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단어이자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단어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가장 외면하고픈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동포라고 하기에는 서로에게 준 상처가 너무 깊고 그렇다고 남이라고 모른척하기에는 피가 땡긴다. 그렇게 기성세대는 외면하기도 하고 손을 내밀기도 하면서 분단이후시대를 살아왔다.

어린 세대 혹은 젊은 세대에게는 얘기가 전혀 새롭게 다가온다. 이들에게 통일 혹은 분단은 그저 무감각한 비실재로 여겨질 것이다. 이미 분단의 현실을 익숙하고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고 큰 불편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을 테니 말이다. 반쪽으로 나고 자란 이들은 반쪽을 반쪽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온전한 한쪽으로 인식하도록 유무형의 강요를 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언젠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통일이 되었을 때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수십 년을 적대하면서 살아왔다는 보이지 않는 이념의 차이보다도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차이는 외형이다.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과 남한 어린이의 신장이 16Cm, 체중이 16Kg이나 차이난다고 한다. 북한을 방문하였던 한 목사는 어린 아이가 군복을 입고 털레털레 걸어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 군인은 소년병이 아니라 청년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정치적 지역적 분단보다 심리적, 외형적 분단이 더 심화될 것이다. 남한의 일부 불량한 중고생들이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아이나 성장발육부진 등 왜소한 아이를 왕따시키고 괴롭힌다는 뉴스를 볼 때 씁쓸함을 넘어 우려감을 가졌는데 미래에는 이런 일이 남북 동포 간에 일상화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그런데 그 어린 세대, 통일에 가장 무감각할 것 같은 세대가 통일, 통일 이후에 관심을 갖고 밥을 굶었다고 한다. 바로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인 산돌학교 학생 100여명이 그들이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5년 과정을 교육하는 산돌학교는 지난 2004년에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세워졌다. 남북평화재단 상임이사인 김영주 목사가 감리교회 교육부 총무로 재직할 당시이다. 현재 한 학년 15명 학생은 두 달 일정으로 인도에서 이동수업중이다.

교남동 남북평화재단 사무실로 산돌학교 이은재 교장과 서형준 선생, 그리고 두 명의 학생이 찾아왔다. 그들의 손에는 거금 100만원이 들려 있었다. 100여명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세 끼를 금식하여 모은 식비이다. 한적한 교외에 있는 학교이다 보니 돈 나올 구멍이 없었을 테니 이런 방법을 생각했나보다. 이 돈을 북한 어린이들 돕기에 선뜻 내놓은 것이다.

“해마다 학교에서 성탄예배를 드리는데 올해에는 뭔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런 제안을 하게 되어 회의를 통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김혜원 학생(학생회장)은 또박또박 말한다. 이 안건은 회의석상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고 하였다.
이은재 교장은 ‘이번에는 시간이 촉박하여 학생들만 북한 어린이돕기에 참여하였는데 앞으로는 학부모들까지도 동참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혜원 학생이 함께 나누는 세상 정창영 상임대표에게 기금을 전달하였다. 기금을 받은 정 상임대표는 ‘그동안 받은 그 어떤 기금보다도 소중한 기금이다. 어린 학생들이 북녘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서 밥을 굶어가며 모은 이 기금이 통일의 소중한 열매가 될 것으로 믿는다’며 김혜원 학생의 두 손을 꼭 잡고 감사를 표했다.

공식적인 기금 전달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북한 어린이에게 우유 보내는 일에 동참하기 위하여 우유곽 저금통과 후원안내 리플렛을 백여 개 챙겨갔다. 산돌학교 홈페이지에는 ‘북한 어린이 돕기 성금모금’이라는 제목의 공지글도 게시돼 있었다.

고 문익환 목사는 ‘이미 통일이 됐다’고 선언하였다. 그 선언의 의미를 이 아이들의 해맑게 소리 내어 웃는 모습에서 발견하였다. 기성세대는 통일을 정치적인 이익과 경제적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저울질하지만 이 어린 세대는 휴머니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성세대가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미래를 그들 스스로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끼를 굶은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 100만원도 큰 돈은 아니다. 그러나 100만원이면 100명의 북한 영유아가 한 달 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니 기가 막힌 일이다. 지금 남한에서는 청소년 및 유년의 비만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산돌학교 학생들은 세 끼의 기적을 체험하였고 100만 원의 위력을 실감하였을 것이다. 이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어른들이 본받기를 바란다. 기성세대가 만든 분단을 이 어린 세대가 치유하고 새로운 한반도로 창조해나가는 꿈을 꾸며 이들의 선행에 감사한다. 나 역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