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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것이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주현절후 첫 번째 주일(20101010)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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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1월 06일 (수) 11:54:00
최종편집 : 2010년 01월 06일 (수) 12:12:57 [조회수 : 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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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수세주일(20100110)
성서일과/ 시 29; 사 43:1-7; 행 8:14-17; 눅 3:15-17, 21-22
본문/ 이사야 43:1-7 
너는 내 것이라

          (사 43:1-7)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


   

새해 첫 주입니다.
새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사야가 말합니다.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여호와께서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것은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전에 하신 말씀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42:25이 본문의 바로 앞입니다.
          (사 42: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 붙듯 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

진노와 전쟁, 두려운 심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하시는 말씀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1] ...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심판자이기도 하시지만 그보다 먼저 이스라엘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낭패를 당하겠지만 결코 아주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일컫는 자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의 멸망은 여호와의 수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새 일을 약속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심판하시는 분이 그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심판 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풀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새 일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루시는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을 물과 불 가운데서 불러내시는 일, 곧 건지시는 일입니다.
구원의 은혜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리 하심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하여 은혜로운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는 것은 천사들의 찬송 그대로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기쁨이 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인들을 향해 베풀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새 역사에 감사함으로 참여하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미운 오리새끼

오늘 말씀은 여호와의 새 일에 참여할 자가 지녀야 할 마음 자세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미운 오리새끼’라는 동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대충 줄거리가 이렇습니다.

어느 집 오리가 알을 품어 새끼들이 태어났습니다.
그 중에 유난히 크고, 보기 싫게 생긴 새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도무지 오리 같지를 않았습니다.
그 생김이 너무 달라서 다른 오리들에게 구박을 받고, 심지어 어미조차 살뜰하게 살펴 주지 않았습니다.
못난 오리새끼는 견디다 못해 그만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숲속의 작은 새들도 그 오리새끼를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리같이 생기지를 않았는데 오리 흉내를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떤 할머니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지만, 그 집에서도 고양이와 닭이 텃세를 하며 못살게 구는 바람에 다시 그 집에서 나와 거리를 방황하게 됩니다.
고생스러웠지만 그럭저럭 세월이 흘렀습니다.
얼음으로 뒤덮인 추운 겨울도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오리새끼는 물을 마시기 위해 호수를 찾았습니다.
호수에는 한 무리의 백조가 한가로이 헤엄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오리새끼는 한 편으로는 자기의 못난 모습이 원망스러웠고, 나도 저 새들처럼 아름다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호수를 내려다본 오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한 마리 백조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자기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미운 오리새끼는 너무 반갑고 좋은 나머지 백조 무리에 합류하기 위해 급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자기는 뛴다고 생각했는데 날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미운 오리새끼는 사실은 크고 아름다운 백조의 새끼였으며, 자신이 처한 괴롭고, 슬픈 시절을 꿋꿋하게 견뎌내 마침내 행복을 찾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백조새끼가 오리의 품에서 자랄 때에는 오리 취급을 받습니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백조였습니다.
백조의 알은 닭이 품든지, 오리가 품든지 태어나는 것은 백조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그렇게 조성하신 것입니다.
비록 다른 족속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거하고 있어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방족속과 이스라엘의 차이는 오리와 백조만큼이나 큽니다.
오리가 아무리 큰들 백조만 할 수가 없습니다.
오리가 아무리 많이 있어도 백조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말하고 있습니다.
          [3] ...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그 어느 족속으로도 대신 할 수가 없는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이스라엘입니다.
애굽과 구스와 스바, 소위 세상의 으뜸가는 큰 나라도 우리만큼 보배롭지 못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우리보다 존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 이스라엘입니다.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지으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오리가 되어 오리와 함께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이 아닙니다.
오리의 흉내를 내며 살아서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백조새끼는 스스로 백조임을 알고 백조와 더불어 살 때 비로소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서가 말합니다.
          (히 11:13-16)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의 믿음을 소개한 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본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땅에서 죽고 하늘에서 다시 산 것입니다.

본향이 두 종류입니다.
나온 바 본향과 더 나은 본향입니다.
오리의 품이 나온 바 본향이라면, 백조의 품은 더 나은 본향입니다.
나온 바 본향이 육의 부모라면, 더 나은 본향은 영원하신 아버지의 품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더 나은 본향을 알고,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땅에서 산 삶은 나그네처럼, 외국인처럼 산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에 한 성을 예비하시고, 기다리시는 분이었던 것입니다.

그 삶이 고단하고, 외로웠어도 그들의 신분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들, 하나님의 것입니다.
설사 잘못 생각하여 아버지 집을 떠났더라도, 그 신분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에 있든지, 어떤 사정과 형편에 처하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보배롭고 귀한 자녀들임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의 품을 바라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더 나은 본향, 거기서 아버지가 예비하신 한 성을 차지하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지금 이스라엘이 세상에 사는 것은 백조의 알이 오리의 품속에서 깨어나 오리들 틈에서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백조가 자기 자신이 백조임을 모르고 살 때에는 어디를 가든 기쁨이 없었습니다.
평안도 없고, 소망도 없었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가 그 나온 곳을 잊어버리고, 땅에 속해 살면 그렇게 됩니다.

태어난 곳이라고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을 찾아 집을 떠나 헤매는 길이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낯선 길을 가는 두려움 때문에 태어난 곳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는 영원히 행복을 얻지 못하고 맙니다.
이스라엘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품에서 평안을 누리기 위한 과정입니다.
참된 집, 하나님의 영원한 성으로 가는 길에 겪을 수밖에 없는 환난입니다.

백조가 미운 오리새끼로 사는 날들이 결코 헛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따돌림 받고, 춥고 배고픈 겨울을 보내는 동안 자신이 여느 오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고, 마침내 백조가 되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돌림 받는 것 때문에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춥고 배고프다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날들을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는 내 것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것이기 때문에 그냥 버려두시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들이 땅에서 당하는 환난을 보고 계시지만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지금부터 그리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다 잊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당신의 것을 지켜 오셨습니다.
물 가운데서 건져 주셨고, 불 가운데 지켜 주셨습니다.
전에도 그러셨거니와 후에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그네 되어 살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불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때에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바닷물이 바로와 그 군대를 삼켰으나 이스라엘은 바다 사이로 난 길을 걸어서 지났습니다.
          (시 78:53)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시니 저희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도다

훗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나그네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불이 당신의 것을 태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단 3:24-25) [24]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25] ...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 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

불길이 얼마나 맹렬한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이 다 타 죽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너는 내 것이라!’하신 그들은 터럭 하나도 타지 않은 채 불길 속을 거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물에 떠내려가도록 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불로 태워 없어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시인이 찬송하는 그대로입니다.
          (시 121:5-6)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우리가 사는 것은 못난 오리새끼가 백조가 되기 위해 가는 여정과 같습니다.
보잘 것 없는 새에게 무시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꼴을 당한 시인이 호소합니다.
          (시 22:6-8)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주님조차 그런 꼴을 겪으셨습니다.
          (눅 23:35-37)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37]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흉악한 개와 고양이에게 쫓기기도 합니다.
시인이 그 형편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시 35:15) ... 내가 환난을 당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비류가 나의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그 모든 환난에서 주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가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다윗은 골리앗을 사자나 곰의 하나로 여겼습니다.
자기가 사자와 곰에게서 양을 지키듯,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 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자기가 사자와 곰을 치고, 그 입을 벌려 양을 구하듯, 하나님이 골리앗을 치고 자기를 지켜 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목자가 자기 양을 돌보고 지키듯, 그렇게 자기를 돌보고, 지키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가 찬송했습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스스로 하나님의 소유임을 아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이한 길-쉽고 편안한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안전한 길로 인도하신다.”
쉬운 것이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위험이 없다고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니 안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가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에 잠기지 않게 지켜 주십니다.
불에 타지 않게 지켜 주십니다.
다윗처럼, 다니엘처럼 그렇게 믿고 사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하나님

이스라엘과 백조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알을 잃어버린 백조는 새끼를 찾지 않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잃어버렸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
잊지 않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왜 잃어버렸는지 알고 계십니다.
잃은 것이 아니라 내어 보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로 잠시 진노하셨으나 속량하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불러 모으실 것이기에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살피시며,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부르십니다.
그렇게 속량하시고, 구원하시어 불러 주신 것이 우리들입니다.
새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입니다.
          [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못난 오리새끼는 미움 받는 것이 싫어서, 어미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집을 떠나지만,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그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아버지 계신 곳을 향해 갑니다.
아버지는 그 길에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물이 삼키지 못하고, 불이 태우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그 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

아직은 주의 품이 아닙니다.
지금은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가는 미운 오리새끼와 같습니다.
환난과 비방과 멸시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때문에 길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돌아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마시기를 기원합니다.
백조가 오리의 집에 머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과 벗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백조가 오리의 흉내를 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으니 하나님께로 향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 길을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2010 년 새해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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