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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FACE OFF’, 현실세계에 이루어지는가?성형수술도 좋지만...
류상태  |  shalom77@ch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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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2월 03일 (토) 00:00:00 [조회수 : 2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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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이스 오프(Face Off)’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문화일보, 서울신문, 한국경제신문 등 몇몇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다. 프랑스 의료진이 세계 최초로 얼굴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멀쩡한 사람 2명의 얼굴을 맞바꾸는 전면 이식은 아니지만, 의학적으로 위험도가 높은데다 윤리적인 문제도 제기될 수 있는 수술이어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고 한다.

2005년 12월 1일자 문화일보 기사에 따르면, BBC 방송과 AP통신 등 외신들은 11월 30일(현지시간), 프랑스의 장 미셸 뒤베르나르 박사가 이끄는 의료진이 개에게 물려 얼굴을 크게 다친 38세 여성에게 뇌사자로부터 기증받은 안면 일부를 이식했다고 보도했다.

이 여성은 얼굴 손상이 심해 음식을 씹지도 못하는 상태였는데, 미셸 박사가 중심이 된 의료진이 뇌사자의 코와 뺨, 입술 부위의 피부 조직을 분리해 지난달 27일 아미앵에서 5시간에 걸쳐 이식수술을 했다고 한다. 시술을 한 의료진은 “현재 환자의 상태는 양호하고 이식 부위도 정상적으로 보인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영화 ‘Face Off’를 본 지는 10년쯤 된 것 같다. 재미는 있었지만 폭력이 난무하는, 그저 평범한 수준의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였다. 처절한 파괴와 스피드, 그리고 말초적인 감각 욕구를 충족시키는, 잔인한 흥미 위주의 장면들이 기억나는 영화다.

주인공은 존 트라볼타와 니콜라스 케이지. 존 트라볼타는 매우 유능한 베테랑 연방 경찰 공무원이고, 니콜라스 케이지는 간교하고 사악한 범죄자로 나온다. (배우 이름은 기억이 나는데, 등장인물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그냥 배우 이름으로 영화 내용을 잠시 설명하고자 한다.)

경찰은 니콜라스 케이지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만, 그 때마다 케이지의 신출귀몰한 수법에 번번이 농락당하고 만다. 결국 유능한 형사 존 트라볼타가 나서서 케이지를 잡는데 성공한다는 줄거리다.

이 영화가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탄탄한 구성과 헐리우드 특유의 물량작전과 그로 인한 말초적 재미도 한몫 했겠지만,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얼굴에 이식한다는 기발한 발상이 큰 부분을 차지한 것 같다.

영화 내용을 좀 더 소개하면... 마침내 케이지를 생포한 경찰은 그가 속한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첨단 과학을 동원한 성형수술을 한다. 케이지와 트라볼타의 얼굴을 1cm 정도 두께로 떠내서 케이지의 얼굴 표피를 트라볼타의 얼굴 골격에 씌은 것이다.

케이지의 얼굴을 가진 연방 경찰 존 트라볼타는 범죄 조직을 소탕하러 가는데, 그 사이에 전신 마취에서 깨어난 케이지가 특유의 능숙한 수법으로 온 몸에 동여맨 밧줄을 풀어낸다.

아직 얼굴에는 마취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케이지는,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다. 미친 듯이 울부짖던 케이지는 어떤 용액에 담겨있는 트라볼타의 얼굴 표피를 발견하고는 자기 얼굴에 이식하여 유능한 연발경찰관 트라볼타로 행세한다.

(여기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누군가를 통해서 수술을 받은 것 같은데 그 과정에 대한 묘사는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든 케이지는 트라볼타의 얼굴을 갖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의 얼굴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이다.)

얼굴이 바뀌자 처지도 바뀌어 경찰공무원 신분의 트라볼타는 탈옥수로 지명수배되고, 케이지는 자기 얼굴을 가로챈 트라볼타를 없애기 위해, 연방경찰조직을 마음대로 동원하고 이용해서 트라볼타를 괴롭힌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트라볼타는 결국 니콜라스 케이지를 죽이고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와 가족들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별다른 내용도 없는 평범한 이 오락 영화가 지금까지 내 뇌리 속에 남아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 속의 두 사람은, 역할이 바뀜에 따라서 같은 얼굴 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 보인다. 영화의 첫 부분에 등장한 니콜라스 케이지는 정말 범죄형으로 생겼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결코 ‘정의의 사도’ 역할은 할 수 없을 것 같은, 완전한 범죄형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느끼게 한 케이지의 능수능란한 연기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반면에 존 트라볼타는 듬직하고 우직하며 타협할 줄 모르는, 충실한 수사관의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얼굴이 서로 바뀌고 범죄자의 역할을 하게 된 존 트라볼타의 얼굴은, 이전의 그 선하고 우직한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간교하기 이를데없고 징그러울 정도로 느물느물하게 바뀐다. 오히려 니콜라스 케이지를 능가하는 ‘범죄형’의 얼굴이 된 것이다. (유능한 배우일수록 천의 얼굴을 가진 마술사가 되는 것 같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악과 타협할 줄 모르고 사회의 안녕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몸을 던지는 모범 수사관의 역할을 하게 된 니콜라스 케이지는, 처음의 그 징그러운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그렇게도 선하고 진실된 얼굴로 바뀌었다. 게다가 잘생기기도 했고...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존 트라볼타가 원래의 자기 얼굴을 되찾고 환한 웃음으로 가족들을 품에 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얼굴 모습이 그렇게 선하고 따뜻할 수가 없다. 마치, 완벽한 악마로 변신했던 천사가 다시 예전의 천사로 돌아오는 장면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연기와 표정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배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나지만, 같은 사람이 표정에 따라 그렇게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매우 평범한, 그러나 우리가 곧잘 잊고 사는 사실을 하나 확인할 수 있었다. 악하거나 선한 얼굴, 적어도 그 이미지와 인상은 잘생기거나 못생긴 것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그 사람의 생각과 사는 방식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사람의 얼굴은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한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하기야 우리나라처럼 외모를 중시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요즘엔 남자들도 성형 수술을 많이 한다. 취직을 하려면 인상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라나...

성형수술로 못생긴 얼굴을 어느 정도 고칠 수는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로 외모에 문제가 있다면 성형수술을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이미지와 인상은 수술로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가끔 예쁘기는 참 예쁜데, 얼굴에 오만이 가득 담긴 여자를 만날 때가 있다. 자기 미모에 스스로 도취되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우수꽝스러운 미인을 만나면 그저 웃음이 나온다.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도 껍데기로 으스대는 남자들도 많다. 공부를 좀 잘했거나 어떤 방면에 재능이 좀 있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기가 제일인 줄 아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이른바 엘리트병에 걸려, 한가지 기준으로 모든 걸 평가하는 속빈 친구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은 차라리 못생겼거나 공부를 못했으면 좋았을 걸... 그러면 저렇게 마음이 망가지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드문 경우지만, 의식적으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얼굴을 능숙하게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항상, 언제 어디서나, 선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위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즘 여자 연예인들 얼굴이 다 비슷해진다는 말을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이겠지만 20~30년 후에는 모두 이효리나 장동건만 남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단순히 예쁘고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 따뜻함과 진솔함이 담긴 얼굴은, 그에 걸맞는 마음가짐이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링컨의 말도 바로 그런 뜻이었으리라.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서, 우리가 과연 어떤 얼굴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을까.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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