 전화), 노동자 공부방 등을 열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교회로 자리매김하여 민중교회로서 헌신적인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련을 겪게 되고, 1994년에 존립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폐교회의 위기도 있었으나, 이준모 전도사가 부임하여 해인교회를 다시 세우고, "신앙공동체, 교육 공동체, 생활공동체"로 만들어 나갈 것을 결의하여 교인들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인천여성노동자회와 계양구청 의정감시단, 환경을 살리는 주부 모임 등을 함께 하며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여성들과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활동을 전개해 오던 중, IMF 구제금융의 위기를 맞게 되었고, 교인 1/3이 실직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1998년 2월에 "해인교회 실업대책위원회 결성"하였다. 매주 수요일에 교우들의 실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업자를 위한 특별기도회를 시작하였고, 놀랍게도 3개월 만에 교우들 대부분이 다시 취업되었다. 교우들은 기도의 응답을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이 사역을 지금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사명으로 받아들여 부활절을 기해 성민교회와 연합으로 "내일을 여는 집 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해인교회는 1998년 5월에 'IMF와 교회 나아갈 길' 강좌 및 대토론회를 기점으로 내일을 여는 집의 프로젝트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하고, 실업대책기독자연대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실직자를 위한 쉼터, 자활모임터, 상담교육소, 실직자 자녀를 위한 무료탁아공부방 등을 개원하여 민중과 함께 하는 교회의 역할을 다하며 실업극복과 가정의 회복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방안을 모색하며 민중들을 위한 사회선교를 실천했다.
매일 아침 교회 문을 열면 실직자들이 찾아들었고, 무료로 점심을 준비하는 손길들이 바빠졌다.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해지면서 자원봉사자들도 늘어갔고, 신문과 방송은 내일을 여는 집을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내일을 여는 집은 실직노숙자의 범위를 넘어 결식아동, 가정폭력피해여성, 독거노인 등 지역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아우르는 민간사회안전망으로서의 지역공동체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민중들의 문제를 더 깊이 만나게 하셨다. 자활과 영혼의 문제였다.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자기존중감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있어서 미래를 설계하고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희망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활사업장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꿈꾸고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사회적 일자리를 넘어 사회적기업을 만들어냈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세례를 받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열심히 일하여 자립기반을 마련한 사람들에게는 심사를 통해 원룸을 제공하여 스스로 자기 삶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였다. 그들 중에는 노숙인쉼터에 와서 새로운 인생을 찾고, 주경야독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 대학을 졸업한 청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이들도 생겼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노숙인들과 함께 전교인수련회를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동체를 확인하며 기쁨을 나누고, 『내일을 여는 집-그 아름다운 공동체 이야기』라는 책도 발간하게 되었고, 이준모 목사가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숙인과 가정폭력피해자로 내일을 여는 집에 왔지만, 해인교회 교인들은 나눔과 섬김의 자세로 하나가 되려 노력했고, 지금은 쉼터에서 자립하여 정착한 이들 가운데 집사로 신도회 회장으로 봉사하며 차별 없는 신앙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기독교계 신문과 방송에서 '성장하는 민중교회의 모델'로, '대안교회'로 해인교회를 보도하게 되었다.
해인교회와 내일을 여는 집은 지난 12년 동안 인간해방의 창립정신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과 지역사회 선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노숙인, 결식아동과 노인, 쪽방주민, 가정폭력 피해자, 저소득 가정 및 한부모·조손 가정을 돌볼 뿐만 아니라, 자립과 자활을 추진하며, 상담 및 교육과 홍보 캠페인 등을 통해 의식의 전환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2004년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에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상"을 수상하였고, 2006년부터는 CBS(기독교방송) '수호천사'에 이준모 목사가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해인교회의 민중선교 활동을 배우기 위해 인도의 달릿신학자들의 방문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방문하였고, 해인교회의 선교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을 통해 곳곳에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이혼할 겁니다. 한 번 이혼했는데, 두 번은 못하겠어요? 저 사람 딸이 상담소에 신청해놓고, 아버지한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왔어요... 정말 잘 살아보려고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재혼했는데, 이젠 정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대로 살다가는 내가 돌아버리겠어요."
부부상담에 참여한 한 부부의 이야기다.
사랑 없이 결혼한 첫 번째 결혼의 상처와 아픔을 묻고, 중년에 처음으로 사랑하고 싶은 남자를 만나 재혼을 했는데, 가정을 이루고 보니 말도 안 통하고, 서로의 습관이 너무나 다르고, 상식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고, 표현방식이 다르고.... 살면 살수록 온통 다른 것 투성이여서 돌아버리겠다는 아내와 '내가 다 알아서 하고 있는데 왜 난리냐'는 남편...
부부 집단상담이 시작되던 첫 회기,.. '소와 사자의 사랑' 이라는 영상을 보더니, 아내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맺힌 한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자기 치부가 아내의 입을 통해 주절주절 토해지자 남편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안절부절 못하다가 끝내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거야? 내가 왜 여기 와야 되는데? 오고 싶으면 당신이나 많이 와! 난 이제 안 와!"
마지막 기회라는 말이 그래도 무서웠는지 다음 주에도 남편은 아내와 함께 왔다. 아내는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맺힌 한보따리를 풀어놓고, 남편은 또 다시 울그락불그락....
그렇게 3주가 지나고, 4주째... 남편의 울그락불그락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내 잘못이 많지요...." 그러자, 아내가 또 눈물을 흘린다. 이번 눈물은 한 맺힌 눈물이 아니라 한맺힘이 풀어지기 시작하는 눈물이다.
12주 프로그램이 끝나던 날, 아내와 남편은 서로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하면서 진한 포옹을 하고, 부부상담 프로그램의 전도사가 되겠다고 했다.

지금도 그 부부를 가끔 만나는데, 생활습관은 서로 변한 것이 없지만,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고 나니 고비고비 잘 넘기며 살고 있노라고 이슬 맺힌 웃음을 짓는다.


"저 같은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너무 큰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지금도 저는 형을 죽이고 싶도록 밉습니다. 내가 잘 나갈 때는 형네 집을 돌봐주고 사업 자금도 대주고 그랬는데, 내가 이렇게 되니까 내 돈 갚을 생각도 안하고, 아예 모른 척하고, 연락도 끊어버렸어요. 애들도 지 엄마가 뭐라고 교육시켰는지 아빠를 안 보겠다고 합니다. 죽고 싶어요."
내일을 여는 집 노숙인쉼터에 오신 분의 이야기다.
형이 자기 재산은 다 빼돌리고 동생을 보증을 세우고는 어느 날 부도를 내서 온 가족이 거리에 내몰리고 나니, 가족의 사랑도 원망으로 변하고, 원망이 길어지니까 '우리를 이 꼴로 만든 원수'가 되더란다. 형에 대한 배신감, 분노, 원한이 풀리지 않아 술로 세월을 허비하고, 술 없이는 견딜 수 없어 알콜릭이 되자 가족에게 버림받고 사회에서도 버림받게 되었다.

쉼터에 와서 예전에 어렴풋이 알았던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서니 자기 죄만 보이고, 울어도 울어도 씻어지지 않는 죄가 너무 깊이 자기 안에 박혀 있는 것 같아서 씻을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기도하려고 하면 자기 죄만 보여서 회개만 나온다고 고개를 떨군다.

너무나 아름다운 형제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용서의 비밀을 깨달아가며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겨 있는 형제를 보며 예수 목회의 기쁨을 맛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로 이 땅에 오셨고, 가난한 자로 일생을 사셨으며, 가난한 자와 더불어 친구가 되셨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신 것처럼 예수를 따르는 우리가 그렇게 살아감은 삶의 의미이며, 기쁨이다.

사람이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필자는 이 길을 계획해본 적이 없다. 이 모든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고, 계획이었고, 인도하심이었음을 고백하며 은총을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가난하지만 부요한 자로 사는 것,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사는 것이 예수 살기의 기쁨이 아닐까?


사례발표
박 순 웅 목사
홍천 동면교회



대학 다닐 때 우연히 읽었던 ‘상록수’의 주인공인 최 용신님의 생각이 떠오릅니다. 1909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탄신 101년이 되었네요. 26년의 짧은 삶, 누구나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한 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네요. 천연두를 앓았던 님,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나타난 ‘곰보 채영신’을 보기위해 동네 사람들이 모였을 정도로 천연두의 흔적이 강했다 한다. 그녀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목적도 뚜렷했다. 중등학업을 마칠 무렵 농촌에 들어가 일하겠다는 포부를 채우고 자기에 대한 소신을 19살 나이에 분명하게 밝혔다. “이 사회는 무엇을 요구하며 또 누구를 찾는가? 사회는 새 교육을 받은 새 일꾼을 요구한다. 더욱 현대 중등교육을 받고 나온 여성을 가장 절실히 요구 할 줄로 안다.” (1928년) 첫 번째 용현리에서 시작한 농촌계몽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그 다음의 사역지 포항의 옥마동에서는 성공을 거두었고 마침내 YWCA의 파송으로 지금의 안산 샘골에 정착했을 때 그녀를 ‘샘골의 여왕’ 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최용신은 농민들에게 ‘친절’과 ‘자상’으로 계몽운동을 펼쳐 나갔다고 한다. 또 한 가지는 어떤 후배의 회고록에서 쓰여 진 글귀이다.
“언니는 독실한 예수교 신자라고 표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실제로 최용신은 평생 동안 홀로 새벽기도를 드릴뿐 남들 앞에 드려내 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비석에 기독교인이라는 표식을 달아달라는 유언도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같은 모습이로 보여 져야 할 줄로 안다. 류달영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면서 그 마음을 품어낸 여성이었다고 한다. 마음을 얻었던 최용신님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라는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에, 순간에도 수 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시대와 운동의 모양새는 달라질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드러내놓지 않는다는 것, 친절과 자상, 마음을 얻기 위해 투신하는 삶.”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의 논문, 교회론(남미의 해방신학 ‘기초공동체’에 대해서)을 첫 목회지에서 썼습니다. 강원도 영월 주천의 도천리라는 작은 교회, 이미 고인이 된 채희동목사가 이곳으로 목회 나가려 했는데 도시에서 공동목회를 한다기에 제가 가게 되었지요. 첫 번 주일을 지내고 나서 엄청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저희 아버님도 목회를 시골에서 하셨는데 어느 날 오후 교우 분께서 먹을거리를 머리에 이고 오셨어요? “별 것 아니지만 맛있게 드세요 ? ” 순간 늘 보아왔던 모습인지라 제가 이야기를 했죠. “아버지 혹시라도 제가 나중에 목회를 하면 아버지처럼은 안 할 것 같네요?” 했더니, 그냥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그렇게 이야기한 시간이 15년 지나 첫 목회지바로 농촌에 내려 온 거죠. 그리고 첫 주일 지난 수요일 오전에 앞집에 계신 노인장께서 긴 겨울 뭐 먹을 것은 있느냐며 쌀 한말을 가지고 오신 거예요. 순간 어릴 적 아버지와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전 이런 것이 좋든 아니든 은총이라 여겨지네요. 거의 한달 간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고민을 했죠. 봄이 되어 지방 농목(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이하 농목)회원들을 만나 실질적인 고민들을 했습니다. 이때 만난 농목은 지금까지의 삶을 이어 가네요. 그때서 자급자족의 삶을 알게 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성서적으로 농부의 삶을 살아가는 정농회(농사를 바르게 짓는 사람들)회원들을 만났죠. 아무리 애를 썼어도 농부님들의 교우 손길을 아직도 벗어날 수는 없지만 흉내는 내기에 덜 미안하답니다.

작지만 농사를 20여 년 째 짓다보니 소외 된 농부의 마음을 좀 이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웃을 생각하게 되고 농촌 마을을 보게 되었죠.
마을부터 이야기해 보았으면 합니다. 마을은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는 지금 왜 마을을 관심 같고 그것도 남들이 다 떠나는 농촌의 마을로 들어서려는 것일까? 거기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무엇이 있기에...?
마을은 그 자체가 활동의 터전, 즉 생명력 있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대안입니다. 거기에는 우리 본래본성의 뿌리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질서에 따라 자연의 이치에 따라 움직여졌던 하나의 공동체, 그런 샘이었다. 자치를 우선으로 기반을 삼은 곳이 마을이다. 이것이 대안이죠. 행복을 이루기 위한 공동체. 본디 마을은 자치적인 공동체입니다. 서로 잘 알고, 돕고, 같이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는 식구들이 모여 사는 곳 생산과 소비가 함께 이루어지는 경제공동체로 두레, 품앗이, 계 등등을 회복하려는 곳이 마을이죠. 조선 시대의 마을은 중앙의 통치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을의 곧 지역의 풍습과 관습, 풍속이 살아있어 향약 등 상당한 자치가 시행되었습니다. 이런 마을이 조선 말기에는 중앙국가의 폭력에 의해 이후 일제와 군사독재에 의해 거의 마을이 파괴되었죠. 행정구역에서조차도 마을은 살아져 버렸다. 마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희한하게도 요즘 도시의 아파트에 마을이라는 이름들이 쓰여 지는 것을 보면 해체의 끝에서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공동체 “마을”을 희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허나, 옛날의 마을을 다시 회복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마을에서 “마을을 재 창조”해 보자는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마을’ 개념과 부딪히는 몇 가지 혼돈과 오해를 정리해 보았으면 합니다. ‘지방’과 ‘마을’의 혼돈이죠. 지방은 중앙의 변방이며 구성요소입니다. 지방은 중앙의 종속개념이며 통치에 필요한 행정개념이죠.
마을은 국가와 시장의 구성요구임과 동시에 자율적인 삶의 중심이며 생활 터전이며 사회 문화적 개념입니다. 지방은 중앙의 통제 하에 있기에 거기는 행복이 억압 속에 있지만, 마을은 자율적인 행복을 생산해내는 곳입니다.
* 우리 마을의 모습.
내가 살아가는 이곳은 홍천군 동면 속초리이다. 속초리의 주변은 성수리와 개운리 덕치리 지역과 연계 된 전형적인 농촌의 마을입니다. 산과 들녘으로 둘러 싸여진 마을입니다. 강원도의 면 소재지 치고는 아주 작은 면 단위이다. 저희 지역은 140호이며 주위에 150호 정도로 분포되어있습니다. 예전에는 더 큰 마을이었지만 인근 홍천읍, 춘천과 원주, 서울권이 가깝다 보니 외지로 많이 이동했죠. 90년대 이후 여기도 이농현상이 뚜렷한 동네인데 이는 어느 시골이나 비슷한 현상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젊은이가 점점 줄어들었고 노동력인 노인들은 점점 고령화 되어가는 것 역시 농촌의 빼 놓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제가 18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초등학교 운동회 때에는 운동장이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지금은 운동회 때 되면 분교인 4학교가 합쳐서 하는데도 운동장이 횡 했습니다. 그 만큼 아이들이 적어진 것과 더불어 이농현상이 뚜렷하다는 증거죠. 거기에 노인들은 많아지면서도 돌아가시다 보니 농촌은 점점 어두운 그늘만 드리워집니다. 더 가슴 아픈 일은 부모가 농부이기에 그 거룩한 농부의 뜻을 이어 갈 자식들이 없다는 것이죠. 자식들은 모두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도시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가장 나이어린 사람들이 바로 우리 또래들이다. 40중반이나 후반의 사람들. 젊은이들로 본다면 암울하기 그지없습니다. 노인들로 구성 된 농사꾼들 이들이 하는 일들은 거의 비슷한 일들입니다. 논과 밭일이죠. 논은 거의 수매 벼 이며, 밭은 가장 많이 하는 작목이 인삼입니다.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하듯 환금작물인 인삼, 담배, 고추, 옥수수 주 작물만 심습니다. 콩, 참깨, 들깨, 밀, 고구마, 마늘, 등등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죠. 보리도 정말 작은 양의 경지만 재배하고 있습니다. 우사와 돈사가 큰 것이 몇 개 있으나 정화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냇물과 강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읍과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그리고 서울과 고속도로가 이어지다보니 농토의 많은 양이 부동산 투기로 거래되어져 있죠. 산 간 쪽의 땅들은 이미 대부분 도시인들의 소유가 되어 있습니다. 농부가 땅을 농사짓기 위해 살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아직 큰 개발은 되지 않았지만 이런 면들을 보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입니다.

농사짓는 것에 있어서는 대부분 관행농업을 따르고 있습니다. 화학비료와 제초제, 농약을 써 가며 농사를 짓죠.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유기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야채 농사를 20여간 짓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저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 이제는 친환경 농업이란 농업으로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지만 언제나 시세라는 것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대부분의 농촌이 그럴 것입니다. 유기농업으로 한다고 하지만 사실 석유로 뽑아낸 비닐을 안 쓰면서 농사짓는 이는 아예 없는 현실입니다. 환금작물위주로 농사를 짓다보니 나머지 식품들에 대해서는 재밌게도 농협 마트나, 용달 슈퍼에 의존합니다. “열무 사려, 오이, 쑥갓, 당근 있어요~?”

* 농촌 마을의 현실
알다시피 2005년 말 우리나라의 주곡 자급율은 25%가 안 됩니다. 그나마 90%에 이르는 쌀 자급율을 빼고 잡곡의 자급율만 따르면 3%정도죠. 이는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주곡의 자급이 없는 경제의 자립은 절대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농업의 자주성이 취약한 것 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건강이 극도로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부족한 부분들을 외국의 농산물에 의존해야하는데 거기에는 경작의 과정에서 뿐 아니라, 변질과 부패되지 않기 위해 운송의 과정에서 우리 몸에 해로운 약품들을 살포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몸입니다. 헌데 지금의 주곡 생산의 비율에 있어서는 절대로 골고루 섭취할 길이 없는 것이죠. 실제로 사 계절이 뚜렷한 우리의 나라에서 언젠가부터 사계절 내내 똑같은 쌀밥을 내내 먹고 있는 것입니다. 보리, 조, 콩, 수수, 옥수수, 감자, 고구마, 기장 등등의 것들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촌의 이러한 일차 산업의 다양한 생산들이 무너져 버리고 사라져 버린다면 누가 우리 국민의 자주권과 생존권 더 나아가 건강을 책임 질 수 있단 말입니까? 서비스 산업이 중요하지만, 이것 역시 1차 산업이 제대로 서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야 2,3차 산업이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불과 30년 전 만해도 우리의 산업은 1차 산업이 튼튼했죠. 그런데 지금은 정상의 피라 밑그림이 아니라 거꾸로 되어버린 것입니다. 무너지기가 너무나도 쉬운 그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까운 일본만하더라도 일차 산업의 %이 40-45%을 보장하기위하여 정부와 사투를 벌인다고 들었습니다. 북한은 자급율로만으로는 65%라고 하네요. 우리에게 있어서는 가히 상상도 못 할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자주권과 생존권 그리고 국민 건강권에 있어서는 꼭 필요하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되어 진 농촌의 현실을 조금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마을에서 보았듯이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아이와 청소년, 그리고 젊은이가 없는 마을을 상상해보십시오. 고령화된 농촌의 마을로는 “생명을 살리는 농업”을 일구어 갈 수는 없습니다. ‘생명’이란 말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세대 간이 이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디 세대뿐이겠는지요? 사물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작물의 다양성도 여기에 포함 될 듯싶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생명은 분명 몸일 찐대 몸은 어디에 기반을 둘까? 바로 땅일 것입니다. 그 땅의 흙에서 온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데 거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겠는지요? 저도 농사를 짓다보면 죽어가는 땅을 볼 때 분명 거기에는 욕심이란 사악한 것이 결국 너, 나, 우리 모두를 죽이는 것이구나. 알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역시 거대한 자본의 힘입니다. 다국적 기업의 힘 이죠.

결국 땅이 죽어간다는 것은 연결의 고리인 몸이 죽는 것이고 몸이 죽어 간다는 것은 마을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경쟁의 농업, 기계의 농업, 해보았지만 가져오는 것은 죽임에로 인도 할 뿐입니다. 대단위의 농업, 기업농이 땅을 살리는 농업이었다면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고 생산증대만을 목적으로 물, 불 안 가렸다면 그래서 땅이 죽어간다면 이는 분명 원시농업보다 나은 것 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다랑이 논이라든가, 작은 가리, 둔의 밭을 여러 작물로 일구어 잡곡이 지금의 3%가 아닌 7% 아니 10%에 이를 수 있다면 이는 분명 건강뿐 아니라 땅 도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이것은 기업농과 대농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족농이며 소농입니다.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몸이 살아난다는 것이고 이러한 생명들이 땀 흘린다면, 그러한 땅은 살아 날 것이고 분명 그 마을은 아름다워지는 것이죠.
이미 우리는 수 천 년 동안 소농중심의 자급 경제 틀 이었죠.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땅을 갖고 그 땅을 일구어 국가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려했습니다. 왜냐하면 산지가 많기에 인력과 축력을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저 광활한 넒은 사막과 같은 지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의 산악 구조 속에서의 농업을 연상하면 좋을 듯싶다.) 오히려 농촌의 인력을 더 늘려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3백만에서 150만 정예화의 기업농으로 바꾸려하니 이는 결국 땅과 몸, 그리고 마을을 죽이는 정책이죠. 결국 잡곡의 주 작물들이 환금작물로 대체되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농사의 결과로 농촌의 농민은 언제나 빚만 더 많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종자 값에서부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농기계 값, 대량 생산를 하다 보니 거기에 따른 인건비, 농약, 퇴비, 상자, 등등 크고 작은 돈들이 쉴 새 없이 빠져 나갑니다. 이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농가 소득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농법이 사람과 땅을 죽이면서도 그 만큼의 소득이 나오지 않는 다면 이야말로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이러다보니 투기농업과 부동산이 성행해지고 삶의 양식 또한 도시의 문화를 그대로 배워 도시보다 더 편리한 삶을 추구하려하니 농촌의 겉모습은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도시의 살벌한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부자가 자기 집 앞에 삼층 누각집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욕심만 앞서서 부랴부랴 목수와 일꾼들을 불러 ‘저 앞에 보이는 저 삼 층 집 보다 무조건 더 높이 지어라 !’ 라고 ........ 얼마 지난 후에 주인이 얼마나 일했나 가보았더니 목수와 일꾼들이 여전히 땅만 파고 있기에 화를 버럭 내면서 내가 언제 땅 파라고 그랬나? 삼층보다 높은 집 지으라고 했지. 목수와 일꾼들이 기가 막혀 여차 이야기했더니 부자는 막 무 간입니다. 무조건 땅 파는 것은 모르겠고 집을 지어놓으라는 것......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헌데 어쩝니까? 지금 우리의 모습이 이러하니 웃을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고서 어떻게 좋은 집이 나올 수 있고 좋은 재료를 쓸 수 있겠는가? 일차산업인 농업이 튼튼해야만 농부도 땅도 작물도 건강해 질 수 있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한에 맺힌 농업, 무엇보다도 일한만큼의 대가가 없기에 농사를 기피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일꾼들은 외국인 근로자입니다. 전국을 떠돌면 새벽부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일하죠. 이들이 한 지역의 마을에서 일한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탄광촌이며, 농촌의 대부분 지역의 일력시장으로 노동을 대치하고 있으니 어찌 농촌이 건강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도 농촌의 현실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마을의 대안적인 이야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오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국의 농촌교회 목회자들만이라도 작은 텃밭만 일구어도 거기에 좀 더 흥미를 느껴 약간 더 할 수 있다면 그 마을은 서서히 변화의 싹이 틀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17년 전입니다. 자립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기에 시작한 유기농사, 몇 해 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찾아오고 이제는 5-6가구가 함께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일들을 하다 보니 주변의 여러 다양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역시 같은 고민들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야채를 20여 년 간 재배한 사람, 흙을 넣어 전통 한옥 집을 짓는 친구, 야생화와 먹을거리를 일구는 사람, 우리 전통 매듭과 한지공방을 만드는 친구, 나무 공예, 친환경 집단 오리농법으로 농사짓는 이웃들, 우렁이를 이용해 농사짓는 친구, 책 읽어주는 아주머니, 야생초로 효소를 만드는 이웃 등등 만나면서 같은 고민과 생각으로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자연을 닮은 즉 ‘생명을 살리는 ’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마을은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여전히 풀 숙제는 맨 아래의 땀 흘림의 노동을 요구하는 1차 산업의 잡곡류 재배만 더 애써진다면 더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범위의 마을 단위가 전국에 두루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농사만이 아닌 農(농사와 관계된 종합적인 예술까지: 농의 시, 농의 기계, 수공업, 과학, 마당놀이, 문학, 놀이, 음악, 미술, 등등)적인 삶으로의 풍성함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건강해지려면 역시 농촌이건 도시건 간에 먹을거리를 밑그림으로 그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도시농업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더 ‘생명을 살리는 데 있어서 제 일 순위의 가치가 있는 일이냐 ?’ 는 것이죠. 자신의 가족의 먹을거리를 함께 작은 텃밭을 통해서 먹고 나눌 수 있다면, 그리고 부족한 부분만을 직거래의 유통으로 함께 된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선수위를 어디에 두냐는 것입니다. 바로 먹을거리와 자신의 잠 잘 곳을 직접 지어보는 것과 입을 거리(依), 자신의 몸 돌보는 의, 식, 주 일 것입니다. 여기에 자체적으로 민간요법을 통한 의료와 대안적인 교육만 보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마을은 풍성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해 나가는 가장 근본적인 힘은 역시 스스로의 주체적인 역량입니다.
문화를 바꾸어나가는 것이죠. 누가? 바로 마을의 주민이죠. 하나하나의 역량을 끌어 낼 누군가가 서로서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물코처럼 서로 연계망으로.......

* 우리 마을에서의 교육에 대하여.....

먼저 우리 집안에서 행하여지는 교육에 대해서 순서 나열 없이 기록해 봅니다.
우리는 아이를 넷이나 키웁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나, 어떤 감성을 지니고 있나, 어떤 때 어떤 반응을 일으키나 등등 아이들의 관찰은 어렸을 때가 가장 정확하다고 합니다. 이미 초등6학년만 되어도 부모의 비위를 맞추거나 허위적인 것이 많죠. 아주 어릴 적부터 아이들의 특징, 관심, 놀이, 흥얼거림 등등을 기록해두면 아이가 컷을 때 공통적인 부분으로 진로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의 일들을 마치고서 나누는 식탁의 문화입니다. 우선 아이들이 학교에서 되어진 이야기를 자연스레 들어봅니다. 이 때 재밌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나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식탁의 나눔은 어쩌면 농촌에서 가장 거룩한 예식이라 여겨집니다.
아내는 벌써 7년째 아이들은 5년째 채식음식을 실천하는 일이죠. 이는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끊임없는 교육에 의해서 가치관이 확립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채색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여러 환경 비디오를 통해서 혹은 여러 사회의 지도력을 행하는 채식주의자들을 이야기함으로 본인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우리 마을에 이미 채식을 하시고 계신 아주머니들이 몇몇 있기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든 영상물들을 보게 됨으로 농촌과 환경을 관심 가지게 되었구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여러 곤충과 꽃 그리고 새들을 접하게 됨으로써 정서적으로 풍부해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만들어 준 칠판, 거기에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그림을 언제든지 표현하기에 그 때 그 때 반응을 알 수가 있습니다.
채식을 하다 보니 도시락을 싸주는데 2-3일 간격으로는 하트모양의 작은 접착제종이에 간단한 내용의 글귀를 적어 밥 먹을 때 봄으로 고마움을 알게 합니다.
아내는 언제나 아이들과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환경 비디오, T.V, 시청 때는 언제나 “뜨개질”을 합니다. 아이들의 소품과 옷을 만들어 주는데 순전히 짜투리 시간들을 이용해 만든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보고 배웁니다.
의료에 있어서는 가장 기본적인 침과 뜸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가장 저렴하면서도 건강해질 수 있는 것들을 배우고 나눕니다.

여름 성경학교는 벌써 8년동안 교회학교 아이들과 이웃의 친구들 함께 모여 생태, 역사, 문화, 농촌체험 프로그램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거제도와 제주도 , 일본의 간사이 지역을 탐방하기도 했죠. 올해는 포천 지역을 중심으로 수목원과 식물원, 한과 박물관, 허브나라, 아프리카 박물관 등등을 견학하고 저녁에는 마임과 마술 등등의 친교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손님들이 왔을 때입니다. 누구든 간에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잠깐이라도 말씀을 들으며 가실 때에는 언제나 마당에 나와 배웅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걷기입니다. 동네를 수십 번도 더 돌았습니다. 이것만큼 동네 마을을 잘 관찰 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걸으면서 집들을 보게 되고 자연을 보게 되며 또한 곤충과 벌레 날아가는 새, 거기에 농작물까지 아이들은 수시로 배우고 익힙니다. 또한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며 그림을 그립니다. 자기만의 스케치 작은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죠. 걷는 동안 어른들과의 만남 역시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노인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 역시 가장 중요한 대안 교육의 한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저희 교회 교우들께 물었습니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분이 누구였냐고?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고인이 되셨지만 가장 연약해 보였던 한 모정 여자 전도사님 이유는 그냥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 함께 살아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연약한 사람들에게 오셔서 그렇게 살다 가신 분 또한 우리가 믿는 분 아니겠는지요? 어쩌면 여기에 답이 있고 소망이 있는 듯합니다. 위가 아닌 아래로 땅에 더 깊이 뿌리내리는 목회가 기쁨 아닐까 마음모아 봅니다.

 

한국기독교연구소 “교육사업 안내”
Korean Institute of the Christian Studies
http://historicaljesus.co.kr


■ 월례 예수포럼 (KICS Mohthly Jesus Forum)
매월 셋째주 월요일 오후 5시 30분에 용산구 청파동 청파교회(김기석 목사) 교육관에서 열립니다. 매월 강사를 초빙하여 '내 인생의 기독교'라는 주제강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 예수학당 (KICS Jesus Study Group)
매주 열리는 독서모임으로 매달 한 권씩 한기연 출간 서적을 나눕니다. 서대문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6시에 이야기 손님도 모시고 회원들의 독서감상도 나누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정해진 책만 읽고 오시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합니다.

■ 예수 청년대학 (KICS Jesus Academy)
1년 2학기로 운영되는 교육강좌이며 신학생 및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미래의 주역으로써 기독청년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과 살아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장입니다.

■ 기타교육지원 (Other Educational Service)
요청이 있을 경우 개별적인 모임 및 단체에 강사를 파견하여 강의를 지원합니다. 또한 예수운동이 목회현장과 접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목회 및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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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035-21-0967-696 / 기업 071-004407-03-011 예금주:김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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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민초의승리 (125.142.186.172)
2010-02-24 05:17:48
펜은 칼보다 강하다.
피부로 느껴지는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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