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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우리 사이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열아홉째 주일(20091011)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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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10월 07일 (수) 13:37:14
최종편집 : 2009년 10월 07일 (수) 15:11:16 [조회수 : 2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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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열아홉 번째 주일(20091011)
성서일과/ 시 90:12-17; 암 5:6-7; 히 4:12-16; 막 10:17-31
본문/ 막 10:17-31
하나님과 우리 사이

(막 10:17-31)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6]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지으셨을 때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거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조성하신 낙원에서 하나님과 사람은 친구처럼 그렇게 허물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사람에게 말씀하셨고, 인간은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둘이 한 몸 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을 받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후 사람과 하나님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생겼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나무 사이로 숨어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시며 사람을 찾았습니다.
전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없었기에, 하나님이 굳이 사람을 찾아 부르실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찾으시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에 섰어도 예전 같지를 않았습니다.
벗은 것이 부끄러워서 나뭇잎으로 앞을 가리고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나무와 나뭇잎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생긴 틈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틈새가 생겼습니다.
먹지 말라는 열매를 왜 먹었느냐고 나무라시는 하나님께 아담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 때문에 그랬노라고 말했습니다.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하던 사이가 나누어져 버렸습니다.
벗고 살아도 부끄러움을 몰랐는데, 서로를 부끄러워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사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인생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골이 파인 것입니다.
죄가 깊어지면서 골도 깊어졌습니다.
가인은 그 아우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아벨의 제사는 받으신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제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난 골을 메우는 수단입니다.
수건을 쓰지 않으면 모세의 얼굴에 비친 영광조차도 쳐다볼 수 없는 인생이 가리고, 거치는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한 방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상기하면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몸소 제물이 되셔서 드린 제사는 화목제입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오늘의 성서일과 중 히브리서도 말합니다.
          (히 4:15-16)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을 일러 대제사장이라 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보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다리가 되셔서 우리로 벌어진 틈 사이를 건너,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난 골을 메우기 위하여 드려진 제사입니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을 때, 성소의 휘장이 갈라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시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제사는 하나님이 인간과 교통하시기 위해 주신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로 인하여 아우를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일이요, 가뜩이나 넓게 벌어진 틈을 더 깊은 수렁이 되게 하고, 더 높은 담이 되게 하여 다시 건너기 어렵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치 못하면 사람 사이에도 화목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면 절로 사람과 화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어 세상에 화평을 전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인간이 파고 또 쌓아가는 수렁과 담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다리로 삼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서기 위하여 먼저 우리가 파고 또 쌓아 온 수렁과 담을 허물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말씀을 듣고 깨달아 수렁을 메우고, 담을 허무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인생이 끊임없이 파고 있는 수렁은 욕심의 수렁입니다.

길을 가시는 예수님 앞에 어떤 사람이 엎드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조항을 일일이 열거하시면서 그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그것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시면서,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니,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슬픈 기색을 띄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에게 재물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 사람이 악한 사람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아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픈 기색을 띄고 근심했다고 했습니다.
많은 재산을 버릴 용기가 없어서 근심을 했지만, 또 한편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됨을 슬퍼한 것입니다.
악한 사람 같으면 아마 재물이 많은 것도 하나님이 주신 복인데 그게 왜 부족한 것이 되느냐며 화를 내고 돌아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들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근심과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심정으로 주님 앞을 떠났을 것입니다.
주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3] ...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결혼 30주년을 맞이한 60세 동갑 부부가 있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천사가 나타나서 소원을 한 가지씩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그동안 워낙 가난하게 살다보니 여행을 못했는데 세계일주 여행을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네요.”
천사는 두 말 없이 항공권과 여행경비를 건네주었습니다.
소원을 말하자마자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본 남편이 아내의 눈치를 슬슬 살피더니, 천사의 귀에 대고 말했습니다.
“나보다 서른 살쯤 젊은 여자와 살았으면 좋겠네요.”
그 말에 천사는 “참 이상한 소원도 다 있네요. 아무튼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드린다고 했으니 안 들어 드릴 수도 없군요” 하면서 남편을 향해 날개를 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예쁜 새댁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남편이 폭삭 늙어 90세의 노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떻든지 소원대로 되어, 아내와 30살 차이가 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허황되고,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욕심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악한 부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욕심은 많이 가진 사람들만의 것은 아닙니다.
욕심은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죄의 흔적입니다.

욕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소망을 두는 일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기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려는 마음입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던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율법을 잘 지키고 영생을 소망하는 경건한 사람 같은데...
그런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누가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제자들의 마음에 가득 의문이 일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주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24] ...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제자들의 의문을 풀어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낙타가 어떻게 바늘귀를 통과할 수가 있겠습니까?
안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재물과 부자는 욕심의 다른 말입니다.
말이 달라도 기실 같은 말입니다.
욕심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수렁과 같은 것입니다.
욕심을 지닌 채로는 아무리 애써도 건널 수가 없는 수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고 했습니다.
욕심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생긴 틈을 넓고, 깊게 만드는 것입니다.
수렁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것이 욕심입니다.
허망한 욕심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 바라고 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허물어야 하는 것은 교만으로 쌓은 담입니다.

제자들의 의문은 실망으로 변했습니다.
악하지 않게, 율법을 지키고 살면서, 남부럽지 않은 부요함을 누리는 것은 모든 유대인이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영생을 얻을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럼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은 욕심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욕심의 수렁을 메우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 할 수 있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의 수렁을 메우는 일 곧 영생의 은혜를 받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불러 주시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실 때에 더 좋은 것을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기 잡던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4:19)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택하시고, 불러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했습니다.
          (빌 3:7-9)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그가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 그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들이었습니다.
그가 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더 고상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택하시고 불러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갈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가 버리려고 해서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지금 의문을 품고, 놀라는 제자들은 이미 그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자들이었습니다.
지금 주와 함께 영생의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28] ...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주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우리들은 어떻게 되겠느냐는 물음입니다.
우리에게 그 은혜가 있겠느냐는 물음입니다.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은혜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제자들 사이에 있던 수렁이 메워졌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이 부르실 때에 이미 허락하신 은혜였습니다.
부자가 바라던 영생뿐 아니라, 부자가 버리지 못해 근심하던 땅에서의 복도 100배나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불러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주께서 부르실 때에 예 하고, 아니오 하지 않는 것이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 주시는 것만이 참되고 영원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제자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은 것입니다.
버림으로 영생의 은혜를 얻고, 주를 쫓음으로 버린 것의 100배나 되는 은혜를 약속받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한 마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은혜 받은 자의 은혜가 헛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먼저 된 자들로 나중 되게 만드는 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먼저 된 자들이란 이미 은혜 받은 자들입니다.
은혜 받은 자들은 이미 메워진 수렁 위에 교만의 담을 쌓을 위험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불러 주셨습니다.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복을 주셨습니다.
그 씨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은혜 위에 교만의 담을 쌓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교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한결 같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말했습니다.
          (렘 13: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호세아도 말했습니다.
          (호 13:6)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일찍이 모세가 염려한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신 8:13-14) [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악한 자의 교만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은혜 받은 자의 교만입니다.
오늘 주님이 경계하시는 것도 그것입니다.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제지들도 그럴 위험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도 제자들은 자기들 중에 누가 더 높으냐를 두고 다투었던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들이 빠질 수 있는 가장 흔한 위험이 교만인 것입니다.
내가 더 큰 은사를 가졌다.
내가 하나님을 더 잘 안다.
하나님이 나를 더욱 사랑하신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네가 가진 은혜는 가짜다.
나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하나님은 나만을 사랑하신다고 말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나만을 사랑해야 한다고 우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우 아벨을 죽인 가인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길에서 다투던 제자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만은 필연적으로 사람 사이에 다툼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잠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욕심의 수렁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걸쳐진 것이라면, 교만의 담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만의 담은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시고, 그로써 사람이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십자가를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은사가 더해지시기를 바랍니다.
남보다 더 기도하고, 더 많이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보다 더 깊이 예수를 알고, 말씀의 신비한 뜻도 깨달아 아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은혜가 클수록 작은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은혜가 깊을수록 낮은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이르는 자들, 위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아래로 사람들과 화목한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00배가 되는 땅의 복과 내세에 누릴 영생의 복을 함께 누리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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