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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신(神)준 선물(善物)인 자유(自由)
 닉네임 : 쓴소리  2022-03-04 14:12:14   조회: 1099   
신(神)의 선물(膳物)인 자유(自由)
성경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온 것은 포로 된 자와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러 왔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자유(自由)를 뺀 민주주의(民主主義)는 공산주의(共産主義)밖에는 없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자유를 모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

그리하여 공산주의는 자유를 뺀 민주주의라고 한다. 종교를 자유화한 나라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독교를 허용하는 나라는 자유민주주의가 맞는다는 증거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모든 사유(思惟)와 행위는 예정되어 있고 신의 의지(意志)에 따른 것이지만 “신(神)이 자유롭기, 때문에, 인간의 예정에도 자유가 부여된다.”라고 주장했다.

스피노자는 “한 사물이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존재하고 움직일 때 그 사물은 자유(自由)롭다.”라고 보았다.

루소는 “자유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지니는 속성이며, 오직 개인에게만 속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칸트는 “자연과 자유를 같은 차원의 세계에서 조화시킨 것이, 아니라.”라고 하였으며 두 세계론(世界論)에 근거해 각기 다른 세계의 원리로 보았다.

이승만 박사는 유언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갈 5:1)하였다.

이는 바울이 한 말인데 바울은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라고 한 말이다. 죄를 지으면 죄의 노예가 되어 죄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는 영적인 면보다는 정치적으로 다시는 어떤 나라나 개인의 종이 되지 말라는 그의 유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국민과 국정을 책임진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침략자에 의하여 자유를 빼앗겨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자국의 정치인으로 말미암아 자유가 삭제되는 것은 더욱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그렇다. 어느 책에 “하나님의 이름은 자유”라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께, 질문을, 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그들이 나를 보고 누가 너를 보냈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라고 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시는 말씀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었느니라”라고 대답하라고 하였다.

이는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시는 분이 보냈다고 하라는 말이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은 자유라는 것이다. 자유(自由)라는 글자를 분석해보자 스스로 자(自) 자(字)와 말미암아 유(由)자를 모아서 자유(自由)라고 하였다.

이는 스스로 말미암아 누구의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시는 유일하신 절대 주권자로 인간의 생사화복은 물론 천지의 주인이 되시는 그분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이다.

그래서 자유는 그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과 나라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명칭을 붙이지만, 하나님을 부정하고 종교는 아편이라고 하는 공산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라고 말을 하지 못한다. 아니 그들은 고의(故意)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는 지켜야 한다. 빼앗기면 찾아야 한다. 자유의 소중함을 인정한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외친 것이다.

이는 목숨보다 자유가 소중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은 죽음만 못하다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를 의도적인 행위와 비의도적인 행위로 구별했다. "비의도적인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강제로 한 행위와 모르고 한 행위이다.

그에 반해 의도적인 행위는 행위를 움직이는 원리가 행위자 자신의 속에 있으며 그 행위의 개별적 상황을 행위자가 완전히 알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로운 결단과 지식을 연관 짓고 있지만, 자유 문제를 주로 자유의지의 문제로 한정하여 다루는 경향이 있었다.

중세 봉건사회를 지배한 자유 개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유 개념이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모든 사유(思惟)와 행위(行爲)는 예정되어 있고 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만 신이 주신 자유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유가 부여된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자유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지니는 속성이며, 오직 개인에게만 속한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은 프랑스 혁명 당시 인권선언' 제4항 곧 “자유는 다른 사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립한다.”라고 함으로 결실을, 맺는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자유는 자연법칙을 특정 목적을 위해 계획적(計劃的)으로 적용(適用)하고 활용(活用)함으로써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지배력(支配力)을 늘려가는, 데서 성립(成立)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자유를 특정 목적(目的)을 계획적(計劃的)으로 적용하고 활용해서 지배력을 늘려가는 데서 성립한다고 하였으니 자유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계획과 목적을 위하여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은 매우 위험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자유는 타락이나 방종은, 아니다. 타락이나 방종은 자유가 아니다. 자유도 법안에서 자유이다.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법인가? 공산주의 법인가 하나님의 법인가?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신이 준 자유는 신의 법안에서만의 자유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인류 최초의 사람인 아담이 신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지만, 금하신 법을 어김으로 벌을 받아 지금까지 사망(死亡)이라는 원죄(原罪)를 대대 손 손에 물려 주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인권을 무시하고 자유를 박탈할 수는 없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아니 될 일이다.

자유는 소중한 것이다. 신이 준 자유를 대대손손에 물려줄 의무와 책임은 있어도 자유를 잃고 고통과 노예의 유산을 물려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유린(人權蹂躪)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서 자유와 인권을 빼앗으면 이는 로봇에 불과한 기계적인 인간이지 생명을 가지고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미흡(未洽)하다.

신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하고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만물을 지배하라고 하였는데 인간이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빼앗아 로봇으로 만드는 것은 폐론(廢論)하고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악인이 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권력자나 이념(理念)가라도 인간의 자유를 빼앗아 로봇으로 만들 권리는 신(神)께서 어느 인간에게도 준 일이 없음을 알고 남의 인권과 자유를 빼앗는 자가 있다면

이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신에게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벌(天罰)을 면치 못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특히 공산주의자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말하고

종교의 자유를 빼앗은 죄는 그 죗(罪)값은 상상(想像)을 초월(超越)할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에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하늘의 우레로 그들을 치리니 산산이 깨어지리라”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2022-03-04 1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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