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 김세진 기자의 기사입니다.

▲ 이현주 목사가 “망해가는 나라를 건지려 하기보다 다른 것을 창조하고 건설하는 데 힘을 쓰라”고 제언했다. ⓒ뉴스앤조이 김세진

이현주 목사(드림실험교회)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일과 시끄러운 정국을 보고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다른 나라가 서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망해가는 나라를 건지려 하기보다 다른 것을 창조하고 건설하는 데 힘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강하게 반대하는 것도 외려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며 “그 사람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나” 되물었다.

정작 이현주 목사 자신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대운하 사업에 반대하며 ‘생명의 강을 지키는 사람들’ 100일 순례도 함께했다. 이현주 목사에게 더러 “그렇게 돌아다니면 생명이 살아나는가” 물었다고 한다. 이현주 목사는 “사회운동을 잘 모르지만 어디서든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해서 용산참사 현장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울면서 사방을 향해,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일일이 엎드려 절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난 2월 드림실험교회 용산참사 현장 예배 실황을 전했던 가톨릭 대안언론 <지금 여기>는 ‘김정식과 함께 하는 이야기 마당’ 6월 손님으로 이현주 목사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눴다.

“할 말을 준비했는데 말이 안 나오는 경험을 한 번 해봤네요.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그날 예배 참 이상했어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이용도 목사가 생각나네요. 그 분은 예수처럼 살다가 예수처럼 죽기를 꿈꾸는 분이었는데 신비주의자라고 교단에서도 쫓겨났어요. 그 분이 20대에 황해도에서 집회할 때, 강단에 올라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었어요. 그러자 나라 잃은 설움에 백성들도 울고 30분 쯤 서로 실컷 울다가 예배를 마쳤대요.”
 
김정식 씨는 이를 ‘아무 말할 수 없는 심통함’이라 했다. 이현주 목사는 용산 예배가 ‘아무 말 없는 위로’였노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 목사 자신이 길거리에서 만난 ‘아무 말 하지 않는 위로’를 나누었다.

“친구가 평생 침대에 누워서 생활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하며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막차를 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인기척이 났죠. 할머니 한 분과 딸로 보이는 젊은 여자, 그리고 손녀가 버스 정류장에 나란히 서 있는데 할머니가 무슨 일인지 자꾸 울었어요. 가만히 있던 아이가 아무 말 없이 할머니를 꼭 안더라고요. 꼬마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그게 최고의 위로죠.”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지 슬픔의 문을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지.
눈물 뒤에 침묵 뒤에 노래 뒤에
다시 영원한 아픔의 노래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지.

이현주 ‘슬픔의 문’

하나님을 알면 침묵할 수밖에

이현주 목사에게 ‘침묵’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다. 이현주 목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겪으면 말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평생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다가 죽음을 3년 앞두고 침묵한 것을 두고 ‘하나님의 존재를 몸으로 깨달은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아, 살아계신다’ 고백하게 되지만 계속 하나님이 살아계시노라고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어떤 말로도 담을 수 없어서 가사 없는 노래처럼 침묵하게 된다고 했다. 하나님의 현존을 머리로 아는 것은 지식일 뿐, 아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현주 목사는 때로 현실에서도 침묵한다고 했다. 이현주 목사가 천주교회와 가까운 이유도 천주교를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본질이 아닌 기독교의 단면을 성철 스님이 비판한 것을 보고, 큰 스님도 실수를 하시는구나” 생각했고 그 후 “소속 교단이든 다른 종교든 잘 알지 못하면서 틀렸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이 목사는 “할 수 있는 말 많은데 왜 비판하나. 예수님 이야기만 하다보면 천주교와 안 통할 수 없다”고 했다. 이현주 목사는 혹 본인이 원한다면 딸 셋을 수녀원에도 보낼 생각이 있다.
 
지금, 여기 있다면 다 갖춘 것

“지금 여러분과 제가 여기에 있잖아요. 그것은 존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게 다 있다는 말이지요. 하나라도 없어지면 존재하지 않아요. 완벽하게 다 갖춘 게죠. 존재하기 위해 있을 것은 다 있기 때문에 부족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요.”

“지금 있는 것도 충분해요. 어떻게 하면 저 분의 마음에 들까 궁리하며 살면 사는 게 힘들지 않아요. 없다며 안 주려고 하고 끌어당기고 가져 오려고 하니 복잡한 거죠.”

이현주 목사는 드림실험교회가 “태동하면서 이미 받을 것은 다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받았으니 할 일은 드리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드림’교회다.

드림 정신은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맡겨진 것들을 어떻게 본디 주인에게 잘 돌려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를 실천코자 하는 정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성직도 특별한 직분이 아니다. “성직은 일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했다. 농사꾼이 성직자일 수 있지만 전도사와 목사가 성직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성직을 직종으로 보는 것은 피상적이고 얕은 생각이라고 했다. 

	▲ 이야기 마당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현주 목사 강연을 마음에 새겼다. ⓒ뉴스앤조이 김세진

어머니 누님

“어느 날인가 교회에 다녀와서 어머니에게 갑자기 ‘누님’이라고 불렀죠. 40년 넘게 어머니라 부르다가 갑자기 누님이라 부르니 어머니가 ‘드디어 이놈이 미쳤구나’ 하며 당황하시더라고요. 세상 사는 모든 사람이 형 아니면 동생, 누님 아니면 누이에요. 그게 성서죠. 안 그러면 왜 하나님께 아버지라 하겠어요.”

이현주 목사는 안동에 있는 한 할머니에게 슬기를 얻었다고 했다. ‘예수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예수는 내 오빠지’ 하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한 수 배웠다.

“컵 안에 물이 있어요. 중요한 건 컵이 아니라 물이죠. 물 때문에 컵이 있잖아요. 물은 변함 없는데 컵은 바뀌어요. 몸은 유한해요. 하나님 자녀라는 사실이 물인데 그것을 중심으로 말하는 게죠. 그러니 누나지. 어머니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확실하니까.”

하나님 엄마

“지금부터 하나님 어머니라고 기도해보세요. '엄마’, 참 달라요.”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교인에게 어느 신부님이 ‘그러면 오빠라고 부르라’ 했다는 얘기를 들은 이현주 목사가 “나라면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을 게다”라고 대답했다. 이현주 목사는 실제로 가끔 하나님을 엄마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하나님이 남자라는 뜻이 아니다. 단지 가부장 제도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고 했다. 하나님은 성을 갖지 않으시고 하나님 자체가 우주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현주 목사는 “아버지라는 단어 속에는 어머니라는 단어가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없으면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 안에 아버지라는 존재도 있다. 이현주 목사는 ‘발음을 바꾼다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물었다.

가슴이 말하다
 
이현주 목사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다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늘 동화를 쓰고 싶었지만 용산에서 침묵했던 것처럼 20년 동안 동화가 써지지 않았다고 했다. 최근에 그는 동화를 하나 썼다. 그가 쓴 동화에는 여의도 광장에서 거품 물고 쓰러진 노인네와 작은 꼬마가 대화하는 내용이 나온다. 어디가 아프냐 묻는 꼬마에게 할아버지는 가슴이 아프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이현주 목사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인 듯하다.

“너무 오랫동안 가슴을 무시했나봐. 가슴이 속상하고 소외되어서 아파. 너는 할아버지처럼 이렇게 살지 마렴. 저기 국회의사당 지붕으로 지는 해를 봐. 해가 하루에 한 번 지는데 우리는 그걸 못 보고 살지. 너무 많이 생각하지마려무나. 세상에는 머리만 살고 가슴이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가슴을 채우고 머리를 비우면서 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