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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2월 07일 (수) 00:00:00 [조회수 : 2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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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아가 끼이니 신생아실이 꽉 차네.”
오랜만에 삼총사가 영이의 자취방에 모여 아랫목에 깔아둔 이불 속에 발을 넣고는 말 잔치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도망자라는 묘한 말을 한 희조의 안색이 평소와 달리 초조한 빛을 띠고 있다는 영이의 느낌이었다.
“희조 언니는 신생아가 무슨 보따리를 챙기고 다녀요?”
“나, 정말. 도망치고 있어.”
“어떤 총각이 아직 익지도 않은 처녀를 데려가려고 노리고 있남. 관등성명 대세요. 내가 만나서 투포환처럼 날려 버릴 터이니.”
“…….”
밝게 웃으며 재잘거려야 하는 희조가 입을 다물고 있자 농담을 하던 은주도 입을 더 열지를 않는다.
“희조야, 저녁은 먹었어?”
“별로 생각이 없어.”
“언니, 나는 안 먹었는데, 오늘 저녁은 구멍가게 오뎅이 많이 남았으니 내가 몽땅떨이를 해 올께요. 잠간만.”
은주는 자신이 분위기 파악을 못한 것이 미안한지, 남은 오뎅이 그리운지 이불 속에서 발을 빼고 일어선다.
“제일 큰 냄비는 선반 왼쪽에 있어. 수고 좀 해줘.”
“냄비는 무슨 냄비. 통째로 들고 오면 되요. 오뎅값은 보증수표인 영이 언니 앞으로 달아 놓을께요.”
짠돌이 은주의 말에 시무룩해 있던 희조도 싱긋이 웃는다.
“올 겨울방학에 내가 한 달 동안 어디 간다고 너에게 편지 답장을 못한 적이 있었지. 기억 나?”
“응, 너가 시원섭섭하다는 말을 한 후에 소식이 없기에 무슨 일인가 했지만 크게 걱정은 안 했어. 어디 멋진 곳에 여행을 다녀 왔나 보지?”
올 초의 겨울방학은 영이에게 너무나 큰 사건들이 벌어졌기에 부산집에 일주일 다녀온 후론 서울에 있었지만, 한 달 동안 희조와 연락이 두절된 적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 동안의 희조의 행방에 대해선 알지를 못했던 것이다.
“부모님에겐 한 달 동안 여행을 한다고 속이고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노동자들과 합숙을 하며 지냈어. 집에는 3일마다 전화를 했기에 모르고 있었어. 이제 너만 아는 일이야.”
1970년 말에 청계천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자살을 한 사실은 대학에 입학을 하고서 알았는데, 아마 의협심이 강하고 호기심이 많은 희조가 현장에서 직접 생활을 해 보았다는 말은 영이로서는 상상 밖이었으나 영이 자신도 고급 밤꽃이란 숨겨진 사실을 희조가 알면 졸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같이 일하고 숙소에서 같이 생활을 해 보아야 그들의 억울함과 기업의 횡포, 모른 척 방관을 하는 정부의 속을 똑바로 알 수가 있어. 우리 대학생들은 너무나 온실 속의 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후로 난 대학생들의 반정부 운동에 끼어 들게 되었어.”
한성대학은 데모를 잘 하지 않았지만 간혹 데모를 하더라도 주동자 중에는 여자는 없었기에 어느 정도 깊이 관여한지는 몰라도, 당국에서 희조를 수배할 정도이면 보통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늦게 갔으면 옆집 하숙생들에게 다 빼앗길 뻔했네. 언니, 막걸리 한 병하고 사이다는 내 돈으로 사왔어요.”
“아이구, 고마워라. 파라다이스 한 병을 사왔으면 이 가을밤에 얼마나 무드가 있을까. 남상궁.”
“오뎅에 무시기 파라다이스! 그러니 조마마는 시아버지에게 구박을 받았나 봐요. 꼬마상 펴이소. 먹으면 희조언니 걱정도 풀릴 것 이구먼”
삼총사는 큰 오뎅냄비를 둘러싸고 앉아 은주에게 한 사람이 한 개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규칙을 설명함으로 저녁식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와~, 어린 노동자들이 적은 월급에 고생이 많네요. 사장들이 너무 횡포가 심한 것 같군요.”
“아니, 영세업종의 사장들이라 그들도 고충은 있어. 내가 분노를 하는 것은 버젓한 노동법은 왜 만들어 두었는가 하는 문제야. 현실에 맞는 노동법이 아니라 노동자와 이웃을 속이는 멋진 노동법은 분노만 자아내는 것 같아.”
희조는 자신이 겪었던 노동자들의 비참한 사정을 이야기 하며 대학내의 조직에 대한 이야기는 친구들이라도 모르는 것이 안전하다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일이 조용해질 때까지 이 골목에 숨어있도록 해.”
“아니야, 너희들도 조사를 받게 될지도 몰라. 난 도토리 섬으로 피신했으면 해.”
“아니야. 희조 언니. 도토리 섬은 언니가 가본 곳이고 전 의원이 정치인이라 만약의 경우에는 일이 더 커질 수가 있어. 만인의 피난처인 산골교회가 좋을 것 같아.”
“그래 은주 말이 맞아. 도토리 섬은 서로 연락을 하는데 문제가 있으나 산골교회는 꽃차가 매일 오기에 연락이 쉽고 여자들이 많기에 눈에 잘 띠이지 않을 것 같아.”
“난 한 전도사님을 잘 모르는데, 허락을 하실까?”
“전도사님도 젊은 분이라 이해를 하실 것 같아. 내가 지금 전화를 해서 여쭈어 볼게. 지금 몇 시지?”
“9시 50분.”
“참! 부모님들은 알고 계셔?”
“응, 오늘 모 기관에서 근무하는 아버님의 제자가 나에 대해 급히 전화를 해 주어 알았어. 조금 전에 부모님과 의논한 후에 바로 이리로 온거야.”
영이는 책상 서랍에서 주보를 찾아 교회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는 생전 처음으로 라합교회에 전화를 건다.
“라합교회 입니다.”
- 전도사님, 늦은 시간에 전화를 드려 죄송합니다. 한성대학에 다니는 조영이예요.
“예, 조영이 자매님, 성경 읽다가 의문점이 생겼나 보지요.”
- 아니예요, 저~, 간혹 저희들과 열린수요모임에 참석하는 오희조를 기억하시는 지요?
“기억하죠. 저도 젊은이인데 어찌 한성의 삼총사를 모르겠어요.”
- 저~, 희조가 학원시위에 관여가 되었기에 당국에서 찾고 있는 모양인데 부모님들이 일을 수습할 동안 라합산골교회로 피신을 해 있었으면 해서 전화를 드린 것입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일단 조용한 곳에서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을 해 보는 것이 우선이겠군요. 아침 일찍 꽃차가 오니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던지, 아침 7시까지 교회로 오시면 되겠어요.”
- 감사합니다. 새벽기도회에 같이 나가죠. 늦은 시간에 전화를 드려 죄송합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희조 자매님과 친구들도 앞 일은 주님께 맡기고 편히 쉬도록 하세요. 과자 너무 많이 먹지 마세요.”
- 호호호. 안 그래도 은주가 지금 과자를 사러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새벽에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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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대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에서 데모가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아니 개혁을 원하는 사회에서는 필수인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데모대와 진압군의 성숙한 분위기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코스에서 나의 몸에 두드러기 데모가 일어나 리듬을 완전히 깨뜨리는군요. 요놈들을 어떻게 진압을 해야지요? 이성적으로, 폭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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