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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주최 <평화통일 세미나> 참석 보고서
류상태  |  shalom77@ch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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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2월 20일 (화) 00:00:00 [조회수 : 3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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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 계기와 과정

   
▲ 새길교회 연구위원
나는 2005년 12월 11일(일)부터 15일(목)까지 4박5일 동안 통일교에서 주최하는 <평화통일 한국지도자 세미나 >에 참석하였다. 세미나에 참석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처음 받은 때는 10월 초순이었다.

통일교에서 이런 제안을 하게 된 배경에는, 내가 쓴 책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에 나오는 글 중에 통일교에 관계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단이나 사이비에 대한 논란은 한국 교회사에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이단은 무엇이고 사이비는 무엇인가. ‘이단’과 ‘사이비’라는 용어는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단’이라는 말은 ‘같은 신념체계 내에서’ 사용되어야 할 말이다. 그러니까, 기독교 내에서는 ‘이단’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웃종교에 대해 ‘이단’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사이비’라는 용어는 ‘사회적인 관계에서’ 사용되어야 할 말이다. 그러니까 ‘사이비’종교인지 여부는 비교적 쉽게 분별이 가능하다.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사회에 해를 끼치고, 구체적인 범법 행위를 저지르면 사이비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고 생매장을 했다던가, 집단자살을 사주했다든가, 유해물질을 살포했다든가, 이런 식으로 명백히 사회규범이나 법을 어기는 ‘범법 행위’가 드러나면 그 집단은 사이비 종교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단’은, 같은 신념체계 내에서 교리 해석이 다른 경우에 적용된다. 사회 윤리 문제와는 별 상관없이 사상 문제로 인해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정통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몰몬교의 경우, 사회 기여도나 윤리 면에서 보면 정통 기독교의 어느 교단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 통일교 등도 이단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사회 윤리 면에서 볼 때, 한국 주류 개신교보다 부분적으로 더 건강한 면을 찾아볼 수 있다.

사이비 종교를 잘 구별하여 우리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하지만, 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단’에 대한 거부 반응이 별로 없었던 나에게 통일교의 P회장과 L목사가 정중하게 제안한 세미나 초청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참가비로 1인당 10만원만 내면, 나머지 경비는 일본 통일교측에서 부담한다는 조건이었다.

학교를 떠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으로 지내던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대광고에 근무하는 동안, 나는 방학을 이용해서 2~3년에 한 번 정도 아내와의 해외여행을 즐겼으며, 아내 또한 무척 기뻐했다. 다시는 여행의 즐거움을 맛보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다시 기회가 온 것이다.

‘염불’과 ‘잿밥’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단’으로 알려진 통일교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미나 참석보다, 아내와 함께 지내게 될 4박5일 동안의 여행(?)에 더 마음이 끌렸다.

통일교측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있음을 P회장과 L목사에게 솔직히 밝혔다.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조건을 제시했다. “내가 참석하고 나서 느낀 점을 공개해도 되겠는가?” 그들은 “(내가 다칠까봐) 염려스럽다. 그러나 목사님이 괜찮다면 우리도 괜찮다”고 말했다.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 대신 세미나 참석 후에, 통일교에 대해 느낀 점을 보고서를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 만약 통일교가 건실한 종교라고 생각되면, 보고서를 통해 변호해 주는 것으로 은혜(?)를 갚으리라.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비판하기로 했다. 이 보고서는 이렇게 해서 쓰게 된 것이다.


2. 세미나 참석 이전의 통일교 이해

내가 통일교를 처음 접한 것은 29년 전인 1976년, 대학 1학년 때였다. 통일교 신자이며 원리연구회 멤버였던 철학과 선배를 통해 1박2일의 통일교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그 때는 기성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전으로, 백지 상태에서 통일교를 접했다.

대학 시절, 짧은 세미나를 통해 받은 통일교에 대한 인상은, “기독교치고는 꽤 합리적이고 괜찮네.” 라는 것이었다. 통일교는 기성 교회들과는 달리 성경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의 나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기독교의 흑백논리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으며, “신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글을 졸업논문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통일교를 접한 적이 없으며,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기까지 통일교에 대한 관심도 지식도 별로 없었다. ‘피가름’이니 ‘순결 캔디’, ‘합동 결혼식’ 등, 통일교 문제가 간간히 이슈화되었지만, 나는 ‘이단’ 종파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3. 통일교 사상의 매력과 한계

세미나는 일본 동경에서 열렸다. 가고 오는 날을 빼면 실제 활용되는 날은 사흘이었다. 첫날과 셋째 날은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빡빡한 강의로 채워졌다. 저녁 식사 이후 자유시간이 주어졌으며 셋째 날에는 동경디즈니랜드를 관람하였다. 둘째 날은 종일 동경 일대를 관광하였다.

총 20시간이 채 안되는 짧은 강의를 통해 통일교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직접 강의하는 통일교의 중심 사상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은 통일교(정식명칭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총재 문선명)의 실체, 특히 그 사상적 뼈대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1) 참가정운동과 순결운동

통일교가 주장하는 자체 윤리관은 매우 엄격했다. ‘자체 윤리관’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한국 주류 기독교가 보는 통일교의 윤리 문제와, 통일교 스스로가 주장하는 윤리관이 극에서 극을 달릴 정도로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기성 교회에서 말하는 통일교는 윤리의식이 실종된 난잡한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통일교는 혼전 섹스를 철저하게 금하고 가정 윤리를 인류 행복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가정이 순결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세계 평화도 없다는 생각에 순결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통일교가 급성장하던 초기, 기성교회는 통일교를 사이비 집단으로 법에 고발한 적이 있고, 그 일로 문선명 총재는 감옥을 살기도 했다.

고발의 이유는 난잡한 성행위를 한다는 것이었으나, 법은 3개월만에 문총재의 무죄를 선언했다고 한다. 통일교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도 끊임없이 논의되는 ‘피가름’ 문제는 기성교회의 악의에 찬 모함이라는 것이다. 그 때 통일교측에서는 법적 대응까지 고려했으나 문총재의 만류로 그만두었다고 한다.

통일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떳떳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의혹을 풀 필요가 있다. 괜한 오해를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일 ‘피가름’ 문제가 통일교의 교리와 사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통일교의 발생 초기에 있었던 해프닝이었다면, 통일교는 이런 사실을 두리뭉실 넘어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기본 교리가 아니라 사고였음을 명백히 밝히고 사회에 사죄해야 한다.

‘피가름’ 문제가 포기할 수 없는 통일교의 주요 교리이며 사상이라면, 혹은 지금까지도 은밀히 시행되고 있다면, 통일교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이비 집단일 뿐이다.

또 하나, 어처구니없는 일로 생각되지만, ‘순결 캔디’ 문제도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순결 캔디’란 통일교가 순결 캠페인을 벌이면서 나누어주는 사탕을 말하는 것인데, 문제는, 이 사탕 안에 특정 물질이 들어있다는 소문이 기독교계에서 돌고 있다는 점이다.

대단히 결례되는 일이지만, 이 문제를 L목사에게 물어 보았다. L목사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라며, 이 캔디를 모 기관에서 성분 분석한 적도 있었고, 캔디가 지금도 사용되므로 언제든지 규명할 수 있는 문제라고 답했다.

2) 합동결혼식

일반인들에게 통일교에 대한 인상을 가장 깊게 새기는 것은 아마도 통일교인들의 ‘합동결혼식’이 아닐까 싶다. 수천 명에서 때로는 수만 명에 이르는 신랑신부가 합동결혼을 한다는 것, 게다가 이 사람들의 중매를 교주인 문선명 총재 한 사람이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이 문제는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며, 나 역시 공감하기 어렵다. 어쨌든 통일교측은 이 문제를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사회에서, 중매결혼 풍습이 있다. 인생 경험이 많은 어른이 짝을 맺어주는 것이다. 문총재가 이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문총재가 짝을 맺어주어도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가 있다... 특히 합동결혼을 통해 국제결혼이 많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국가간, 민족간, 종교간 장벽을 넘어 인류 평화를 이루는데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통일교의 논리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인생 경험이 많고 특별한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인생 문제를 어떻게 알고 맺어줄 수 있다는 것인지 일반인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아마도 문총재가 통일교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특별한 위상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메시아론과 관련하여 통일교가 보다 명확히 밝혀야 할 문제다.

3) 평화통일운동

통일교 활동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통일교는 남북 화해와 대화, 통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실제적인 변화와 실적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통일교의 사상과 실제적인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특히 일본에서 조총련과 민단의 화해운동을 주도하며, 우리 정부가 하지 못하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종교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통일교 활동을 재평가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제적인 활동과는 달리, 통일교는 대립, 갈등구조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 세계를 ‘하느님 편과 사탄 편, 선과 악,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라는 보수 우익적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통일교가 세계 평화를 논하기에는 사상적 폭이 좁다는 느낌이 든다. 무신론과 공산주의까지도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상생’의 길을 찾을 수는 없을까.

기독교 도그마가 갖고 있는 독선과 배타성을 완전히 넘어서기에는 통일교 역시 보수 기독교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죄론’과 ‘인격적 유일신’ 사상을 절대화하고 여전히 매여 있으면서, 어떻게 다양한 사상과 문화, 종교의 화합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일까.

4) 종교적 포용주의 내지 다원주의

통일교는 이웃종교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화의 채널을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긍정적으로 보고 싶은 부분이다. 한국 주류 개신교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가 자신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서운 독선일 뿐 아니라 인류 사회의 갈등을 야기하는 무모한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유대인과 아랍인, 또한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통일교의 활동은 감동적이기도 하다.

강의 중에, 몇마디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강사 중 한 명은 통일교의 목표를 “종교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선명 총재의 종교철학을 소개하면서 “통일교로 개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실한 기독교인, 신실한 유대인, 신실한 무슬림이 되면 된다는 것이다. 공산당도 무신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승공을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 믿는 공산당’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웃종교에 대한 이런 열린 태도는 한국 주류 개신교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의혹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 종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서 ‘종교 화합’이 아니라 ‘종교 통일’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 궁극적인 목표가 ‘통일교로의 통일’이기에 “종교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건 인류의 다양한 종교 문화에 대한 기만이며, 장차 더 큰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런 식의 통일은 문화침략주의일 뿐이며, 매우 위험한 시도로 느껴진다. 통일교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통일교가 진정 인류를 위한 종교가 되려면, 자신만의 절대성을 내려놓고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 “다른 종교도 다 좋지만 결국은 통일교다”라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5) 교리적 문제, 특히 재림론

교리적 문제, 특히 재림론은 통일교 사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으로 생각된다. 통일교는 원죄론으로부터 시작해 교리를 풀어가고 있다. 성서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넘어, 과학과 종교의 조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문자주의적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현대신학은 창세기를 신화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통일교 역시 창세기의 기사를 ‘설화’라고 말한다. 선악과나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기적 사건에 대한 묘사는, 문자 그대로가 아닌 비유와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림론으로 들어가면 다시 신화의 세계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성경의 여러 계시적 내용을 근거로 재림주 탄생 지역을 한국으로, 또한 재림주의 탄생 시기를 1917~1930년 사이로 보는 시각은 어처구니없을 뿐 아니라 유치하기까지 하다.

세계 평화의 웅지를 품고 있는 통일교가 이런 해석을 내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종교적 확장성과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통일교가 진정 ‘이단’이 아닌 ‘교단’의 하나로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재림론에 대한 엉뚱한 해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것이 통일교 사상의 핵심이고 그 교리를 버릴 수 없다면 기독교 내에서 인정받기는 힘들 것이다.

게다가 강의 도중에 문선명 총재를 메시야와 은근히 동일시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문총재를 메시야로 생각한다면 떳떳하고 명확하게, 공개적으로 밝히고 기독교와 결별하여 새로운 종교로 가는게 좋겠다.

만일 문총재를 ‘수많은 메시야’ 중 하나로 생각한다면 “종교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종말론적 사상을 가진 종교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메시야(구세주)’를 말하고 있고, 그것이 다른 종교의 가치를 부정하는 선을 넘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종교학적으로도 그런 메시야는 많다. 예수 뿐 아니라, 부처도, 공자도, 마호멧도, 모두 인류와 신을 만나게 하고 맺어주는 메시야의 역할을 훌륭히 한 분들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총재를 예수의 재림에 비유하면서, 전 세계를 통일하고 인류를 궁극적으로 구원할 유일한 메시야로 본다면, 통일교는 신화의 세계에 머무는 원시종교일 뿐 기독교라고 말하기 어렵다. 아니, 세계를 하나로 묶겠다는 발생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심지어 통일교는 세계정부를 세운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데, 그 세계 정부가 통일교에 의해서 세워지는 단일정부라면 통일교는 세계 평화가 아니라,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획일화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 사이비종교로 지탄받게 될 것이다.


4. 맺음말

통일교의 종교간 대화, 화해 운동 노력에 대해서,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또한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남북 대화와 화해를 주선하고 통일을 위한 기반을 착실히 다지며 결국 세계 평화를 위한 웅지를 품고 있는 점 또한 (위에서 제시한 의혹을 풀 수 있다면) 매우 훌륭한 일을 하는 것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통일교의 사상이 획기적이고 야심차기도 하지만, 폭이 좁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성적 자유론과 동성애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이 “타락한 사탄의 협작” 쯤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모든 현상과 문화, 사상을 선과 악의 구도로 몰고 가는 것 역시 유치하다는 느낌이다. 다만,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가정 내 순결을 강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뜻깊은 일을 하는 것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또한 강의 중 잠깐 언급되었던 문제 중에, 통일교의 궁극 목표를 “종교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부분과, 문총재의 종교철학을 소개하면서 “개종할 필요가 없다” 고 말한 부분을 주목하고 싶다. 그렇다면 통일교에서 추구하는 “종교 없는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통일교의 소멸도 각오하는 것인가?

정말로 “종교 없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면, 통일교 교주로서, 메시아(?)로서의 문선명 총재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거나 부정할 수 있는가? 원리강론도, 통일교의 모든 교리나 사상도 버리거나 수정할 수 있는가? 그래야만 통일교라는 종교도 없어질 수 있을텐데 말이다.

만일 통일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종교 없는 사회”가 종교의 틀을 깨고, 온전히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지향하는 ‘평화 운동’이라면, 나도 통일교의 이상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불교에서는 ‘살부살조’를 말한다. 깨달음에 방해가 되면 부처도 죽이고 조사(선사)도 죽이라는 것이다. 통일교가 진정으로 “종교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면, 문선명 총재도 죽이고, 그의 교리나 사상도 죽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세계 평화와 통일을 꿈꾸는 통일교에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 ‘세계 평화’는 좋다. 그러나 ‘세계 통일’이나 ‘세계 정부’는 무모하고 위험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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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칠 (87.251.96.11)
2005-12-21 02:28:27
우리의 소원은 통일
오늘은 통일교와 씨름하는 저 자신의 하루입니다. 일단은 호랑이 소굴로 초청을 받아 다녀오신 것만 해도 대단한 용기입니다. 이는 류목사가 예장 통합의 목사직을 반납하셨기 때문에 얻는 특권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통일교에 대해 일반 신문에 나는 가십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이틀이 “통일”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말은 분단국에 한한 슬픈 구호입니다.
종교적으로 세계가 기독교로 통일이 되는 것이 예수쟁이의 소망일 것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12제자를 두셨고 각 민족에게 고르게 땅도 분배했다는 사실을 잘 보아야 합니다. 솔직히 4복음서도 저자마다 예수님을 보는 눈이 다른데 통일을 하려니 부작용이 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 통일교에 대해 여수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 막지를 못합니다. 기독사이트는 말씀으로 요란하지만 세상 사이트는 교회에 마을에 들어서는 것 조차 귀찮아 합니다. 누구 죄일까요? 외형에 집착한 한국교회에 대한 징계입니다. 무식한 말로 “그저 얻어터져야 정신을 차립니다”이제 얻어쳐져 보아야 하는 한국교회입니다. 신나게 맞을 준비를 합시다. 맞아야 제 정신이 돌아 한국교회를 때리는 주님은 울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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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배 (210.103.56.65)
2005-12-20 14:13:10
가끔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통일교야말로 그 신앙인들의 피땀과 정수를 흘려.. 번 돈을 자신들의 더 큰 이득을 위해 재투자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들 제사보다 젯밥에 눈이 어두워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가벼이 응대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모교의 마피아(?)로 불려지는 분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어쩌면 길거리에 내몰린 님과 가족을 생각하면 걱정이 좀 됩니다.
언젠가 진리는 승리하리라는 믿음으로 사시기를 빕니다. 당장 지원을 해 줄 사람들이 적지만, 눈먼 이단의 돈이나 지원을 받아 종으로 묶여드는 것은 피하시길 바랍니다.

한 번두번 신세를 지다가, 통일교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점점 빚을 더 지게 되면 채권자에게 종이 된다고 성경기록은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그들의 교리를 입이나 글로 오르내리는 것조차 벌써 초상권이나 글이 왜곡될수 개연성이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님께서는 메스컴을 탄 분인데다 알려져 있는 분인데, 그들이 찜한 것은 매리트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 땅의 명예 하늘의 보상을 고대하시기를...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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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82.126.171.18)
2005-12-20 10:54:33
정말 재미있고 즐겁게 읽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글이라 생각합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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