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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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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네임 : 이종찬 |
2005-06-23 10:57:23 조회: 4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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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P에 술과 마약 그리고 여자를 들여오는 사람>
드디어..
GP 책임을 맡은 장교의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통문이 열렸다.
짚차 운전병 옆의 선탑자 자리에 앉았던 나야, 여러번 드나든 경험 때문에 그저 무덤덤했지만..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간호장교와 군의관은 두터운 방탄조끼에 잔뜩 웅크리고 거의 몸뚱아리가 안보인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굳어있었다.
지붕이 벗겨져 오픈된 짚차에서는 사면팔방이 더욱 잘 보였다. 능숙한 자세로 허리를 낮춘 일개 분대의 병력은 우리 짚차를 중심으로 소위 "날개"를 폈다. 이는 짚차의 인원을 보호하려는 비무장지대 민정경찰의 전형적인 방어자세로서 갈매기가 날아갈 때의 모습처럼 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삼각형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고요한 정적 속에서의 비무장지대는, 가끔 끼륵대는 이름 모를 새소리와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잎들의 흔들림으로만 사위를 짐작할 수 있슬 뿐이었다.
이렇게 나는 또 다시 비무장지대에 들어왔다. 차량과 인원이 연합사령부에 모두 엄격한 심사와 보고단계및 승인을 거쳐야만 들어올 수 있는 이 민족분단의 현장에 나는 군종장교로서 그저 아침밥 먹고 출근하듯이 일상적인 발걸음을 내딛고있는 것이다.
게다가 내 몸뚱아리 혼자 덜렁 들어선 것이 아니었다. 수개월동안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살아기는 이들을 위해 나는 성례식을 베풀 준비를 갖추고 있다. 국방부에서 보급하는 국산포도주, 그리고 의료지원을 위해 군단병원에 동승을 요청한 군의관의 소지품에는 아마도 여러가지 치료제와 아울러 진통제 성분도 포함되어 있슬 것이다. 그리고 빠지지 않고 방문인원에 포함되어있는 간호장교도 동승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방문에서 겪었던 잊지 못할 친구들이 기억이 난다.
상황근무자를 제외한 전 근무병력이 모인 곳에서 군의관과 간호장교, 군목이 들어서자 그들은 그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슬 뿐이었다. 그렇지만 구리빛나는 까만 눈동자 사이로는 무언의 눈길속에서 우리에게 소리없는 아우성을 보내고 있음을 우리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세수도 제대로 할 수 없고, 한발자욱 거동하기조차도 조심스러운 육지의 섬가운데서 그들은 신석기 시대의 원시인들처럼 시간과 공간을 떠난 타임머신의 세계를 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가 모두 한 식구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계급과 직무를 떠나서 하나가 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 일들을 위해서 방문팀들 역시 기꺼이 나의 마음에 거스르지 않고 서로간의 담을 허물었스며, 근무자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심코 나오려는 순간, 취사장에서 식사를 준비하려다 우리의 방문을 한번 조우해보려고 뛰쳐나온 푸석푸석한 모습의 부억데기 일병을 보고 나는 고개를 돌려 간호장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병사의 손을 잡고 간호장교에게 격려의 악수를 부탁했고, 목사의 부탁을 받은 간호장교는 이 부억데기의 손을 잡을 뿐만 아니라 고향집의 남동생을 다둑이는 것처럼 살포시 그를 껴안아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GP를 나서는 우리를 아쉬운 듯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인양. 소조장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층계 칸칸이 내려서서 우리를 바라보며 배웅해주려고 늘어섰다. 눈물을 글썽이며 하나하나 그들과 눈길을 마주치고 굳은 악수를 나누던 나는 분단의 현실에서 우리가 치루어야할 아픔이 너무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산에는 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네>
나라를 빼앗겼던 민족의 가슴아픈 현실에 깊은 산중 침묵을 깨고 저자거리로 나왔던 <님의 침묵> 한용운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에서는 "산에는 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네"라는 노랫말이 생생하게 피어오른다.
가슴아픈 이 나라 분단의 현실 속에서 이 젊은이들은 견디기 어려운 이 비무장지대의 한 가운데를 버둥거리며 살아가야 한다. 이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이 마음껏 이 산과 저산에 올라가 호연지기를 누리고 , 큰 물과 작은 물을 오가며 스스로의 젊음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우리의 젊은이들은 단지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가슴저린 몸뚱아리를 추스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적으로부터의 보호와 한 솥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동료들과의 삶이 공존하는 그 곳은 마치 송파구에 흔적이 남아있는 신석기 시대의 움집과도 같다. 그리고 오늘 그 곳은 수류탄이 터지고 살점이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피비린내나는 자리로 바뀌어져버리고 말았다.
만해가 몸부림쳤던 것처럼, 오늘도 "산에는 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다" 목사의 자기 정체성에 문득 물음이 불쑥불쑥 치솟다가도 찢어진 살점과 낭자한 핏자욱들은 나를 다시금 일깨운다. 그렇다. 하늘이 나에게 허락하신 이 삶의 자리는 살점과 핏자욱으로 벅이 된 어머니 자궁과 같은 곳이다.
전우들의 살점과 핏자욱이 난무하는 내무반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오늘 한반도는, 산에는 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는 이 막다른 세상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에 난산을 겪는 어머니 자궁이다. 이 민족이 해방 60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환갑을 지나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는 어머니 자궁의 핏자욱과 살점들로 범벅이다.
지난 주에는 성가연습을 마치고 난 후, 옆자리에 있던 여집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이 집사님은 내가 휴가계획을 잘 세웠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시무룩하다. 남편과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자신이 서로 시간을 맞추지 못해 각자 나름대로 휴가를 가지게되었다는 푸념이었다. 이혼율의 급격한 증가와 가족 해체가 오늘 우리 교회 공동체의 현장에서도 심각한 숙제가 되었다.
해방, 육십년. 이 사회 곳곳에서 급격한 지각변동을 겪게되면서, 목회의 현장은 더 더욱 그 역할과 기능이 긴요하게 요청되어지고 있다. 이북과 세계 경찰국가 미국의 으르렁대는 싸움이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고,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기존의 가부장적 가족질서와 권위주의적 사회구조가 급격한 변화로 요동치고 있으며, 산업사회와 지식공장사회는 생명과 가치와 윤리를 가늠하기조차 어렵게하는 현실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도도히 휘몰아치는 오늘이다. 하나님의 영이 그 수면위를 운행하면서 새로운 창세기를 준비해야하는 시간에 두 손을 모은다. |
2005-06-23 10: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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