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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만나는 사람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대림절 둘째 주(20091206)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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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12월 03일 (목) 17:33:11
최종편집 : 2009년 12월 03일 (목) 18:26:12 [조회수 : 2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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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대림절 둘째 주(20091206)
성서일과/ 눅 1:68-79; 말 3:1-4; 빌 1:3-11; 눅 3:1-6
본문/ 말 3:1-6
주님을 만나는 사람


(말 3:1-6)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2]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성탄절을 앞두고 지키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들이 지녀야 할 마음이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주의 처음 오심은 당신을 십자가에 매달아 죄를 대속하심으로 구원의 은혜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다시 오실 주님은 심판주로서 오실 것입니다.
          (계 14:7) ...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회개는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이 심판의 날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의 날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둘째는 소망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일입니다.
주의 다시 오심이 늦어지면서, 땅에 있는 교회가 공통적으로 겪는 일은 주께서 곧 오시리라는 소망이 흐려지거나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실 주님께 대한 소망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바라보게 됩니다.
땅에 속한 것, 무너질 창고를 짓고, 없어질 것들로 채우려는 헛되고, 어리석은 욕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결국 아무런 준비 없이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히 6:11-12)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회개가 굽혀 자기를 살피는 일이라면, 소망은 우러러 하늘을 보는 일입니다.
자기를 살펴 아는 자는 하늘의 도움을 바라게 될 것이고, 하늘을 보는 자는 자기를 살펴 흠이 없나 염려하는 자가 될 것이니 결국 회개와 소망은 한 줄기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의 대강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 오실 때 그를 피해 숨지 않고, 나아가 영접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약속이 이루어지라는 믿음에 소망을 두고, 회개함으로 자신을 정결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 다시 오실 날. 기쁨으로 주를 영접할 수 있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주의 길을 예비할 사자를 보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처음 오실 때에 주의 길을 예비한 사자는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하라 외치며,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요한이 전하는 회개는 어떤 것입니까?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요한은 광야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는 곳이 광야였고, 입은 것은 가죽옷이었습니다.
그가 먹는 것은 메뚜기와 석청이었습니다.
그가 외친 회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의 사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회개입니까?
광야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광야의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광야의 사람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다시 광야로 돌아가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모세가 말했습니다.
          (신 29:5-16) [5]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 하였으며 [6]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의 유언과 같은 말입니다.
모든 것이 풍성한 가나안 땅에 살면서 혹시라도 이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시라는 것을 잃어버리게 될 까봐 염려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광야, 아무 것도 없는 빈들에서 이스라엘을 먹이셨습니다.
농사짓지 않았는데 먹을 것이 없어 죽는 자가 없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어 죽는 자도 없었습니다.
길쌈하지 않았는데 벗은 자도 없었습니다.
신을 갈아 신은 적이 없었는데 그 발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낮은 덥고 밤은 추웠어도, 더위에 상하거나 추위에 얼어서 죽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의 사람이 되라는 것은 어디서, 어떻게 살든지 여호와로 말미암아 산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애굽 바로의 힘에 눌려 신음하며 살 때에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평안히 살 때에도, 오직 여호와만이 내 하나님이 되심을 기억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않고 사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회개는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일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사 40:3-5)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요한의 사는 모습이 회개의 본질을 알려주는 것이라면, 그가 외친 소리는 회개의 실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딛고 오실 길은 고르고, 바른 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짜기가 돋우어 지고, 산들이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길이 평탄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산이라면 저기 보이는 그 산이겠습니까?
그 안에 깊게 파인 곳을 일러 골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산과 골은 우리 마음에 있는 산과 골입니다.
마음의 골짜기가 돋우어지고, 마음의 산이 낮아지고, 마음의 굽은 것이 곧아질 때, 거기 하나님의 길이 열리리라는 뜻입니다.
시인이 노래합니다.
          (시 84: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성도들의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만드는 일, 이것이 영광중에 오실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만들 수 있습니까?

우선은, 골짜기를 돋우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골짜기가 생기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심하게 되고, 그렇게 파여진 마음을 골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심령에 깊이 파인 온갖 욕심의 골짜기를 돋우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속 깊은 곳에 있는 감추어진 탐심 곧 육에 속한 정욕, 불의한 소욕을 찾아내서 버려야 합니다.
헛된 욕망, 이생의 자랑거리, 세상의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는 것을 다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상심의 골짜기를 만들고 마침내 그 심령을 묻어, 어둡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내려 주셨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하루 먹을 양식만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안식일 전날에만 안식일을 위하여 두 곱으로 거두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염려가 많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욕심껏 거두어 들였습니다.
한 번 거두어 여러 날 동안 먹을 양식 걱정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루 먹고 남은 것은 모두 썩어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많이 쌓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시기를 기원합니다.
오히려 일용할 양식을 주시어 살게 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가나안 복된 땅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땅입니다.
지금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 보게 될 날을 소망하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음은, 높은 산을 낮추어야 합니다.
높은 산봉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말합니다.
낙심해서도 안 되지만 교만해 져서도 안 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천히 여겼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세례요한은 외쳤습니다.
          (눅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과 돌 사이라 해도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구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바울사도는 말합니다.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세례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분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막 1:7) ...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지혜자는 말합니다.
          (잠 16:19)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리 예수님은 당신의 발아래 서서 말하던 삭개오를 기뻐하셨습니다.
발아래 누워 말씀을 듣던 마리아를 좋게 여기셨습니다.
발아래 엎드려 간구하던 마리아를 구원하셨습니다.
발아래 무릎 꿇고 향유를 붓던 마리아를 영원히 잊지 못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자, 서로 높이며, 서로 섬기는 자가 되셔서, 주님 오실 때에 함께 영광을 받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고르지 않은 것을 펴서 평탄하게 해야 합니다.
구부러진 마음을 바르게 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부러져서 울퉁불퉁하게 된 마음은 완악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음이 완악해 지면 귀가 막히고, 눈이 닫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 마음이 구부러져서 다른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길에 핀 백합화를 보라......

그러나 완악한 자들은 보지 않습니다.
보아도 알지 못합니다.
알아도 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마음이 굽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탄식하시던 그대로입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도 그렇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강퍅이라는 말이 잇달아서 나옵니다.
내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바로는 강퍅한 사람이었습니다.
거듭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적 앞에서 바로의 마음은 날로 강퍅해져져만 갔습니다.
애굽의 마술사들조차 손을 들고, 이것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해도 바로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 졌습니다.
마침내 온 땅에 있는 첫 새끼들이 다 죽어 넘어지는 큰 비극이 있고서야 바로는 하나님 앞에 굴복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을 내보내고 나서도 바로는 다시 강퍅해 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갈라졌던 홍해 바닷물이 다시 합쳐지면서 바로의 군대는 물속에 장사되고 말았습니다.

낙심이 스스로를 죽이는 마음이라면,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우리의 심령에 모시려면 우리 속에 있는 거칠고, 강하고, 악하고, 표독한 심정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강퍅한 심령으로는 주님을 모셔 드릴 수 없습니다.
구부러진 모든 마음을 바르게 펴서 주의 말씀대로 보고, 듣고, 깨달아서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여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주님의 약속은 신실하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말라기를 비롯한 예언자들을 통해 주신 약속은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소멸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야곱의 자손은 그 약속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레위 족속은 야곱의 자손 곧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구별된 족속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제사는 더 이상 하나님이 원하는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말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그들의 제사는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제물로 삼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의 제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땅위에 제물을 놓고 그 배를 갈라 드린 아브라함의 제사를 받으시던 하나님이십니다.
돌베개로 제단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부어 드린 야곱의 제사를 받으시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백향목과 돌로 지은 아름다운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게 된 것입니다.

처음 오신 주님은 더러워진 이스라엘의 제사를 정결하게 바꾸셨습니다.
          [2]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예언대로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셨습니다.
표백하는 잿물과 같고, 연단하는 불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의 제사에 순종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말합니다.
          (삼상 15:22-23) ...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이스라엘의 제사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주님은 신실하셔서 그 말씀대로 이루는 분이시라는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믿음이 빠진 제사는 의문(儀文) 곧 형식만 갖춘 제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빼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믿음이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여호와의 구원의 날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빨리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악한 종이 바로 그들이었던 것입니다.
          (마 24:48-51)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약속은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옛날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 기다림에 지쳐서 약속에 대한 믿음이 옅어지고, 소망이 흐려져,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못하게 될 염려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참으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역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회개해야 합니까?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으로 제사하던 야곱의 자손처럼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주의 재림을 소망했던 바울이 말했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므로 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옛 이스라엘이 베어지고 그 자리에 새 이스라엘이 접붙여졌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에서 이방으로 옮겨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롬 11: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우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해서 베어졌으니 너희는 순종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속히 순종해야 할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끊어지지 않은 자는 회개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기다리실 뿐 약속을 잊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오실 준비가 되어 있는 분입니다.
우리의 준비는 회개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롬 11: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회개하지 못한 자, 준비하지 못하고 재림의 날을 맞는 자들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요한 사도가 말합니다.
          (요일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깨끗하게 하라’ 말하지 않고, ‘깨끗하게 하느니라’ 고 말합니다.
소망을 가지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롤 께끗케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소망이 씨앗이라면 회개는 꽃이요, 그 열매는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주의 재림이 멀지 않음을 믿고, 소망하는 가운데 회개함으로 준비하여, 주님 오실 때, 기쁨으로 영접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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