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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 도시가 하나되는 11회 농촌선교 한마당, 밤을 밝히다31일 오후5시부터 감신대 카페테리아에서, 생명농업인상 한터교회 최의주장로
이필완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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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0월 31일 (월) 00:00:00 [조회수 : 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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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11년 성상을 쌓아온,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이 주최하는 "제11회 농촌선교한마당"이 31일(월) 오후5시부터 9시까지 올해는 감신대 카페테리아에서 정겹고도 흥겹게 열렸다.

1부는 농촌선교원의 여정을 동영상으로 나누었으며 농촌선교훈련원 원장 차흥도목사가 인사했으며 김고광목사가 격려하고 "농목"(농촌선교목회자 협의회/회장 윤여군)에 농촌선교상을 전달하였다.

   
2부는 양식부페로 준비한 저녁식사 나눔이었는 데, 농촌선교 한마당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물론 예전의 농촌 음식 나눔과는 전혀 다른 출장부페(교회의 날에 치른 유기농 한식부페가 그리 비쌌을까?)가 그 편리성에 불구하고도 종내 마음에 걸렸다.  

3부 문화공연 한마당에는 홍보연의 국안찬양, 김미영의 직녀에게 등의 공연이 있었으며 윤여근농목회장과 인기 최고의 김정택목사의 반짝 공연이 있었고 최근 농촌선교훈련원의 지원 아래 조직된 노래모임인 ‘소리울림’(대표 신동근 목사)의 첫 공연 등이 진행되었다.(*동영상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이날 기독타임즈가 후원하는 농업인상은 이천 한터교회 최의주장로가 수상하였고(수상 이유, 아래 별도박스 기사처리) 홍보출판국 손삼권목사가 이야기로 듣는 농촌선교 2 "논두렁에서 신학하기" 발행 지원으로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생명농업인상 시상자를 소개합니다.
최의주 장로(이천남지방 한터감리교회)

신앙과 생활, 생활과 신앙이 한데 어우러지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성경의 곳곳에서 때로는 신앙에, 때로는 생활에 힘을 주어 강조하는 것을 보게 된다.
최의주 장로. 그는 새의 두 날개처럼 신앙과 생활의 균형을 갖춰 살아온 보기 드문 인물이다. 특히 생명 사상과 농촌문제에 일찍이 눈을 떠 오로지 그 길로 매진해온 이력은 주목할만 하다.
최의주 장로는 한터골(이천시 대뭘면 대대리)에 태어나 지금껏 70여년을 한터골을 지키며 살아왔다. 1972년 30대의 젊은 나이에 이장일을 맡아 보면서 신실한 신앙으로 동네 일을 건사했다. 그래서 결실을 거둔 것이 한터교회인데, 그 교회를 개척하게 된 내력을 들어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평소 교회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최의주 장로는 대동회를 주재하던 중 마을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 이에 동의하고 앞으로 신앙생활을 할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단다. 놀랍게도 참석한 주민 전원이 손을 들었고 바로 한터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1969년도부터 신앙을 가진 최의주 장로, 신앙의 풋내기였지만 주민들은 단지 최의주 이장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들어주었다고 회고한다. ‘인간 최의주’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에서는 사회보다, 다른 동네보다 한 발 앞서 많은 일을 감당한다. 부지깽이도 나가서 일해야 하는 농촌의 바쁜 현실로 미처 손이 가지 않는 동네의 어린 아이들을 위해 탁아소와 마을 도서실을 만들어 육아와 교육을 감당해 나갔다.
지역 현안문제를 옹골차게 부여잡고 풀어나가던 최의주 장로는 YMCA에 참여하면서 더욱 큰 일을 하게 된다. 그는 오래 전부터 농촌의 가난을 구조적으로 극복하고자 재정 자립 사업에 관심하였고, 그러던 중 79년에 YMCA 양곡은행을 마을에 설립하였다. 최의주 장로의 헌신은 여주, 이천지역 20개 부락에 양곡은행을 설립하는 놀라운 결실을 거둔다. 1993년까지 그는 전국 150개 양곡은행 부락 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또 다른 자립기반 사업으로 그가 구상한 것은 자연란을 생산하는 양계사업이었다. 동네의 여섯 농가를 묶어 시작한 일이었다. 호르몬제나 성장촉진제로 범벅이 된 사료를 먹이며 ‘알 낳는 기계’를 집단사육하는 기존의 양계는 수익은 보장될지언정 생명은 결코 보장할 수 없는 일이기에 답습할 수 없었다. 해서 자연란 양계를 선택한 것이다. 직접 제조한 사료를 먹고 건강하게 자라서, 건강한 만큼만 알을 낳는 2500여 수의 닭들을 보며 최의주 장로는 생명, 그리고 자연(自然)이 무엇인지 많이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5년 전부터 그는 모든 논을 유기농으로 전환해 품질인증을 받았고 지금까지 오리를 이용한 농법으로 건강한 먹을 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본받은 동리의 주민들도 오리농법을 실천하고 있어 봄철이 되면 대대리 일대는 벼포기 사이로 유영(遊泳)하는 오리들의 행렬이 이천 지역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되고 있다.
최의주 장로는 농산물 수입개방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하면서도 정부는 결코 농업과 농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붙잡고 나가야 할 분야가 농업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입지 않고 집 없이도 생명을 부지할 수는 있지만,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지극한 상식 때문이다.
원칙론만 되뇌는 것이 아니고 최의주 장로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우선 지금의 먹을 거리 생산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독을 한 상에 차려주는 것이기에 한시라도 빨리 유기농으로 바꿔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유기농 생산자들을 독려하고 인센티브를 주어 농민으로 하여금 저절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게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농민연금제도를 실시해서 뼈빠지게 일할수록 빚의 수렁에 더욱 깊이 빠지는 현실을 탈바꿈하고, 지역 생협을 만들고 활성화시켜 생산자와 소비자가 적절한 가격으로 사고 팔며 인격적인 만남의 장까지도 구축해야 하며, 자연재해를 빈번히 당하는 농산물의 특성상 재해보상제도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사방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의 근거를 찾아보기 힘든 농촌, 그럼에도 최의주 장로는 그곳 농촌에서 평생을 움직거리며 남은 이들에게 한줄기 빛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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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 (82.239.21.58)
2005-11-01 18:51:41
남은 자들에게 감사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농촌에 남아서 수고하시는 동역자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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