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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일을 하는 자가 되라미리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아홉번째 주일(20090802)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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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7월 30일 (목) 01:34:51
최종편집 : 2009년 08월 03일 (월) 10:06:35 [조회수 :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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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아홉 번째 주일(20090802)
성서일과/ 시 78:23-29; 출 16:2-4, 9-15; 엡 4:1-16; 요 6:24-35
본문/ 요한 6:24-35
믿음의 일을 하는 자가 되라.

          (엡 4:1-16)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랗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하니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삯과 은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합니다.
또 산 입에 거미줄 치랴고도 합니다.
둘 다 배를 채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냐를 뜻하는 속담이지만 가만히 음미해 보면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은 자책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쓸만한 말입니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사람 없다는 식으로 배가 고파 죄를 범한 후의 핑계요, 변명으로 제 격입니다.
욕심껏 쌓아두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결국은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말은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죄를 짓거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습니다.
막연하기만 해서 어찌 될 지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향하면서 내뱉은 말과 같이 어렴풋이 믿음의 흔적을 찾을 수도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시겠지....

오늘 주신 말씀들은 이런 속담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은 애굽의 종에서 해방되어 광야로 들어선 이스라엘의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하나님, 홍해를 갈라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말을 내뱉고 있습니다.
종살이하는 주제에 어찌 등 따숩고, 배부를 일이 있었겠습니까마는 그들은 마치 고기가마를 끼고 마음껏 떡을 먹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죽을 땅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받았음에도 감사한 마음이 사라지고, 원망하는 마음이 솟는 것은 그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구원의 은총을 체험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셨으니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게 하시랴 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출 15:21) ...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이런 찬양이 탄식하는 소리, 원망하는 소리로 바뀌는 데 사흘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의 이런 배은망덕에 대한 증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런 원망에 대하여 진노하심으로 심판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땅이 꺼지는 일, 불뱀이 물어 죽는 일, 역병이 돌아 죽는 일, 레위의 자손들 칼에 맞아 죽는 일과 같은 무서운 심판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배고프고 목마른 까닭에 내뱉은 원망에 대한 심판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그들의 원망을 들으셨습답니다.
그리고 배불리 먹을 것을 주시겠답니다.
한 가지를 덧붙이셨는데 그렇게 배가 부른 후에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해서 얻는 것을 삯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고 얻는 것, 일한 것 보다 더 얻는 것은 은혜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이 먹은 양식은 삯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양식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일을 통해 사람이 삯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훗날 모세가 말했습니다.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눅 4: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먹고, 배가 부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사람이 떡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 말하면 사람이 삯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산다는 것입니다.

먹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 사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삯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그 삯은 내일을 염려하여 쌓아놓은 만나와 같이 썩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도둑질해야 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으면 감사할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은혜를 잊고 더 많은 것, 더 맛있는 것을 위해 산다면 이는 광야의 이스라엘보다 더 한 죄를 짓는 일입니다.
은혜를 구하지 않고, 삯을 탐하는 일입니다.
먹는 일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명예가 그렇고, 권세가 그렇습니다.
심판을 피하지 못할 죄를 쌓는 일이요, 반드시 땅을 치고 후회할 일입니다.
목구멍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최악의 경우라도 산 입에 거미줄 치랴 되뇌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영원한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라.

오늘의 성서일과 중 요한복음은 그럼 사람이 무엇을 위해 수고해야 하느냐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바로 앞에는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물고기 두 마리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을 수 있었을까 궁금해하는 것은 쓸 데 없는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기적이랄 밖에요...

정작 성경이 문제 삼는 것은 그 후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왕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사람들이 쫓아 왔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오천 명이 먹은 양식 그 놀라운 기적으 양식이 썩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주를 따르는 자들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고기와 빵이 아닌 다른 양식, 썩지 않을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라고 하십니다.
주께 물고기와 빵이 아닌 양식, 썩지 않을 양식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그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예수를 믿는 것이 일이랍니다.
썩을 양식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님은 분명한 일입니다.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쌓기 위해 수고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 일은 삯을 바라는 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예수를 믿는 일은 삯을 구하는 일이 아니요, 은혜를 구하는 일입니다.

믿음을 일이 아니라 정신 혹은 영혼에 국한된 문제로 간주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상하고, 지적인 것 같아도 정작 믿음이 없는 자들이기 십상입니다.
정작 일이라고 해도 은혜를 바라는 일이 아니라 삯을 구하는 일로 이해하는 것도 쉽게 눈에 띱니다.
이런 경우는 소위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드렸느냐, 얼마나 오래 기도했느냐 하는 따위의 일들로 믿음의 크기를 측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찾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발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의 배고픈 고통을 익히 아시는 분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능력도 있는 분입니다.
오병이어로 무리들을 먹이신 것이 그런 까닭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이 떡을 배불리 먹고는 자기들의 왕이 되어 먹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열광했을 때 예수님은 한 없이 실망스럽고, 피곤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리를 피해 산으로 가신 까닭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도 썩는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고작 그것들을 주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러내신 목적은 복된 땅 가나안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척박한 가나안이 복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불리는 연고가 어디 있습니까?
애굽에서의 삶과 가나안에서의 삶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없는 떵과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는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시인이 노래합니다.
          (시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사람들은 흔히 모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밀라며 한 말에서 복의 실체를 찾으려고 합니다.
          (신 6: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 과 감람 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그것도 복이요, 은혭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때에 불과한 것입니다.
가나안에 처음 들어갔을 그 때에 국한된 일입니다.
만나가 영원하지 않듯이 가나안 땅에서 거저 먹는 일도 영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음해에도 같은 것을 먹기 위해서는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하는 수고 없이 얻는 것이 참된 복이 아닙니다.
수고한 만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복이요, 형통입니다.
가나안이 복된 땅이 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애굽은 어떻습니까?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 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애굽에서의 먹거리는 이스라엘이 일을 하고 받는 삯입니다.
그러나 수고한 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이 애굽입니다.
최대로 일을 시키고 최소한으로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의 마음입니다.
살리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수고롭게 해서 말살하고자 하는 곳이 애굽인 것입니다.

수고한 이상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도둑의 마음입니다.
수고한 이하로 주려고 하는 마음은 강도의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의 권세를 잡으면 세상은 수고한 대로 얻지 못하는 자들의 신음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출 6: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하나님이 신음하는 자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은 한 끼 양식이 아닙니다.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는 나라입니다.
가나안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표적을 보고 따르는 자들에게 주시기 원하는 나라는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배고픈 자나, 아픈 자가 없는 곳, 눈물과 탄식이 없는 나라입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위해 예수를 믿습니까?
삯을 위해서도 아니요, 썩을 양식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믿음의 목적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 믿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믿음의 일을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믿음으로만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것과 상관지어 생각하니 가는 것이라고 말할 따름이지 사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는 것 혹은 지어지는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 그렇습니다.
          (눅 17:20-21) ...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래도 믿음으로라는 전제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만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지을 수 있습니다.

들려가는 하늘나라라면 믿음을 일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루는 일이라면, 짓는 일이라면 믿음은 일입니다.
그것도 아주 수고로운 일입니다.
하늘에 속한 나라를 땅에 짓는 일이 될 것이니까요.

오늘 봉독한 에베소서 4장은 바로 그 일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한 마디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국한 된 것도 아닙니다.
예수의 부름 받은 모든 자들, 주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합니다.
          (빌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베드로도 이렇게 말합니다.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그럼 봉사가 무엇입니까?
사전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1) 남의 뜻을 받들어 섬김.
   2)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함.
   3) 상인이 손님에게 헐값으로 물건을 팜.

이것을 기독교적인 말로 정리하면...
   1) 섬기는 일입니다.
   2) 나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3) 희생이 따르는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봉사는 땅에서는 거둘 것이 없는 일입니다.
삯을 바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부름 받은 자들의 봉사를 통해 세워집니다.
오늘의 교회는 아닙니다.
진정 주님이 주시기를 원하셨고, 처음 믿은 사람들에 의해 잠시 이루어진 교회를 말함입니다.
그 교회가 어땠습니까?
          (행 4:32-35)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제 것이 없으니 모두가 모자라야 당연한 일인데 핍절한 사람이 없습니다.
제 것이라고 하면 썩을 것이 제 것이 아니라 하니 영원케 된 것입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핍절합니다.
참으로 없어서 핍절하고, 욕심껏 갖지 못해서 핍절합니다.
그러나 제 것이 아니라고 하니 넘쳐서 흐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일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봉사는 땅에서는 거들 것이 없으나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를 누리는 일입니다.

봉사는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주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사랑하신 일입니다.
사랑하심으로 봉사하신 일입니다.
섬기셨습니다.
희생하셨습니다.
죄 없이 죽었으니 자기를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을은 말합니다.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사랑하고 봉사하는 수고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의 도움 곧 은혜로 내 안에,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일입니다.
믿음의 수고, 봉사의 일, 사랑으로 하는 참된 일이 다 같은 말입니다.
그 수고의 결과가 수고한 대로가 아니라 수고한 이상이니 은혜라고 하는 것이지, 아무런 수고도 없이 거저 얻어서 은혜가 아닙니다.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헛되이 믿노라 말만 하는 자들이 되지 말고, 믿음의 수고를 아끼지 않음으로 썩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이루는 은혜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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