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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염치(廉恥)를 몰수(沒收)했는가?
 닉네임 : 쓴소리  2022-09-29 08:42:58   조회: 5642   
누가 염치(廉恥)를 몰수(沒收)했는가?



염치(廉恥)이란 말은 청렴할 염(廉) 자에 부끄러워할 치(恥)자를 쓰는데 사람이 무엇을 해서는 아니 될 부끄러운 일을 하고 그것이, 발각이, 되었을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얼굴 색깔이 변하든지 아니면 귀가 빨개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인가에게 염치를 몰 수 당했을 때는 귀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아니고 태연하게 시치미를 뚝 잡아떼고 모르는 척하고 그런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이 태연자약(泰然自若)한 태도를, 취하는 일류배우(一流俳優)의 역할을 능수능란(能手能爛)하게 연출한다. 짐승들은 수치심(羞恥心)이 없기, 때문에, 울타리를 뚫고 넘어 남의 집에 가서 가산을 망가뜨려도 짐승의 표정이나 태도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그 이유는 짐승은 수치심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는 그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 신(神)은 배, 요 그, 영광은 저희 부끄러움에 있고 땅에, 것만, 생각하느니라”라고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움은커녕 도리어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큰소리치고 당당하게 치며 당연하다는 식으로 이는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것이다. 도둑이 경찰 잡으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쯤 되면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동물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람이 염치(廉恥)를 자아(自我)라는 자에게 몰수(沒收)당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아가 죽어야 하는 데 자아가 살아서 기세등등하게 잘못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은 염치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아(自我)라는 자에게 빼앗겨서이다.



자아가 염치를 몰수하면 그 사람의 얼굴에 철판을 깔아 부끄러움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오늘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염치를 빼앗기고 인격이 파산되어 사람이 금수(禽獸)와 같은 행동을 하고도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며 옆에서 꾸중하면 흉기로 위협하고 도리어 큰소리치는 사회가 되어 웬만하면 간섭하지 않고 못 본 척하고 방관하고 피해버린다.



워낙 흉폭(凶暴)하기 때문이다. 속언에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라는 말과 같이 그 자리를 피해버린다. 즉 방관(傍觀)해 버린다. 이런 위험천만한 세대가 바로 현재라는 것이다.



자아(自我)라는 자에게 염치를 빼앗기면 양심이 마비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사람이 양심이 마비되면 그의 행동에 제동장치가 마비되어 그에게는 도덕과 윤리 따위는 아예 없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사람이 선악을 좌우하는 것은 양심의 통제를 받기 때문인데 양심이 고장 나면 제동장치 없는 자동차가 대로를 활보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성경에 양심이 고장 난, 사람이, 간음한 여인을 잡아 와서 죽이려고 손에 돌을 들고 여인을 치려고 할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그 여인을 치라”라고 하였다.



이때 그래도 염치가 있는 자들이라 “양심에 가책받고 돌을 땅에다 내려놓고 떠났다.”라고 하였다.



이들은 그래도 일말의 양심과 염치가 있어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부끄러워서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은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잘못은 묻어두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 트집 잡는 파렴치(破廉恥)한 뻔뻔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어 개(犬)가 웃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특히 정치계를 보고 있노라면 이래도 되는지 연구의 대상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적지 않다. 속언에 “똥 묻은 개 등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다시 말하면 주제 파악을,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법원에서도 반성하는 여지가 보이면 정상참작(情狀參酌)하여 형을 가볍게 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계속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버티면 형이 더 가해지는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라고 하였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염치를 몰 수 당한 사람들의 태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염치를 몰 수 당하면 자신만 부끄러움을 모르지, 타인들은 그의 부끄러운 일을 기억하고 뒤에서는 비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실수를 고백하고 사죄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실수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변명만 하면 동정의 여지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염치를 자아(自我)라는 자에게 몰 수 당하면 양심(良心)이 마비(痲痹)되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더욱더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기막힌 일이 일어나 사람들의 빈축을 사서 자신의 전도(前導)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나 염치(廉恥)를 외부의 적에게 몰 수 당하면 자신의 부끄러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해치게 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성경에 “청년이 귀신(鬼神)에게 염치를 몰수(沒收)당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귀신의 명령대로만 자기 행동을 맡기고 자신을 통제하는 권한을 귀신에게 양도한 후부터는 자기 몸과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외부에서 시키는 대로 로봇과 같이 피동적(被動的)으로 움직이는 불쌍한 사람도 있다.



그리하여 그는 귀신이 명령에 따라 자의적(恣意的)이 아니라 타의적(他意的)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關係)없이 사람을 해치는데 귀신 들린 이 청년은 사람들을 해치는 행동을 하기에 지켜보는 사람들은 더는 지켜만 볼 수가 없어 그를 물리적인 힘으로 그의 수족(手足)을 묶어서 매달아 놓아 타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와 같이 딱한 사정에 처해 있는 청년을 누구도 구해 줄 수 없어 두고만 보고 있을 뿐이었는데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다가 그를 보게 되어 그에게서 붙어서 그를 조종하는 귀신에게 “귀신아 그에게서 나오라”라고 하니 귀신이 떠나가서 온전한 정신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염치를 알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귀신에게 몰수당한 염치를 되찾아 벗어 던진 옷을 다시 찾아 입고 가정을 뛰쳐나간 것이 부끄러운 줄 알고 가정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그는 잃었던 그의 위상을 회복하였고 그의 염치나 부끄러움도 회복하였다 그리하여 그 지방 사람들로부터 환영과 찬사를 받으며 그의 인간성은 완전히 회복되어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존경과 대접을 받았다.



오늘의 정치권에서 무엇인가에 의하여 염치를 몰수당하여 사람들에게 할 수 없는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있어 배후에서 시키는 대로 타의(他意)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못 할 짓을 했다면 이제라도 정치 선배나 사회 선배의 도움을 받아 다시 염치도 회복하고 부끄러움도 회복하여 정치를 추하게 얼마나 오래 했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짧게라도 어떻게 뜻있게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제대로 했느냐를 살펴서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멋진 정치인이 되어 다시 국민으로부터 박수와 환영을 받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내 염치와 부끄러움을 내적으로는 자아(自我)라는 자신에게 몰수당하고 외적으로 귀신(鬼神)에게 몰 수 당했다면 다시 회복하여 새로 정치를 시작하여 정치인답게 정치를 마쳐야 할 것이다. 몰수(沒收)라는 단어는 범법(犯法)하지 않고는 절대로 몰수가 성립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몰수는 몰수당할 일을 했기 때문에 몰수가 성립된다는 것을 알고 앞으로는 자신의 인생에 염치와 부끄러움을 몰수당하여 금수(禽獸)와 같이 취급받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 “의인은 사자와 같이 담대하고 악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간다.”라고 하였다. 죄와 싸우되 죽기까지 싸워서 내 인생의 염치를 몰 수 당하여 파렴치(破廉恥)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일은 더욱더 없어야 할 것이다.
2022-09-29 08: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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