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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마지막 노래미리보는 교회력 설교/ 추수감사절(20091122)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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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11월 20일 (금) 17:35:32
최종편집 : 2009년 11월 20일 (금) 17:53:16 [조회수 : 3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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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20091122)
본문/ 사무엘 하 23:1-7
다윗의 마지막 노래

(삼하 23:1-7)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2]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사르이리로다 하니라』


   
오늘 봉독한 본문은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언은 아니고, 노래 잘하는 다윗이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입니다. 이제 몸이 늙어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다윗입니다.
지난 날들에 미련이 남아 아쉬울 수도 있고, 늙은 몸뚱아리를 바라보며 서글퍼 할 수도 있는 그런 때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 다윗의 시에서 그런 분위기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저 지난 날 자기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남은 소원조차 외면치 않으시고 이루실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어찌 고단한 날들이 없었겠습니까?
이름 없이 들에서 양을 치던 고단함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같았던 사울에게 핍박을 받고 광야를 떠돌던 때도 있었습니다.
자식들 사이에 골육상잔하는 험악한 꼴을 보기도 했습니다.
여호와 앞에 죄를 범하고 징계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말년에는 가장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할 수밖에 없는 낭패를 당하기도 했고, 그 아들을 죽여야만 하는 참담함에 목 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 그대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궂은 날은 생각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베푸신 은혜만을 기억하려고 작정한 사람 같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영이 그렇게 노래하도록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볼 때 2009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주의 오심을 대망하는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지난 한 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아니 세계적인 경제불황으로 다른 어느 해보다 살기가 팍팍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여호와로부터 받은 은혜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이라는 날이 허락된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마지막 때에 감사의 노래 할 수 있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역사하심을 따라 감사의 노래로 한 해를 마감하고, 여호와께서 이루실 새 일을 소망하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윗의 자기 인식

다윗은 스스로를 일컬어 높이 올리운 자, 여호와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노래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이 말에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다윗이 노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높이 올리운 자

다윗은 자기를 가리켜 높이 올리운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올리운이라는 말은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니요, 저절로 높아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누군가 높이 올려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을 높이 올리신 분은 여호와였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높이 올려주신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4]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일곱 형은 단장하고 사무엘 앞에 섰으나 그 시간 다윗은 들에서 양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소외된 자, 사람들의 생각 밖에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높이셨습니다. 

형들이 전장에 나갈 싸울 때 다윗은 형들의 쓸 것을 전해주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러 전장으로 갔습니다.
아직 전장에서는 쓸모가 없는 어린아이로 여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어린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거꾸러뜨렸습니다.
그 후로부터 하나님은 다윗을 올리셨고, 마침내 사울보다 높게 하셨습니다.
          (삼상 18:7)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을 때도 하나님은 그를 끌어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밧세바 때문에 우리아를 죽이는 큰 죄를 범했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물어 밧세바가 낳은 아들을 죽이셨으나 다시 솔로몬을 주시고, 그를 사랑하셔서 몸소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삼하 12:24-25) ... 저(밧세바)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원치 않았으나, 남의 힘에 밀려 억지로 끌어내려졌을 때도 있었습니다.
장인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헤매기도 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사울을 죽이고 왕이 될 수도 있었으나, 하나님이 높이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서 요단강을 건너 다시 광야로 내몰렸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예루살렘 성에 높이 앉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일 후에 다윗이 노래했습니다.
          (삼하 22:49) 나를 원수들에게서 나오게 하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해서 높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높여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끌어내리려 해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와 같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 것은 다윗을 양치는 목장에서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은 은혜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 힘으로 여호와의 후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롬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내가 의로워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딛 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도 이 은혜에서 우리를 떼어낼 수가 없습니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찬송 186장 2절/ 약하고 추해도 주께로 나가면 힘 주시고 내 추함을 곧 씻어주시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골고다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해 어떤 일이 있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은혜만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약하고, 추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오늘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다윗이 스스로를 일컫는 두 번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다윗을 높이 올리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쓰시고자 함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은 여호와의 일을 하도록 사명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다스림에 있어 사람의 뜻과 욕심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공의로 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하나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실 때 그의 중심 곧 마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바로 쓰여지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은 하나님이 보신 다윗의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첫째는,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골리앗이 온갖 말로 여호와와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있었지만, 용사 사울조차 나가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했습니다.
          (삼상 17:26) ...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상급이 탐이 나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자기가 사랑하는 여호와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고자 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삼하 7: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아낌없이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그 마음을 보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당신의 종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둘째는, 온유한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의 온유한 마음은 그가 광야로 피했을 때에 잘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그가 사울의 시기를 피해 광야 아둘람 굴로 피신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아들이 없어 번민하던 한나가 하나님께 엎드려 심정을 통하듯이 가난하고, 환난당하고, 원통한 자들과 심정을 통할 수 있었던 것이 다윗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온유했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하나님 말씀 앞에 오히려 마음이 강퍅해져서 극심한 재앙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이 온유해지는 자였습니다.
간음한 죄, 살인한 죄를 범했을 때 선지자 나단을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에 말없이 순복했습니다.
평생의 소원인 성전 짓기를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의 뜻을 꺾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여호와의 공의로 다스렸다는 다윗의 고백이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사람과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이 온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끝으로, 여호와를 의뢰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다윗의 긴 시 한 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삼하 22: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다윗은 구구절절이 여호와께서 자기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삼하 22: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넘어지지 않고 받쳐주시는 분이 여호와이십니다.
환난의 때에 피하여 숨을 곳도 여호와이십니다.
수렁에 빠진 듯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때에도 건져주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구원자가 되어주신 것은 다윗이 주를 의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삼하 22:4]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7]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19]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심지어 장래의 일까지도 여호와께 의뢰하고 있습니다.
          [51]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오늘 본문에도 나타납니다.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마음을 보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다윗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양을 치는 자에서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높이 올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찬송 378장 3절/ 천하고 무능한 나에게도 영광의 직분을 맡기셨다.
          그 은혜 고맙고 고마워라 이 생명 바쳐서 충성하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오직 여호와를 의뢰하는 마음으로 충성을 다했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 여겨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혹시라도 그렇지 못했다면 다가오는 해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윗의 마음을 회복하여 충성함으로, 모든 구원과 소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미 주신 은혜 위에 더하여 주시는 은혜까지 받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
다윗이 스스로를 일컫는 마지막 말은 노래 잘하는 자입니다.
자기 자랑 같지만 사실이 그랬습니다.
지금 성경에 남은 시편 중 가장 많은 것이 다윗의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이 직접 지은 시도 있고, 다윗의 명에 의해 수집되고, 보존된 것도 있습니다.

다윗은 또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이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타면서 노래를 하면 사울의 몸에 깃든 악령이 물러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전쟁에 나가서는 용사가 되고, 궁 안에 들어가면 악사가 되고, 어디서나 시인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스스로를 노래 잘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은 시를 잘 짓는 재주, 악기를 잘 타는 재주, 아름답게 노래하는 재주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노래는 하나님의 영으로 하는 노래였습니다.
다윗의 노래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다윗의 노래는 사람의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좋은 재주에 머물지 않고 그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다윗의 노래는 예언자의 예언을 운률에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노래로 그 노래를 듣는 자들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시에도 나타납니다.
          [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사르이리로다 하니라

사악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손이 닿지 않습니다.
사악한 자들은 하나님이 손으로 다루지 않고, 쇠로 된 도구로 다루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사악한 자입니까?
사악이라는 말은 심히 사특하고, 악독한이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별 것 아니라고 여기는 것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 집에 머물러 있던 큰 아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큰 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를 향해 불평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말합니다.
          (눅 15:31-32) [31] ...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의 것이 자기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던 아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얻은 아버지의 기쁨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은혜,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 사악한 것입니다.

또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사악한 자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일에 헌신할 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가 하는 일은 감사로 하는 일이 아니라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입니다.
이를 일컬어 삯군이라고 합니다.
삯군은 영광을 주인에게 돌리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자기가 가로채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정하신 날, 심판의 날이 한 발 더 가까이 온 다가온 것입니다.
주신 은혜를 잊고 감사하지 못하는 자, 은혜 가운데 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자들은 그날에 여호와께서 내미시는 구원의 오른손을 잡지 못할 자들입니다.
여호와의 왼손에 들린 심판의 칼 앞에 선 자들입니다.
이사야가 말합니다.
          (사 59:1-2)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믿는 자의 죄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은혜에 감사하지 못함이 죄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이 악입니다.

          찬송 356장 4절/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해, 여호와께서 주신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은혜가 없다고 말하는 완악함을 버리고 받은 복을 세어보는 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다가오는 날들, 은혜와 함께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주어지는 일에 충성하여, 큰일까지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리라 다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의 심판의 날에 여호와의 손에 의해 건짐 받고, 소리를 높여 여호와의 영광을 노래하는 복된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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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돌 (114.205.82.124)
2009-11-20 17:47:06
죄송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번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퇴원한 끝이라 교회력을 따른 설교는 올리지 못하고, 감사주일에 맞춰 준비했던 설교를 올립니다. 죄송...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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