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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참 포도나무미미 보는 교회력 설교/주현절 후 두 번째 주(20100117)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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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1월 14일 (목) 10:50:30
최종편집 : 2010년 01월 14일 (목) 11:11:22 [조회수 : 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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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두 번째 주일(20100117)
성서일과/ 시 36:5-10; 사 62:1-5; 고전 12:1-11; 요 2:1-11
본문/ 요한복음 2:1-11 
예수는 참 포도나무

          (요 2:1-11) 『[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기쁨의 근원이신 우리 주 예수로 말미암는 기쁨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는 참 포도나무

   
요한복음은 여러모로 다른 복음서와 차이가 있지만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예수님이 몸소 “나는 어떤 존재다”라고 자신의 정체에 대해 강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구절이 모두 일곱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주님이 보여주신 표적이 또 일곱 가지입니다.
표적이라는 말도 요한복음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이적이나 기적 혹은 권능으로 표현되는 수가 많은데, 요한복음은 유독 표적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표적은 표시 곧 무엇인가 보여주는 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일곱 가지 선언에 일곱 가지 표적이 기록된 것은 이것들이 서로 연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① (요 6:35) “내가 생명의 떡이니...” /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심](요 6:1-15)
          ② (요 8:12) “나는 세상의 빛이라” /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치심](요 9:1-41)
          ③ (요 10:7) “나는 양의 문이라” /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요4:43-54)
          ④ (요10:12) "나는 선한 목자라" / [38년된 병자를 고치심](요 5:1-16)
          ⑤ (요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요 11:1-57)
          ⑥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물위를 걸으심](요 6:16-21)
          ⑦ (요 15:1) "나는 참 포도나무요" /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요 2:1-11)

다른 것들은 무리가 없이 연결이 되지만, 몇 가지는 어떻게 그렇게 되나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왕의 신하는 권세가 있는 자니 찾아갈 만한 곳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두들겨 볼만한 다른 문이 있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신하는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주님은 그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그 아들의 병이 고쳐졌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바르게 찾아와 두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양의 문이십니다.

38 년이나 앓고 있던 병자는 그 병을 고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을 것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했던 여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막 5:25-26)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재산도 허비했습니다.
악한 의원들을 만난 탓입니다.
예수님만이 그에게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물 위를 걸으신 주님은 어떻습니까?
물에도 물길이 있다지만 그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물 위에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그가 가시는 곳이 길이 됩니다.
그가 곧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포도나무라는 것은 오늘 본문이 증거하는 표적과 연결이 됩니다.
포도나무는 그 열매가 없으면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는 나무입니다.
포도는 그냥 먹기도 하지만 그것은 한 철입니다.
포도의 대부분은 포도주가 됩니다.
포도주는 성경에서 두 가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잠 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또 한 가지는 기쁨을 뜻하는 것입니다.
          (시 104: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포도주와 기름과 양식은 주님이 인생에게 주신 복된 선물들입니다.
그 가운데 포도주는 주께서 인생에게 주시는 기쁨입니다.

나무들 사이에 왕을 뽑는 비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포도나무에게 왕이 될 것을 권하자 포도나무가 대답합니다.
          (삿 9: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오늘 말씀은 바로 주님이 포도나무라는 표적을 행하신 장면입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기쁨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주님이 기쁨의 근원 곧 포도나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쁨이 있어야 할 곳에 기쁨이 사라지는 것은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부족한 것을 채워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삶을 주님 주시는 기쁨으로 풍성하게 채우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왜 기쁨이 사라집니까?

잔치가 끝나도 기쁨이 남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이 사라지면 잔치는 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잔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사는 자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시기 원하는 것은 기쁨이지 근심이 아닙니다.
땅에서 산다고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비록 환란과 고초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으로 살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인생이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케 하시는 것입니다.
          (사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예수님은 땅에 계실 때 기쁨 속에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하늘에서는 천군 천사들의 찬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천사들이 부른 찬송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기쁨과 평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베푸신 기적도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은 잔치집에 청함을 받으시고, 잔치집을 배경으로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늘 잔치집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눅 7: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9:1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신랑으로 오셨답니다.
이 땅으로 잔치집이 되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으신 가나의 잔치집에 기뻐하는 소리 대신에 근심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을 기쁘게 할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혼인잔치는 보통 일주일 동안 계속된다고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직 끝날 때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하인들이 먼저 알고 걱정을 합니다.
잠시 후면 손님들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잔치는 때가 되기 전에 파하고 마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어야 할 곳에 기쁨이 사라지는 것은 꼭 있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포도주를 위해서 잔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포도주가 없는 잔치는 기쁨이 없는 잔치가 되고, 결국 잔치가 아닌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일이 우리 인생에 끊임없이 나타나 우리의 기쁨을 앗아갑니다.
육신에 건강이 없으면 기쁨이 사라집니다.
생활에 물질이 부족하면 기쁨이 없습니다.
가정에 사랑이 부족해도 기쁨이 사라집니다.
신앙생활에 은혜가 없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준비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가진 것으로는 부족하고, 준비한 것만으로도 안 되는 그럴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럴 리가 없는 데 그렇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잔치집에 하필이면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게 그 사실을 전했습니다.
마리아의 말을 들은 예수님의 반응은 차가왔습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으니, 나하고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참 어려운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마리아와 예수님이 주고받은 말과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신 일이 잘 연결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 거절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왜 그랬는지 밝히지 않고,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첫째는, 마리아의 믿음이 만들어 낸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목수 요셉의 아들로 알려져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예수는 남편 요셉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고 잉태한 아들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의 그 놀람이 아직도 선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수가 커가는 것도 남달랐습니다.
          (눅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 아들 예수를 잃어버렸다가 성전에서 찾았을 때, 그가 한 말이 아직도 마리아의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눅 2:49-51) [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집 성전을 두고 내 아버지 집이라고 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낳은 아들 예수가 아니라,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둘째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어머니를 극진히 섬겼기 여겼기 때문이라고 불 수 있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말을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앞에서 본 누가복음 2:51입니다.
          (눅 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예수님은 섬기는 마음으로 마리아의 말에 순종하여 표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성전을 두고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신 직후의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땅의 부모를 극진히 섬겼다는 뜻입니다.
때와 기한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정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 39: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마리아의 믿음과 주님의 섬김이 합해져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표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고,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로서 섬기신 결과가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섬기기 위해 땅에 오셨습니다.
부자들을 찾아 그들에게 섬김 받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언가 부족하고, 없어서 고통 받는 자들을 찾아 섬기셨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에게는 친구요, 병자들에게는 의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 예수를 향해 세상의 내로라하는 자들이 먹기를 탐하고, 세리,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목수 요셉의 아들로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목수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한 자들에게는 표적이 주어졌습니다.
죄인들이 믿을 때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병자들이 믿을 때 병 고침의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기쁨이 없는 자들과 함께 하셔서, 기쁨을 주시고 함께 기뻐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포도나무입니다.
그가 기쁨의 근원입니다.
다른 곳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 곁에 있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에게서 기쁨을 구하고, 그로서만 기뻐하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무엇으로 기쁨을 만드셨습니까?

예수님은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례를 따른 것이라 함은 율버에 정한대로 손 씻는 용도로 물을 담아두는 항아리라는 뜻입니다.
하인들은 아구까지 가득 물을 채웠고, 예수님은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연회장이 맛을 보니 포도주였습니다.
지금까지 먹은 것보다 더 좋은 포도주였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신랑을 불러 한 마디씩 했습니다.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기쁨이 사라질 뻔 했는데 더 큰 기쁨이 넘쳐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가져다 준 포도주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입니까?
물입니다.
그것도 손 씻는 물입니다.

무엇을 느끼십니까?
우리가 주님의 권능을 말할 때에 주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뿌리지 않고 거두시는 분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지으신 분이니,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두고 말했습니다.
          (신 6: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그러나 이것을 바라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자칫 허황되고 망령된 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 은혜를 누리고 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그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신 6:12-13) [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주인에게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묻어 두었던 종이 말했습니다.
          (마 25:24) ....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

어떻게 되었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가진 것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분명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뿌리지 않고 거두실 수 있는 권능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인생에게 역사하실 때에는 대부분 그 가진 것, 이미 있는 것 위에 역사하십니다.
적은 것을 많게 하시고, 작은 것을 크게 하시며, 쓸모없는 것을 귀하게 바꾸셔서, 풍성하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불러 당신의 일을 맡기실 때에도 그랬습니다.
힘이 없다고, 능력이 안 된다고 말하는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출 4: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가진 지팡이에 당신의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그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혀가 둔하다고 하는 모세에게 말 잘하는 사람을 새로 만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형 아론을 붙여 주신 것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행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소년의 점심이었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어 축사하시고 먹이셨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같았습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뭍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밤새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았던 바로 그 그물이었고, 그 바다였습니다.

오늘의 표적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굳이 물이 있어야 포도주를 만들 수 있는 주님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집에 있던 것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집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례를 따르는 것은 유대인의 집이라면 어느 집에나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 인생에 기쁨이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서가 아닙니다.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우리 생각보다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보잘 것 없는 것을 바꾸어 귀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을 너무나 크게 변화시키는 분입니다.
그로써 우리 삶에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도 그것입니다.
“네 가진 것이 무엇이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모자라서 기쁨이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무엇이 없어서 괴롭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겠습니다.
환란조차도 기뻐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없는 것, 부족한 것 때문에 고민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괜찮습니다.
보잘 것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주님은 손 씻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습니다.
말씀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적을지라도 말씀이신 주님을 모셨다면 기쁨이 있게 될 것입니다.

먼저 주님만으로 만족하고, 주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부족한 것,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주님께 의논해야 되겠습니다.
주님이 곧 말씀입니다.
그가 있으므로 모자란 것이 채워지고, 사라진 기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가 외칩니다.
          (암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없는 것을 구하느라 지치는 자가 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을 헤아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되었든, 얼마가 되었든, 어떤 것이든 가지고 있는 그것을 주께 보이시기 바랍니다.
적은 물질이 많게 될 수 있습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감사하는 자에게 그 은혜가 임합니다.
약한 몸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약하다고 포기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주 앞에 나가는 자가 그 은혜를 누립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염려하고, 고민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야 말로 없는 데서 있게 하시고, 심지 않고 거두게 하시는 주의 능력을 믿어야 할 때입니다.

열쇠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예수님 곁에 있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만이 사라진 우리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이 충만한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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