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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량 공동 목회, 교회 부패 쪼개는 '날선 검'주님의 소명 받은 제자들만 갈 수 있는 좁은 길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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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2월 03일 (수) 16:21:42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7:01:58 [조회수 : 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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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는 약 10만 명의 목회자와 크고 작은 5만여 개의 교회가 있으며, 교회당 평균 교인 수는 약 170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비교에 지나지 않고, 실제 이들 교회 가운데 60% 이상이 교인 50명 미만의 미자립 개척 교회라고 한다. 이런 통계는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열악한 목회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미자립 개척 교회들에 대하여, 그동안 대부분의 교단들에서 보여 준 대책들은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미봉책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상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고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장단기 해외 선교 운운하며 물심양면으로 쏟아붓는 거창한 노력보다 우선순위에 있어서 뒤로 밀릴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해외 선교도 물론 중요하고, 반드시 동시에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가까운 마을들'도 다 제대로 복음화를 하지 못했다. 복음은 처음부터 로마나 아테네로 향한 것이 아니었고, 예수님은 로마 근처에도 못 가 보셨다. 선교도 가까운 데서부터 먼 데로 가는 일반적인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까운 마을들을 복음화하는 최전선에 서 있는 교회들이 바로 미자립 개척 교회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부분의 이들 교회가 도시 변두리와 농어촌, 그리고 외딴섬 등 소외된 지역이나 기타 복음의 사각지대에 들어서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미자립 개척 교회들의 자립을 돕고 지원하는 일은 한국교회가 최우선적으로 노력해야 할 사역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대책 중의 하나는 기존처럼 각 교단의 노회나 총회 차원에서, 중대형 교회들과 미자립 교회들을 서로 자매결연하여 재정이 허락되는 범위에서라도 일정 부분 목회자 생활비를 꾸준히 지원해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물론 각 교단의 적극적인 노력이 계속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자비량 공동 목회'가 필요한 이유

하지만 교단의 어떠한 지원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목회자들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수시로 급변하는 목회 환경 속에서, 구태여 과거의 방법만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무려 3만여 교회가 미자립 개척 교회라는 현실을 감안하고, 또 현재도 많은 신학교들에서 새로운 목회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비상한 대안을 심각하게 연구하고 실천해야 할 때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교인이 50명 미만이 되면, 우선 당장 경제적인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다. 교회가 수도원처럼 산속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을 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어려움이 될 것이다. 이쯤 되면 목회자 생활비는커녕 예배당 임대료도 감당하지 못해 숨이 찰 경우도 많을 것이다. 또한 개척 초기에 사람이 적다 보니, 헌신된 일꾼이 항상 모자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절박함을 크게 개선하는 적극적인 대안 중 하나로 '자비량 공동 목회'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 조건이 달라지겠지만, 초기에는 서로 뜻이 맞는 대략 2-5명의 목회자들이 한 팀을 이루는 것이 좋을 듯하다. 혹시 가능하다면 가까운 지역의 기존 개척 교회들이 서로 연합을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방법은 기존에 난립한 교회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구조 조정의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지금 현재로는 한국에 교회 수가 적어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 개척을 하는 경우에도 공동 목회는 여러모로 좋은 장점이 있다고 본다. 우선, 교역자가 여러 명이 있으니 짐을 서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이럴 경우에 거의 자비량 목회도 가능해진다. 서로 효율적으로 시간을 조정하여 사역을 지혜롭게 분담한다면, 충분히 자신의 생활비를 벌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하는 자비량 목회는 시간 관리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하지만 '자비량 공동 목회'는 이런 단점을 크게 개선해 줄 수 있다. 따라서 목회자가 반드시 교회에서 주는 사례비에만 의지해서 목회하겠다는 사고방식을 이제는 좀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인이 몇 명 되지도 않는 미자립 교회에서, 그들의 주머니만을 바라보는 목회는 모두에게 아픔이 될 뿐이다.

앞으로 공동 목회를 새로 시작하실 분들에게는 적어도 한 가지의 기술을 배우거나 또는 전문 자격증을 가지고 스스로 밥벌이할 각오를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잘 준비된 목회자들이 세 가정 정도로 한 팀을 이룬다면, 그 즉시 가정 교회 형식으로라도 공동 목회가 당장 가능해질 것이다.

이때부터는 예배당 건물이나 교역자 사례비에도 크게 신경을 쓸 필요 없이, 형편에 따라 작은 예배 처소를 임대하거나 아니면 가정에서라도 교회를 시작할 수 있다. 또한 전도, 교육, 구제 및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들도 작은 일부터 나름대로 가능해질 것이다.

여기에 평신도 가정이 두어 가정이라도 더 추가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처음부터 무슨 큰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먼저 지역 내에 소외되고 힘든 이들을 찾아 힘이 닿는 대로 도우며 전도에 힘쓰다 보면 교회는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할 것이라 생각된다. 설사 성장이 더디더라도 처음부터 잘 준비된 정예팀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교회는 흔들림 없이 잡초처럼 강인하게 뿌리를 내릴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해외에 나가서 의사나 배관공 또는 택시 기사로 일을 하시며 자비량 선교를 하시는 목사님들도 많이 계시고, 오히려 어떤 평신도 선교 단체들은 전문 직업을 가지고 현지에서 취업하여 사역하는 자비량 선교를 더욱 선호하고 권고하기도 한다.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UBF는 개척 초기부터 지금까지 근 40년 이상 자비량 선교를 고집하며 전 세계 83개국에 1,35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성공적으로 양육하여 오고 있다. 물론 본부로부터의 재정적 지원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자비량 선교도 하는데 자비량 목회라고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캐나다에서 30여 년 동안 목수 일을 하시면서 자비량 목회를 하신 폴 스티븐스 목사님은 한국에도 잘 알려지신 분이다. 그 밖에도 동산침례교회 배제창 목사님, 달라스베델교회 최태근 목사님 등 많은 목사님들이 자비량 목회를 하셨고, 국내에도 적지 않은 목사님들이 자비량 목회를 하고 계신 것으로 파악된다. 탤런트 출신 임동진 목사님은 신학교를 다니면서 자비량으로 3-4 가정이 모이는 가정 교회를 시작해 나중에는 거의 100여 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켰다고 들었다.

또한 2003년에 박상철 목사님 등 4명의 은퇴 목회자들이 시작한 미국 워싱턴 지역의 예수사랑교회는 최근에는 9명이 공동 목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담임목사를 포함해 사역자들이 일체 사례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예산의 70%를 외부에 쓸 만큼 나눔에 큰 힘을 쏟고 있어 주위 교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비록 출석 교인은 불과 30명 내외로 그리 많지 않지만 예배 때마다 기쁨이 넘친다고 한다.

그리고 1997년에 서울 자양동에서 7명의 신도들이 모여 시작한 강동교회는 유급 목회자를 두지 않고도 건강하게 성장한 전형적인 '평신도 교회'다. 설교는 준비된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교대로 한다. 헌금도 성경적 원리(고후 9:7)에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교회 봉사로 아무도 봉급을 받는 자가 없고, 모든 헌금은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선교비와 구제비로 사용된다고 한다. 현재는 6명의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다.

목사직은 '직업'이 아니라 '직분'이다

어떤 분들은 "목사는 성직자이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교인들의 헌금으로 생활하는 거룩한 직분자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자비량 목회를 반대하시고, 특히 '주의 종'이라는 말을 강조하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목사직은 구약의 성직자라 할 수 있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과는 크게 다른 '가르치는 장로의 직분'인 것이다. 더 이상 구약적인 의미에서 제사를 담당하는 성직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넓은 의미에서의 성직자를 의미한다면, 목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평신도들도 다 성직자이고 주의 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이 제물인 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가 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갖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교인들의 사례비를 받지 않고, 손수 장막을 만들며 선교와 목회를 한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겠는가. 초대 교회도 로마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처음 약 300년 동안은 자비량 사역자들에 의해 인도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2세기 알렉산드리아교회에는 약 600명의 성도들이 모였는데 이 교회의 교역자는 직업이 은을 조각하는 '은장색'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흥미를 끄는 것은 중세 교회의 본격적인 타락은 자비량 사역이 사라진 후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즉 후대에 정치 세력화한 중세 가톨릭 교회가 마치 중보자처럼 하나님과 신도들 사이에 직업적인 사제들을 세우고, 이들을 구별된 성직자로 대우하며 신도들 위에 군림토록 허용하면서 급격한 교권화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 교회의 부패도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직을 성직으로 대우하려는 것은 다시 중세 가톨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만큼 위험한 생각이다.

따라서 목사도 다른 장로나 집사와 마찬가지로, 그저 가르치는 직분을 가진 신자의 한 사람일 뿐인 것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신약 시대에 사는 모든 신자는 다 성직자이고 주의 종이며 예수님의 친구이며 형제이다.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직분의 차이는 있으나, 어떠한 계급 차별도 없다는 것이 개혁 교회의 정신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가르치고 목양하는' 직분을 맡은 목사가 사례비를 받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바울 사도도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 하였다. 하지만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 바울은 스스로 이 권한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장로나 집사 등 다른 직분자들은 모두 헌금을 하며 교회를 섬기는데, 유독 목사만이 거꾸로 사례비를 받으며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 내에서 장로직이나 집사직이 '직업'이 아니라 '직분'이듯이, 원칙적으로 목사직도 하나의 직업이 되기보다는 직분이 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구약의 제사직도 아닌 목사직이 정기적인 사례비를 받는 '유급 직업'이 될 때 이권이 생기기 쉬운 법이고, 이권이 있는 곳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이 교회 역사가 가르쳐 준 뼈저린 교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내의 극심한 세습도 이권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추태가 아니겠는가. 자비량 목회라면 세습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비량 사역은 희생과 헌신은 요구하지만, 재물과 이권을 보장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자비량 공동 사역은 앞으로 교회의 부패를 골수까지 쪼개는 날선 검이 될 것이다.

공동 목회의 장점

여기서 공동 목회의 장점들을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전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 김중기 목사께서는 "건강한 목회는 바로 팀 목회이며,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안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의사도 외과, 내과, 산부인과 등 전문 분야로 분류되어 있지 않습니까? 목회도 전문 분야가 있어야 합니다. 목사라고 다 설교 잘하는 것 아니고, 다 선교를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설교, 교육, 선교, 목양 등 4개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 목회를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일부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를 제외한 다른 사역자들 즉 부목사, 교육 목사, 음악 목사들을 단순히 담임목사의 목회를 돕는 보조 도우미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담임목사가 만능선수가 아니건만 교회의 모든 일을 직접 관여하여, 자신이 재능이 없는 부분까지도 사역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공동 목회를 하면 이런 단점도 크게 해소될 것이다.

필자가 항상 이해할 수 없는 일 중에 하나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대부분의 한국교회 담임목사들은 과도한 교권력을 쥐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신자들 자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인데, 왜 담임목사가 마치 개인 회사 사장처럼 행세하려 하는지 정말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목사직도 다른 장로직이나 집사직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가르치는 사역'을 위해 구별된 대등한 직분일 뿐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자비량 공동 목회의 또 다른 장점은 교회가 성장한 후에도, 교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위험 인자들을 제도적으로 크게 줄여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사례비도 안 준다는데 어떤 귀족 목사께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하겠는가. 즉 헌신된 목회자들만이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동 목회에서는 당회장을 목사나 장로들이 돌아가면서 임기제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교권에 의한 독재도 막을 수 있고, 부정이나 부패를 강력하게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교회 사유화의 핵심이 되고 있는 '담임목사직' 자체가 없어도 전혀 지장이 없다. 따라서 사실상 고약한 교권주의의 머리가 되는 담임목사 제도를 완전히 폐지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특정 직분의 한 사람에게 과도한 교권을 몰아준 담임목사 제도는 득보다는 실이 훨씬 더 많은 제도임을 갈수록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담임목사는 원래 직분대로 '당회장'의 자리에서 '설교자'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

특히 일부 귀족 목사들께서는 마치 자신이 신자들 위에 군림하는 무슨 대단한 사도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고, 틈만 나면 '영적 지도력'이니 '목회 철학'이니 하며 얼굴 뜨거운 언사들을 자주하시는데, 좀 자제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아울러 담임목사 제도가 폐지되면 교회가 무슨 이단에라도 넘어갈 것처럼 허풍을 떨지 마시기 바란다.

교회란 한두 사람의 독선적인 영향력으로 운영되기보다는, 공동 의회에서 권한을 위임받은 당회나 제직회가 주체가 되어 객관성이 있는 교회 정관에 따라 서로 상의하며 운영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초대 교회 사도들이 말씀 사역에 주력하고, 교회의 운영을 위해 '다수'의 집사와 장로들을 세운 사실을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비량 공동 목회는 목회자들이 손수 직업을 가지고 생활 현장을 느끼며 사역하기 때문에, 다른 교인들의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아울러 그들과의 사고의 간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물론 교인들도 목회자들에 대해 단순히 설교자 이상의 강한 동료 의식을 마음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즉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서로 마음으로 소통하는 풀뿌리 사역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장점들을 잘 살려 나간다면, 한국교회의 상당수는 '목사의 교회'로 비판을 받는 자리에서 '예수의 교회'로 환원되고, 목회자와 교인들이 더욱 일체가 되어 긴밀하게 협력하며 동역하는 건강한 교회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은 '자비량 공동 목회'만이 가장 좋고 유일한 목회 방법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도 기본적인 제안에 불과하다. 하지만 앞으로 많은 실무 전문가들이 이를 더욱 연구하고 문제점들을 보완하여 나간다면, 기존 유급 목회 제도에 비해 크게 불리할 것도 없고 오히려 장점이 더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극심한 부정부패와 작은 미자립 교회들에 대한 실제적인 대안으로 충분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직업이 다 고상하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첨언하고 싶은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어떤 생업을 갖더라도 자비량 목회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 이에 대한 부담이 매우 클 수 있으나, 목회만이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 모든 직업이 다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직장사역연구소 방선기 목사께서 미국에 유학할 때 커다란 빌딩에서 청소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힘들고 짜증이 나서 청소기를 집어던지고 하나님께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목사가 성경 공부나 설교를 주께 하듯 하는 것처럼, 청소하는 일도 주님께 하듯 해야 한다는 골로새서의 말씀을 들려 주셔서 일하는 자세를 바꾸었다고 한다. 직업에 대한 선입견이 심한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또한 방선기 목사님은 몇 해 전에 '잉크 천국'이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분이 사무 기기에 잉크 충전을 하는 일을 목회자들에게 알선해서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시기도 했다.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로 땀 흘려 수고한 만큼 경제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다양한 사업들이 생겨나고 목회자들에게 지원된다면 자비량 목회가 새로운 목회의 대안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신약 성경을 보면, 바울의 자비량 사역은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나 장막을 함께 만들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안식일이 되면 고린도의 회당에서 복음을 강론하고, 평일에는 힘써 생업에 종사했을 것이다. 물론 바나바, 실라, 디모데 등 함께 동거 동락했던 동역자들의 일부도 바울의 생업에 동참했으리라는 추측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렇게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도 자비량 사역을 했는데, 스스로 제자라는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거룩한 소명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할 정도로 가난하게 사신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누구도 따르는 무리나 다른 교인들로부터 정기적인 급료을 받으며 사역을 하였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데 꼭 생활비를 받아야 하는가. 내 손으로 벌어 쓰면,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생기는가. 이는 목사들께서 자신들만이 성직자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목사님들이 목회는 정말 힘들다고 하소연하시는 것을 자주 듣는다. 필자도 물론 주저 없이 이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1년 내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는 평신도들은 쉽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오히려 교역자들 못지않게 평일에는 직장에서, 주일에는 교회에서 쉴 틈이 없이 수고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비량 사역자를 외국에서는 '텐트 메이커'라고 부른다고 한다. 사도 바울이 손수 장막을 만들며 거룩하게 사역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상 교회 내의 모든 신도들은 이미 이런 자비량 사역을 하며 교회를 섬기고 있는 셈이다. 다만 많은 직분자들 중에서 유독 목사들만이 예외적으로 '유급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비량 공동 사역으로 새로운 교회를 일구는 일은 목회자들뿐만이 아니라 훈련된 평신도들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약간의 준비만 한다면 오히려 기존 목회자들보다 더욱 유리한 여건에서 시작을 할 수 있다. 이미 대부분은 각자의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 국가나 회교권 국가 내의 지하 교회들을 한번 생각해 보자. 교회란 무슨 거창한 신학을 논하는 신학교가 아니다. 복음을 너무 혼잡하게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성경대로 따르며 실천하는 순수한 지체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따라서 뜻이 맞는 몇몇 형제들끼리 팀을 만들어 건강한 가정 교회나 평신도 교회를 세워 동역하며 섬기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혹시 평신도들의 잠재력을 가볍게 보시는 분들이 있다면, 스데반 집사의 설교가 결코 사도 베드로의 설교보다 못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록 대형 교회들처럼 화려한 프로그램이 없을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탄탄한 유대감 속에서 내실이 있고 생동력 있는 교회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이런 견실한 노력들을 통하여 교회란 세속적인 복을 받기 위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이미 주께 받은 신령한 복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임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자비량 공동 사역은 구조적으로 교회를 보다 순수하게 만들어 준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누구도 교회에서 세속적인 단물을 빼어 먹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직분자에게도 아무런 경제적 이권을 주지 않는다. 또한 모든 교인들이 대등하게 동역을 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교권이 어떤 특정인에게 집중될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고 하신다. 큰 교회, 작은 교회 따질 것 없이 많은 제도권 교회들이 고루고루 썩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수많은 주의 제자들이 있다. 이들의 헌신으로 앞으로 이 땅에 새로운 모습의 자비량 '가정 교회', '평신도 교회' 그리고 '공동 목회 교회'가 많이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복 타령과 돈맛에 절어 '짝퉁 복음'을 전하는 기존 병든 교회들의 탐욕을 극복하고, 초대 교회 가난한 제자들의 가슴으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소위 귀족 목사님들이 즐겨 노래하는 '기복적인' 복음이나 '멋지게 왜곡된' 복음이 아니라, 세상이 미련하게 여기는 '십자가의 도' 그 자체를 바르게 전하자는 것이다.

자비량 사역은 물론 매우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이는 누구도 강요해서는 안 되고, 또한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길도 아니다. 오직 주님의 소명을 받은 제자들만이 갈 수 있는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 역시, 제자들 자신만이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남가주 세리토스장로교회에서 목회하시는 김한요 목사님의 간절한 절규를 인용하며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영혼을 얻는 일과 관계되지 않으면, 우리의 직업은 결코 소명이 아닙니다. 하지만 영혼을 얻는 일과 관계되면, 세탁소를 하든지 파출부를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거룩한 소명입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 9:18)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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