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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함에 대한 단상바른 믿음에서 바른 행동이 나온다.
정기호  |  texas.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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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1월 18일 (금) 00:00:00 [조회수 : 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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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는 “믿음”의 좋고 나쁨에 대한 잣대는 행위로 나타난다. 외면적으로 종교행위에 열심인 경우 즉 모든 집회에 앞장서 참석하고, 헌금을 앞장서서 구성원 중 상위그룹에 속하고, 전도에 열심이어서 새 신자를 많이 이끌고 오면 사람들이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인정하며 부러워 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히는 경우가 있다.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의에 이른다” 고했다. 반면에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같은 성경인데 상반된 견해는 믿음의 초보에게는 혼돈된다.(매스컴에서는 혼돈되는 상태를 “햇갈린다”로 표현하는 바 나는 거절하겠다”) 이 혼돈을 필자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상세히 살핀 후 해결을 보았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였다(롬 3:27-28). 그러면 의가 무엇인가? 의라 함은 우리말 사전에 보면 첫 째, 사람으로서의 지켜야 할 바른 도리, 둘 째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할 바른 도리로 보았다. 물론 다른 뜻도 있다. 영어 의 Justfication은 “의롭다 하기” “신이 인간을 심판하여 무죄로 인정하기, 또는 죄를 사하기 ” 로 해석했다. 바울이 말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하고 번역했어야 옳았다.

다행히 공동번역에서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옳바른 관계를 맺게 된다”고 했다. 또한 현대어 성경에서는 “우리의 죄 없음을 선고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능하다” 고 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번역이다. 같은 한국어를 가지고도 이토록 의미가 다른 뜻으로 번역을 하니 성경이 어려운 것이되고 만다. 필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뜻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믿는 사람에게 모든 지은 죄를 용서하시고 ,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고 영생을 얻게 한다”(요 3:16)고 정리하겠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서 “믿음과 행함”을 생각해 보자.

창 15장 6절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후사가 없을 때 하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셔서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그 수효를 셀 수 없도록 번성하게 해 주신다 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믿으니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다. 이 부분의 공동번역에서는 “그가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그를 갸륵하게 여기시어” 로, 현대어 성경에서는 “아브람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여호와를 굳게 믿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굳게 믿는 아브람을 흐믓하게 생각하시고 그를 인정해 주었다” 로 번역했다. 현대어 성경(성서 교재사 간행)이 가장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했다. “ 의로 여기시니라”로 번역함은 믿음은 곧 의로운자(의리 있는 사람) 로 오해하기 쉬운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용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강조했다. 바울은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라,,,,,,사라의 태의 죽음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롬 4:17, 19) 하여 창 15장의 사건을 인용하여 아브람의 믿음이 충만하였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실은 아브람은 믿음이 없었음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후사를 기다리고 기다려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음으로 그의 마음에 혼돈이 왔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에 대하여 미심적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그의 아내 사라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주시는 후사는 그녀의 몸종 하갈의 몸을 통해 올 것이다”라는 말에 동의하고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믿음을 인정(하나님의 의)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인정(사람의 의)하고 만 결과였다. 이것은 사람 스스로가 판단하고, 사람 편에서 이롭게 생각하고, 하나나님의 뜻과 의지에 대하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되고 말았다.

그러면 행함이 있는 믿음을 생각해 보자. 창 22장의 아브라함이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바친 믿음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후사가 20년 만에 그것도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 부부의 육체적이고 생리적인 기능이 사라져 자녀를 낳기에 불가능한 상태에서, 100세에 얻어진 귀한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이 아들을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자 그는 순종하였다. 창 22:12에는 “이제 내가 분명히 알았다. 네가 그렇게도 아끼는 외아들까지도 주저하지 않고 내게 바치는 걸 보니 네가 얼마만큼 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지, 또 네가 얼마나 나를 신뢰하고 섬기는지 내가 잘 알게 되었다.”(현대어 성경) 고 했다.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의롭다(인정하셨다) 하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과 행위에 대하여 오늘 우리들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습니다” 하면 인정(의롭다 하신다)을 받는다. 그러나 완전한 것은 아니다. 믿은 후 말씀을 순종(행위)해야 한다. 초보의 믿음은 “믿습니다”로 천국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나, 이는 스스로의 짝사랑이다. 말씀에의 순종이 아브라함과 같이 어떤 사람의 편에서 생각하면 최악의 경우에라도 순종해야 한다.
창 22장의 경우를 야고보는 인용하여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약 2:17)이라고 했다. 반면에 루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주장을 강하게 함으로 야고보서를 쓰레기 복음이라고 칭했다. 여기서 우리는 혼돈이 온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대어 성경)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공동번역){마7:21:23}. 라고 말씀하셨다.

“믿는다 ” 라고 고백함은 순종의 길을 여는 것이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결코 나누어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과 믿음으로 순종함은 병행되어야 한다. 새 시대의 일군들이 믿음으로 앞장서고, 들어서고, 드리면 하나님이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룩하신다는 것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는 “주여, 주여, 주여,”하지만 말씀에 순종의 길은 가지 않는다. 히브리인들이 모세가 행하는 기적과 이사를 보고 “하나님이 보내신 종”임을 인정했으나 모세가 지팡이 하나만 들고 “가자” 하니 감히 나서는 자가 없었다. 하브리인들이 생각할 때는 250만이 애굽을 떠날 때는 각 가정 마다 말이 끄는 전차와 식량과 의복과, 충분히 마실 물을 준비해 주고 “떠나자” 고 권고하리 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세의 손에는 지팡이 하나였다. 그러니 그들이 굶어 죽을것을 염려하여 따라나서지 못했다.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고 모세의 행동을 합리적이라고 인정해 줄 수 없었다. 히브리인들이 믿음으로 모세의 말을 듣고 따랐다(행위) 하면 가나안에 갈 수 있었으나 그들은 말로만 주여, 주여 했던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 신자들이 말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으므로 하 늘 나라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로마서의 “믿음” 우선과 , 야고보서의 “행위” 행위 우선의 문제는 같은 맥에서 보아야 한다. 양자의 우선 순위를 따질 논쟁의 가치가 있음이 아니다..

욥의 경우에 그는 동방의 의인이었다. 동방에서 세속적인 말로 잘 나가는 인물로 인정 받으며 세계의 유력한 경제잡지에 “세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인물”로 기사를 실어도 무방할 만큼 부유하고, 다복한 인물로, 우리 나라 말로 부귀다남의 복을 누리 던 사람이었다. 그가 갑자기 부도를 만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로 파산을 당한 것이다. 이 때 욥은 “하나님이 나의 의를 빼앗으셨다”(욥 27:2)고 했다. 욥은 재산이 다 없어지자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고대동방에의 사상은 자식은 대를 이어 주어야 함으로 꼭 낳아야 하는 데(남아선호 사상) 자식들이 몽땅 죽음으로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다. 욥의 건강이 다 깨어짐으로 친구와 부인이 인정하지 않고 욥의 곁을 떠났다.

욥은 말하기를 “내가 의로웠으나”(욥 35:5),,, 현대어 성경에는 “나는 정말 깨끗 하고 바르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 “ 했다. 욥이 파산하기 전에는 주변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욥에게 신세진 사람들이 많았다. 욥의 부유함과 세상적인 명망과 다복함을 부러워하고 닮아가려고 그의 경영비법을 전수 받으려고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 욥의 집안이었다. 욥의 친필 사인이라도 받고 싶어 그 주변을 맴돌던 사람들이 파산하고 병까지 들었을 때에 세상의 인심 그대로, 인지상정으로 욥이 자기에게 접근할까 겁을 내고 모두 떠나갔다.

또한 욥은 신용불량자가 아니었고 카드 회사에서 욥이 신용카드 신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카드 발급을 해 주었을 정도로 신용등급 최우등급이었으나 그가 파산 함으로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욥 54:6) . 욥이 파산 전에는 욥에게 납품하려고 비지니스 멘들이 줄을 서서 상담하고 아부하였으나, 지금은 허기져서 먹을 것을 동네 구멍가게에서 구하여도 도통 외상으로 주지 않는 것이다. 욥이 가게 근처만 와도 허리를 굽혀 읍소하던 사람들이 “외상 주기싫어”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든지 인정 받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토록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을 사람의 의요,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한다.

아브람의 경우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후사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의 힘과 지혜로 낳은 후사를 인정하는 것을 “사람의 의”라고 한다. 즉 창 15장의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때 이를 의로 여기셨으나, 즉 아브람의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하기는 했으나, 그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제 믿음을 스르로 인정한 인간의 의일 뿐이었다.

서울의 모 교회에서 담임목사 목회연한 연장을 위한 교인 총회, 감리교회 입법 총회가 무엇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총회는 사람들이 모여 사람들의 좋은 것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순종하는 믿음과 행위의 회”가 되어야 한다. 모름지기 신앙인이라면 신앙의 주체가 되고 지식이 되는 분의 뜻을 거스리지 않고, 사람의 생각으로는 옳지 않아 보여도, 복종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들끼리 모여 사람의 의를 하나님의 의라고 뒤집어 놓고 박수치고 좋아하고 할렐루야, 아멘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총회인가? 사람들의 총회인가?

로마서 10:2-3의 말씀을 기록함으로 “믿음과 행위에 대한 단상”을 마감하고자 한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믿음), 지식(지식= 학교에서는 선생이 지식, 가정에서는 부모가 지식, 교회에서는 목사가, 열심이 있는 신자가 지식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지식이다. 예수로 구원 받고 영생 얻어 천국에 가는 지식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인간의 열심이나, 물질 봉사나, 감동적인 구제나, 산을 옮길만한 인간의 믿음이 있거나, 모세로 말미암은 율법 등등은 교회에서 믿음의 지식이 될 수 없다.

< P>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바른 지식이 아닌 것들이 바른지식으로 통하고 있으니 비극이다.)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했다. 공동 번역은 “ 나는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열성만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바른 지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깨 닫지 못하고 제나름의 방법을 세우려고 하면서 하느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 다.” 하였다
“ 예수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바울) 바른 믿음에서 바른 행동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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