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 요한 3:1-5 묵상 
 
                                                                                
한국교회가 단시일에 그리스도교 역사상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이룬 배경에는 성령 운동이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한국교회와 성령 운동은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성령 세미나, 성령 충만, 성령 체험, 심지어는 성령 폭발이라는 원색적인 용어에 이르기까지 성령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은 지대하다.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성령 충만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 기도원에서 며칠씩 금식 기도, 철야 기도에 매달리기도 한다.

성령의 은사를 받아 살기를 갈망하는 이 땅의 대다수 신자들의 믿음은 소박하고 눈물겹다. 생활고에 지치고 병마에 시달리는 가난한 교인들이 죽자살자 성령에 기대어 삶의 새 희망을 찾고 병을 고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은 더욱 눈물겹다. 삶의 절박한 문제들을 껴안고 몸부림치는 그들의 신앙 자세를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과연 한국교회가 성령 충만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솔직히 많다. 성령 충만하여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겠다는 이 땅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태도 그 자체야 나무랄 데 없지만, 혹시 성서와는 동떨어진 이기적이고 기복주의화한 신앙이 한국교회의 성령 운동 밑바닥에 알게 모르게 깔려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한국교회의 여러 현상들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더라도, 한국교회의 성령 이해는 너무나 기복주의화·물신화해 있다. 성서가 전하는 성령의 올바른 뜻을 좇아 바르게 살려고 애쓰기보다는 교회와 교인들의 필요에 따라 성령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결국은 자유와 해방과 사랑과 진리의 영인 성령이 때를 따라 복을 내리는 도깨비 방망이 식의 편리한 도구로 전락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요한 3:1-5를 갖고 니카라구아 솔렌티나메 농어민들이 나눈 복음 대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사랑이 빠진 종교를 받들고 있었어요.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새로 난다는 것을 몰랐어요. 사람한테 새로운 의식이 생겨날 때 그 사람은 새로 나는 거예요. 삶의 변화죠. 그게 새 삶이기에 예수님은 새로운 탄생이라고 부르신 거죠. 새 사회가 서려면 새 인간성이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 같아서는 다시 난다는 건 사랑의 공동체 속에서 산다는 거예요. 세례는 사랑의 영으로 우리를 씻어 줍니다. 이기심의 영에서 우리를 정화하는 영이란 말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쇄신시켜야 한다, 말하자면 영으로 다시 나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거예요. 새 세상을 만드는 길도 이것밖에 없어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을 믿는다는 거예요." (에르네스또 까르디날, 성염 옮김, <말씀이 우리와 함께> 분도출판사, 239~241쪽)

하지만 배운 것 없어도 주님의 뜻을 좇아 믿음 안에서 새 인간 새 사회를 꿈꾸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하려 애쓰는 솔렌티나메 농어민들은 바로 '사랑'의 빛으로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사랑의 영을 받아 이기심의 영에서 해방되는 삶의 질적인 변화야말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의미라는 것은 얼마나 간결 소박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고백인가!

나는 정말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우리 교회는 이기심의 영에서 해방되어 사랑의 영으로 충만한 사랑의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