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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건지리라미리보는 교회력설교/오순절 후 스무번째 주일(20091018)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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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10월 15일 (목) 23:54:26
최종편집 : 2009년 10월 16일 (금) 02:06:20 [조회수 :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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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스무 번째 주일(20061018)
성서일과/ 시 91:9-16; 사 53:4-12; 히 5:1-10; 막 10:35-45
본문/ 시 91:9-16
내가 건지리라

(시 91:9-16)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오늘 말씀에 공통된 것은 고난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이 환난 당하는 자들의 피난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본문들은 한결같이 애매하게 겪으신 주님의 고난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환난 당한 자들의 피난처라면 애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고난이 닥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죽음에 대해 지녔던 의문도 결국은 같은 맥락입니다.
세상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분이 그렇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 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주님의 죽음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새삼스럽니다.
이사야가 말한 그대롭니다.
(사 53:5-6)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문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여호와가 피난처라고 고백하는 자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겪는다 생각하게 됩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참으로 오래 된 질문이고 또 답하기 어려운 의문입니다.
성경은 욥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대답하고 있습니다.

왜 나에게...?

동방의 가장 큰 자였던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목숨만을 겨우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숨이 붙어 있어 살았다 하는 것이었지, 마음에 깊이 파인 상처와 온 몸에 솟은 악창으로 말미암아 차라리 죽는 게 낳을 것 같은 삶이었습니다.
(욥 7:15) 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

위로한답시고 찾아온 친구들의 말에 위로를 받기는커녕 그의 마음에 악창이 돋는 것 같은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욥 19: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

욥이 겪는 크고 많은 아픔과 슬픔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심했던 것은 자기가 왜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아픔이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있을 수 없다는 믿음은 있었습니다.
(욥 9:17-18)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18] 나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내게 채우시는구나

그러나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욥 14:21-22) [21] 그 아들이 존귀하나 그가 알지 못하며 비천하나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22] 오직 자기의 살이 아프고 자기의 마음이 슬플 뿐이니이다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은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욥 7: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그러나 죽더라도 자기에게 닥친 불행의 이유만큼은 꼭 알고 싶었습니다.
누구도 설명하지 못하는 그 이유를 하나님만은 알고 계실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답을 구했습니다.
(욥 13: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욥에게는 그것이 더욱 큰 아픔이었습니다.
(욥 30:20)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주께서 대답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굽어보시기만 하시나이다

너는 아느냐?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돌베개하고 자던 야곱에게는 꿈속에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에게는 떨기나무에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시내산에서는 옹기점 연기 같은 연기 속에서 모세를 만나 계명을 주셨습니다.
호렙산의 엘리야에게는 폭풍과 지진이 지난 후에 미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욥기에 보면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엄위하게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거역할 수 없는 권위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대답하라고 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 대답을 할 수 없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욥 38: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마음을 다 잡고 들으라는 뜻입니다.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그저 입을 봉하고 들을 수밖에 없는 말씀이요, 듣고 마음 판에 새겨야만 할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욥에게 주신 말씀을 다시 새겨볼 때에 하나님을 깊이 아는 은혜가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천지를 지을 때 너희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욥 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질서 있게 하셨습니다.
생명이 있기 전에 먼저 빛과 어둠을 지으셨습니다.
궁창 곧 하늘을 만드신 후에 궁창 아래 물을 한 곳에 모으시니 땅이 드러났습니다.
그 땅에 풀과 채소와 과목이 살게 하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을 하늘에 두시고,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신 후에는 물에 사는 것들을 지으시고, 마지막 날에 땅에 거하는 동물들을 만드신 후 비로소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짐으로 창조질서에 가장 영화로운 자리를 차지하긴 하였으나 시간적으로는 가장 나중에 조성된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묻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다시 말하면 내가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할 때에 라는 뜻입니다.
그 때 인간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만드는 경륜을 펼치고 있을 때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욥 38:5)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6]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하나님은 질서 있게 세상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조화롭게 지으셨습니다.
빛과 어두움, 땅과 물, 식물과 어류와 동물들이 서로 얽혔으나 혼잡하지 않았고 조화로워서 보시기에 아름다웠습니다.
요즈음 유기농법이라는 말을 흔하게 씁니다.
흔히 무공해 농사법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본래의 뜻은 피조세계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말입니다.
풀과 채소를 동물이 먹고, 큰 동물이 작은 동물을 잡아먹으니 얼핏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자연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나운 동물이라도 죽어 흙으로 돌아가 다시 풀과 채소와 나무를 자라게 하니, 하나님 지으신 만물은 서로 얽혀서 사는 것입니다.
그 중에 어느 하나가 사라져도 자연은 심각한 병에 걸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를 일러 유기적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 원리를 따라 농사짓는 것을 유기농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화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이 조화를 염두에 두셨습니다.
어떤 피조물이 너무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너무 강해도 안 되고, 너무 약해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치밀한 설계가 필요한 일입니까?

그 중에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이 모든 세계를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릴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길이와 무게를 재는 기준을 누가 정하였느냐?
누가 줄을 띄워 측량을 했느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별들이어도 할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조차 거들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경륜을 지켜보며 찬송할 수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무엇을 알게 하시려고 이렇게 묻고 계십니까?
만드신 분과 만들어진 자 사이의 차이를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지으신 자가 하시는 일에 지어진 자가 무슨 할 말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있다면 오직 하나 찬송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렘 18: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하나님이 토기장이라면 우리는 진흙과 같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진흙이 말할 수 없는 법입니다.
이사야도 말합니다.
(사 45: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바울도 말합니다.
(롬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할 말이 없는 것이요, 말할 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욥도 마침내 깨닫고 말했습니다.
(욥 40:4-5) [4]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5]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왜라고 묻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피조물이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요, 알아야 할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하시는 일에 인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찬송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생사를 주장하시고, 고와 낙을 정하시니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순종함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의 결국이 질서 있고, 조화로워 아름다울 것이라 믿고 찬송하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능력을 나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욥 38:34-35) [34] 네 소리를 구름에 올려 큰 물로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35]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창 1:3-5)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가라사대’와 ‘칭하시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창조의 역사는 곧 말씀의 역사요, 그 역사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전능한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그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인간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말씀의 능력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만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과 더불어 말하는 권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하나님과 방불한 것이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능력은 하나님이 역사하신 후에 그 이름을 붙이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궁창이 열려 큰 물이 쏟아지면 이를 홍수라 하고, 하늘에 빛이 번쩍이면 이를 번개라 하며, 그 빛이 내는 소리를 천둥소리라고 할 수는 있지만, 큰 물을 명하여 멈추라 할 수도 없고, 번개를 명하여 어디로 떨어지라고 할 수 없는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능력이지, 역사를 이루는 능력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네가 지혜로운들 나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36]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37]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누가 하늘의 병을 쏟아 [38]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말씀과 더불어 역사한 것이 지혜입니다.
(시 104:24)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지혜도 주신 분입니다.
그 많은 피조물들을 주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만물을 다스리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만물들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구별하는 일이었습니다.
지혜는 곧 구별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처음 인간이 지녔던 지혜는 선악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선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보시기에 아름다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은 후 인간은 선악을 구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어기는 순간 하나님이 조성하신 세계에 악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는 선악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죄에 묻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이라 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악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선악(善惡)과 호오(好惡)를 구분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틀린 것-오(誤)와 다른 것-이(異)를 구별하지 못하고, 자기와 다르면 다 악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조차도 자기 뜻에 맞는, 자기가 좋아하는 하나님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을 일러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으나, 먹고 나니 우준해진 것입니다.
지혜자는 말합니다.
(잠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스스로를 의뢰할 만큼 지혜로운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나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전능하신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고, 지혜로우신 하나님만을 의뢰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고후 1:8-9)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하심이라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이 닥치는 이유는 인생이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뢰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헛되이 수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될까?
혼자 마음 졸이며 궁리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혜자는 말합니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잠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욥이 마침내 깨닫고 말합니다.
(욥 42:2-3) [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무소불능-어디나 계시고, 못하실 일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내가 계획하는 동안 하나님은 그저 지켜보십니다.
내가 도모하는 동안 하나님은 손과 팔을 거두십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내 무능과 무지를 고백하고 여호와를 의지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아무쪼록 전능하신 주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을 의뢰하여 일을 이루며, 환난을 이기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영원한 피난처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만물이 살도록 보살피고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물으십니다.
(욥 38:39-41) [39] 네가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40]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삼림에 누워서 기다리는 때에니라 [41]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지으신 동물 중 가장 강한 것이 사자입니다.
요셉이 유다 지파를 축북하는 장면입니다.
(창 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사자는 그 강한 힘을 가지고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삽니다.
그러나 그런 사자도 잡을 것이 없으면 굶을 수밖에 없습니다.
(욥 4:10-11) [10] 사자의 우는 소리와 사나운 사자의 목소리가 그치고 젊은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11] 늙은 사자는 움킨 것이 없어 죽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여호와가 사자의 잡을 것을 준비하십니다.
사자가 사는 것은 사자의 강한 힘이 아니라 여호와의 공급하시는 은혜라는 말입니다.

강한 사자뿐이겠습니까?
제 힘으로는 먹을 것을 움키기는커녕 보금자리를 벗어나지도 못하는 연약한 것이 까마귀의 새끼입니다.
어미가 물어다 주는 것이 있어야 살 수가 있습니다.
까마귀 새끼를 먹여 살리는 것은 어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까마귀가 그 새끼에게 물어다 주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까마귀가 어미를 향하여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강한 사자에서부터 가장 연약한 까마귀 새끼까지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제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어미의 도움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의 공급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십니까?
사자와 까마귀 새끼를 먹이시는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예비한 것이 없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지혜로우심이 누구를 향하고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6:25-30)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아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탄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새들 보다 귀하고, 들풀보다 아름답게 여기시는 것이 인생입니다.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새를 먹이시고, 풀들에게 영광을 입히시는 분이 그 가장 사랑하는 자를 버려두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한숨짓고 계십니다.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염려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의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지 못하고, 염려하며 의심하는 것이 죄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욥이 마침내 말합니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듣기만 했습니다 - 알고는 있었지만 믿을 수는 없었다는 말입니다.
눈으로 뵈옵나이다 - 이제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욥 42:10) ...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오늘 시편의 말씀과 같습니다.
[14] ...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주장하고 계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뜻대로 하소서 말하며, 주께 맡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홀로 전능하시고, 항상 옳으시다는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약함과 나의 무지함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가장 강한 사자에서 가장 연약한 까마귀 새끼까지 하나님이 세밀히 살피고 계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믿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내게 은혜 주셔서 마침내 이기게 하시리라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애매한 고난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 벌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피해 일어나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다시 한 번 본문을 봅니다.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염려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오로지 믿고 의지하는 자 되어서 주의 예비하신 복 충만히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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