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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말하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열다섯번째 주일(20090913)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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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9월 09일 (수) 19:55:38
최종편집 : 2009년 09월 09일 (수) 21:00:33 [조회수 :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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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열다섯 번째 주일(20090913)
성서일과/ 시 116:1-9; 사 50:4-9a; 약 3:1-12; 막 8:27-38
본문/ 야고보서 3:1-12
지혜롭게 말하라

          (약 3:1-12)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오늘 성서일과의 주제는 지혜입니다.
시편은 노래하기를...
          [6]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어리석음이 구원의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어리석은 데다 교만하기까지 하면 구원의 소망은 없습니다.

마가복음은 고난 받아야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베드로의 어리석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막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몇 주 전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제목으로 히브리서와 열왕기를 함께 살펴 본 적이 있습니다.
열왕기의 솔로몬을 통해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첫째, 되어 진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깨닫는 사람이고,
둘째,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고백하는 사람이며,
셋째, 무엇보다 하나님을 찾아 구하는 사람이라고 헸습니다.

또 히브리서를 통해서는 지혜를 지닌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첫째, 세월을 아껴야 한다고 했고,
둘째, 성령 충만한 가운데 찬송하고 감사하며,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는 특별히 지혜롭게 말하는 법에 대해 우리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히브리서에서 성령 충만하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라고 하신 말씀과 상관시켜 볼 수 있습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난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마땅한 일은 아니지만 그럴 수는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입술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나올 수 있지만, 성령이 소멸된 사람의 혀에서는 악한 말, 독한 말, 저주의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하늘로 올리우시기 전에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진 주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믿는 자는 성령이 머무르는 성령의 전이 되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육체의 소욕 곧 죄의 법을 따라 살기 때문에 주어진 성령을 따라 살 수가 없습니다.
자연히 성령이 소멸되고, 그의 말은 죄인의 법을 따라 악과 독, 저주를 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살게 마련입니다.
그는 저절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자가 됩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살고, 성령을 따라 말하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럼 지혜로운 말, 성령의 가르치심을 따라 하는 말은 어떤 말일까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말에 실수만 없으면 온전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고백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온전치 못함, 부족함은 하나님 앞에서 고백할 일이지, 사람들 앞에 드러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물을 넓게, 많이 치면 잡히는 고기가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씀의 뜻이 그것입니다.

말에 실수가 따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본문이 말합니다.
          [8] ...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바울도 비슷한 말을 말합니다.
          (롬 3:13-14)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 숨어 있던 속임과, 저주와 악독이 나오게 된다는 뜻입니다.
인생이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이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는 그들의 이름을 짓는 것에서 증명되었습니다.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말하는 권세는 하나님의 창조의 권세에 필적하는 놀라운 권세입니다.
잠언 18:21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하셨습니다.
죽이고 살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권세인데, 우리의 혀에 하나님이 그 권세를 두셨다는 뜻입니다.

처음 인간에게 있었던 것은 오직 살리는 권세였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후, 인간이 지닌 혀의 권세는 죽이는 권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바벨탑 이야기를 보면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무너뜨리시고, 사람의 말을 혼잡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반역하는 힘이 죄인들의 말하는 능력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이 배우지 않은 다른 나라의 말 곧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통하지 않게 된 인간의 말이 통하기 시작하는 역사가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리는 말의 권세를 되찾았다는 뜻입니다.
이제 인생들은 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죽이는 말과 살리는 말이 그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노라면 언제 죽이는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온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길들일 수 없는 것이 혀라고 합니다.
길이 들지 않았다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살리는 말을 하려고 해도, 언제 죽이는 말이 나올지 스스로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을 씨로 생각하면 결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땅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는 것이 씨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씨로 생각하는 법입니다.

본문도 말합니다.
혀를 일러 재갈이라고 했습니다.
배의 키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작은 불이라고도 합니다.
모두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제어하는 것들입니다.
씨와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제어하여 온전케 하는 길입니다.
많은 말로 혀를 길들이려고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말을 적게 하는 것이 길들지 않는 혀를 제어할 수 있는 길입니다.
혀를 길들여서 온전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왕에 말을 하려거든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입을 열어 말을 해야 한다면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처음 사람에게 주셨던 말의 권세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절로 이렇게 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을 때 제자들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떤 말이 살리는 말일까요?

첫째, 살리는 말은 좋은 말입니다.
선한 말입니다.
아름다운 말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무엇이 추하고,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한 선하고, 아름다운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의 지혜를 따르지 않고 성령의 권함을 따르는 자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지혜도 충만하게 됩니다.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를 뽑을 때의 조건이 그것입니다.
          (행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그렇게 뽑힌 스데반이 순교할 때의 모습이 어땠습니까?
          (행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스데반의 말을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을 죽일 수는 있었으나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경만큼이나 귀하게 여기는 책인 탈무드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혀이고 또 가장 싼 음식이 혀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혀가 가장 맛이 있다는 것은 친절한 말, 사랑스러운 말, 아름다운 말을 듣는다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혀가 가장 싸다는 것은 말하는 데 큰 힘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돈이 들어가는 일이 없기에 혀가 세상에서 가장 싼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이야기 중에서 싸다는 것은 본시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가장 맛있으면서도, 싸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맛이 있지만 비싸면 사 먹기가 어렵습니다.
싸도 맛이 있으면 사 먹게 되지 않습니다.
살리는 말이 그런 것입니다.
좋은 말 하는데, 비싼 대가를 치룰 일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말을 해 주는데 큰 수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은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가장 좋으면서도 가장 쉬운 것이 서로에게 좋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서로에게 좋은 말, 선한 말, 아름다운 말 하는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살리는 말은 긍정적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나온 히브리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 당도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보이는 곳입니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하나씩 12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40일 후에 돌아와 보고 온 것을 보고 했습니다.
“정말 그 땅은 젖과 꿀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땅이면 무엇 합니까?
그곳에 사는 족속들을 우리가 당할 재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낙 자손이 있는데 정말 큰 족속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떼에 불과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의 반응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 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정탐꾼들의 비관적인 보고에 이스라엘의 소망이 끊어지고, 실망과 원망의 마음이 넘실거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민 14:27-28)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말한 대로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40년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새로 난 자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이 씨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뿌린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좋은 씨를 뿌려서, 좋은 열매를 거두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말한 대로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의 말, 성취의 말, 소망의 말을 하는 자들 되셔서 주께서 행하시는 크신 역사를 목도하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가장 좋은 말을 하는 자는 잘 듣는 자입니다.
몇 년 전에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 전도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마침 다른 교회의 전도지가 있어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다 비슷했지만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설교 잘 하는 목사는 많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목사는 적습니다.’
처음 볼 때에 굉장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저만 잘 났고, 다른 목사는 다 엉터리라는 이야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좀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은 널려 있습니다.
그러나 말한 대로 행하는 자는 적고, 들은 대로 행하는 자도 드물기만 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선생이 되지 말라는 것도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 23:8)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욥의 경우를 보십시오.
말로 할 수 없는 환란을 당한 욥을 찾아온 세 친구는 처음에 아무 말 없이 욥과 함께 있었습니다.
욥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욥과 세 친구가 말을 시작했습니다.
셋이 번갈아 가며 말을 했고, 친구들은 선생이 되어 욥의 환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욥의 입에서 나온 말이 대개 이랬습니다.
          (욥 21:3) 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또 조롱할지니라

그만 떠들고, 내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조롱하는 말은 나중에 하라고 합니다.
그들의 말에서 위로를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선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절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고후 1:19)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 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예’ 하는 자는 듣는 자입니다.
말하기 전에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성령 충만하여, 피차 순종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했습니다.
서로의 말을 듣는 자가 되어야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 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바울도 말했습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시인한다는 것은 예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가 되어야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약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시편에서도 노래합니다.
          (시 81:8)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듣는 자가 복종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증언하는 종의 모습이 그렇고,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오늘의 성서일과 중 이사야가 말합니다.
          (사 50:6)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복종하는 자에게 주의 능력이 임합니다.
          (사 50:7-8)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능력입니다.
복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그 능력에 대해 바울은 외쳤습니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어디 있습니까?
이사야가 대답하는 것 같습니다.
          [9] ....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잘 말하기보다 잘 듣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장 말을 잘 하는 자도 잘 듣는 자를 이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서로 듣는 자가 되어, 피차 순종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잠잠히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말씀의 능력을 목도하는 자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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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11.222.239.202)
2009-09-09 23:38:04
지혜로운 말
말을 잘 들어 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는 요지의 설교, 큰 감동을 받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말은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말씀하시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그 분이 나를 지금 사용하셔서 말하게 하는 그 말.... 그 말에 담겨진 것이 얼마나 크고 풍성하고 놀라운 것들일까?.... 나에 의한 말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분의 말!! 그 속으로 가고싶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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