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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과 이룸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스물두번째 주일(20091101)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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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10월 28일 (수) 14:07:30
최종편집 : 2009년 10월 28일 (수) 15:24:44 [조회수 :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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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스물두 번째 주일(20091101)
성서일과/ 시 119:1-8; 신 6:1-9; 히 9:11-14; 막 12:28-34
본문/ 막 12:28-34
행함과 이룸

(막 12:28-34)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행함과 이룸(行과 成)

   
교회가 유대땅을 벗어나 이방세계로 퍼져나갈 때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믿음과 율법을 어떻게 조회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할례는 어떻게 할 것이며. 제사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등의 아주 실제적인 문제였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도 그런 문제의식을 배후에 두고 있습니다.
서기관의 대답입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율법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제사도 율법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사랑하라는 것은 전체 율법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일관된 뜻입니다.
제사는 그 사랑을 이루시려는 수단입니다.
속죄의 제사를 정하신 것은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시려 함이요, 화목의 제사를 정하신 것은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어떻게 완전케 하셨습니까?
속죄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요 1:29) ...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화목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그래서 사랑이 제일인 것입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소망,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일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빌미로 예수를 비난하자 그들에게 되물으셨습니다.
(눅 6: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도 물으셨습니다.
(요 7: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유대인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난 후 팔 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금요일 태어난 아이는 할례일이 안식일이 되겠죠?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를 행하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율법을 범하는 일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는 것이 관건인 것입니다.
율법은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대로 행하는 것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참으로 율법을 지키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을 이루는 길이요, 믿는 자가 추구해야 할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장한몽(長恨夢)

장한몽이라는 신파극이 있습니다.
한 여자가 살인자가 되어 법정에 섭니다.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은 오빠를 위해 그녀의 삶을 희생한 탓이었습니다.
오빠를 출세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법정에 나온 검사가 바로 그녀의 오빠였습니다.
신파조 대사 그대로 ‘아,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운명의 장난을 말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때로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생명을 구하는 길인지, 무엇이 참사랑인지를 가리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 시편에서도 기도합니다.
[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그 여자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연극을 보는 관객 중에 아무도 그 여자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빠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 공감을 하고, 그녀의 기구한 사정을 안타까워하며 함께 우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반대로 함께 박수를 칠만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희생하나 그 선택 때문에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룻기입니다.
룻기는 사랑의 이야기 뿐 아니라 율법을 이루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의 터가 사랑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룻기는 룻과 나오미 두 여인의 인생 역정을 통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살피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이방에서 돌아온 불행한 두 여인에게 복된 땅 가나안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준비하시고 공급하셨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잃어버렸을 때 불행했고, 찾았을 때 행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첫째는, 먹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남편을 따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었습니다.
고향 베들레헴에 돌아왔어도 밭이 없기는 매한 가지였습니다.
젊은 과부 룻이 남의 밭을 찾아 이삭을 주워 시어미를 봉양하며 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 줍는 보잘 것 없는 일 가운데 역사하셔서, 먹고 남음이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둘째는, 가정입니다.
먹을 것을 찾아 고향을 떠난 나오미였지만 오히려 남편과 지식들을 잃는 불행을 만났습니다.
고향을 떠나지 않았으면 남편과 아들들을 잃는 슬픔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돌아온 두 과부에게 아들과 남편 그리고 후손을 예비하셨습니다.
새로운 가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더욱이 그 후손은 다윗을 거쳐 그리스도 예수에게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가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게 공급하시는 물질의 은총과, 화목이 넘쳐흐르는 가정의 복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서 떠나지 않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름

룻기의 등장인물들이 가진 이름의 의미도 새겨볼 만합니다.
하나님은 이름을 귀중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당신의 이름으로 일컫게 하셨습니다.
(신 28:10)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택하여 당신의 이름을 두셨습니다.
(왕상 11:36)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제사를 받으시고,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 이름을 경외하는 자를 복되게 하시고, 경외치 않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십니다.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이름을 귀중히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름에 은총과 능력이 있습니다.
(마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눅 10:17) ...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도록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도 이름을 귀중히 여겨서, 자신들의 이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우리와 비슷해서 이름값을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이름들도 그렇습니다.

나오미는 즐거움입니다.
룻기는 인생의 즐거움을 잃었던 나오미가 그 즐거움을 회복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룻은 벗, 친구라는 뜻입니다.
혈육이 없는 나오미에게 룻은 참으로 진실한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진실한 친구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오르바는 믿음이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나오미의 또 다른 며느리 오르바는 착한 여자이기는 했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나오미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각각 나약함, 초췌함이라는 뜻입니다.
이름대로 그들은 나약하고 초췌해서 명이 길지를 못했습니다.
자식마저 없이 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먼저 죽었습니다.

나중에 룻의 남편이 된 보아스는 기운찬, 생기 있는 이라는 뜻입니다.
이름대로 보아스는 룻과 나오미를 살리는 힘 있는 사람이 되었엇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룻기의 등장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값을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엘리멜렉은 그 왕의 정한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감으로써 그 식구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시고 부르시기를 원하시는 우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벧전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믿음과 은총의 사람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갈림길

이런 이야기들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룻기에는 인생의 모양을 결정짓는 중요한 갈림길들이 등장합니다.
우리 인생의 중요한 길목에서, 지혜로운 선택은 우리를 복되게 하는 첩경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서기관은 예수님 말씀에 아멘하는 답변으로 주께 칭찬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어떻게 하면 꼬투리를 잡아 예수를 죽일까? 궁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주의 말씀에 요즘 식으로 아멘, 아멘 하고 있으니 배신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선택했고, 주님은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34]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본문에 나타나는 선택의 갈림길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베들레헴과 모압의 갈림길입니다.
(룻1:1)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 하였는데 ...

이런 갈림길을 만든 것은 흉년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은 먹고 살기 위해 모압을 선택했습니다.
먹을 것을 해결하기는 했으나, 정작 문제는 먹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기 위해 떠난 길입니다.
그러나 자기와 두 아들이 죽어 이방 땅에 묻혔습니다.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모압을 선택한 엘리멜렉이 남긴 것은 불행한 세 여인이었습니다.
잘못 된 선택이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비슷한 사정으로 가나안 땅을 떠난 사람이 야곱입니다.
7년 가뭄 후에 온 세상에 먹을 것이 없어졌습니다.
다행히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야곱과 식구들을 애굽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식량과 수레를 보내어 그를 극진히 예우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무작정 애굽을 향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창 46:2-4) [2] 밤에 하나님이 이상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함께 가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돌아오게 하시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야곱은 평생 이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유언하기를 자기를 가나안 땅,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부여조와 함께 장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부여조가 무엇입니까?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이라는 뜻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묻힌 땅에 함께 함께 묻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것을 구해 하나님의 집을 떠나는 자가 없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살기 바빠서 교회를 멀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는 것이 없게 되고, 마침내 죽을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
하나님 곁에 남아서 결코 주리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아니하게 공급해 주시는 은총을 누리며 사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떠남과 남음의 갈림길입니다.
[8]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각기 살 길을 찾아 떠나라고 했습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가 권면하는 대로 나오미의 곁을 떠나, 고향인 모압에 남기로 했습니다.
반면에 룻은 고향 모압을 떠나, 시어머니 나오미 곁에 남는 선택을 했습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불쌍히 여기는 착한 며느리였지만,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땅으로 가는 결단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오르바의 선택이 잘못 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상식을 따른 것이고, 율법에 어긋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오르바와 달랐습니다.
홀로 된 시어머니를 따라 나섰습니다.
두 여자가 헤쳐가야 할 길이 얼마나 험난할 것인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그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룻이 바라다 본 것이 무엇입니까?
룻이 말합니다.
(룻 1:16) ...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가는 길은 단지 시어머니와 더불어 가는 길만은 아니었습니다.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길이라는 믿음이 룻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그 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룻은 이방여인으로서 다윗의 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남는 몇 안 되는 여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떠나고, 어디에 남느냐는 선택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아버지 집을 떠난 아들은 돼지우리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우리에 머물지 않고, 떠나 아버지에게로 가니 다시 아버지의 기뻐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부르심에 따른 제자들은 배를 버리고, 부모와 형제를 남겨두고 주를 따랐습니다.
버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부르심에 이끌려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이 지금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잘나고 못난 것, 선하고 악한 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은 그리 잘난 사람들이 못되었습니다.
그 출신부터가 어부, 세리, 창녀..... 세상의 밑바닥 인생들이었고, 결정적일 때에 주를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며느리 오르바는 비록 길이 갈렸지만 아주 착한 며느리였습니다.
그가 악해서 시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길을 마지못해 택하고, 울며 시어머니와 이별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녀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녀의 착함이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생각하시는 선과 악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떠나는 것이 악이요,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 선입니다.
악에서 돌이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요, 악을 행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인간이 판단하는 선악이 문제가 아닙니다.
약하고 추해도, 주님 곁에 있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악하고, 더러워도, 주님 곁에 있어야 회개할 기회가 오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곁에 머무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에 아멘하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인공이 되라.

성서는 하나님이 대본을 쓰시고 감독을 하신 드라마라고 정의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대에 올라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마지막 까지 남아 갈채를 받는 사람도 있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끝까지 남아 박수를 받는 주인공이라면, 오르바는 스쳐 지나가는 단역입니다.
인생이라는 하나님의 드라마에 배우가 된 우리, 기왕이면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아니면 잊혀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것일까요?
두말할 것 없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감독과 대본이 오직 한분이시니,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조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죽을 자리에 가서 죽어야 하고, 사라져도 사라질 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대본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고난당하는 게 싫다고, 죽어야 할 곳에서 죽지 않겠다고 뻗대는 배우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배우를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드라마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에서에서 야곱으로 바뀌었습니다.
본시 에서가 장자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약속의 유업을 이은 것은 야곱이었습니다.
주인공이 바뀐 것입니다.

복음이 유대인의 것이 되지 아니하고, 이방인의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열매 맺지 않는 나무를 베어 버리고, 다른 나무를 접붙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가 이미 예언한 것입니다.
(호 2:23)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본문의 서기관이 그렇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에 아멘했습니다.
동료 서기관들의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죽여야 할 사람으로 정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 동료들이었습니다.
거기 반해서 예수님 말씀에 아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그는 예수님 말씀에 아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분위기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말라, 세상과 벗하지 말라는 말씀이 다 그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서기관이 동료들과 벗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자가 됩니다.

오늘 신명기에서 모세가 말합니다.
(신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 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율법의 자구를 외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불림에 부끄러움이 없는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만족하고, 기뻐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룻의 사랑이 씨가 되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일의 결국을 아름답게 하시는 여호와의 역사를 믿고, 서로 사랑하며 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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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말 (61.79.174.141)
2009-11-05 15:37:36
선택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을 하라고 하십니다. 손에 붙잡고 있는 것을 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순종하라 하십니다. 그런데 앞을 보니 큰장애가 있습니다. 그래도 모세와 같이 부름받을때 내가 누구관데 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이 화나실것 같고 순종하자니 큰 장애가 저를 누룹니다. 주님만을 바라본다고 하면서도 현실앞에서 한숨이 절로 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과 같이 야곱의 축복을 믿고 룻의 축복을 믿고 모세의 축복을 믿고 나아가면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줄믿습니다. 귀한 말씀에 힘이 됩니다.주님이 함께 하시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 큰 장애를 넘을 수 있는 영혼이 되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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