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을 맞아 더욱 침통해 하는 유족들, 그러나 유족들은 하루종일 예쁜 송편을 빚어 10월1일(목) 드려진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 이필완

추석 전날입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랑 신나게 놀고 있고, 아내는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송편을 먹으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제 일을 마치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고 김준곤 목사 빈소를 들렀습니다. 고인의 공과(功過)에 대해서 <뉴스앤조이>는 많은 글을 썼습니다. 주로 비판적으로 다루었지요. 고인의 빈소를 방문한 까닭은 <뉴스앤조이> 기자 신분보다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Hi-CCC 활동을 하며 신앙이 성장했다는 정운찬 총리가 고 김준곤 목사 빈소를 찾아 전효심 사모에게 위로를 전했다. © 뉴스파워

대학 1학년 때 CCC 수련회에서 김준곤 목사의 육성을 듣고 감동했고, 강원도로 거지 전도 여행을 했고, 일본 가서 일본어 사영리로 전도했고, 부암동에 가서 열심히 철야 기도를 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결혼할 때 김준곤 목사에게 주례를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떠올랐습니다. 참 순수했던 때라는 생각을 하니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집니다.

하지만 딱 1년뿐이었습니다.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돌멩이와 최루탄이 캠퍼스를 가득 채웠고, 분신, 할복, 고문 같은 끔찍한 단어들이 세상을 뒤덮었지만, CCC 서클룸 안에서 저는 세상 등지고 십자가만 바라보았습니다. 찬송하고 기도하며 부지런히 사영리만 외워 전도했습니다. 순수하기 그지없었지만, 무지몽매하기 짝이 없는 신앙생활이었습니다. 87년 6월 항쟁을 겪으면서 간신히 외눈박이 신앙의 껍질을 벗겨냈고, 그러면서 CCC와 결별했습니다.

넓은 영안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얼굴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국무총리가 된 정운찬 씨, 박근혜 씨, 정몽준 씨 등 유력 정치인들도 조문했군요. 장례 예배는 한국기독교회장으로 열렸고, 한기총과 교회협의 수장들이 장례식을 인도했습니다. 수천 명이 모였습니다.

▲ 추석 전전날인 10월1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드려진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는 150여명이 참석 했고 cbs 노조와 촛불교회가 성금을 전달했다 ⓒ 이필완

▲ 유족들이 만든 송편, 사진과 동영상으로 이날의 예배를 기록한 당당뉴스 운영자도 한봉지를 더받아 집에 가지고와 식구들과 나누었다. ⓒ 이필완

명절이 코앞인데도 여전히 상복을 입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런 고통의 현장에 가면 늘 만나게 되는 분들과도 인사했습니다. 염려했던 것보다는 많이 모였습니다.

▲ 내일이라도 정운찬 총리가 유족들을 찾아왓으면 좋겟다며 설교한 방인성 목사 ⓒ 이필완

방인성 목사는 설교하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가 추석 당일에 여기를 깜짝 방문해서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반응은 썰렁했습니다. 정운찬 씨 같은 사람들이 갈 곳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이지 용산 남일당이 아니라는 걸 다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촌과 용산의 사람들을 나무토막 자르듯 편 가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서는 두 곳의 사람들이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만, 그래도 애써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봅니다. 김준곤 목사의 빈소를 찾아 애도했던 사람들이 용산 남일당에 와서 아직도 병원 영안실 냉동고 안에 있는 남편의 시신을 꺼내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의 손 한번 잡아주고 등 한번 두드려주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CCC의 이 슬로건이 한때 저 같은 젊은이의 심장박동을 얼마나 쿵쾅거리게 했는지 모릅니다. 2009년 추운 겨울, 피 묻은 그리스도가 남일당에 심어졌습니다.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은 용산에 먼저 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나라에, 우리 교회에 소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 예배 참석자들은 용산참사 영전에 촛불을 바쳤다 ⓒ 이필완

▲ 송편을 나누어 주고 있는 유족들, 예배 참석자들은 오히려 당황해 하면서도 함께 맛있는 송편을 나누었다 ⓒ 이필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