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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불순종의 뒷배경[주일설교] 한책의교회 박경은 목사 주일설교 전문보기(2009/12/27)
박경은  |  011766976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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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12월 27일 (일) 18:30:51
최종편집 : 2009년 12월 27일 (일) 18:44:35 [조회수 : 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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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2:54~13:9


   
불순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시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그 시행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불순종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뜻을 좀 더 잘 이루기 위해 시간을 연장하는 형태의 불순종입니다. 이 불순종은 받은 지시나 명령을 즉시 시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불순종임에는 분명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결국 지시나 명령을 시행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시간을 연장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시간 연장, 혹은 시행유보의 불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종류의 불순종을 겉으로 볼 때에는 둘 다 말씀을 듣는 그 즉시 이행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내용적으로 볼 때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한 해를 마감하는 2009년의 마지막 예배를 드리면서 저와 여러분이 오늘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해 왔는지, 그리고 불순종했다면 무슨 이유로 불순종했는지를 살펴보면서 내년도의 복된 신앙생활을 위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말씀을 나눌 때에 큰 깨달음이 임하는 소중한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ㅇ 먼저, 일반적인 불순종의 뒷배경이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이 불순종은 지시나 명령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전혀 따르지 않는 시행거부의 불순종을 말합니다.


1. ‘될 대로 되라’는 무모한 자만심입니다

12:54~55는 자존심을 상하게 할 만한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난 척 하는 마음에 흐뭇함을 더해 주는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기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로움에 관한 이런 내용의 이야기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곧 뒤따라오는 56절 이하의 내용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내용에 해당합니다.

56절의 ‘외식하는 자여’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볼 때 ‘겉과 속이 다른 자여’라는 의미인데 결국 이 말은 ‘잘난 척 하는 자여’에 해당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지 못한 이 ‘잘난 척 하는 자’들은 하늘을 보면서 소나기 올 것이다, 날씨가 더울 것이다 등의 천기에 대해서는 잘도 분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생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무지하고 어리석기가 끝이 없는지...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인 것이지요.


• 관계성을 강조하는 말씀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인생을 참으로 지혜롭고 복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고발되어 법정에 가기 전에 먼저 그 사람과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사람입니다. 58절의 내용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씀은 예외 없이 불순종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주님이 귓속에 입을 대고 정중하게 말씀하셔도 사람들은 예외 없이 이런 권면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천둥번개를 동원하시고 위협을 가하시면서 관계성에 신경쓰라고 말씀하셔도 이런 내용은 절대로 듣지 않을 사항입니다. 왜냐하면, ‘될 대로 되라’는 넉넉하고 풍성한 자만심이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될 대로 되라’식의 쓸모없는 배짱, 관계성을 깨트리는 무모한 배짱은 사람과의 관계성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어리석음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성을 소중히 여긴다면 이런 무모하고도 아무런 쓸데가 없는 무지한 배짱을 부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배짱은 남의 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고 남의 수고와 노고의 댓가를 편안히 이용만 하려는 파괴적인 근성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의 관계성에 초점을 두시고 그 관계성이 깨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는 말씀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무모한 파괴적 배짱을 깨끗이 접고 잔뜩 화가 나서 법정소송을 벌이려는 채권자에게 화해를 요청하여 뜻밖의 후환을 없애라는 말씀이지요(58절b).

그런데, 바로 이런 권면의 말씀은 90% 불순종이 뻔한 겁니다. 도무지 이런 말씀에 대해서는 귀도 기울이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듣고자 하는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런 ‘관계성을 위한 화해의 말씀’을 안 들을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바로 사람과의 관계성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파괴적 근성 때문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무모함과 인생에서 관계성이 차지하는 가치와 비중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어리석음이 그 배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주님은 이와 같은 가족 관계의 형제자매들이 서로 법정다툼을 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로서 형제자매의 관계성을 잘 맺도록 힘쓰시므로 순종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한 식구 됨의 가족 관계를 통해 나누게 될 하나님의 큰 은혜를 풍성하게 감당하시는 유쾌함이 풍성하게 넘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다 그래’의 일반화 심성입니다

59절의 말씀은 경제문제, 삶에서 꼭 필요한 문제 중의 하나인 물질문제 특히, 피치 못할 상황에서 남에게 얻어 쓴 부채문제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채문제가 삶의 발목을 잡는 경우는 2000년 전에도 오늘날고 별 차이없이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오늘 본문 59절의 말씀은 그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완벽하게 남의 빚을 지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남에게 단 한 푼의 빚도 지지 않고 신실하게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에서 남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으며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금전문제로 인해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지 누군가로부터 빚진 인생을 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대형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빚도 지지 않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라더군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대재벌들이 은행에서 빌려 쓰는 돈이 없다면, 대기업들이 순수하게 자기들의 돈으로만 회사를 운영한다면, 은행들이 먼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은행이 살고 기업이 살고, 그리고 소시민들이 자그마한 이자에 기뻐하는 것은 다 초대형 기업들이 은행을 통해 돈을 돌리기 때문에 서로 경제적인 빚을 지고 사는 것이지 이런 일이 없으면 경제가 돌지를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돈다, 돈다, 돈이 돈다...’ 라고 한답니다. 여기다 요새는 달러가 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마니(money)가 돈다, 마니가 마니(많이)... 그런답니다.

맞는 말이지요. 대기업이 어느 세월에 수백, 수천 억 원의 투자비를 모았다가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하겠습니까? 필요한 만큼의 투자액을 은행에서 미리 대출받은 후 그 이후에 얻게 된 이익의 일부를 은행에 되돌리면 은행은 그것을 은행 고객들에게 이자로 주면서 또 한 번 돌리고 돌리는 것이지요. 마니 마니... 이렇게 해서 돌고 도는 돈이 마니(많이) 있을수록, 경제가 활성화가 되고 침체된 경제가 살아나서 경제가 좋아지고 그 결과 국민 전체 경제가 좋아져 국민소득이 올라간다는 것이지요. 경제 원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럴 듯합니다.


• 문제는 빌려 간 뒤의 태도

그런데... 빌려 간 후 도무지 부채상환이 되지 않는, 함흥차사 형태가 나타나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사고가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빌려 간 후 그것으로 그만이면, 빌려 준 쪽은 어떻게 되라는 겁니까? 오늘 본문을 보니 이와 같은 물질문제로 인한 고소 사건이 2000년 전에도 흔한 사건이었나 봅니다. 이런 부채문제로 인한 이웃 간의 법정 다툼은 적어도 희귀한 종류의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누가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올 정도이면 물질문제, 특히 부채문제로 인한 민생고가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문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관계성이 깨지고 이웃 사촌지간이 어느 날 원수지간으로 변하게 되는 배경을 하나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 ‘나만 그런 게 아냐, 다 그래’로 일관하는 불순종의 태도가 그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59절에서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뜻의 말씀이지요. 그러나 이와 같은 말씀은 잘 이행되지 않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빚을 얻을 때에는 당장에라도 갚을 듯이 하다가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만 그런 게 아냐, 다 그래’로 변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누구 말대로 ‘내가 먹은 거 네가 꺼내 가, 내 배 째...’로 일관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빚을 얻어 간 쪽의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말에도 있지요? 돈을 꿔 줄 때에는 서서 주지만 꿔 준 돈 받을 때에는 엎드려 받는다고... 바꿔 말하면 빚 얻어 갈 때에는 굽신거리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얻어 가지만 그 빚 갚을 때에는 뒷짐 지고 헛기침 하면서 동냥 주듯 한다는 얘기지요.

사람들의 심리는 대부분 모두 비슷합니다. 상대방이 겸손하고, 진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거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그런데 빌려갔으면서도 자기 것 맡겼다가 되가져가는 것처럼 뻣뻣하면 사람사이의 관계성만 깨지게 될 뿐입니다. 더군다나 ‘할 테면 해 봐 어디...’의 자세로 나오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관계성이고 뭐고 천하의 원수지간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지요.

누가복음은 이미 2000년 전에 일찌감치 물질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복 받은 증거를 확보해 나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식구들이 물질문제로 인해 덕스럽지 못하고 경제문제에 본을 보이지 못하면 사람과의 관계성이 깨질 뿐만이 아니라 삶의 문제가 펼쳐지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58b).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의 경제생활에 있어서 부채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마저 위험스럽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믿음의 사람이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물질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관한 성경말씀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불순종의 형태가 자주 나타납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복 받은 증거를 보여야 하는 우리들의 삶 속에 경제문제, 물질문제에 관한 한 전폭적인 순종이 아니라 전격적인 불순종의 모습이 출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만 그런 게 아냐, 다 그래’라는 식의 자세와 태도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런 자세와 태도가 불순종의 뒷배경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복 받은 증거를 확보해 나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배짱으로 상황을 어떻게 해 보려는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복의 증거를 확보해 나가야 하는 우리들은 받은 은혜를 모두 엎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물질로 인한 관계성 파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해 힘써야 합니다.


3. ‘난 그런 일 당할 이유가 없어’라는 자기 판단입니다

13:1~2의 내용은 신앙적으로 퍽 큰 회의(懷疑)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올라 온 어떤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제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빌라도의 명령을 받은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에 들이닥쳐 제사를 드리고 있던 갈릴리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그런 후에 빌라도의 군대는 곧 철수하지 않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는 돼지를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자극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르러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보고하자 주께서 그에 대해 대답하신 말씀이 2절입니다. ‘빌라도 군대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라는 뜻이지요? 빌라도의 군대에 희생당한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죄가 커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살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님이 지적하신 겁니다.

한편 13:4의 사건은 건축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 밑에 있다가 불행한 죽음을 당한 사건과 관련된 교훈의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왜 하필 그 때 망대가 무너져 그 사람들이 죽었던 것일까에 대해 의문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치신 것이라고 보고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이와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망대가 무너질 때 죽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세상을 살면서 ‘나는 그런 일 당할 이유가 없다’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보신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의 희생을 본보기 삼아 그와 같은 일을 당하는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항상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지요(5절). 그러므로 이 두 사건을 통해 주시는 말씀은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항상 회개하라는 말씀과 이 두 말씀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불순종은 겸손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절대 그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식의 자기 판단에 의지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불순종으로 일관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는 그런 일 당할 이유가 없어’라면서 자만에 빠져 있는지 모릅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심지어 미국의 자존심이 짓이겨진 9․11 쌍둥이 빌딩 테러 폭파사건...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건사고가 우리들의 주변에서 부지기수로 발생합니다. 자연재해도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나는 그런 일 당할 이유가 조금도 없어’..... 아주 자신만만한 모습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바로 이런 일들이 주변에서 발생할 때 ‘그런 일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야’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거나 ‘내게는 절대 그런 일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정하지 말고, 그런 일이 발생하면 겸손하게 ‘나를 위한 경고용 사건으로 받아들이면서’ 항상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언젠가는 그렇게 자만하던 나도 병들고 천대받고 따돌림 당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병원에 누워 코에 영양제 공급 호스끼고 누워 있다가 그냥저냥 숨이 끊어지겠지요. 불노초를 찾던 진시황도 죽었거늘, 의학이 발달하여 120세 정도는 무난하다는데 그러면 121년째는 어떤 인생 살 건데요?

그러므로 겸손하지 못하게 ‘나는 그런 일 당할 이유가 없다’라고 한다면 불순종만이 생깁니다. 그러니 무슨 회개가 일어나겠습니까? 회개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만만한데 무슨 회개가 있겠느냐 이 말씀이지요. 따라서 ‘나는 그런 일 당할 이유가 없다’는 자기 판단이 곧 불순종의 뒷배경이 된다고 말하게 되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유형의 불순종과는 거리가 먼 충성된 믿음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줄 의심치 않습니다.


ㅇ 다음으로는 특별한 불순종의 뒷배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위에서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린 일반적인 불순종들의 뒷배경들과는 다른, 특별한 불순종의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불순종에 대한 이유나 변명을 들으시고 ‘그러냐, 그러면 네 뜻에 따라 그리 해 보거라’고 하실 만한 특별한 이유나 배경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본문 6절~9절은 포도원에 고용된 일꾼이 포도원 주인의 지시에 즉시 따르지 않는 불순종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고용된 자가 고용주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불순종했다는 내용이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고용된 주제에 주인이 하라면 하는 것이지 지시에 토를 달다니요. 무슨 가르침의 내용이 있는 비유일까요?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결과를 보기 위해 시간 연장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심은 지 삼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열매도 없었습니다. 주인이 보기에 그것은 땅만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그가 고용한 일군에게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에 고용된 일군은 주인의 지시를 즉시 시행하지 않고 사실상 거절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일 년간의 시간을 요청하였습니다. 일 년만 더 두고 보자고 주인에게 제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주인의 뜻을 완전하게 시행하지 못하겠다고 정면충돌 식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을 연장해 달라는 차원에서 일 년 간 순종의 기간을 연장받고자 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불순종이란 것은 결과를 보기 위해 기간을 좀 더 가져 보려고 시간을 늘린 시간 유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 오셨는지요?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과를 얻기 위한 시간 연장 차원에서 말씀 시행의 때를 늦춘 것인가요? 그렇다면, 언제까지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하신 것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복의 증거를 확보해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왜 불순종하게 된 것인지 그 이유를 잘 파악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한다고 했으면서도 불순종해온 지난 해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지 못한 이유를 분명히 적시하시고 내년에는 순종의 결과를 증거하시는 믿음의 삶이 되도록 믿음으로 힘쓰시길 바랍니다.


2. 소망을 이루기 위한 열심입니다

포도원에 고용된 일군이 포도원 주인의 말에 불순종한 두 번째 이유는 소망을 이루기 위한 열심을 적극적으로 보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 그 배경입니다. 지금까지는 무화과나무를 심어 놓기만 하고 열매가 열리기를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6절 말씀과 8절 말씀을 비교해 보면 포도원에 심긴 무화과나무는 심겨진 이후 특별한 관리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심어 놓기만 하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열매만 맺히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요.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포도원 일군은 일 년 간의 시간 유예를 요청하면서 그 동안에는 쏟지 않았던 열심을 쏟겠노라고 말하였습니다. 8절에 보면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는 별로 수고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일 년 동안 김도 매주고 땅도 엎어 주고 풀도 뽑아 주고 거름도 주면서 열심히 가꾸어 볼 터이니 일 년 만 더 시간을 달라는 차원에서 포도원 주인의 지시에 즉시 따르지 않았던 겁니다.

열심히 한 번 해보겠다는데... 포도원 주인이 볼 때 즉시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징계를 내릴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지금까지는 제대로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하지 않았던 열심을 내보겠다는데...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아쉬울 것 없는 것이고, 지금까지는 열심히 무화과나무를 돌보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열심히 돌보겠다는데 나쁠 것도 없지요.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열매를 기다리면서 소망 중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무화과나무를 가꾸겠다는 일군의 불순종에 대해 일 년 간 ‘그러마... 그리 해 보거라’ 했던 겁니다.

여러분의 지난 일 년 동안의 신앙생활 순종으로 일관된 삶이었나요? 자신의 모습을 주의깊게 돌아보면서 무화과나무를 열심히 가꾸어 열매를 보겠다는 일군의 그 열심을 갖고 좋은 열매, 풍성한 열매에 대한 소망을 향해 나가시는 기쁨이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거름도 주고, 풀도 뽑고, 흙도 엎어 주고 물도 주는 것과 같은 열심을 주님께 약속하시면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마음에 그리고 있는 꿈과 소망을 반드시 이루어 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포도원 일군의 열심을 보이는 한 소망을 이루어 보도록 시간을 넉넉히 연장해 주실 것입니다.


3. 궁극적으로는 지시내용, 명령의 뜻을 이루려는 입장입니다

불순종은 원래 지시나 명령을 정면에서 거부하므로 지시자 혹은 명령자의 뜻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역반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의 뜻을 이루어가는 입장에 서 있으면서 주인의 지시에 즉각 따르지 않는다거나 명령을 즉시 이행하지 않는 것은 궁극적으로 볼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순종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지시나 명령이 떨어졌을 때 시간적으로 즉각 이행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볼 때만 불순종이라고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포도원 일군은 결과적으로 주인의 뜻에 따라 무화과나무를 베어 버리겠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9절에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7절의 ‘찍어버리라’는 말에 대한 이행의지의 모습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포도원 일군은 포도원 주인의 뜻에 맞춰 ‘찍어버리라는 지시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지시를 지금 당장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년에 시행하겠다는 것이지요.


•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주인의 뜻을 위한 불순종

이런 형태의 불순종은 전문가 차원에서 행하는 시행 보류, 혹은 시간 연장의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대해서나 포도원 땅의 기름진 정도에 대해서나, 또는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고를 어떻게 어느 정도 들여야 하는 것인지... 그에 대한 농사관련 지식과 경험은 아무래도 현장에서 일하는 일군이 더 잘 알겠지요. 포도원주인이 아무리 무화과나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만큼의 현장 전문성, 혹은 실무 경험에서 오는 체감적 지식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이렇기 때문에 특별한 불순종의 뒷배경의 세 번째는 실무 경험자의 현장 전문성에서 오는 시행유보 요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현장에서 얻은 실무 경험에 바탕을 둔 시행유보 요청, 혹은 시간유예 요청의 차원이어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인데...

지난 일 년 동안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지 못하고 말씀을 통해 받은 복의 증거가 미약하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현장의 상황을 보건대 불순종할 수밖에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것이라면, 그러면 이제는 현장 경험, 현장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실 계획인가요?

한 해를 마감하는 2009년의 마지막 예배시간인 지금 이시간, 지난 한 해의 신앙생활 모습을 돌아보면서 그 동안 철저하지 못했던 불순종의 뒷배경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파악하시고 새해에는 반드시 훌륭한 열매을 풍성하게 맺는 믿음의 결과를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불순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전면적인 시행거부의 일반적인 불순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불순종을 보이게 되는 뒷배경은

ㅇ ‘될 대로 되라’는 자만심
ㅇ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다 그래’라면서 불순종의 이유를 일반화시키는 심성
ㅇ ‘난 그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어’라는 겸손하지 못한 자기 판단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불순종의 형태를 갖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는 결과를 내기 위한 특별한 불순종의 뒷배경이 있는데 그것은...

ㅇ 시간 연장을 요청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불순종
ㅇ 소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다짐하는 차원에서의 불순종
ㅇ 주인의 뜻을 이루어 가는데 방향을 맞춘 불순종

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 특별한 불순종은 결국, 열매를 맺으려는 것에 최종 목표를 둔 지시 시행 유보, 혹은 명령 수행 유보에 해당하는 것임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새 해를 맞이하기 위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번 주간 동안 새해의 풍요로운 믿음의 열매들을 소망 중에 바라보시면서 기쁨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게 되기를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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