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 > 꽃우물 이야기
북한방문기4"내레 죽는줄 알았시요"
박인환  |  gojumool2@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5년 11월 09일 (수) 00:00:00 [조회수 : 357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출발할 때부터 우리 셋의 최대관심사는 “과연 평양 아리랑축전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 입장료를 준비하자.”는 최현복선생의 말을 듣고 돈까지 마련한 터였다.

그런데 정작 첫날 저녁식사가 끝나고 나서 북쪽 요원들에게 “아리랑축전에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펄쩍 뛰는 것이 아닌가?

“오기 전에 미리 약속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못 간다”는 것이었다. “

에이, 그러지 말고 힘 좀 써 보세요. 우리가 여기를 자주 오기라도 합니까? 그리고 아리랑축전을 그렇게 잘 준비했다는 데 한 사람이라도 더 보여주면 좋지 않습니까?”

나와 김목사, 그리고 대한적십자사의 최선생 모두가 말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사실 간청인지 압박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것이긴 하지만)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숙소 로비에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사람들이 몇 명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쌀을 싣고 왔다가 그 날 남쪽으로 내려가는 통일부 직원들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그들로부터 “어제 아리랑 축전 구경을 하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고 온 감상을 묻는 우리들의 질문에 그들 중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소름이 끼치더라”고 하였다.

그 말에 그들 중 가장 젊어 보이는 사람은 “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보니까 이 사람들이 자랑할 만하던데요. 예술성도 있어 보이고 말입니다” 하고 말을 하였다.

   
똑 같이 아리랑축전을 본 사람들의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으니 아리랑축전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 졌다.

때마침 숙소에서 나오는 북의 최선생에게 “이 분들도 어제 평양 가서 아리랑축전을 보고 오셨다는데 왜 우리는 안된다는거냐”고 했더니 “아 이 선생님들은 남쪽에서 올 때 미리 약속을 오신 겁니다. 우리가 애쓰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 보십시오” 하고 대답을 하였다.

그런데 조금 기다리라던 이 사람들이 도무지 두문불출이었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하고 숙소(남포외국인선원구락부) 앞에서 낚시꾼들이 고기 낚는 것을 구경하면서 기다리는 데 낮 12시가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었다. 안되면 안 된다든지 되면 된다든지 아니면 지금 자기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말을 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이 사람들 해도 너무하는 구먼” “이 동네 사람 살 곳 못되는 구먼” “그래도 우리가 밀가루를 가지고 온 사람들인데 대접이 이래?” ..... 최선생과 둘이서 궁시렁거리고 있는데 북의 요원 두 분이 나타났다.

   
“오늘 오후에 평양 가도록 합시다. 그런데 여성인 최선생님만 오라고 하는데요?” 아니 이런 일도 있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얼굴을 보니 표정이 꽤 밝아보였다. 그들이 농담을 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날 오후 3시 반에 아리랑축전 관람차 평양을 가게 되었다. 모두 같이 가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면서 북의 최선생이 으쓱하며 공치사를 하였다.

“그래도 우리 북측이니까 이렇게 편의를 봐 드리는 겁니다” 이 말에 내가 “최선생님이 남쪽에 여러번 와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렇게 빡빡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했는데 그 말이 실수였다.

여기서 최선생의 불평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레 지난 봄에 울산에 쌀 실으러 갔다가 죽는 줄 알았시요. 쌀 싣는 작업이 일주일 계속되는데 그 동안 부둣가 콘크리트도 제대로 못 밟았수다.

   
중간에 두 번 남쪽 적십자 직원하고 식사하러 울산 시내로 나간 것 외에는 꼼짝없이 배 안에 있었시요. 잠간 내려가서 체조라도 하려고 하면 국정원직원이 ‘내리시면 안됩니다’ 하면서 딱 앞을 가로막는 거야요. 내가 뭐 도망이라도 칠 줄 아는 것처럼 섭하게 하두만. 사료가루 날리는 울산항구, 그것도 배 안에서 내레 혼났습네다. 그래도 우리는 육지에 내려서 주무시도록 하지 않습니까?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나는 막연히 남한이 자유로우니까 당연히 북한을 방문하는 남한 사람들보다는 남한을 방문하는 북한사람들이 좀 더 편리하게 지낼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조금 전까지 남쪽 최선생과 함께 불평하던 일이 아주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아, 그런 것이었다. 별 거 아닌 것을 가지고 그렇게 서로 신경전을 펼치는 것이다. 이미 북한에 대해서 웬만한 것은 다 아는 남쪽 사람들에게 아리랑 축전 한 번 보여주고 안보여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문제인가?

 쌀을 가지러 온 북의 적십자직원에게 울산현대자동차공장도 보여주고 조선소도 보여주고 이왕 선물 주는 거 백화점에 데리고 다니면서 사 주면 또 어떤가?

생각해보면 우리가 60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같이 정말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남북관계에 있어 ‘유치함’을 떨어 버릴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서로 감출 수도 없고 또 감출 필요도 없는 것이다.

[관련기사]

박인환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2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