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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많이 받으십시오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성탄 후 두 번째 주(20100103)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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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12월 30일 (수) 22:39:24
최종편집 : 2009년 12월 30일 (수) 23:27:38 [조회수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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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후 두 번째 주일(20100103)
성서일과/ 시 147:12-20; 렘 31:7-14; 엡 1:3-14; 요 1:(1-9), 10-18
본문/ 에베소서 1:3-14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엡 1:3-14)『[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가 성도들에게 드리는 새해 인사이기도 하려니와 오늘 설교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땅에 속한 육의 복

세상에 복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복도 복 나름인 것 같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 했으니 땅에 속한 복, 육의 복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늘과 땅, 영과 육, 이런 식의 이원론적 이해는 자칫 문제를 너무 단순화시키는 위험이 있긴 해도 주제를 더욱 분명하고, 쉽게 드러내는 이점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이해하기 위해서 땅에 속한 복, 육의 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옛사람들은 인생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복을 다섯 가지로 꼽았습니다.
오복입니다.
수(壽)-장수하는 복이 첫째요, 부(富)-부요함이 둘째, 강녕(康寧)-건강하게 사는 것이 셋째, 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고, 베푸는 것이 넷째며, 고종명(考終命)-깨끗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마지막 다섯입니다.

어느 것 하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들입니다.
더군다나 이 모두를 갖춘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그렇게 살다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역사를 훑어 찾아보면 어떻습니까?
기억에 남는 이름은 많아도 오복을 누리며 살다 죽은 사람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부요한 자, 용맹한 자, 덕이 있는 자, 지혜로운 자 등등... 어느 한 면에 뛰어난 사람은 많아도 두루 갖추어 틈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을 봐도 마찬가집니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오복을 누리며 살았습니까?
약속을 이어받은 이삭도 오복을 누리지는 못했고, 약속의 후사가 되려고 몸부림친 야곱은 그 몸을 먼 이국 땅, 애굽에 묻었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망부석이라도 되려는 듯 묻혔고, 다윗이 살아 생전에 겪은 아픔은 생각하기도 싫은 것들이었습니다.
단 하나 그렇게 살다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 솔로몬입니다.
예수님도 그의 영화를 들어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그 입으로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땅에 속한 복, 육의 복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 갖추어 살지 못한다 해도 주어지는 복이라면 마다할 까닭이 없습니다.
복을 누려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쪼록 그렇게 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러나 이미 살핀 대로 모든 복을 누리고 산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됩니다.
그나마 인생이 바랄 수 있는 여러 복 중에 하나를 누리는 일은 가능한 일이고 또 흔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수명은 점점 늘어만 갑니다.
부자도 많습니다.
강건한 자도 많고, 덕이 있는 자도 드물지 않으며, 깨끗한 죽음을 맞는 이도 있습니다.

이렇게 따져 보면 세상에 복을 누리지 않고 사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 것 같습니다.
스스로 박복하다 푸념하는 사람도 헤아려 보면 어딘가 복된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찬송가 중에 이를 잘 표현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참으로 공감이 가는 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고민하고, 왜 낙심하며, 왜 탄식하게 될까요?
그것은 인생이 생각하고, 고대하는 복, 오복으로 표현되는 복이 언제나 상대적이고, 한시적이기 때문입니다.
100 세를 살아도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창 때에 사는 것이 지겹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아무리 많이 가져도 아직 더 가져야 할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연부역강(年富力强), 젊음과 힘을 자랑하는 것도 한 때의 일, 나이가 들면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한다며 탄식하기 마련입니다.
이러니 헛되기만 하다는 솔로몬의 말에 고개가 끄덕거려지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행여 그게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라도 되는지 못을 박듯 다시 말합니다.
          (전 12:8) ...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오늘 본문은 그와는 다른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남이 가진 것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때를 가리지도 않으며, 헛되지도 않은 복입니다.
바울은 이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고 합니다.
어떤 복입니까?

죄의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입니다.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같은 세상이라도 돼지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다릅니다.
돼지는 자기가 보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고, 사람의 경우도 같습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며, 지금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 외의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보는 것은 사람의 자녀로서의 사람 곧 아담과 가인의 후손이 보는 것입니다.
사람일지라도 아담의 후손이 아닌 다른 계보의 사람이라면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아담과 가인의 후손이 쓰고 있는 굴레를 벗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 새로운 존재,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자녀도 다시 태어나는 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다는 말이 기독교에서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은 줄이 없는 거문고에 글을 새겨 걸어 두었습니다.
무현금명(無絃琴銘)입니다.
          琴而無絃 存體去用 非誠去用 靜其含動 聽於聲上 不若聽於無聲
         (금이무현 존체거용 비성거용 정기함동 청어성상 부약청어무성)
          거문고에 줄이 없으면 몸만 두고 쓸모를 없앤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고요함은 움직임을 품고 있는 것이니
          소리로부터 듣는 것은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못하다.

길게 이어지는 글입니다만 전체의 뜻은 앞머리에 다 들어있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는 가운데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그가 추구하던 것입니다.
그는 이를 이루기 위해 학문에 힘을 쏟았습니다.
평생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고, 공부에 몰두하여 당시 정통 주자학이 아닌 그만의 독특한 기철학을 일구어냈습니다.
세상에 살았으나 거기 속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속하여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보는 것이 달라지면 바라는 것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을 받았다 함은 사람의 후손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본시 아담과 가인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나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찌 다시 태어날 수가 있느냐?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란 말이냐? 묻습니다.
니고데모가 묻고 있지만 사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요 3:5)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입니다.
다시 난 사람 곧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보는 것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세상이 보는 것을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이 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바라며 살지 않습니다.
때로 그런 복을 누리며 살면 은혜로 여겨 감사합니다.
설혹 그런 복이 없다 해도 스스로 불행하다 여겨 자학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는 복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세상이 말하는 모든 좋은 것을 다 주고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했습니다.
          (빌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나눌수록 커지는 복

바울은 화담이 원했던 것, 니고데모가 구했던 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얻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평생 독신으로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산 이유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복과 하늘의 신령한 복이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세상의 복, 땅의 복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나누면 사라지는 것이 땅의 복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신령한 복은 나눌수록 커지는 복입니다.
바울이 기뻐하고, 또 기뻐할 수 있었던 때는 그가 지닌 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의 일입니다.
다른 전도자들이 전에 없이 열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없는 틈에 이름을 알려보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소식을 바울에게 전합니다.
‘여태 가만 있다가 ...’
‘바울이 있을 때에는 제대로 말도 못하던 것들이....’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빌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해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는 말은 너희에게도 그 복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담의 후손, 가인의 후예로서는 알지 못하는 복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은 느낄 수 있고, 볼 수도 있는 복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사실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복으로 말미암아 찬송하는 일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받은 복을 느껴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함께 찬송하며,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일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만물이 함께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지금 믿는 자들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복을 받은 것은 그 일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정이라는 말이 거듭 나옵니다.
장로교의 예정론이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예정론은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구원 받는 자와 멸망할 자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교립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겠습니까?
이미 살펴 본 대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만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셨다 하셨으니 예정은 먼저 부르셨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먼저 부르신 뜻은 우리를 더 사랑해서 더욱 큰 복을 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길이를 재거나 무게를 달 수 없는 것입니다.
신령한 복은 그 자체로 충만하고, 완전한 복입니다.
예정하심, 먼저 부르심은 우리로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과 함께 당신의 경륜을 완성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알고, 그렇게 행했습니다.
          (고전 15:8-10)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턱 없이 부족한 도무지 자격이 없는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보이셨다는 말이 곧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나누어 주는 사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많이 수고했습니다.
전도자로서 그의 삶 전부를 바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한 일은 수고가 아니라 은혜였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먼저 받고, 나누어 주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로서 그는 기뻐하고 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받은 복을 느껴 아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기뻐하고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받은 그 복을 나누어주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만물이 함께 찬송하는 소리를 듣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한 말의 뜻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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