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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 받은 자(2)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20100207)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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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2월 03일 (수) 21:56:06
최종편집 : 2010년 02월 03일 (수) 22:17:10 [조회수 : 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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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20100207)
성서일과/ 시 138; 사 6:1-8(9-13}; 고전 15:1-11; 눅 5:1-11
본문/ 누가복음 5:1-11 
부름 받은 자(2)

          (눅 5:1-11)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 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우리의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으시는 주의 은혜와 복이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주 우리는 예레미야의 부름 받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베드로가 주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입니다.
예레미야 이야기가 1막으로 구성된 이야기라면 베드로의 이야기는 3 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골자는 놀랍게도 유사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므로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함으로 나타나는 것은 변화입니다.
예레미야의 일이 제사장에서 예언자로 바뀌었습니다.
성소에 머무르지 않고, 거리에 나가 무슨 말씀이라도 주님이 맡기시는 말씀을 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관통하는 낱말도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심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변화입니다.
밤새도록 수고했어도 결과가 없었으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지니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도록 많은 고기를 잡은 것은 그 변화의 시작일 뿐입니다.
고기 잡던 베드로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바뀌었습니다.
배를 의지하여 바다에 머물지 않고,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를 따라 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말씀이 임하시니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있는 자리가 바뀌고, 하는 일이 바뀌었습니다.
크고 놀라운 변화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와 같은 변화의 은총이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예레미야의 이야기는 1막으로 된 이야기여서 대사에 집중해서 살펴보았습니다만 베드로의 이야기는 3막이니 변화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새벽,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 1 막/ 말씀을 들음 - 마음을 바꿈

첫째 막은 베드로와 그의 동무 어부들이 밤새 애를 쓰고도 한 마리의 고기도 건지지 못한 채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주님은 베드로 일행에게 배를 빌리자고 청하시더니 배에 올라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이야기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 같지만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물을 씻던 베드로가 선뜻 배를 내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베드로는 굉장히 피곤하고 실망스러운 상태입니다.
밤새 수고를 했는데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를 못한 것입니다.
수고한대로 먹게 하시는 것이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밤새 헛되이 수고를 한 끝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를 내어 주고 또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어서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일까지 베드로는 순순히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바닷가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의 말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고기를 잡으러 나간 어부들이 돌아오면 마을은 얼마나 고기를 잡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기를 많이 잡은 날은 오히려 조용하고, 고기를 잡지 못한 날 마을이 시끄럽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많이 잡은 날은 어부들이 일찍 집으로 들어가는데, 고기를 잡지 못한 날은 술집마다 사람이 넘치고, 여기저기 투전판이 벌어져서 온 동네가 밤새 시끄러워 진답니다.
고기를 잡지 못한 실망감이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베드로라고 달랐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빈 그물을 씻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화풀이 할 대상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배를 빌리자는 말에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느냐고 화를 내어도 이해가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주님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고, 어느 사이 주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본문을 가만히 보면, 주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기 전 이미 주님은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가르치시는 중에 문득 베드로 일행을 보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 쉬운 자리라 여기셔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씻으면서 주의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귀를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았어도 절로 들렸을 것입니다.
피곤하고, 실망스러운 마음보다 주님의 말씀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마음속에 파고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자기에게로 와서 배를 빌리자고 하실 때에 거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어 달라고 하셨지만 피곤하다고, 귀찮다고 거부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피곤하고, 실망스럽지만 자기 마음을 앞세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대로 배를 내어 드리고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

예언자 요나는 하나님에게 사명을 받았습니다.
앗수르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그 일은 요나의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앗수르는 원수의 나라입니다.
멸망해 마땅한 나라였습니다.
요나는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기분을 따라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에게 닥쳐온 것은 고난이었습니다.
바다에 던져지고, 물고기에게 삼키워 사흘이나 음부의 고통을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지난 한 주 수고한 대로, 마음에 원하는 대로 거두셨습니까?
피곤하지는 않으십니까?
짜증이 나고, 실망스럽지는 않으십니까?

마음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간직했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고기 잡는 어부 베드로가 사람을 먹이는 목자 베드로가 된 첫 번째 계기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과 내 기분에 좌우되는 자가 아니라 진정 주님의 권세 있는 말씀에 사로잡히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제 2 막/ 말씀을 따름 - 생각을 바꿈

둘째 막은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잡는 장면입니다.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가르치시기를 마치신 주님이 베드로를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심취해 있던 베드로가 말합니다.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를 했지만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대로 해 보겠습니다.

이미 귀동냥하듯 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을 바꾼 베드로입니다.
이제는 귀를 기울여 주님 가르치시는 말씀을 들은 뒤끝입니다.
우리가 밤새 고생했으나 얻은 것이 없었지만 당신의 말씀을 따라 다시 고기를 잡아 보겠다는 것은 생각을 바꾸겠다는 뜻입니다.
밤새 수고했어도 잡은 것이 없으니 다시 수고해도 얻을 것이 없으리라는 것이 베드로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바꾸어 당신의 말대로 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슴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라면, 생각은 머리에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앞뒤가 없는 것이고, 생각은 앞뒤가 있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마음은 감정이고, 생각은 이성입니다.
마음은 잘 변하는 것이지만 생각은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주의 말씀을 듣는 베드로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기를 잡고 싶었으나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금이라도 고기를 잡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생각은 어땠겠습니까?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어도 얻은 것이 없지만은....”
지금 다시 수고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 베드로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봤자 헛수고일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나이다.”
내 생각을 바꾸겠다는 뜻입니다.
내 생각대로라면 될 일이 아니지만 되든지 안 되든 지는 차치하고 주의 생각대로 한 번 해 보겠다는 뜻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토해진 요나는 어쩔 수 없이 앗수르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앗수르가 구원을 얻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앗수르는 망해야 할 나라이고,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습니다.
요나는 앗수르가 망하는 꼴을 보기 위해 멀리서 앗수르 성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박 넝쿨 아래 그늘에서 뜨거운 햇빛을 피하고, 느긋하게 앉아서 살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성이 망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갑자기 박 넝쿨이 시들어 버려서 광야의 뜨거운 햇빛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뜨거운 동풍까지 불어오는 것이 아닙니까?
요나는 짜증이 나고, 심술이 났습니다.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며 하나님을 향해 투정을 부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욘 4:10-11)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하나님의 생각과 요나의 생각이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끼는 것을 요나는 미워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했으나, 요나는 망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던 요나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든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생각을 바꾸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생각을 바꾸지 못하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어떻게 됩니까?
참으로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의 생각이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에 그물을 내려야 하는가 하는 것에 관해서는 전문가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접고, 주의 생각을 따라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혔습니다.
밤을 새워 수고를 했어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번 그물질로 더 이상의 수고가 불필요한 수확을 얻은 것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생각을 바꾸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생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 생각, 내 뜻을 버리고 주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심지 않고 거두시며, 흩지 않고 모으시는 주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능력으로 사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제 3 막/ 말씀을 좇음 - 길을 바꿈

마지막 3막은 놀라운 일을 목도한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라 가는 장면입니다.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고기를 잡은 베드로의 마음은 마땅히 기뻐하고 또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기뻐하기 전에 놀랐습니다.
그럴만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졌으니 놀랄 만합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베드로가 주 앞에 엎드려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떠나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반응은 놀람입니다.
          (막 1:22)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 22: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그러나 놀람 이후에 나타나는 반응은 달랐습니다.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놀라워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놀라는 것은 같지만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눅 13: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한 편으로 하나님과 그 나라의 영광을 사람들에게 밝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듣는 자의 죄를 발가벗겨서 하나님 앞에 세웁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그 나라를 본 자들은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만, 자기 죄가 드러나는 것을 느끼는 자들은 놀라며,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들은 다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멸망할 자들과 구원 얻을 자들입니다.
멸망할 자들은 부끄러워 하다가, 어느덧 분노하게 되고 마침내 말씀을 막아서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바로 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 얻을 자들은 어떻습니까?
주 앞에 엎드려서 자기 죄를 자복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오늘의 성서일과에 나타나는 이사야도 그랬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했습니다.
그 역시 기뻐할 겨를도 없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절망적으로 외쳤습니다.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나님은 핀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셔서 그 죄를 씻으시고, 그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맡겼습니다.
베드로는 어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무서워 말라 하심은 네 죄를 사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심은 이제부터 다른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것인데 새로운 일까지 맡기신 것입니다.
베드로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동무인 야고보와 요한도 같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 사람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길이 바뀐 것입니다.
고기를 못 잡은 베드로가 갈 길은 자기 집이 아니면 술집이었을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았다 할지라도 그가 갈 길은 변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베드로는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는 길로 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정한 길이 아니라 주님이 가시는 길이 그가 가는 길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간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간 곳이 어디였습니까?
히브리서가 말합니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이 아브라함이 간 곳입니다.
지금까지 베드로의 기업은 바다에 있었고, 배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알지 못 하고 간 것처럼 베드로도 알지 못 하고 갑니다.
그러나 그 길은 장래의 기업 곧 영원한 기업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을 바꾸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길이 바뀌면 구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이전에 좋았던 것이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말씀을 듣는 자들의 결국은 길을 바꾸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길, 언제나 그랬듯이 가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가시는 길로 간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가야할 지, 무슨 일을 만날지 알 수 없어도 믿음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속한 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향하는 것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에필로그/ 버려두고 따름

이제 이야기의 막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멀리 예수님이 보일 듯 말 듯 하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 속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갑니다.
잠시 후, 이제 보이는 것은 베드로 일행이 버려두고 간 배와 그물 그리고 그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았던 고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입니다.

제가 만약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든다면, 바로 이 장면 남겨진 배와 그물 그리고 흩어진 물고기들을 오랫동안 보여주면서 막을 내리겠습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좋은 작품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머릿속에 모두가 떠난 다음에 배와 그물 그리고 물고기들이 남아 있는 장면을 그려 보십시오.
그리고 생각해 보십시오.

배와 그물은 베드로와 그 동무들의 생명줄이었습니다.
물고기들은 그들이 원하는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무릅쓰고 다시 배를 저어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동무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끌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베드로의 길이 바뀌니 그 모든 것들이 뒤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들려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요 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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