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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사순절 첫 번째 주일(20100221)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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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2월 17일 (수) 20:17:51
최종편집 : 2010년 02월 17일 (수) 21:45:43 [조회수 : 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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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첫 번째 주일(20100221)
성서일과/ 시 91:1-2, 9-16; 신 26:1-11; 롬 10:8-13; 눅 4:1-13
본문/ 누가복음 4:1-13
광야에서...

          (눅 4:1-13)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10]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리라


   
오늘은 사순절의 첫 주일입니다.
사순이라 함은 지금부터 주님의 고난과 부활까지 40일이 남았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종노릇하고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영광이 있기 전에 고통에 찬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땅에서의 주님의 삶은 바로 이 십자가를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이런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는 복음서로 “길”이라는 단어가 가장 중요한 낱말이다.
주님 가신 길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이었다는 뜻입니다.
사순절은 바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가는 기간인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자주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좋든 싫든 선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오늘의 우리입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여정에서 만나는 기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선택과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인생길에서 나오는 기로는 여러 갈래입니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있기 마려이고, 처음 선택이 잘못 됐으면 다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앞에 놓여 있는 길은 언제나 두 갈래 길 밖에 없습니다.
뒤로 마룰 수도 없고, 다시 돌이킬 기회도 거의 없습니다.
이 두 길은 우리 인생의 흥망이 달린 매우 중요한 길입니다.
한 길은 영원히 흥하는 길이고, 한 길은 영원히 망하는 길입니다.

어떤 길로 가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가신 길을 더듬어보며 그에게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선생이 되사고, 영원한 모범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이 당신의 길 곧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면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주님이 광야로 가셔서 당하신 일들은 우리에게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과 같은 길, 바른 길을 가는 주의 참 제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은 성령이 이끄시는 길로 갔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인생을 구원하시는 일을 시작하실 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광야로 가셨으며, 또한 광야에 있는 40일 동안 성령 에게 이끌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갔는데 그 길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말 그대로 시험-test입니다.
그릇을 만들어 새는지 어떤지를 알아보려면 물을 담아 보아야 합니다.
칼을 갈아서 잘 드는지, 어떤지 시험을 하려면 무엇인가를 잘라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만든 사람이 의도한 대로 잘 되었는지 아니면 잘못 되었는지를 살펴서 확인하는 것을 시험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유혹-temptation 이라고 표현하는 시험입니다.
요리를 하려고 든 칼로 사람을 찔러 보라고 하는 일입니다.
물을 담으려고 한 컵에 술을 담으면 어떻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만든 사람, 쓰는 사람의 의도와 달리 쓰여지도록 현혹하는 일입니다.

첫째 것을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하고, 둘째 것을 마귀의 시험-유혹이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면 하나님 뜻대로 쓰임을 받고, 상급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 복 주신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에 빠지면 버림을 받고, 저주를 받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빠진 것이 그 유혹이었습니다.

대체로 하나님의 시험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명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낳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이 좋은 예입니다.
반면에 마귀의 유혹은 좋고, 편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마귀의 유혹을 받은 하와의 눈에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가 먹음직스럽고, 볼만하기도 하고, 탐스럽기까지 했다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렇다면 그 유혹을 이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욥의 결국이 대답하고 있습니다.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

그런데 하나님의 시험과 마귀의 시험이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시험하시기 위해 때로 인생들을 마귀의 유혹이라는 방법을 쓰시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닥친 일이 그랬습니다.
주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갔지만 광야로 나아가, 마귀의 시험을 받았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벧전 4:12-13)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여기 말하는 시련이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불시험은 마귀의 시험을 뜻하는 것이니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자가 곧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이 곧 하나님의 시험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험이 닥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당연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피하고 싶은 것이 시험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 시험이기도 합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시험이라면 이겨라’ 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이든지, 마귀의 유혹이든지 이기면 되는 것입니다.
시험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셨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길, 이기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면 어떤 시험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면 어떻게 됩니까?
누가가 기록한 행 10:38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가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어떠한 마귀의 시험도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이 오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광야로 가는 길이어도, 마귀의 시험이 도시리고 있는 길이어도 겁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따라 가는 길이라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 길에 하나님이 함께 가시니 반드시 이기는 길이 될 줄로 믿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은 말씀이 인도하는 길로 갔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은 결코 평안한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여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평안한 길이래야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길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은 평안한 길이 아니라 안전한 길입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이 평안이라면 무슨 일을 만나도 이기는 것이 안전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이 그랬습니다.
잠시 동안 평안히 사는 길이 아니라 안전하게, 영원히 사는 길이었습니다.

영원한 평안은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것이지만 잠시 동안의 평안은 마귀가 인생을 유혹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마귀는 성도들이 지나는 길가에 서서 묻습니다.
지금 가는 길이 즐거우냐고 묻습니다.
어디쯤 가면 기대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내가 당장 그것을 줄 수 있는데 길을 바꿔 보면 어떻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주님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일은 우리에게 안전한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귀들이 유혹하여 물을 때 어떻게 대답하여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이 무엇입니까?
마귀는 육체의 욕심이라는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오게 마련입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첫 사람 하와에게 닥친 시험에도 그대로 해당되는 것입니다.
시험에 빠진 하와의 눈에 선악과가 어떻게 보였다고 했습니까?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께 마귀는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육신의 정욕을 지닌 인간이 견디기 힘든 시험이었습니다.
첫 사람 하와가 먹음직하다고 느꼈던 바로 그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이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4] ...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부귀와 영화에 대한 인생의 욕심인 안목의 정욕도 동원되었습니다.
마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 주면서,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보이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와에게도 이런 유혹이 있었고 하와는 이를 거역하지 못했습니다.
하와가 보기에 보암직도 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8] ...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생의 자랑도 시험의 도구로 쓰였습니다.
마귀는 예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천사들이 수종할 것이므로 하나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네 이름이 만방에 드러날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 탐스럽게 보였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도 말씀하셨습니다.
          [12] ...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유혹을 하나같이 말씀으로 물리쳐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하신 말씀, 어느 하나도 주님이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기록되었으되, 하였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은 차례대로 신명기 8:3, 6:13, 6:16에 기록된 말씀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시험하는 마귀의 속삭이는 유혹을 이기는 것은 말씀을 따라 사는 길입니다.
그것도 새롭고 유별난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당신의 종들을 통해 주신 말씀,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미 주신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사모하고, 되새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길로 갔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성령 하나님에게 이끌려서 가신 것은 시작하실 때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날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까?
그래서 하나님에게 기도하셨습니다.
          (눅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미 시험을 거치신 주님이 마지막 순간에 다시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은 다시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모진 고난이 기다리는 길이었습니다.
당신이 원하신 길은 아니었지만 그 길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성령 하나님에게 이끌려서 일을 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간다는 것, 말씀을 따라 간다는 것에 공통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길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제자들은 주님이 자기들이 원하는 길로 가시기를 원했습니다.
주님은 길에서 제자들을 깨우치려 하셨습니다.
당신이 가시는 길이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길이라고....
모든 복음서에 공통된 것이지만 특히 누가복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9: 22에 말씀하셨습니다.
          (눅 9: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애 살아나야 하리라

9:31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눅 9:31)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11:31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눅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직접적으로 말씀하기도 하셨고,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말씀하기도 하셨고, 비유를 써서 말씀하시기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자기들이 원하는 것에 갇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 가시는 길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가는 도중에 자기들 가운데 누가 높은 자냐 하는 것을 두고 다투었습니다.
          (눅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잡히시는 그날까지 이런 다툼이 계속되었습니다.
          (눅 22:24)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다른 복음서룰 보면 제자들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 20:21) ...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 하소서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들이 원하는 것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요 6:15) ...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그런데 주님의 마음 한 구석에도 비슷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당신이 원하시는 일, 즐거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마음 그대로를 하나님께 토로하였습니다.
          (눅 22:42) ...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예수님의 마음은 다른 복음서에서 더 실감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막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이 모든 복음서가 한결같이 전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자기가 원하는 길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택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는 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길에 공통된 것은 그 길이 자기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길이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훗날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대제사장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느냐는 대제사장의 힐책에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행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바울도 말했습니다.
          (갈 1:11) 형제들아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주님 가시는 길을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땅 끝까지 전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니, 그들은 사람의 원대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성령과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은 절로 하나님이 정하시고, 원하시는 길을 가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과 말씀을 따라 살기 원한다면 사람이 원하는 대로 가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를 일러 나를 죽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가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순절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간입니다.
광야로 나가고, 채찍에 맞고, 모욕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에 동참하다는 것은 나를 죽이고, 내 뜻을 버리는 일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대로 가기 위해 나를 버리는 연습을 하는 준비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주님조차 피땀 흘려가며 기도하지 않고서는 택하실 수 없던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해마다 지키는 사순절이지만 올해는 이 연습을 하는 기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든지, 세상에 사는 일이든지, 무슨 일이 되었든지 나를 죽이고 그리스도 예수로 사는 연습을 하는 기간으로 삼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천사들이 수종드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길, 말씀을 따라 사는 길 곧 하나님의 원대로 가는 길의 결국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치고 있습니다.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리라

같은 일을 기록한 마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귀는 사라지고 천사들이 수종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수종이 뭡니까?
따라 다니며 섬긴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가는 길, 말씀을 따라 가는 길, 하나님의 원대로 가는 길에 마귀는 사리지고, 하나님이 당신의 사자를 보내어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에서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 91:11-13)[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사들은 아무리 고귀해도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사들이 수종을 드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주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아무쪼록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감으로 성도들의 가는 길에서 천사들의 도움을 받는 은혜와 영광에 이르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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