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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삶(사랑)[북산편지] 육필로 쓰는 최완택 목사의 민들레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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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1월 08일 (금) 10:07:07
최종편집 : 2010년 01월 08일 (금) 10:27:48 [조회수 : 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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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우편 배송이 늦어진데다 사무실 한 구석에 배달된 것을 뒤늦게 발견해서 게재가 늦어졌다

기다리는 삶(사랑)

   
내가 주님을 기다린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며
내가 주님의 말씀만 바란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림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다
(새번역, 시편 130:5-6)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로마서 8:24-25)

사랑하는 민들레 자매; 형제 여러분.
어느새 세월은 ‘기다림’의 절기인 강림절을 지나 성탄절을 맞이했고 오는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는 송구영신을 이야기 해야 할때이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서 기다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지금 하는 이야기는 민들레 교회에서 강림절 셋째주일 -12월 13일-에 말씀한 것입니다)
저는 절기가 지나고나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시간으로는 이미 지났지만 그냥 말 수 없고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칼릴 지브란이 <예언자>에서 한 말에서 기다리는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리고 너희 생각으로 시간을 헤아려 절기를 가르지 않을 수 없거든, 각 절기 속에 모든 다른 절기가 들어 있게 하라. 그리하여 오늘로 하여금 과거를 기억으로 미래를 바람으로 안게 하여라. (<시간에 대하여>에서)

‘시간을 헤아려 절기를 가르는’ 존재가 사람이라면 ‘각 절기 속에 모든 다른 절기가 들어 있게 하는’(또는 ‘모든 절기들이 한 절기를 둘러싸게 하는’) 존재는 하느님이시라고 생각하게됩니다. 이 두 존재를 연결하는 고리가 ‘기다림’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느님과 인간 실존의 관계를 ‘기다림’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130편은 ‘간절한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고, 로마서 8장은 ‘참는 기다림’을 외치고 있습니다. ‘간절함’과 ‘참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본래 하나입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파수꾼은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홀로 지루하게 날밤을 새워야 하는 존재이지만, 마침내 때가 되면 샛별이 떠오르고 동이 트는 것을 체험으로 알기 때문에 결코 간절하지는 않습니다.

45년전에 저는 육군 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마치고 부대배치를 경남 사천에 있던 육군항공학교(시방은 ‘사천공항’자리)를 경비하는 육군 제 8경비중대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두어달 동안 보초병(파수꾼) 생활을 했습니다. 낮밤으로 12시간씩 교대로 비행장 활주로 둘레를 500m 간격으로 보초를 섰습니다. 때가 모내기 철이어서 낮 보초는 샛밥도 얻어먹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밤 보초는 칠흙같이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사정없이 외롭고 무섭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보초를 몇 번 서고 났더니 때되면 샛별이 떠오르고 동이 트고 해가 떠오른다는 ‘보이는 것’을 당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밤 보초 생활이라는 유한체험(有限體驗)을 통해서 샛별을 만났습니다. ‘나 예수는 다윗의 뿌리에서 돋은 그의 자손이며 빛나는 샛별이다.’(요한 계시록 22:16)
그때 밤보초 생활이라는 유한체험을 통해서 샛별을 만난 사건은 후에 나의 무한(無限)체험(體驗)으로 승화했습니다.

‘기다림’이란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라는”것입니다. 기다리고 있다면 그 대상은 아직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리는 대상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참고 간절히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기다리는 사람은 참고 간절히 기다릴 뿐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다림이란 가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기다리는 것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린다면,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소원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체험 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참고 간절히 기다릴 수 있겠는가?“)
“인간의 하느님께 대한 관계의 조건은 무엇보다도 먼저, 가지지 않음. 보이지 않음. 알지 않음. 파악하지 않음이다.”(폴 틸리히, <흔들리는 터전>에서)
“가지지 않음”에 대해서는 이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고 고백록까지 쓴 성 어거스틴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찾았다고(가졌다고) 하면서 주님을 모르기 보다는 아직 못 찾았다고 하면서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내 젊은 영혼을 사로 잡은 말씀입니다. 지금도 이 말씀을 떠올리면 내 가슴이 뜁니다.
찾는 사람, 즉 기다리는 사람은 구도자(求道者)입니다. 구도자는 ‘찾았으나 아직 찾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참으며 간절하게 기다립니다. 저는 지난 다섯 달 동안 민들레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고 그만 말까 했으나 이 말씀에 다시 귀의하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나는 나의 유한체험이 마침내 무한체험으로 승화하기를 갈망합니다.

유한(有限)체험(體驗)이란 수,양,공간 등에 일정한 한도나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눈, 거리, 향(向) 또는 몸(肉)을 통합니다. 대개 자아(自我)와 욕심에 사로잡혀 바로 보기 어렵습니다.
무한(無限)체험(體驗)은 한(限)이 없는 것입니다. 수,양,공간에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하느님과 영원을 향(向)합니다.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니 온 우주에 가득하고 자유롭습니다. 마음,영혼으로 보는 것입니다.

종교 기득권자들이 하느님을 가지고 있기에 (기실은 하느님을 만나 뵌 적도 없으면서도)율범(성서)과 교리와 성전이라는 껍데기를 가지고 단잠을 자고 있을 때, 들에서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은 “오늘밤 너희의 구세주가 나셨다”는 천상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키는’유한체험에서 구세주 탄생의 무한체험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동방에서 이상한 별을 보고 그 머나먼 길을 걸어 온 동방박사들은 그 별이 마침내 멈춘 곳에서 세계의 구세주를 뵙고 경배했습니다. 이들 역시 별을 보고 길을 가는(그러나 쉽지 않은)순례를 통해서 마침내 무한체험을 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빈들로 가고 또 별을 따라 갑니다.

‘성서라는 책’, ‘교회라는 조직’, ‘목사의 설교’에 매이면 결단코 무한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가 가리키는 그분의 가르침’, ‘교회를 통한 열린 만남’, ‘먼저 깊이 회개하고 무한체험을 한 겸허한 안내 설교(이번호 2-3면 <프란체스코의 기도같은 -)와 새롭게 만난다면.....

그리고 한 마디만 더 한다면, “그대, 기독교인이라는 오만함을 버리세요. 그냥 말없이 기독교인으로 사세요.”세례 요한의 말을 빌리면, “사실 하느님은 돌들로도 기독교인을 만들 수 있다.”(누가복음 3장 8절을 참고할 것)
유한체험이 아무리 잘났어도 무한체험에 들지 못하면 결단코 아무것도 아닙니다. 유한체험자가 언제나 해야 할 말은 “내 영혼이 간절히 참고 기다립니다.”

제가 작년 2월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순례 제 9일에 마침내 토롱-라(Thorung-La, 5416m)를 넘었습니다. 감격하긴 했지만 감동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바라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70여일만에 토롱-라에서 한 빛이 왔습니다. 그것은 내 유한한 체험이 하느님의 무한한 체험속으로 들어가는 은총이었습니다.(더 이상 설명을 못하겠습니다.) 사실 9일을 걸어 ‘세계에서 가장 크고 높은 토롱-라’를 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유한한 체험일 뿐이빈다. 유한한 체험이 무한한 체험 안에 들게 될 때 비로소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도 기다려야 합니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는 ‘못 가짐’, ‘보이지 않음’, ‘모름’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연을 만날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다른 사람과 자연, 우주 삼라만상을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기다림은 아직 가지지 않은 것이지만 또한 가진 것이기도 합니다. 성실과 인내로 기다리고 있는 한 그 대상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사람(삶)은 그 대상과 자기가 무한(無限) 긴장 상태를 사는 것입니다. 영원 앞에서 전율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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