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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에브라다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대림절 넷째주(20091220)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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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12월 17일 (목) 11:14:28
최종편집 : 2009년 12월 17일 (목) 14:07:10 [조회수 : 5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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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네 번째 주일(20061220)
성서일과/ 시 80:1-7; 미 5:2-5a; 히 10:5-10; 막 1:39-45(46-55)
본문/ 미가 5:2-6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미 5:2-6)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3]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하며 니므롯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 내리라』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세상에 평화를 전하신 주의 은총이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구원의 주를 영접하는 자

   
오늘 본문은 남왕국 유다에서 주의 심판과 구원을 예언했던 미가 선지의 말입니다.
그는 요담이라는 평범한 임금과 아하스라는 악한 임금 그리고 히스기야라는 선한 임금의 치세를 겪었습니다.
또 생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는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며,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으로 말미암는지를 그의 삶 가운데서 체득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심판의 날을 예언하며 말했습니다.
          (미 1:3-4) [3]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4] 그 아래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심판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몸소 강림하심으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산들이 녹고 골짜기가 갈라진다고 했으니, 심판주는 세상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모습으로 강림하신다는 것입니다
불 앞의 밀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과 같다고 했으니, 그 심판의 두려움을 피할 자가 없으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날에 대해서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오시는데 그의 근본이 상고요, 태초이니 그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주로 오시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유다의 시골 아주 작은 마을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분입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런 모습으로 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가 오시는 것을 보는 자도, 아는 자도 거의 없으리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심판의 하나님은 굳이 그 분이 어떤 분이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모습으로 임하시겠지만, 구원의 하나님은 세상이 잘 알지 못하는 모습으로 강림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심판의 날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닥치지만, 구원의 은총은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올해는 좀 덜합니다만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마치 온 세상이 주를 영접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겠습니까?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장식을 해놓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쇼윈도에 불을 밝힌다고 주를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요한이 말합니다.
          (요 1:10-11)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세상은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오심을 알지 못했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이 또 말합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세상이 알지 못하게 임하시는 구원의 주님을 알고, 영접할 수 있는 자는 믿는 자들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땅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을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훗날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3:5)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믿는 자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나,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난 자들입니다.
육으로 났으나 다시 난 자 곧 거듭난 자가 세상이 깨닫지 못하게 오시는 구원의 주를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일러 영으로 육을 죽인 자 곧 영의 인도를 따라 사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 8:13-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들은 유다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를 구주로 알고 영접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주어지는 이 순간 그들은 세상 속에 있습니다.
세상이 당하는 환난과 고초를 육을 따라 난 사람들과 함께 겪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때까지 그와 같은 사정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미가는 말합니다.
          [3]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가 다 함께 여인이 해산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고통의 끝에 임할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은 육을 죽이고, 둘째 사람 예수께 속한 자로 거듭 나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육의 소욕을 따라 살지 말고, 영의 인도를 따라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주님 오시는 그날이 해산의 고통이 끝나고, 새 생명을 얻는 것과 같은 기쁨의 날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 날에 주어질 기쁨

예수님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 나셨습니다.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실로 이 짧은 말 속에 믿음으로 주를 영접하는 자들이 누릴 기쁨이 숨겨져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첫째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目睹)하는 기쁨입니다.
주님이 나신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입니다.
주님이 다윗의 고향에서 나셨다는 것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리라는 예언이 이루어 졌다는 뜻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자입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 주신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기쁨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리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그에게 주신 약속을 이어받은 자입니다.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믿음을 따라 상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혈육에서 난 자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사는 자를 아브라함의 후사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약속을 받은 자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는 자들은 인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환난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주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까지만 이어지는, 기한이 있는 환난입니다.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3]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는 자들은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약속은 무엇입니까?
옛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보다 좋은 약속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합니다.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옛 이스라엘은 땅과 후손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새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은 하늘과 영생의 약속입니다.
영원한 생명,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땅에 속한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겨 버릴 수 있게 하는 기쁨입니다.
믿는 자들은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시 54:7) 대저 주께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셨나이다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기쁨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둘째, 주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는 기쁨입니다.
베들레헴은 또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심은 그가 우리에게 양식을 주어 먹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이 증거합니다.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런 설움, 저런 설움이 많지만 굶는 설움보다 큰 설움이 없습니다.
배고픈 설움은 인생이 겪는 모든 설움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양식이 없는 자들의 괴로움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간 것은 야곱의 집에 양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방땅에서 노예가 되어 신음하였습니다.
다윗의 조상 중에 이방여인 룻이 등장하는 것은 그의 시아버지 엘리멜렉이 양식을 구하러 모압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결국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만이 남는 마라의 쓴물과 같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여 주셨습니다.
가나안으로 돌아온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보아스를 통해 먹을 것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신 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먹을 것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능히 행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차지했고, 룻과 나오미는 행복한 가정을 찾았습니다.

베들레헴에 나신 주님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먹을 것을 나누어 주시는 분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몸을 우리의 양식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양식이 되신 것입니다.

옛 이스라엘이 먹던 만나는 하나님이 매일 매일 공급해 주시는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내어주신 그의 살과 피는 한 번 먹고, 마심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는 영생하는 양식입니다.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매일 주시는 양식인 만나는 썩고, 오병이어의 남은 것도 썩는 것이었지만, 주님의 몸은 썩지 않는 양식입니다.
요한 사도가 말합니다.
          (요 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 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에 속한 썩는 양식을 쫓아, 영원한 양식을 주시는 예수를 떠나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로 양식을 삼는 기쁨, 결코 주리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않는 기쁨이 넘쳐흐르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셋째는, 풍성하게 얻는 기쁨입니다.
베들레헴은 또 에브라다라고도 불렸습니다.
오늘 본문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에브라다는 풍성한 수확 곧 풍년이 들 때의 풍성함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에 나타납니다.
          [4] ...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고을이지만 그곳에서 나신 주님의 은총은 땅 끝까지 닿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풍성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풍성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은 겨우 허기를 면하고, 간신히 기갈을 면할 정도로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풍성함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를 남기는 풍성함입니다.

주님 자신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의 눈물은 풍성한 그의 긍휼이 흘러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는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나사로에게는 물론이요, 그의 식구들과 이웃 모두에게 미치는 큰 기쁨이었고 영광이었습니다.
풍성한 기쁨입니다.
우리도 같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엡 2:4-5)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주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풍성하시고, 인자와 자비에도 풍성하신 분입니다.
그 영광도 풍성하기만 합니다.

주의 풍성하심은 또한 주의 부요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시니 부요하신 분입니다.
          (시 104:24)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이렇게 부요하신 분이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 누울 자리도 없이 구유에 나신 것은 우리로 부요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또 말합니다.
          (딤전 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이 풍성하심과 부요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무슨 일에든지 모자라서 당하는 고통이 없으시기를 빕니다.
풍성한 부요함으로 나누고, 베푸는 자의 기쁨까지 누리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끝으로 평강의 찬송을 부르는 기쁨입니다.
베들레헴은 유다 족속의 땅입니다.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창 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찬송은 어떤 형편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평강할 때에는 절로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찬송은 구원의 은총을 입은 자들의 입에서 절로 나오는 법입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가르신 여호와를 찬송했습니다.
          (출 15:1) ...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 다윗도 구원의 주를 찬송했습니다.
          (삼하 22:4)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넘치도록 복을 받은 솔로몬도 기쁨으로 찬송했습니다.
          (왕상 8:56)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태평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5]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주께서 오시기 전 이스라엘은 늘 흔들리는 나라였습니다.
평강이 없었던 것입니다.
약속을 받고도 약속을 따라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썩을 양식을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풍성함이 없이 자기 배를 위하여만 살았기 때문입니다.
육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시작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족속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 나신 주를 알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주님은 평강의 왕이 되어 주셨습니다.
누구도 흔들지 못하고, 깨뜨리지 못하는 평강이 그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들을 흔들어 넘어뜨리려는 세력을 그가 이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5] ...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하며 니므롯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 내리라

그 사람, 믿는 자의 평강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눅 10:18)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약속을 믿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로 평강케 하시리라는 약속입니다.
베들레헴에 오신 그 사람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믿는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평강의 주께서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쁨으로 찬송하며,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혹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답답하시지 않습니까?
누구도 주목해 보지 않아 섭섭하시지는 않습니까?
때로 힘들고, 안타까워 벗어나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임하시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베들레헴-에브라다입니다.

주님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양식이 되어주시고, 모든 것에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환난 가운데서도 찬송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침내 그 약속이 이루어짐을 보고, 넘치는 기쁨으로 찬송하는 날이 오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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